연극"나비"를 통해 본 위안부 문제
본문
"조선창녀! 허! 창녀는 사람이기나 하지, 우리는 이동식 공동 변소였다.
하루에 스물에서 마흔 놈까지 짓밟고 간.
내 몸뚱이는 사람 몸이 아니라 그 야만인놈들이 오줌과 정액을 쏟아버리는 변기통이었는기라."
-연극 "나비" 대사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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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월 8일 처음 시작한 수요집회.
13년동안 눈이오나 비가오나 매주 수요일 벌였던 이 집회는 658번째. 누가, 왜 그들을 658번째 그 자리에 서있게 하였을까.
"나비"는 일본군위안부를 소재로 한 연극이다. 주제가 주제인 만큼 이 연극은 단순히 "극"에 머물 수 없었다. 연극 "나비"는 역사였고, 현실 그 자체였다.
#1 "네 기억은 악몽이야 지워버려"
극중 김윤이 할머니의 손녀인 진아는 위안부 문제로 미국에 시위하러 오신 할머니 두 분을 소개시켜드린다. 김윤이 할머니는 그런 사람들과는 어울릴 수 없다며 차갑게 외면하시지만, 정작 자신도 위안부였다. 그녀는 열다섯 살에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하였고, 그녀의 오빠는 그녀를 찾으러 나갔다가 죽는다. 시간이 흘러 집으로 돌아온 그녀에게 어머니는 "네 기억은 사실이 아냐, 악몽이야. 에미를 위해, 죽은 네 오라비를 위해 다시는 그 악몽을 기억하지 않는다고 맹세해"라며, 그녀의 기억 속에서 끔직한 기억을 지워나간다. 시간이 흘러 두 할머니의 등장으로 "기억"과 "악몽"의 경계에서 고통스러워하는 그녀에게 손녀 진아는 "나 할머니 창피하지 않아요."라며 그녀를 껴안는다.
#2 "나 이제 할머니가 창피하지 않아요"
지금에 와서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연극을 보는 내내 중간에 나가버리고 싶은 충동을 많이 느꼈다. 너무 괴로워서, 너무 힘들어서, 너무 죄송해서 차라리 피해버리고 싶었다.
그렇다. 바로 이 모습, 이 핑계들이 할머니들이 13년 째 그 자리에 설 수밖에 없게 만들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들이 다시 조국으로 돌아왔을 때 그들을 외면한 건 조국이었고, 바로 우리 자신들이었다.
바로 내 앞줄에 앉아서 무대 위의 연극을 바라보고 계시는 할머니들, 그 분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시며 연극을 보고 계실까.
연극이 끝난 후, 한 할머니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극중에서 손녀 진아가 할머니에게 "나 할머니 창피하지 않아요. 할머니는 아무 잘못 없어. 이제 아무것도 걱정하지마. 이제 내가 할머니야."라고 이야기 해주는 진아가 정말 고마웠다고.
#3 "기억"의 빗장을 열고.
위안부 문제는 계급과 민족, 성 문제가 얽혀져 있는 하나의 복합체이다. 대체로 가난해서 속아넘어가거나, 강제로 끌려가 끊임없는 감시 속에서 지속적인 "성폭력"을 당하며 "성노예"생활을 해야만 했다.
이것은 정말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악몽이었고,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극중 김윤이 할머니의 어머니처럼 다시는 그 악몽을 기억하지 말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써 기억을 외면하려는 김윤이 할머니에게 이복희 할머니가 외치는 그 말 한 마디, "기억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그래, 차라리 "기억"이라는 게 머릿속에 잠시 저장되었다가 "지움"버튼을 눌러서 지워질 수 있는 것이라면 이렇게 긴 싸움을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움"버튼을 누를 수도, 지우개로 지워버릴 수도 없는 것이 바로 "기억"이다. "기억은 절대 사라지지 않아요!", 이 한 마디가 우리가 끔찍한 악몽의 기억을 지울 수 없는 단 한 가지 이유이고, 우리가 이 길고 긴 싸움의 터널을 계속 뚫고 나아가야 하는 이유이다.
#4 할머님들의 손녀와 손자가 되어야 할 때
연극 "나비"가 끝난 후 "손녀 진아가 고맙다"라는 할머니의 말씀은 지난 수십년 동안 할머니들이 얼마나 외로운 싸움을 해왔는가를 느끼게 해준다.
모 대학의 한 교수는 "일제식민시대가 축복"이라는 글을 써 국민들을 당황스럽게 했고, 독도문제 직후 일본의 우익들은 일제에 의해 강제로 "위안부"로 사셔야 했던 정신대 할머님들을 "원래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북한에서 내려온 공작원이다"라는 헛소리로 다시 한 번 짓밟았다. 또 여기에 지모씨는 "은장도"를 운운하며 그들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할머님들을 두 번 죽이는 짓을 서슴치 않았다.
하지만 이보다 더 죄송스러운 것은 지난 600회가 넘는 수요 집회로 일본에게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셨던 할머니들을 찾는 이들의 수가 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에만 할머님들 중 10분이 돌아가셨고, 지금도 중환자실에 계신 할머님이 계신다고 한다.
할머니들은 일본의 사죄를 받지 않고는 눈을 감을 수 없다고 말씀하시지만, 올해가 지나면 몇 명이나 살아 계실지 아무도 장담을 할 수가 없다.
이제 이 길고 긴 싸움을 마무리 해야한다. 뿐만 아니라 나 자신 한 명 한 명이 "손녀 진아"가 되어 할머님들과 함께 해야 할 것이다.
가슴에 무거운 상처를 안고 가신 할머님들과 지금도 싸움을 하고 계신 할머님들께 감히 약속드리고 싶다.
우리의 역사이고, 현실이고, 기억인 위안부 문제를 꼭 반드시 해결 할 것이라고.
이제는 우리가 할머님들의 손녀와 손자가 되어 할머님들을 외롭지 않게 할 것이라고 말이다.
글 배여진(천주교인권위원회 상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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