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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 장승 마을의 추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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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르 쓰르 쓰르 쓸쓸쓸쓸…

지나는 사람 하나 없는 진입로에는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 꿈쩍도 않고 서 있다. 저렇게 장승들이 굳건히 지키고 있어서 세월도 이 마을만은 비켜 가나 보았다. 장승 마을은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변한 게 없었다.

“그새부터 애들을 기다리는 거예요?”


“영감두 이젠 늙었나 보우. 생전 안 그러더니 자식들을 다 기다리는 걸 보니…”

“고것들 참 실하기도 하다. 늙은이 농사 치곤 만족이지?”

“아이구, 시원하다. 여기 사는 사람 아니면 이 맛 모르지.”

“추석이 얼마 안 남았어.”


도시로 나가 함께 살자는 자식들에게 할아버지는 늘 같은 말씀을 하셨다.

하늘 한 쪽에서 일기 시작한 구름이 퍼져가는 게 아무래도 심상치 않았다.



“영감님! 어서 일어나세요!”빗소리에 섞여 대문을 흔드는 소리에 잠을 깼다. 빗소리뿐인 어둠 속에서 이장이 소리치고 있었다.




결국 계곡의 물길이 마을로 넘어 닥쳐 휩쓸고 내려갔다.

“이게 무슨 날벼락이여!”


“허허, 참…”

“그래도 사람이 상하지 않아 다행이야. 다른 곳에선 사람이 여럿 상했대요.”

“야야! 살다가 무슨 이런 일이 다 있더냐?”


“잠깐만, 잠깐만 멈추거라.”


“장승이다! 장승이야! 이게 용케도 남아 있었구나!”


노인을 배웅하던 사람들이 모두 달려들어 흙 속에 묻힌 장승을 꺼내 다시 세웠다.



실랑이를 하다 하다 아들은 하는 수 없이 소매를 걷어붙이고 할아버지를 거들었다. 다 지은 농사는 망치고 남은 것은 없지만 인정은 풍년이 들었다. 각처에서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정성으로 힘을 보태 주었다. 무너진 집 대신에 컨테이너 박스로 만든 가건물이 생기고, 그럭저럭 밥도 끓여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추석이 왔다.

“쯧쯧… 추석에 송편이면 됐지 뭘 얼마나 차리겠다구. 청승 그만 떠시고 자, 떡이나 만듭시다.”

장승 마을의 올 추석은 전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마을 사람들과, 그들의 외지에 나가 있던 자식들과 마을 사람들을 위로하고자 찾아온 따뜻한 사람들로 그득했다. 그런데도 왠지 마을은 생기가 없이 침울하게 가라앉았다.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거요. 자, 힘을 냅시다!”

 

글 정진숙(동화작가)

작성자정진숙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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