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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안내] 뉴욕 에스키모, 미닉의 일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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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켄 하퍼 지음 / 청어람미디어 펴냄 / 12,000원

 

아빠, 아빠, 우리 아빠. 죽어서도 편히 눈감지 못한 불쌍한 우리 아빠. 누가 우리 아빠를 저기 저 차가운 유리 벽장 안에서 꺼내 주세요. 누가 우리 아빠를 태어나 살던 곳, 눈과 얼음의 땅으로 돌려보내 주세요. 그래서 영혼이나마 편히 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그래요 아빠. 우린 철저하게 속은 거예요. 그 몹쓸 욕심에 눈이 멀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백인들의 달콤한 말에 속아넘어가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우리의 삶이 이렇게 비참해지지는 않았을 거예요. 여전히 아빠는 우리가 필요한 만큼의 동물을 잡기 위해 얼음판 위를 달렸을 것이고, 엄마는 그렇게 잡아온 동물의 가죽으로 따뜻한 옷을 만들고 계셨을 테지요.

백인들이 우리 마을에 들어왔을 때를 생생하게 기억해요. 어설프게 차려입은 옷은 극지방의 찬바람을 막아주기에 턱없이 부족했죠. 그 뿐만이 아니었어요. 그들 중 어느 누구도 이 혹독한 지방에서 조상 대대로 살아온 우리 에스키모들의 도움 없이는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었지요.

우리는 그들을 이해할 수 없었잖아요. 무엇 때문에 눈과 얼음과 매서운 바람만이 가득한 북극점을 향해 달려가는지 말이에요.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그들이 사는 문명세계에서는 목숨을 걸고 성공해야 할 만큼 중요한 일이었다니. 지금 생각해도 정말 어리석은 짓이었어요. 아무튼 우리는 그들의 달콤한 약속과 위협을 견디지 못하고 필요 이상의 짐승을 잡아 든든한 가죽옷을 충분히 만들어줬고, 길을 안내하고 짐을 지어다주며 그들의 도전이 성공할 수 있도록 갖은 수고를 아끼지 않았잖아요.

하지만 정작 우리들에게 돌아온 것은 무엇이었나요? 우리의 헌신적인 노력은 모조리 무시되고 철저히 외면당했지요. 백인들은 저희들이 잘나서 그 큰 일을 해냈다는 듯이 기쁨에 취해 소란을 피우고 다닐 뿐이었잖아요. 그들은 항상 그랬어요. 자신들만이 세상의 유일한 중심인 것처럼 오만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죠. 그때 깨달아야 했어요. 백인들에게는 우리 에스키모들이란 그저 길이나 안내하고 짐을 져 나르는 훌륭한 짐승이었으며 신기한 구경거리에 불과했다는 것을 말이에요.

그들은 우리에게 문명의 화려함과 신비함, 편리함에 대해서 몇 번이고 설명했어요. 우리는 그것들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동경하기 시작했죠. 마침내 자연의 위대한 진리를 내팽개친 우리들은 마을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백인들을 따라 미지의 땅, 기회의 땅, 문명의 세계로 달려가고 말았던 거예요.

그곳에서 우리는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야말로 좋은 구경거리일 뿐이었죠. 말 할 줄 아는 아주 특별한 짐승. 어둡고 냄새나는 지하 골방에 갇혀 지내거나 동물원의 원숭이와 마찬가지로 백인들의 천박한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존재로, 백인 학자들의 오만한 지적 욕구를 채워줄 살아 있는 실험 대상으로 취급당할 뿐이었어요.

아빠, 저는 그런 문명세계가 싫었어요. 모든 생명들과 함께 호흡하고 그 안에서 우리 에스키모 또한 자연의 일부분으로 살아가는 북극의 삶이 너무나 그리웠어요. 아빠와 아저씨들이 세상을 떠난 후에 저는 다시 우리들의 땅으로 돌아갔어요. 눈과 얼음과 매서운 바람이 반겨주는 곳. 하지만 저는 다시 이곳 문명의 땅으로 돌아와야만 했어요. 왜냐하면 아빠를 고향으로 다시 모셔와야 했기 때문이죠.

돌아가신 아빠는 화려한 문명의 더러운 욕심 때문에 영혼의 안식을 누리지도 못한 채 자연사박물관의 해골 표본이 되어 전시되고 있었어요. 도대체 누가 우리의 죽음을 이렇게 조롱하고 멸시해도 좋다고 허락했단 말인가요.

아빠, 아빠, 우리 아빠. 이제 저와 함께 다시 우리들의 땅, 자연과 생명의 조화와 질서가 살아 숨쉬는 그곳으로 떠나요. 차디찬 얼음을 깨고 그 안에 아빠의 지치고 더럽혀진 육신을 묻어드리려고 해요. 그래서 아빠의 영혼이 다시 자유로울 수 있다면, 그 자유로움으로 에스키모의 진정한 삶을 되찾을 수만 있다면. 지나간 과거의 잘못을 모조리 씻어낼 수만 있다면.

아빠, 아빠, 우리 아빠. 이제 편히 쉬세요. 다시는 문명의 어리석은 욕심을 탐내지 말고 우리들의 땅, 자연의 품 안에서 영원히 안식을 누리세요. 아빠, 아빠, 우리 아빠. 그곳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그럼 안녕히.

 

(이 책의 주인공인 에스키모 소년 "미닉"은 미국자연사박물관에 전시중이었던 아버지의 유골을 끝내 돌려받지 못한 채 1918년 28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 후 1986년 이 책의 초판이 발행되어 에스키모 유골 반환 여론이 확산되었고, 마침내 1993년 자연사박물관은 그들의 유골을 반환하기로 결정했으며 그린란드와 덴마크의 협조로 카나크의 작은 교회에 비로소 묻히게 되었다.)

)

 

 

 

글 이우일(웹진 "부꾸"기자 www.book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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