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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읽는 동화]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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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만큼 앞서 엄마와 아빠가 안개가 자욱한 숲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도요는 엄마 아빠를 따라잡으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거리가 좁혀지지 않습니다. 숲으로 들어가고 나면 영영 놓치고 말 것 같아 조바심이 납니다.

"잠깐만, 잠깐만요. 같이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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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아픈 게여? 이 땀 좀 봐."

"


"다 속이 허해서 그런 거여. 통 먹질 않으니 왜 안그렇겄어."
할머니는 도요의 속도 모르고 자꾸 엉뚱한 말만 합니다. 도요는 그런 할머니 눈길을 피해 고개를 돌립니다.

"안되것다. 얼른 입맛을 돌려야지. 내 후딱 장에 갔다 올 테니 잠깐만 있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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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도요 걱정만 하시지만 도요는 할머니가 걱정입니다. 얼마 전에 삐끗한 허리가 아직도 다 낫지 않아 몸을 움직일 때마다 신음 소리를 내시거든요. 그런데도 도요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할머니가 없는 집은 햇빛이 내려앉는 소리도 다 들릴 것처럼 고요합니다. 이럴 때 도요는 엄마 아빠가 더 그립습니다. 도요는 입 속으로 "엄마, 아빠"하고 불러 봅니다. 금새 목이 꽉 메이며 눈가가 젖어 옵니다.

엄마 아빠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삼년 전의 사고 때문이에요. 그 사고로 도요는 엄마 아빠를 잃었고 몸을 움직일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이제 할머니가 아니면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70이 가까운 할머니에게는 도요를 돌보는 일은 힘이 부치신가 봐요. 지난번에도 도요를 추스르다가 허리를 다치셨거든요.

사실, 도요는 지금 다이어트 중입니다. 처음에는 할머니 힘을 덜어 드릴 셈으로 시작했지만 몸이 가벼워지는 게 참 좋습니다. 마치 새가 되는 것 같으니까요. 그런 속내를 모르는 할머니는 도요가 입맛을 잃은 줄 알고 이것저것 맛난 것을 해대며 여간 걱정하시는 게 아니에요. 의사 선생님도 몸이 쇠약해지면 면역성이 떨어져 큰일난다고 하시고요. 정말로 얼마 전에는 바이러스를 이기지 못해 단단히 폐렴을 앓기도 했어요. 도요는 기운이 없어져서 저도 모르게 깜빡 깜빡 잠이 들고는 해요. 그런데 정신은 더 맑고 초롱초롱해 집니다. 먼지 낀 거울이 닦이는 것처럼요. 그래서 도요는 다이어트를 중단할 생각이 없습니다.

 

열린 창으로 푸른 하늘이 넘쳐 들어옵니다.

물끄러미 새와 눈을 맞추다 보면 도요는 제가 새 같기도 하고 새가 바로 저 같기도 합니다. 한참이 지난 것 같은데 할머니는 아직도 돌아오시지 않고 그림자들만 소리 없이 키를 늘입니다.

심심합니다. 집에는 도요하고 장대 위의 새밖에 없습니다. 공연한 짓인 줄 알면서도 도요는 새에게 말을 건네 봅니다.

"너하고 얘기라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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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말이 맞아. 몸이 허해져서 헛소릴 들었나 봐… 근데 할머니는 왜 여태 안 오는 거야."

도요는 새를 보지 않으려고 일부러 딴청을 하며 할머니를 기다립니다.

얼마나 지났는지 모릅니다. 할머니를 돌아오고 그제야 기가 산 도요가 목소리를 높입니다.

"왜 이제 와? 저거 좀 치워 버려. 보기도 싫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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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매사냥이라고 들어봤지? 네 증조 할아버지가 바로 뛰어난 매사냥꾼이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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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조 할아버지는 새를 길들이는 재주가 뛰어나십니다. 어떤 새도 증조 할아버지는 길을 들일 수 있지요. 길이 잘든 보라매를 수지니라고 하는데 증조 할아버지에게는 분신과 같은 수지니가 있습니다. 증조 할아버지는 그 수지니를 데리고 다니며 사냥을 매사냥을 하십니다. 그런데 매사냥을 나갔던 증조 할아버지가 크게 상처를 입고 혼자 돌아오십니다. 총으로 사냥을 하는 사람들이 수지니를 사냥감으로 알고 마구 총을 쏘아 댔던 거예요. 그 바람에 수지니가 놀라 날아가 버렸고 증조 할아버지는 수지니를 잡으러 쫓아가다가 벼랑 밑으로 떨어지신 겁니다.

그 길로 증조 할아버지는 몸져누우셨는데 병세가 날로 심해져서 정신을 가누지 못합니다. 어쩌다 정신이 들면 수지니가 앉아 있던 장대 끝을 쳐다보며 "수지니… 수지니가 돌아왔냐?" 하면서 애타게 찾습니다. 보다못해 내 할아버지가 병석의 아버지를 위해 장대 위에 수지니와 비슷한 가짜새를 만들어 앉힙니다. "왔구나, 왔어! 수지니가 돌아왔어…" 증조 할아버지는 그 가짜새를 진짜 수지니로 알고 편안히 눈을 감으십니다.』

 

할머니의 얘기를 듣고 난 후 도요는 장대 위의 새가 더 특별하게 생각됩니다. 거부하지 않고 마음으로 새를 대하다 보니 새하고 얘기도 할 수 있게 되었어요. 하지만 할머니에게는 비밀입니다. 새하고 말을 한다고 하면 할머니는 도요의 정신에 이상이 생긴 줄 알고 이상해진 줄 걱정을 하실 테니까요.

이제 도요는 할머니가 없어도 심심하지 않습니다. 그럴 땐 새하고 얘기를 하거든요. 할머니가 너무 슬퍼하셔서 할 수 없던 엄마 아빠 얘기도 새하고는 자연스럽게 할 수 있어요.

도요는 지난밤 일이 걸려 마음이 무겁습니다. 할머니가 전화가 통화를 하는 소리에 잠이 깼는데 할머니 말만 듣고도 미국에 사는 고모 전화란 걸 금방 알 수 있었어요.

"못 간다. 나 힘든 거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그러구 싶다만 도요를 어떡하구. … 그건 안될 말여. …" 

고모는 할머니를 미국으로 모셔 가려고 하는 것이지만 할머니는 도요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시는 것입니다. 두 분의 통화는 또 옥신각신 하다가 결론 없이 끝이 났습니다.

"왜 또 기분이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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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 또 밭에 갔었어? 그러니까 자꾸 다리가 아프지. 이리와 봐. 내가 호-해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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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도요의 볼에 입을 맞추며 엉덩이를 두드립니다. 도요는 더 말을 못하고 입을 다물고 맙니다.

기운이 없어서 도요는 자주 정신을 잃어요. 할머니는 걱정스레 의사 선생님 눈치를 살피는데 의사 선생님은 고개를 젓습니다. 깜박깜박 정신을 잃다 보면 꿈과 현실이 뒤범벅되어 어느 것이 꿈이고 어느 것이 현실인지 도요는 구분이 되지 않습니다.

"엄마 아빠가. 멈춰 서서. 날 돌아보고 있어. 내가 부르는. 소리를… 이제 들었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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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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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쏟아져 내리는 햇빛이 너무 강해서 햇빛밖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저 햇빛 속에 있으면 뭐든지 빛이 되어 날아갈 것 같습니다. 그 햇빛 속에서 새소리가 들려 옵니다.

"실은 난 몸에는 아무 이상이 없어. 단지 몸 속에 영혼이 없어서 이렇게 있는 거야. 너하고 나하고 우리가 하나가 된다면… 넌 자유를 얻고 난 영혼이 생기는 건데. 그러면 어디든 갈 수 있어. 어때?"

도요는 잠시 할머니를 생각해 봅니다. 이제 고모에게 가셔서 편히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할머니의 소원은 도요가 훨훨 자유롭게 되는 것이라고 했던 말이 떠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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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에서 김을 매던 할머니는 눈부신 빛으로 싸여 날아가는 하늘을 가로질러 새를 보았습니다. 그순간 한 가지 생각이 머리 속에 스칩니다. 할머니는 집을 향해 달리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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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숙(동화작가)

작성자정진숙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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