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 나무 물고기의 나들이
본문
2002년 6월대한민국에선 무슨 일이 있는지 아니? 그래, 맞았어. 월드컵 축구 대회! 지구의 축소형 같은 둥근 공 하나를 가기고 온 세상 사람들이 야단법석을 떨고 있잖니. 그럼 그것도 보았겠구나? 파랗고 노랗고 빨갛고… 색색의 단청으로 곱디곱게 단장하고 상암 경기장에 나와 온 몸으로 소리를 내어 지구촌 잔치의 시작을 알리던 나무 물고기들을! 그런데 그들이 처음부터 그렇게 뻣뻣한 나무 몸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란다. 용이 되다 말았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야. 하여튼 그 나무 물고기는 천년 동안이나 산 속 절에 살다가 비로소 나들이를 나온 거였는데 그 이야기를 해 줄 테니 들어보렴.
아주 아주 오래 전, 하늘과 맞닿아 있던 물 속에는 수많은 물고기들이 살고 있었다. 어린 물고기 ‘이루’도 그 물고기들 중의 하나였다. 물고기들 사이엔 용이 되어서 하늘에 오른 물고기의 이야기가 전설이 되어 전해지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런 이야기를 사실로 믿지 않았다. “용? 그게 뭐야?” 간혹 이루처럼 어린 물고기들이 호기심을 보이기라도 하면 어른들은 한결같이 똑같은 말로 묵살해 버렸다. “그런 건 세상에 없어. 아무도 용을 본 적이 없는 걸. 그런데 어떻게 물고기가 용이 되겠니? 다 헛말일 뿐이야.”
물은 맑고 먹을 것도 풍부하여 아무 부족함 없이 살았으니까 그것이 사실이든 아니든 물고기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용의 전설은 그렇게 돌멩이처럼 물 속으로 가라앉아 버렸고, 물고기들은 하루하루 삶을 즐기면서 지냈다.
그런데 아무 부족할 것 없이 사는 물고기들에게도 딱 한 가지 걱정거리가 있었다. 그건 물 속 가장 깊숙한 곳에 사는 대왕고기였다. 대왕고기는 다른 물고기들을 잡아먹고 살았다. 거대한 몸을 일으키면 많은 물고기들의 희생이 따랐기 때문에 물고기들에게 대왕고기는 언제나 두려운 대상이었다. 하지만 물 속에 있는 수많은 물고기들에 비하면 그 수는 극히 적은 것이어서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물 흐름이 잔잔하여 물 속 깊이까지 비쳐 든 환한 햇살에 아름다운 빛무늬가 물결을 타고 일렁거렸다. 물고기들은 햇살 무늬를 따라 한가로운 헤엄을 즐기고 있었다. 그때 물 속 깊은 곳에서부터 소리 없는 소용돌이를 일으키며 시커먼 물체가 다가왔다. 대왕고기였다. 그러나 한창 즐거움에 빠져 있던 물고기들은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다. 대왕고기가 무리 곁으로 바싹 다가와 물고기 몇 마리를 삼키고 난 다음에야 물고기들은 허둥거리기 시작했다. ‘대왕고기다! 비상! 비상! 어서 어서 피해!’ 소리를 낼 수 없는 물고기들이기에 꼬리와 지느러미를 흔들며 바쁘게 몸으로 신호를 보냈다. 물고기들은 빠르게 흩어져 수초 속에 몸을 숨겼다. 하지만 이루는 신호를 보지 못했다. 대왕고기는 이루를 향해 입을 벌리고 달려들었다. ‘안돼!’ 그때 누군가가 번개처럼 빠르게 이루의 몸을 밀어내고 대왕고기를 향해 돌진했다. 이루의 엄마였다. 이루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어디에서도 엄마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몸을 돌려 깊숙한 물밑으로 유유히 사라지는 대왕고기의 꼬리만이 잠시 보였을 뿐이었다. 이루는 그렇게 엄마를 잃었다.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에도 수많은 물고기들이 큰 물고기나 대왕고기의 입 속으로 사라졌지만 물고기들의 생활은 달라지지 않았다. 큰 것이 작은 것을 잡아먹으며 마음에 드는 고기의 짝이 되고자 안달을 하고 아무런 목적도 없이 무리를 지어 우르르 몰려다니는 게 물고기 삶의 전부였다. 그새 이루도 성큼 자라 늠름한 청년이 되어 있었고 그런 이루의 주위에는 모여드는 물고기들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들은 이루의 마음을 다 채워 주지 못했다. 문득 문득 대왕고기의 입 속으로 사라진 엄마와 물고기들 생각이 떠오르면 슬픔을 가눌 수 없었다.
‘왜 이렇게 가치 없이 살아야만 하는 걸까? 어떻게 하면 이런 어리석은 삶을 벗어날 수 있을까?’ 작은 점으로 가슴에 생겨났던 생각이 날이 갈수록 커졌다. 이제 이루는 다른 것에는 아무 관심이 없어졌다. “그게 바로 우리의 삶이야. 다들 암말 않고 사는데 괜히 유별나게 굴지 마. 남들처럼 그렇게 살면 되는 거라구.”
유난히 이루를 따르는 물고기 어리는 이루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무진 애를 썼다. 이루도 그런 어리의 말을 따르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았다. 마침내 이루는 늙은 거북이를 찾아가 물었다. 거북이는 물 속에서 가장 오래 살았을 뿐만 아니라 물 속이나 물 밖을 다 다니기에 아는 것이 많았다.
“거북이 영감님, 왜 우리 물고기는 먹고 먹히다가 의미 없이 사라져야 하는 건가요? 다르게 살수는 없는 거예요? 네?”
“내가 이 나이 먹도록 그런 걸 묻는 물고기는 처음 보는구나. 그래 봤자 네가 물고기로 사는 한은 도리가 없겠지만.”
“전혀요?”
“아무렴. 용이 되어 이 물 속을 벗어난다면야 혹시 모를까.”
“용이 된다구요?”
“그래. 너도 듣지 않았니?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간 물고기 이야기를.”
“그렇긴 하지만 그건 그냥 전해 오는 이야기 아닌가요?”
“글쎄, 내가 직접 보지 않았으니까 확신할 수야 없지만 아주 근거 없는 이야기라면 여태껏 전해지겠니?”
“맞아요! 그렇죠? 그럼 어떡하면 용이 될 수 있어요?”
“이야기로는 물 속 세상 끝에 하늘과 닿아 있는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면 된다고 하더라만.”
“그래요? 그럼 전 폭포를 뛰어오르겠어요. 그래서 용이 될래요.”
이루는 그날부터 온 힘을 기울여 폭포를 뛰어오르는 일에 매달렸다. “쓸데없는 짓이야. 그것 아니고도 얼마든지 잘 살 수 있는데 왜 공연한 일에 인생을 거니? 그러지 말고 우리랑 재미나게 놀자.”
모두들 말렸지만 이루의 마음을 돌려놓지는 못했다. “난 한다면 한다니까. 두고 보라구.” 물고기들은 그런 이루를 비웃으며 하나, 둘 떠나갔다. 어리까지도 매몰찬 이별을 말을 쏘아붙이고는 다른 물고기들을 따라갔다. 이제 이루는 혼자 남았다.
이루는 입을 앙다물고 오로지 폭포를 뛰어오르는 일에만 매달렸다. 그렇지만 물고기가 까마득한 폭포를 뛰어오른다는 건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이루는 배를 드러낸 채 물 위로 떠올랐다. 이제 숨을 쉴 기운조차도 남아 있지 않았다. 자신의 삶이 다하고 있음이 느껴졌다. 이루는 간신히 감기는 눈을 뜨고 폭포를 올려다보았다. 끝을 드러내지 않고 하늘 속으로 이어진 폭포는 너무도 가마득했다. 이루는 눈을 감고 숨을 참았다. 그리고는 남아 있는 힘을 모두 모아 마지막으로 폭포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거센 기세로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에 이루의 몸은 위태롭게 곤두박질쳤다. 이루는 눈을 꼭 감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몸과 함께 미련도 욕심도 집착도 거센 물줄기 속에 던져 버렸다.
그때, 위에서부터 낚시 하나가 드리워졌다. 엉겁결에 이루는 덥석 낚시를 물었다. 그 순간 엄청난 우레 소리와 함께 회오리가 일면서 폭포는 거대한 물기둥이 되어 거꾸로 솟구쳐 올랐다. 치솟아 오르는 물기둥은 폭포 위에 걸린 오색 구름을 뚫었다.
그런데 이루의 머리 속으로 언뜻 어리의 모습이 스쳐 갔다. 오색 구름 위로 올라가던 이루는 고개를 돌려 아래를 보았다. 물고기들은 여전히 물 속에서 떼를 이루어 몰려다니며 한껏 즐거움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물 속 깊은 곳에서 커다란 대왕고기가 물고기를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이루는 몸을 흔들어 위험을 알렸다. 그러나 이루의 신호는 물 속의 고기들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벌써 물고기들은 잡아 삼킨 대왕고기가 이번에는 어리를 노렸다. ‘안돼! 위험해!’ 이루는 힘껏 고함을 쳤다. 그러나 소리를 내지 못하는 이루는 입만 벙긋거릴 뿐이었다. ‘소리를! 내게 소리를 줘!’
이루는 온몸이 벌개지도록 힘을 다해 버둥거리며 몸부림쳤다. 그 바람에 낚싯줄이 툭 끊어졌다. 솟아오르던 물기둥이 삽시간에 부서져 내렸고 이루도 내동댕이쳐졌다. 온몸이 벌개진 채로.
숨이 멎고 이루의 온 몸은 굳어 갔다. 용이 되지 못한 이루는 뻣뻣한 나무토막이 되어 물 속도 하늘도 아닌 땅바닥에 나뒹굴었다. 머리만 용의 모습으로 여의주를 물고서. 지나가던 스님이 나무 물고기가 되어 땅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이루를 보았다.
“거참! 괴이하다.”
스님은 그 나무 물고기를 주워다 천장에 매달아 놓고 쳐다보며 생각했다. “이게 무엇인고? 아무리 봐도 모르겠는 걸.”
그러다가 어느 날 채로 툭 건드려 보았다. “뚝!” 그렇게도 나오지 않던 소리가 그제야 깊고 낭랑한 울림으로 튀어나왔다.
스님은 그 소리를 듣기 위해 자주 나무 물고기를 두드렸다. 빠르게 느리게, 세게 가볍게, 끊었다가 또는 연달아서…… 나무 물고기는 그때마다 색다른 소리를 내었다. 그것을 본 다른 스님들도 똑 같은 나무 물고기를 만들어 놓고 따라 했다. 그렇게 울리는 나무 물고기의 소리는 스님들의 게으름을 쫓고, 물 속에 있는 고기들의 정신도 번쩍 들게 했다.
산 속 절에서 살던 이루와 나무 물고기들이 세상으로 나온 거야. 이루가 나무 물고기가 된 지 꼭 천년만이었지. 색색의 단청으로 곱게 단장을 하고 여의주 대신 지구 모양의 축구공을 입에 물고서 말이야.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나무 물고기는 거침없이 소리를 쏟아 냈어.
피부색도 다르고, 말이 달라 오해와 갈등과 분열을 빚던 사람들의 귀에 나무 물고기의 소리는 한 울림과 한 느낌으로 전해졌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사람들은 손을 내밀었어. 이해와 화합하려는 마음이 생겨났던 거지. 나무 물고기의 소리에 맞추어 손에 손을 잡고 사람들은 춤을 추었단다. 함성이 일고 들불처럼 번지는 기쁨과 환희가 꽃밭을 이루었어. 땅이 놀라고 하늘이 감동을 하도록.
글/ 정진숙(동화작가)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