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에 가슴 먹먹해지는 고향이야기
김영주의 영화로 보는 세상
본문
[이슈신문 시민의 소리]
<다큐 3일>의 변두리 어느 고물상에 100여명이 기대어 산단다. 허리 굽어 절룩거리며 고물수레를 간신히 끌고 드나드는 할머니, “집에 있으믄 맨나 아프고, 돈이 나와? 밥이 나와? 힘들어도 자꼬 움직여야제 ... .”
* 늙은 소 그리고 할배와 할매의 가슴 먹먹한 고물 인생
워낭소리, 소방울 소리, 땡그렁 찡그렁 땡그렁 찡그렁. 경북 봉화 어는 산골마을, 할배와 늙은 소가 주인공, 할매와 젊은 소는 조연, 자연산천과 읍내 장터 사람들은 엑스트라. 거기에 울 엄니 닮은 모습과 고물 할머니 같은 삶이 이야기로 엮어들어 간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이 영화에 할매가 없었다면 그저 맨숭맨숭한 기록물에 지나지 않았을 꺼다. 어찌 보면 할매가 더 고생스럽고 더 짠하다. 남의 일이라 말이 좋아 무위자연(無爲自然)이지, 할매가 보는 할배는 꽉 막힌 바윗돌이요 막무가내 똥고집 앳가심이다. 할매의 한숨 어린 잔소리는 글자 그대로 ‘소귀에 불경 읽기’이다. 기계도 안 쓰고 농약도 안치고 농사짓는 할배도 할배지만, 그 뒷감당을 모두 이고 지고 따라가야 할 할매의 일꺼리가 오죽하겠나? 만만한 게 늙은 소인지라, 말 못하는 늙은 소만 타박한다. 문득 늙은 소가 무슨 잘못이겠냐 싶어서 쨘한 맘에 “니도 내처럼, 팔자가 사나워서 저 할배 만나서 이리 고생하는기라!”며 쓰다듬어 준다.
늙은 소와 젊은 소에 송아지까지 끼어들어 주고받는 눈짓과 몸짓이 살갑게 정겹다. 할배의 투박하고 고집스런 머리통에 얹힌 모자의 영어와 우리말을 뒤섞어 지은 우스꽝스런 농약이름이 풋웃음을 주면서도 그 이채로운 대비가 씁쓸하다. 놓치기 쉽겠지만, 감독의 깊은 배려가 묻어나는 대목들이다. 짧고 무뚝뚝하지만 옹골찬 몇 마디 말들이 가슴에 와 박힌다. * 할배 “말 못하는 짐승이라 그라제, 말 할 줄 알믄 날 무지 욕할끼다! / 이 소하고 나하고 같이 죽을끼라! / 내한테는 이 소가 사람보다 나~아! / 죽어야 안 움직이제, 살았으면 움직여야제~! / 500만원 안 주면, 안 팔아! / 좋은 데로 가그라이~ ··· ” // * 할매 “니도 내처럼, 팔자가 사나워서 저 할배 만나서 이리 고생하는기라! / 마른 논에 물 들어갈 때하고, 자식 입에 밥 들어갈 때가 젤로 행복해! / 어떤 할매는 복이 터져 싱싱한 영감 만나 농약도 치고, 이 내 팔자는 끌끌 ... / 라디오도 고물, 영감님도 고물!”
* 가물가물 사위어 가는 고향의 불빛
가슴 먹먹해서, 그 먹먹한 가슴을 파고들어 무언가를 끄집어내어 글로 써내려간다는 게 여간 힘든 게 아니지만, 이 영화를 더 많은 사람이 보게끔 입소문을 내려니 쓰지 않을 수 없다. 가슴 먹먹한 슬픔을 피하고 싶은 사람 · 60년대 꼬질꼬질한 시절을 꿀꿀하게 여기는 사람 · 시골경험이 없는 어린이나 요란한 게임을 즐기는 청소년들 · Stylish한 도회적 취향을 즐기는 사람들에게는 별로 재미없을 지도 모르겠다. 대중재미 ??? · 영화기술A0 · 삶의 숙성 A+
시장만능주의가 빼앗은 수많은 생명과 짓누르는 무거운 절망 속에서도, ‘소띠 해’를 맞이하여 ‘늙은 할배와 늙은 소’의 고향이야기에서 가물가물 사위어 가는 ‘희망의 불씨’를 다시 살려보자. 할배 논밭에 뽀짝 다가선 자그마한 언덕산 회색울퉁바위 틈새에, 이제 막 물오르는 초봄을 타고 샛분홍빛으로 화들짝 피어난 진달래가 깜찍 예쁘다.
우리 다큐영화 중에서 최초로 관객이 10만 명을 넘어섰다지만, 100만 명이 넘기를 기원한다. 광주극장에서 2/18일까지 상영합니다.( 연장 상영할 예정 ) 다른 영화 상영과 뒤섞여 있으니, 싸이트로 들어가서 시간표를 확인하십시오.
작성자김영주 yjkim@chodang.ac.kr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