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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현장이야기 1] 문학사랑으로 늘푸른 "상록수독서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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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현장이야기]

 

문학사랑으로 늘푸른 "상록수독서회"

 

 

  책은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끈이다. 앞세대의 생각을 뒷세대에 전달하고,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는 서로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
  책이야기 끝에 술자리라도 마련된다면 서로의 공감대를 바탕으로 친구가 되기도 한다. 시작은 이렇게 자그마한 것에서 비롯됐다.
  그러나 책에 대한 작은 애정으로 시작해 지금은 장애우들의 위안거리와 삶의 원동력이 되는 모임이다. 바로 상록수독서회다.


 

입소문으로 모여든 100여명의 회원들


  더위가 한창이던 1988년의 6월, 김태환씨와 함영준(34, 근이양증 장애우)씨, 홍충구씨는 평소처럼 모여 앉아 문학에 관한 이야기꽃을 피우소 있었다. 서로 책을 빌리고 빌려주는 날이면 그날은 어김없이 문학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가 만들어지곤 했다. 즐겁게 문학 얘기를 하며 시간가는 줄 모르던 세 사람은 책을 읽고 느낀 것을 셋이서만 나누는 수다(?)차원에서 벗어난 무언가를 해보자는 얘기에 이르게 됐다. 결국 많은 사람들과 생각을 공유할 수 있는 모임을 만들어 보자는 데 의견의 일치를 보게 됐다. 한정된 공간 속에서 생활하는 장애우들을 집밖으로 나오게 해서, 생활공간 만큼이나 좁을 수밖에 없는 생각들을 서로 나눠보자는 것이다.
  "상록수독서회가 회원들 스스로에게 생각을 하도록 하는 모임이었으면 좋겠어요. 매일 집에만 있는 장애우들이 친구를 사귀고, 모임 속에서 한번 더 생각하게 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자신을 주체적으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거죠. 그래서 매개체로 선택한 것이 문학이에요. 책이라는 것 자체가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을 하도록 하는 거잖아요. 책을 읽고 느낀 것을 이야기하면서 생각을 공유하고 다른 사람들의 생각도 듣구요."
  회장 유경애(25, 근이양증장애우)씨의 말대로 상록수독서회는 장애우들이 자신의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고, 스스로 독립적인 인격체로서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 모임이고 싶어한다. 초창기 멤버인 김태환씨와 홍충구씨는 이미 고인이 됐지만 그들의 뜻은 다른 회원들에게 내리내리 이어지고 더 크게 확산되고 있다.
  현재 상록수독서회에 회원으로 등록된 사람들은 장애우와 비장애우를 합쳐 100명이 넘는다. 회원이 되기 위한 특별한 자격이나 규정이 있지는 않다.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회원, 자원활동자까지 아우른 숫자다. 이야기할 친구가 부족한 장애우들의 목마름에 상록수는 가뭄의 단비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들의 독서회에 대한 애정은 다른 사람들이 쉽게 헤아리지 못할 정도이다. 다만 이런 저런 사정으로 외출이 쉽지 않은 터이라 실제 매달 모임에 나오는 회원은 40명 가량 된다. 상록수회의 정기모임에 참여해본 사람들이 소개해주거나 우연히 얻어본 "상록수" 회지를 통해 상록수독서회를 알게 된 사람들이다. 모두 입소문을 통해 상록수독서회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이제는 수준이 문제죠"


  "처음에 상록수독서회를 만들 때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문학을 이야기하자는 목적이 분명했는데, 회원이 늘어나면서부터는 한 달에 한 번씩 모인다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두는 회원들이 많아졌어요. 또 매달 모이면서도 시화전이나 백일장 같은 행사를 많이 하니까 실제로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적어졌구요. 이름이 독서회니 만큼 문학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아직 수준 있는 토론은 힘든 편이죠." 함영중씨는 창립멤버여서 그런지 독서회가 처음 만든 의도와는 달리, 문학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없다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사실 처음 상록수독서회를 만들었을 때는 사람들이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생각이 앞서서 회원확보에만 신경을 썼었다. 그래서 회원이 좋은 문학작품을 읽고 이야기할 수 있는 토론의 장이 되기보다, 단순히 회원이 많이 늘어나는 것만 기뻐했다는 아쉬움이 이제 그를 고민하게 한다. 함영준씨는 "회원들의 수준을 높여 지금보다 더 많은 작품을 읽고 깊이 있는 문학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가는 것이 상록수독서회가 풀어나가야 할 문제 중의 하나"라고 말한다.
  그래서 임원들이 모이면 많은 고민들을 이야기하지만 한 달에 한 번씩 갖는 모임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것마저도 행사가 있는 달에는 행사준비나 행사개최로 인해 빼먹기가 쉽기 때문이다.
  상록수독서회는 매달 첫번째 토요일에 정기모임을 갖고 있다. 장소는 서부장애인복지관으로, 복지관에서 무료로 빌려주는 강당을 쓰고 있다. 모임은 1시부터지만, 차량봉사자들이 장애우회원들을 데려오는 경우가 많아 먼저 온 회원들은 모임이 시작하기 전까지 준비된 김밥과 음료수를 먹으며 자유시간을 갖는다. 매월 발간되는 회지에 실린 친구들의 글도 읽고 그동안의 안부를 물으며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토론을 위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지난 10월 정기모임에서는 까뮈의 "이방인"을 놓고 토론을 진행했다. 이 작품은 봉사부장으로 있는 이원삼(25)씨가 강력하게 추천한 작품으로, 부조리 인간에 대해 심도있는 토론을 기대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방인"이 회원들에게는 좀 어려운 주제였나 보다. 지금까지는 작품의 분량도 적고 주제도 쉬운 것을 골라 독서토론회를 가졌던 것에 익숙해서인지, 토론에 참가한 토론자들이 "이방인"이라는 작품을 어려워했다.
  토론 중에는 웃을 일이 생기기도 하지만 마냥 재미있거나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만은 아니어서 토론이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기 일쑤다. 주제가 어려운 만큼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는 발표자도 많지는 않아서, 토론은 회원 한 명 한 명을 지적하며 감상을 이야기하는 방법으로 진행됐다. 엉뚱한 한 마디일지라도 토론회에 참석한 회원 모두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하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의견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상록수독서회의 생각이다.


 

10년의 역사 그러나 여전히 궁색한 살림살이


  상록수독서회가 심혈을 기울이는 사업은 독서토론만이 아니다. 매년 정기적으로 준비하는 행사들이 있는데 백일장, 시화전, 일일찻집과 같이 회원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행사를 준비하거나 "사람 물결 소리"라는 회원들의 작품집을 발간하는 일이 그것이다. 이외에도 상록수독서회의 지도교사인 김석환(명지대 문예창작과 교수)씨를 모셔다 문학에 대해 특강을 듣는 등 상록수독서회 나름대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회원들의 문학에 대한 욕구를 만족시킬 방법들을 모색하고 있다.
  상록수독서회가 장애우들과 더불어 세상을 향해 말하기를 시작한지 10년이 됐다. 그러나 10년이라는 시간에 비한다면 아직은 상록수독서회의 확실한 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때문에 상록수독서회에는 헤쳐나가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우선은 수적으로 늘어난 상록수 회원들의 수준을 높이는 일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독서토론의 수준은 물론이고 문학을 하기 위해 찾아온 장애우들의 욕구를 만족시켜 줄만큼 수준 있는 모임을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상록수독서회가 장애우들에게 글을 발표할 수 있는 기회는 제공하고 있지만, 열정을 이끌어 줄만한 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은 상록수독서회의 일을 맡아서 볼 수 있는 사무실을 마련하는 일이다. 아직 사무실이 없어서 매달 발간하는 "상록수" 회지에 실리는 연락처도 회장인 유경애씨의 집이다. 매년 회장으로 선출되는 사람의 연락처가 곧 상록수독서회의 연락처로 쓰이기 때문이다. 상록수독서회가 회원들에게 주는 위안이나 인지도에 비한다면 궁색한 살림이 아닐 수 없다.
  처음 3명의 장애우가 문학에 대한 사랑을 같이 나누기 위해 상록수독서회를 시작한 이래, 사무실도 없는 초라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10년이란 세월을 이어왔다. 3명의 회원이 현재 100명을 넘었고, 회원들이 준비하는 행사들로 1년의 일정표를 가득 채울 수 있게 됐다. 이렇게 작은 시작에서 출발해 알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모임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다른 그 무엇도 아니다. 바로 회원들의 문학과 사람에 대한 사랑이 전부였던 것이다.

 

글/ 서현주 객원기자

사진/ 곽성호

작성자서현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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