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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화, 점자, 보편적 언어로 받아들여야 사회·문화적 브랜드 올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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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화 하나로 골목이 따뜻하고 밝아졌어요.”


점자벽화가 주는 느낌을 묻는 기자의 물음에, 지나가는 꼬마의 답변으로 오늘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았다. 그렇다. 파리에서 본 벽화도, 뉴욕의 낙서와도 같은 벽화도 사람들의 일상과 숨을 쉬며, 때론 지친 도시생활에서 잠시 쉬어가는 쉼터 같고, 의식하지 못하고 지나쳐버릴 때도 있지만 항상 그 자리에서 그 도시의 배경을 설명하고, 꾸며주는 스타일리스트 같다는 느낌을 받곤 한다. 그렇기에 갤러리나 전시관에 진열된 미술작품들과는 또 다른 의미의 문화적 가치, 즉 일상과 숨 쉬는 가장 대중적인 예술이라 일컫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벽화는 과거와 우리를 이어주는 타임캡슐 같은 사회·문화적으로도 중요한 가치가 있다. 우리는 동굴이나 무덤에서 발굴되는 옛 벽화들을 통해 선조들의 삶을 엿보기도 하고, 역사적 사건의 실마리를 찾기도 한다. 그만큼 벽화가 우리의 일상과 맞닿아 있고, 일상과 소통하며 일상을 표현하는 예술인 것이다.

요즘 서울시는 ‘도시갤러리 프로젝트’라는 사업을 기획하여 지원하고 있다. 이 사업의 일환으로 14m, 173명의 시각장애가 있는 학생들의 작품이 ‘만지는 글, 아름다운 기억’이라는 타이틀로 글자디자인의 미적영역으로써 수화·점자의 예술성을 표현한 벽화로 탄생되었다.

서울맹학교 담장에 설치된 이 점자벽화는 참여한 학생들의 핸드 프린팅과 점자로 새겨 넣은 소망의 글귀들이 파스텔 톤의 배경과 어우러져 온기를 불어넣은 듯, 골목 전체를 환하게 변신시켜 주고 있었다.

그 옆 서울농학교 담장에는 이와 다른 분위기의 수화벽화가 있다. 원색적이면서도 도시적인 화풍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환함과 따뜻함, 그리고 화려함과 도시적인 느낌들이 공존하며, 화합의 메시지를 선사하고 있었다.

만약 벽화가 없었다면, 여느 좁은 골목길과 다름없는 평범하고 한적한 골목이었을 공간이, 이렇게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예술적인 공간, 오가는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는 느낌이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것은, 점자·수화 벽화의 예술성에서 뿜어져 나오는 미적 가치들의 공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느낌은 짐작이 아니라, 그 골목을 오가며 벽화를 감상하는 사람들의 미소 띤 얼굴들에서 느낄 수 있었고 나 또한 전에 느끼지 못했던 벽화의 또 다른 예술적 가치를 경험하는 장소가 되었으니 말이다. 즉 함께 호흡하면서, 진정성 있는 소박함으로 자유로운 문화적 소통을 통해 전체의 미를 추구하는, 바로 이것이 ‘만지는 글, 아름다운 기억’의 점자·수화 벽화의 가장 큰 예술적 가능성일 것이다.

   


   


   

이번 ‘도시갤러리 프로젝트’ 중 ‘만지는 글, 아름다운 기억'의 점자벽화는 성공작이다
이 ‘만지는 글, 아름다운 기억’의 점자벽화는 솔직히 그리 세밀하지도, 그렇다고 화려한 원색적 작품이어서 눈에 확 들어오지도 않았다. 지극히 자연스러움의 미학 하나로, 이 골목과 골목을 오가는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며, 하나하나의 소망들이 골목 전체를 감싸 안은 듯 인간적인 진정성의 미적 가치를 전해주는 작품이었다.

마치 이 작품에 참여했던 친구들을 만나 본 것처럼 벽화 속 하나하나의 작품에서 그들의 마음과 미래를 만났고, 묻어 놓은 타임캡슐을 꺼내 보듯 설레며 나의 아름다운 옛 기억들과도 재회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골목을 오가는 많은 사람들도 작품에 대한 선입견을 풀어헤치고 아름다운 기억들을 하나하나 되새김질해 볼 수 있고, 고맙게도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준 꼬마와 나처럼 밝고 따뜻한 기운을 많이 받아 가실 수 있으리라. 이번 ‘도시갤러리 프로젝트’ 중 ‘만지는 글, 아름다운 기억’벽화는 이런 의미에서 성공작 중 하나로 도심 속 오아시스 같은 역할을 충분히 해낼 것이다.

    보편적인 언어로서 수화·점자를 바라봐 줘야…

요즘은 엄마 뱃속에서부터 영어를 배운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영어의 전성시대다. 한국 사회가 경쟁사회다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적 요인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도가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렇게 영어에 대한 높은 관심은 자연히 영어문화권에 대한 관심으로 이식되고, 산업적으로나 문화·정서적으로 그들의 가치가 높아져 동경의 대상이 되거나, 문화적 우월주의를 만들어내는 부작용을 낳고 있기도 하다.

이렇다 보니 상대적으로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은 문화적 약자가 될 수밖에 없으며, 교육의 약자도 될 수 있는 환경에 처하게 된다. 이것은 비단 영어뿐만이 아니라, 모든 언어들이 가지는 이데올로기적 특성에 비춰 볼 때 문화적 사대주의와 소통의 단절, 그로 인한 차별을 야기시키는 위험요소들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세상 모든 것들의 고유성은 무시한 채, 정치적, 혹은 경제적인 차원에서만 이용되고 인식하는 이 사회의 잘못된 풍토가 가져온 결과들이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언어란 것은 태생적으로 소통의 수단이다. 우리가 한글을 배우고, 영어의 알파벳이나 문법을 배우는 것도 나와는 다른 것들과의 소통을 위해서다. 이렇듯 언어란 그 자체가 소통이며 정서의 표현이다. 이러한 본래의 언어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높아질 때 다양한 언어에 대한 존중감이 형성되는 것이고, 수화나 점자도 보편적인 언어로 바라보는 시각의 성숙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 자체의 예술성에 대한 존중은 자연히 따라오게 되어 있고, 그 예술성을 표현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활발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길거리를 다니다 보면 지나가는 사람들의 옷에서도, 건물마다 빼곡히 걸려있는 간판에서도 독특한 디자인에 다양한 글자들을 흔히 볼 수 있다. 개중에는 이것이 글자인지 모를 정도의 추상적이고 예술성이 풍부한 표현들도 볼 수 있다. 특히 한글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한글에 대한 예술적 가치도 올라가고 있다.

‘만지는 글, 아름다운 기억’이라는 점자벽화에서 개인적인 아쉬움이 있다면, 점자 자체에 대한 예술성이 잘 드러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에 대한 나의 잔상은 만지는 글에 대한 감흥보다는, 아름다운 기억에 대한 감흥이 더 강하게 남아 있는지도 모르겠다.

점자나 수화 자체의 예술성과 미적 감각을 높이기 위해서는 모든 문화적 흐름이나 가치들이 그렇듯이, 그 자체를 보편적인 언어로서 존중하는 정서를 이루는 것이 먼저이지 않을까 싶다.

   

   
20년, 30년 후 우리는 어떤 모습이 되어있을까!


어쩌면 벽화 ‘만지는 글, 아름다운 기억’은 일상과 호흡하며 소통과 진정성이라는 예술세계의 태생적 가치에 매우 가깝게 맞닿아 있는 작품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가치들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발견해 내길 바라며, 나에겐 이 골목이 유년의 기억들을 되살려 준 고마운 장소가 되었다.

따뜻한 봄날, 좋은 사람과 이 골목을 거닐며 ‘20년, 30년 후 우리는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를 상상해보는 낭만적인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고, 수화·점자벽화를 통해 문화적·예술적 소통이 무엇인지, 언어나 글자의 참 의미는 무엇인지를 한번쯤은 생각해 볼 수 있는 장소가 되지 않을까 내심 기대해 본다.
작성자백수정 (서울YMCA 미디어교육팀장)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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