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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성인이고, 독립하고 싶을 뿐이고!"

[장애코드로 문화읽기]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드라마 속 장애인 캐릭터

본문

필자는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 약 5년간 장애인이 출연한 드라마를 꾸준히 모니터링하면서 ‘왜 장애인 캐릭터는 서사구조 내에서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소외되는지, 주변사람들의 왜곡된 편견과 비하하는 시선이 끊이지 않는지, 장애인 스스로 독립적인 인격체가 아닌 의지형으로 보여 질까?’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최근 2년 사이 나온 드라마를 모니터한 내용을 보면, 2007년 하반기에는 18명 이상의 장애인이 안방극장을 찾음으로써, 평범한 캐릭터일지라도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길 바랐던 희망은 어느 정도 이뤄진 듯 했다.

하지만 질적으로 보면, 사극에서는 개성 있는 장애인 캐릭터가 등장한 것에 비해 현대극에서는 인간중심이 아닌 장애 부각으로 여전히 갈등구조 속에 있으며, 동정과 시혜적인 시선이 많았고, 지역사회의 구성원 및 자기 개발을 위한 자립적인 생활과는 먼 물리적인 조력자들의 등장으로 장애인 이미지를 더욱 의지형으로 실추시키고 말았다.

    sbs 드라마 <온에어> 아직도 장애가 죄인가요?

<춘자네 경사났네(MBC)>, <그래도 좋아(MBC)>, <하얀 거짓말(MBC)>에 나오는 부유한 집안의 장애인은 20~30대로 성인임에도 불구하고, 가족 내에서 자립적인 모습보다는 비서, 가사도우미가 손발이 되어주고 있었으며, <쩐의 전쟁(SBS)>에 나온 빈곤층 시각장애인은 가짜아들 역할로 물질에 유혹당하는 인물로 그려졌다.

또한 <며느리와 며느님(SBS)>에서는 장애아동이 등장했으나 발달장애의 특성을 왜곡시켜 방영했으며, 장애아동의 아버지 역시 “아프다.”, “사회적응이 부족하다.”는 등의 대사로 장애특성과 이해를 돕는 대안적인 전개보다 장애당사자 및 가족들의 움츠린 모습만을 비췄다.

<춘자네 경사났네(MBC), <우리 집에 왜 왔니(SBS)>에서는 장애인들을 “집안에나 있지 왜 나왔냐.”는 식으로 묘사해 물의를 일으켰으며, <온에어(SBS)>, <우리 집에 왜왔니(SBS)>, <신의저울(SBS)>, <하얀 거짓말(MBC)>에서는 ‘미친년, 불치병 정신지체, 바보, 골통, 또라이, 맛 이간 놈, 미친 사람, 원수새끼야’ 등 비하용어들이 마구 사용되기도 했다.

특히 <신의저울(SBS)>에서는 극중 주요한 사건의 목격자였던 임득수(지적장애인)를 ‘법 앞의 평등’을 리드해야 할 형사가 조사과정에서 이유 없이 (임득수를) 수첩으로 때리는 등 억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 과정에서 그(지적장애인)의 장애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으며, 자극적인 상황을 클로즈업해 보여줘 지적장애에 대한 왜곡된 시선을 안겨준 드라마로 꼽힌다. 또 <그 여자가 무서워(SBS)>는 안면장애가 있는 여주인공이 화상으로 인해 다친 안면을 수술 받는 조건으로 대리모 역할을 하며 복수극이 시작되는 ‘반사회적인 캐릭터’로 등장했다.

    sbs 드라마 <우리집에 왜 왔니> 장애문제에 대해 소리치다

반면 <누구세요(MBC)>에서 양지숙(지체장애)은 장애부각이 아닌 절친한 우정의 캐릭터로 거듭나면서 다른 드라마와 차별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 드라마 내 장애당사자가 본인의 체험을 통한 문제점을 하나하나 불만으로 토로한다. 물론 대안 없이 문제점만 나열한 격이었으나 지금까지 장애당사자가 직접 이동권, 교육권, 편의시설 이용 등에 관해 언급한 대사는 처음이어서 주목할 만했다.

“너 없으면 학교 못 다녀. 인문대 화장실도 없고 엘리베이터도 없단 말이야. 그럼 받지를 말지. 나도 알바든 무엇이든 일 할 거야.”, “쟤 없으면 식판 못 받아서 나 밥도 못 먹잖아.”, “장애인을 아예 받지를 말든가. 강의실 문도 얼마나 좁아터졌는지, 휠체어가 아예 들어가지도 않아. 화장실은 어떤데… 내가 대걸레랑 빨간 바케츠 있는데서 볼일을 봐야겠냐?”

왜 이렇게 보이는 것일까?

위에서 예를 든 것처럼 방송에서의 장애인에 대한 차별문제에 대해 끊임없이 모니터링을 통한 문제제기가 이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이유에 대해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우선 방송 접근권에 대한 문제다. 아직까지도 방송 접근권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시·청각장애인의 경우 자신들의 문제를 인식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지상파 방송3사(MBC, KBS, SBS)의 정규드라마에 대한 방송 및 정보접근을 확인해 본 결과 ▲MBC는 전혀 보장되지 않음 ▲KBS는 자막방송만 제공 ▲SBS는 자막방송만 제공하고 있었다. 재방송의 경우 방송 3사 모두 화면해설을 제공하고 있으나, 일부 방송사는 매회 지원하지 않아 내용을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렇듯 시청자로서 당연히 제공받아야 할 기본적인 편의를 제공받지 못하고 있는 결과, 장애당사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표현의 자유조차 차단 되어왔다.

두 번째로 방송제작진 및 연기자 중 장애인이 없는 점을 꼽을 수 있다. 기획 준비 단계에서 극중 장애인캐릭터를 소화하기 위해 비장애인이 일시적 장애체험으로 연기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흔히 그러하듯 장애 연기에 찬사를 보내는 기사는 많이 보았어도, 장애인 당사자들이 우리들의 일상을 아주 평범하게 잘 표현했다는 기사는 본적이 없다.

가장 큰 문제는 아직 현실 속에서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다른 상황에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장애인 인권 방송가이드라인이 없다는 점이다. 현재 「장애인차별금지및권리구제등에관한법률」(장애인차별금지법)이 2008년 4월 1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장애인차별금지법 항목 내 방송법률 제정과정에서 ‘창작의 자유와 편성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방송계의 목소리 때문에 방송왜곡에 대한 처벌 근거를 마련하지 못한 실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인에 대한 인권을 침해했다거나 차별했다는 이유로 규제를 요구하기에는 그 근거가 부족하고, 결국 장애에 대한 이해와 정보 없이 상상으로만 이루어지는 방송제작 과정에서 반복적인 현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sbs드라마 <신의 저울>     MBC 드라마 <누구세요> 드라마는 이렇게 만드는 거야!

아직까지도 장애란 소재는 사회인식개선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야 할 필요가 있으므로 단순히 형식적인 등장은 바람직하지 않다. 가급적이면 장애인이 단역이나 행인으로 등장하더라도 장애인식전환에 대한 대사나 행동 등을 자연스럽게 상황과 함께 전달해주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 극중 장애인의 생활을 외부와 단절된 상황으로 그려서는 안 된다. 가족에게 의존하여 아무 생각 없이 무위도식하는 설정은 바람직하지 않고, 경제적으로나 이동이 어려워 은둔하는 상황으로 그릴 경우, 이렇게 생활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함께 조명해줘서 장애문제에 대한 균형 잡힌 시선을 갖게 해야 한다.

즉 활동보조인과 함께 직장을 다니며 독립생활 하는 모습이나 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평범한 생활에서 행복을 느끼는 모습들을 보여줌으로써 나와 다른 존재가 아닌, 평범한 이웃이나 친구로 인식시켜 활동적인 사회참여자로서 조명해야 한다.

둘째, 수술이나 기적적인 재활 치료로 갑자기 장애가 없어지는 설정은 장애에 대한 본질을 왜곡하는 설정이므로 바람직하지 않다. 장애는 호전될 수는 있지만, 완치할 수 없다. 그러나 장애가 완치될 수 있다는 잘못된 인식들이 전파될 경우, 장애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게을러서’ 혹은 ‘경제적으로 어려워서’ 장애를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갖게 할 수도 있고, 지극히 개인으로 문제로 귀결 시킬 수 있기 때문에 이런 극적인 장치들은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

셋째, 장애와 관련된 비하용어에 대한 인식을 하고 대사를 구성해야 한다. 사극에서 장애용어를 사용할 경우, 사극의 시대상을 고려한 리얼리티를 살려야하므로 귀머거리, 맹인, 봉사 등의 용어는 그대로 사용할 수 있겠으나, 자막으로 청각장애인, 시각장애인 등 현시점에서 통용되는 장애용어로 반드시 수정해주어 인식을 개선할 수 있도록 하던지, 사용 자체를 지양하여야 한다. 현대극에서 장애용어를 사용할 때는 부정적인 상황에 빗대어 장애용어를 비하하는 의미로 사용해서는 절대 안 되며, 차별적인 발언을 해도 안 된다.

무엇보다 이런 장애인 인권관점에서 제시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는 ‘드라마, 시사보도프로그램 관련 장애인인권 방송지표 가이드북(2008년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을 토대로 꾸준한 제작교육 및 전반적인 미디어 교육도 함께 실시해, 드라마 내에서 주변사람들이 장애인의 인권을 대변해주는 역할이 아닌 장애인 당사자의 자존감과 성취욕으로 권리가 표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 가이드라인이 제작현장에서 장애인의 인권을 존중하고 사회 잘못된 인식을 개선하는데 적극 활용돼 장애인당사자, 방송관계자, 모니터 단체들 간에 피드백을 주고받는 환경이 조성되고, 이를 통해 드라마 속에서의 장애인의 모습이 보다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도록 긍정적이고, 당당하고, 독립적인 모습으로 표현되길 기대해 본다.
작성자이영희 (장애우방송모니터단 드라마팀장)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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