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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니에 공원 TTL무대가 변했다

[박경석의 인권이야기] 장애인, 문화의 대상에서 주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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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오름]

서울 종로구 동숭동에 있는 마로니에 공원은 1975년 서울대학교 문리대학과 법과대학이 관악구 신림동으로 캠퍼스를 옮긴 뒤 그 자리에 공원으로 조성되었다고 한다. 마로니에 공원은 대학로의 상징 공간으로 여러 문화 시설이 들어서 있다. 공원 입구에는 야외에서 공연할 수 있는 ‘TTL무대’가 설치돼 있어 수시로 콘서트, 영화제 같은 행사가 열린다. 공연이 없을 때면 사람들은 무대 아무데나 걸터앉아 기타를 치고, 트럼펫을 불고, 이야기를 나눈다. 문화와 여가가 자연스럽게 뒤섞인 공간인 것이다.

하지만 TTL무대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무대 위로 올라가는 길이 계단뿐이었다.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이 무대 위에 올라갈 수 없었다. 야외 공연장인 덕분에 무대 아래에서 공연을 보는 것은 그나마 가능했다. 이렇게 장애인 차별의 냄새를 풍기던 TTL 무대가 최근에 변했다. 무대를 오르내리는 계단 자리를 줄여 경사로를 설치한 것이다.

대부분 도시를 설계할 때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는다. 건물의 계단 같은 이동로부터 대중교통인 지하철과 버스도 처음부터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았다. 장애인들의 피나는 투쟁이 있고 난 뒤에야 장애인의 대중교통 이용이 서서히 허용되기 시작했다. 「장애인 노인 임산부등의편의증진법」이 만들어지면서 공공건물의 접근성이 보장되기 시작했다.

    마로니에 공원의 TTL 무대에 경사로가 생기기 전 모습 문화의 대상에서 주체로

TTL무대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장애인을 고려하지 않았다. 감히 장애인이 무대의 주인공이 되어 공연할까,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설사 생각했다하더라도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을까를 고민하거나 그것이 심각한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장애인이 무대 위에 오를 수 있다는 생각은 고사하고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공연을 보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지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장애인차별금지법에 근거해서, 국가인권위원회에 TTL무대가 있는 마로니에 공원을 관리하는 종로구청이 장애인을 차별하고 있다고 진정했다. 진정한 지 한 달이 지나지 않아 거짓말처럼 계단이 있던 곳에 경사로가 생겼다. 이렇게 쉽게 바뀔 수 있는 무대가 지금까지 장애인이 접근할 수 없도록 방치되어온 건 이 사회의 무관심 문제도 있지만 그보다 너무나 길들여진 삶을 살아온 장애인들의 탓이 크다고 본다.

TTL무대에 경사로가 설치된 것은 단순하게 문화시설에 편의시설이 갖춰진 문제만은 아니다. 장애인에게는 문화의 대상에서 문화의 주체로 바뀌는, 그래서 존재가 확장되는 의미가 있다. 누군가가 준비한 공연을 바라만 보는 것이 아니라, 이제 -비록 아마추어 수준이라 해도- 공연을 직접 할 수 있는 입장이 된 것이다. 대상에서 주체로 변화, 이것이 장애인의 입장에서는 ‘변혁’이라고 한다면 과장된 것일까?

마로니에 공원 이야기를 더 하자면. 공원 안에는 농구골대 하나가 세워진 작은 농구장이 있고, 배드민턴을 칠 수 있게 도구를 빌려주는 사람도 있다. 마로니에 공원을 찾은 사람들은 이를 일상적으로, 자연스럽게 이용하지만 중증장애인에겐 해당사항이 아니다. 중증장애인이 쉽게 즐길 수 있는 생활체육시설은 마로니에 공원만이 아니라 어디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만약 중증장애인들이 즐길 수 있는 보치아 같은 스포츠가 가능한 체육시설이 마로니에 공원에 있다면? 아마도 많은 중증장애인들이 마로니에 공원을 찾을 것이다. 중증장애인들이 마로니에 공원 같은 곳에서 시민들과 일상적으로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다면, 무엇이 변할까?

    마로니에 공원의 TTL무대에 경사로가 생기고 난 후의 모습 장애인을 배제하는 사회에 파열음 내기

이 사회는 비장애인들이 수용시설에 찾아가 장애인에게 특별한 자선을 베풀고 봉사하는 것을 아름다운 행동으로 간주하고 있다. 주류 언론은 그러한 행동을 선한 실천으로 칭송하기도 한다. 이런 식의 문화 구조가 장애인들을 사회로부터 배제시키고 소외시켜왔다. 또한 이 같은 배제와 소외는 장애인에 대한 야만스러운 차별을 생산하고 있다.

이제 장애인을 배제하고 소외하는 모든 것은 바뀌어야 한다. 수용시설과 골방에서 지내야 했던 장애인 당사자들의 수동적이고 운명적인 삶, 중증장애인을 그곳에 처박아 놓고 시혜와 동정으로 국가 정책을 대신해왔던 시간, 그리고 시혜와 동정의 가면 속에 감춰진 비용절감이라는 탐욕스런 돈의 논리까지도.

TTL무대의 변화를 통해 장애인이 문화의 대상에서 주체로 변화하는 것, 마로니에 공원에서 많은 사람들과 중증장애인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놀이문화를 만드는 것, 이는 작아보일지 몰라도 분명 장애인에 대한 이 사회의 배제와 소외의 역사에 파열음을 내는 것이다.
작성자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집행위원장)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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