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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숲 너머로 떠오르는 그 시절 동네 꼬마 녀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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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가 있는 이야기] 이 가을에 생각나는 사람 ①

 

 

아파트 숲 너머로 떠오르는 그 시절 동네 꼬마 녀석들

 

 

  메마른 도시의 일상으로부터  도망치듯 돌아온 내 작은 방안에는 도시의 공기보다 더 차가운 공허가 맴돌고 있다. 거리의 번잡한 소음에서 벗어나자마자 갑자기 대면한 적막함. 그것을 도저히 혼자서는 이겨낼 자신이 없어 모두가 잠든 밤 조용히 창문을 젖히면 언제부터 거기 와 있었는지 희뿌연 달빛과 코끝에 묻어나는 바람이 어느덧 가을이다!
  아무도 없는 아파트촌의 밤 한가운데서 서서 올 여름 내내 움츠렸던 가슴을 활짝 펴고 폐부 깊숙이 찾아온 가을을 흠뻑 마셔본다. 가슴속 깊이 박혀있던 모든 응어리가 시원하게 뚫리는 이 느낌…. "나는 지금 고향에라도 온 것일까" 그 옛날 한가롭게 뛰놀던 나의 작은 동산, 찌르레기, 귀뚜라미, 여치, 풀벌레 소리의 짙은 울음과 가을걷이 한창이 들녘에 풀어놓은 한가로운 햇살들, 동구 밖 큰길가 아름드리 느티나무가 바람에 떨며 참새들을 쫓는 그런 나의 고향같은 정겹고 따사로운 느낌들….
  "그런데 나는 왜 고향을 잊는가?" 늦은 밤의 가을이 갑자기 던지는 질문에 잠시 할 말을 잊는다. 수많은 날들을 살아가면서 나는 고향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이 있었던가. 순수의 옷을 입고 거침없이 뛰놀던 우리네 어렸을 때의 동화같은 해맑은 기억들을 어느 한 순간 떠올려 본 적이 있었던가?
  늦은 가을밤, 사랑 마루에 둘러앉아 할머니의 구수한 입담에 졸며 듣던 안산 호랭이 얘기를 까마득히 세월의 저편으로 모두 다 날려버린 것은 아닐까? 마을 앞 냇물에 녹아내리는 가을별이 너무나 따사로와 물이 이어진 곳 끝까지 헤매다 길을 잃고 울어버렸던 어린 날의 어여쁜 기억들을, 앞마당 하나 가득 뒹굴던 하얀 감꽃을 실에 꿰어 순이 손에 쥐어주고 달아나던 앙증스러운 유년시절의 러브스토리를, 어린 시절의 고운 마음들을…. 이제 깡그리 잊어버린 것을 아닐까.

 

잃어버린 순수를 찾아서,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낭만에 대하여 한가로운 상념의 시간에 젖어드는 지금. 도시의 가로수도 가을이 온 듯 빛바랜 잎새들을 떨어뜨리고 있다. 그래! 지금쯤이면 내 고향 뒷산에도 노오란 은행잎이 마구 떨어지겠지! 동네 녀석들이 모여 와글와글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을 것이다.  녀석들의 얼굴에는 가을 하늘을 그대로 쏙 빼어닮은 환한 웃음이 가득하고, 토실토실 알여문 가을과실을 싱그러이 한 입 가득 베어물며 이런저런 얘기꽃에 서로의 가슴을 토닥토닥 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무엇 하나 버릴 게 없는 고향생각들. 이렇게 가을은 고향에 대한 모든 기억을 되살려 준다.
  고향을 떠나온 우리들 삶이 도시에 채이고 사람에 채여 윤기를 잃어 갈수록 우리들 가슴은 고향쪽을 향해 두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 가슴에 묻어둔 채로 평생을 간직해야만 하는 아쉬운 그리움이 있다면 고향은 평생을 살면서 늘 잊지 않고 간직하는 절실한 그리움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비록 시멘트아파트 가득한 이 도시에 풀벌레소리 하나 들려오진 않지만  가을이 주는 이 넉넉하고 신선한 느낌들만큼은 간직하고 살아야 할 것 같다.
  가을이 오면 한번쯤 마음의 창, 아파트의 창을 활짝 열고 꽉 막혔던 가슴을 고향생각으로 채워 보는 것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아닌가 싶다.

 

글/ 김현 (금강기획 카피라이터)

작성자김현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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