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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연재] 동정은 싫다 <제5장> 그늘진 곳에서 밝은 곳으로

본문

[번역연재] 미국 장애우 운동사 (13)

 

 

동정은 싫다

5장 통합 : 그늘진 곳에서 밝은 곳으로
(Inergration : Out of shadowland)

 

 저자 : 조셉 피 쉐피로
 이 책을 쓴 조셉 피 쉐피로는 미국의 대표적 일간지인 유에스월드 리포트지 기자로서

 사회정책에 관한 다수의 기사를 썼다.
 그는 미국 알리샤 페터슨 재단의 장학금을 받아 미국 장애우 인권운동을 연구해서

 이 책을 썼다.

 

역자 : 서동명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대학원에 재학하고 있다.


 

모든 사람은 똑같아져야 한다?


죽음까지 부른 우리의 강박관념

 

 

 

자폐증은 치료할 수 있는 질환인가!
많은 심리학자들은 자폐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장애를 그 자체로 인정하고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실시하기보다 비장애우와 똑같이 행동하도록 그들의 인식체계를 고치는 데에만 골몰했다.
고문과 같은 방법을 써서라도 말이다. 이번 호에는 비인간적인 각종 도구를 동원한 자폐증 치료라는 명목에 일방적으로 고통을 당해 급기야 죽음까지 맞아야 했던 역사적 사실을 소개한다.


 

사람잡는 행동조사연구소 BRI


  자폐증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지역사회서비스제공단체(CSAAC)와 같은 프로그램의 성공에도 불구하고, 자폐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사회에 통합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아직도 우세한 현실이다.
  CSAAC와 같은 지역사회 내 지원고용프로그램이 중증장애를 가진 사람을 고용함으로써 금전적인 도움을 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례들을 찾아보기는 아직 힘들다. 90년의 경우 단지 7만4천6백57명의 사람들이 이러한 프로그램에 등록되어 있었고, 그중 1만명 이하의 사람에게만 실질적으로 프로그램이 제공되고 있었다. 1990년까지 지원고용을 실시하고 있는 사람들의 평균 수당은 시간당 3.87달러였으며, 81%는 적어도 일주일에 20시간 일을 하고 있었다. 65%는 경증정신지체를 가지고 있었고, 24%는 장기적인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었다. 나머지는 자폐, 뇌성마비, 감각장애 등이다. 이러한 일꾼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직무지도원 등에게 의존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게 된다. 1988년에 1백7억달러가 발달장애우들을 위한 프로그램에 사용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단지 6천2백50만불이 지역사회지원고용프로그램에 사용되었다.
  일종의 전문학교인 행동조사연구소(BRI)에서는 주로 자폐증을 연구했다. BRI는 자폐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다루는 방법으로 논쟁의 여지가 있는 "혐오치료"를 사용하고 있었다.
  학생들은 또한 과업과 연습의 성공적인 완성이나 알맞은 행동을 위해 보답을 받았는데, 껴안아주기, 놀이방에서 노는 시간주기 등이 바로 그 보답이었다.
  BRI의 설립자 마태 이스라엘 박사는 보답과 체벌을 함께 주는 그 연구소의 프로그램이 다른 프로그램에서 결국 실패한 대다수 클라이언트에게 큰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미국심리학회와 같은 전문가 집단은 이러한 혐오요법을 지지해왔다. 그러나 이러한 혐오치료는 너무나 가혹했다. 그래서 심지어 감옥에 갇혀 있는 사람들에게도 쉽게 사용되지 않는 방법이었다. "결코 이러한 방법이 옳은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발달장애우의 권리를 옹호하는 구나 다이브와드와 같은 사회학 교수들은 주장했다. 혐오치료는 자폐증학생들에게 효과적이지 않고, 단지 머리를 쥐어박는 등의 자해행동을 뿌리뽑지 못할 뿐더러 단계적으로 확대할 따름이었다. 장애상태가 나빠지지는 않는다 해도 결코 인간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1985년에 있었던 빈센트 밀레티치(22) 사망사건이 그 좋은 예다. 그는 BRI에서 치료(?)를 받는 도중 결국 사망했다. 목격자는 이렇게 증언했다. "직원들은 빈센트의 다리 사이에 머리를 넣게 하고, 팔을 등뒤로 묶은 다음 쇳소리가 나는 전파를 귀에 꽂은 헬멧을 쓰게 하고, 그의 얼굴을 뒤집어 씌웠다. 그는 점점 탈진해 갔으며, 결국 로드 아일랜드병원에 도착한 몇 분 후에 죽었다."
  그러나 법정은 이 학교의 처방과 밀레티치의 죽음 사이에 어떠한 연관이 있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반면 매사츄세츠주아동복지사무소는 재빠르게 7개의 BRI그룹홈의 면허를 취소시켰다. 아동복지사무소 매리 레오나드 소장은 BRI의 처사를 과도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후 조사관은 BRI가 머리를 때리는 공격적인 행동을 보이는 한 여자 학생을 고치기 위해 단 3일 동안 손가락 꼬집기, 근육 쥐어짜기, 증기 뿌리기, 엉덩이 때리기와 같은 1천 가지가 넘는 신체적인 벌을 주었음을 증명했다. 이 사실이 드러나자 일부 부모들은 아이들의 등교를 중지시켰으며, 과도한 처벌에 의해 부상을 입은 자식들에 대한 불만사항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또다른 부모들은 열렬히 학교를 옹호했다. 그들은 이 학교가 다른 학교에서 거부당한 학생들을 위한 마지막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부모들은 오히려 아동복지사무소를 고소하면서, 이제까지의 레오나드 소장의 시도가 BRI의 문을 닫게 할 위험에 빠뜨리면서 1천5백40만불의 손해를 입혔다고 주장했다. 부모들의 선택권은 성공적으로 받아들여졌다. 레오나드는 부모에게 사과편지를 보냈으며, 사무소측은 결국 58만불을 학교와 부모들에게 지불했다.


 

모니터로 일거수 일투족 감시


  이스라엘은 하버드대에서 행동주의자인 스키너 교수 아래에서 심리학을 공부하였으며, 1960년 박사학위를 받았다. 스키너의 소설인 "윌든 투(Walton Two)에 매료되어 이스라엘은 행동주의자원리에 기반한 유토피아 사회를 세우기 위한 두 개의 보스턴 공동사회를 세웠다. 후에 공동사회는 실패했다고 그는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기중심적이었으며, 어떠한 서비스도 제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폐성향의 아이들을 다루는데, 행동변화 기술을 적용했다. 스키너는 혐오요법의 사용에 대해 반대했다. 그는 처벌이 효과적으로 인간의 행동을 변화시킨다는 주장을 부인했다. 이스라엘이 스키너의 필름을 보여주면서, 이러한 것들을 스승인 스키너에게서 배웠다고 이야기하자, 스키너는 "나는 이것에 대해 아는 바가 없다. 이러한 실험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동물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라고 반박했다.
  필자가 이 학교를 방문했을 때 BRI는 인간이 들어갈 수 있는 스키너 상자를 보여주었다. 2층에는 텔레비전 스크린이 여러 대 설치돼 있는, 문이 잠긴 방이 있었는데 그곳의 모니터를 통해 각 방의 상황을 볼 수 있었다. 그것으로 관찰하는 것은 클라이언트뿐만 아니라 각 교실의 직원들도 포함된다.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보너스나 휴가를 받았다.
  필자가 방문한 첫번째 방에서 한 젊은이는 컴퓨터스크린의 한 곳에 손가락을 맞추는 일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지쳐갔다. 그는 손을 컴퓨터스크린에서 떼는 일을 그만하고 싶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교사는 이를 계속 요구했으며, 따르지 않을 경우에는 손바닥을 꼬집어댔다. 이 젊은이는 보호헬멧을 쓰고 있었는데, 잡음을 크게 내서 그를 끼우곤 했다.
  두번째 방에서는 두 명의 직원들이 그를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그러나 단지 그를 더욱 흥분하게 할 뿐이었다. 그리고 나서 스프레이로 물을 얼굴에 뿌려댔다. 그 사람은 넘어진 다음 다시 격렬하게 반항을 하고자 했으나 다른 직원의 무릎이 그의 등을 눌렀고, 팔을 묶었다. 그러다 반항을 포기하자 그 사람은 다시 그가 일하는 자리로 돌아갔다.
  필자가 만난 한 어머니는 아들을 이스라엘에게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멀리서부터 가족 전체가 이사해왔다고 말했다. 그 아들은 난폭한 행동 때문에 이미 수많은 학교에서 쫓겨나거나 거부당한 경험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BRI에서 1주일을 지내면서 식사시간에 제자리에 앉아 있는 커다란 발전이 있었다고 그녀는 흥분해서 이야기했다.
  얼마 후 차를 마시면서 필자는 다이브웨드에게 그러한 부모의 강력한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질문했다.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도움이 되는 효과적인 프로그램을 발견하는데 일생을 바치고자 하는 사람들이 아닌가. "나는 부모들을 매우 강력히 지지합니다. 만약에 내가 부모에게 멈추고, 단념하라고 말한다면, 그들은 이렇게 말할 권리가 있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나에게 말해 달라"고 말입니다."
  이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다이브웨드만이 아니었다. 스스로 자신의 자폐증을 극복한 템플 그란딘도 가장 강력한 지지자 중의 한 사람일 것이다. 오늘날 그녀는 어떻게 끊임없는 관심을 받았으며, 자신이 어린 시절의 자폐증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게 되었는가를 이야기했다.
  "나는 우리의 학교체계가 이러한 아이들을 다루는데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다이브웨드가 주장하듯이 그는 "우리나라는 자폐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있음을 입증했다. 그러나 장애우는 의지가 부족하고 비장애우들보다 덜 가치있게 살아야한다는 편견 때문에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자폐아 제닌의 사례


  다이브웨드와 같은 비평가들은 이스라엘의 혐오치료가 극히 단기적인 효과만 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BRI에서 필자는 이스라엘의 인기있는 학생 중 한 명인 어린 소녀 제닌을 만났다.
  1981년 제닌은 계속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얼굴을 마구 때리거나 울어댔다. 끊임없이 이를 딱딱거리고 다녔으며, 자신의 머리를 마루에 부딪쳤다. 손으로 얼굴을 계속 때려서 입에서는 피가 나고 있었다. 헬멧이 처음으로 벗겨졌을 때 그녀는 계속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뽑아대 머리는 상처와 피로 얼룩이 져 있었다.
  제닌의 다음 이미지는 8개월 반 정도 지난 다음의 일이다. 제닌은 그네를 아주 즐겁게 타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부모는 BRI가 계속 운영될 것을 주장하는 부모그룹 중에서도 가장 열렬한 리더가 되었다. ABC방송국이 85년에 BRI를 취재하러 들어갔을 때 제닌은 노래를 부르면서 부모와 함께 즐겁게 앉아 있는 모습이 필름에 찍혔다. 헬멧은 벗겨져 있었으며, 머리는 다시 원상복귀 되었고 심지어 화장까지 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우러나고 있었다.
  4년 후 다시 BRI에 찾았을 때 직원들은 한 곳을 제외한 모든 교실을 보여주었다. 필자가 문이 잠겨 있는 방을 다시 보기 위해 찾아갔을 때, 거기서 필자는 놀랍게도 제닌을 만났다.
그녀는 다시 맨처음의 모습으로 돌아가 있었다. 헬멧은 혁대로 묶여 있었고, 머리는 상처가 나서 딱지가 앉아 있었으며 거기서는 진물이 나고 있었다. 두 명의 직원에게 몸을 잡힌 채 제닌은 색깔있는 반지를 골라내고 있었다. 한 직원은 그녀가 계속해서 제대로 세도록 하기 위해서 손바닥을 꼬집고 있었으며, 그녀는 계속해서 신음소리를 내었다. 다음 직원은 억압된 감정을 분출할 수 있도록 그녀의 옆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작은 텔레비전 카메라가 그녀의 행동을 문이 잠긴 2층 방의 모니터로 보여주고 있었다.
  15분의 휴식 후에 제닌은 방 가운데로 달려가 담요로 그녀 자신을 팽팽하게 감싼 후에 끙끙 앓는 모습을 보였다. 그녀는 고난과 처벌에 익숙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보다 강력한 처벌이 필요해 전기쇼크의자를 사용할까 고려중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러한 기구(SIBIS)는 그렇게 발명되었다. 머리카락을 쥐어뜯는다거나 혹은 머리를 계속적으로 찧어대는 약 16만 명으로 추정되는 정신지체인과 자폐를 가진 사람들의 행동을 멈추기 위해서 말이다. 즉 전기센서의 밴드가 사용자의 머리를 감싸고 그 장치가 머리를 치는 것과 같은 동작을 간파하게 되면 전기적인 쇼크를 주게 된다. 이것은 마치 고무밴드가 부러지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게 되면서 그러한 행동을 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이스라엘과 같은 학자들은 SIBIS은 유용한 도구이며, 자해행동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효과적으로 멈추게 하는 최후의 인간적인 도구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나 미국자폐협회 전 회장이었던 탐 너니와 같은 사람들은 이것은 전혀 효과적이지 않은, 잔혹한 고문도구라고 평했다. 대신 그는 인간적이고 효과적인 선택을 증명하기 위해 CSAAC와 같은 비혐오적인 프로그램을 주장하였다.
  1989년 그러한 혐오도구를 사용하는 것에 찬성하는 전국건강협회(NIH)에 의해서 과학적인 연구반이 초청되었다. 너니는 그러한 SIBIS를 발전시키고자 하는 과학자 집단들을 비난하였다. 그러나 너니와 다른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SIBIS는 전국의 심리학자와 교육학자 사이에 받아들여졌으며, 자폐증이나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위한 학교에 팔려나가기 시작했다.

  BRI는 SIBIS에 강하게 의존하기 시작했다. 필자가 제닌을 만났을 때, 단지 일부 학생들만이 그러한 쇼크를 경험하기 위한 후보로 오르내리고 있었다. 그런데 3년 후인 92년 여름 SIBIS는 63명의 BRI학생중 적어도 42명에게 사용되었다. 그리고 쇼크기구에 대한 의존율은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초기의 장점은 곧 그 학생들이 쇼크에 적응하게 되자 사라지게 됐다. 이스라엘은 어떻게 다시 효과적으로 이러한 처벌을 만들까를 연구하게 되었다. 그는 쇼크가 3번에 걸쳐서 ‘쿵’하고 발생하는 새로운 기구를 고안했다. 그러나 BRI이사장 오던 린슬리 박사는 이것이 너무 약해서 학생들은 금방 이에 적응할 것이라고 비웃었다. 린슬리의 충고대로 실제로 학생들은 다시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행동을 제거하기 위해서 당신은 최고로 강력한 처벌을 해야만 한다. 따라서 이러한 아이들은 신경이 무디어지게 된다. 우리는 무엇인가 새로운 것이 필요하다.
 

 

바보는 삼대면 충분하다?


  20세기 전반기동안 정신지체와 정신질환, 뇌성마비, 그리고 간질을 가지고 있는 미국인들은 미래세대의 평균적인 지식과 건강수준을 낮추는 골칫거리로 여겨졌다. 그 결과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분리된 시설에 격리됐다. 거기서 그들은 자신들의 삶과 자유의 권리를 잃어버렸다. 그들은 때때로 일종의 살균을 당했다. 올리버 웬델 홈스는 미국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법학자였는데, 그 조차도 당시의 일반적인 편견을 부르짖곤 했다. “그들의 후손을 죽이거나, 혹은 저능함 때문에 굶어죽기전에 사회가 그들의 후손을 남기는 것을 막아주는 것이 궁극적으로 세계를 위해서 더 좋은 것” 이라고 홈스는 1927년 대법원의 캐리 북의 경우에 대해 밝히고 있다.
  정신지체와 간질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버지니아주 의사들은 18세 소녀가 첫 번째 아이를 낳은 후 불임수술을 시켰다. 북의 어머니는 같은 시설에 살고 있었다. (북과그의 딸, 그리고 그녀의 어머니는 정상적인 지능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그러나 홈스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바보는 삼대면 충분하다!’
  2차 세계대전동안에 일어난 나찌의 우생학실험은 그러한 생각들을 더 악화시켰고 더 인간적인 것이라고 생각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장애우는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라 단지 환자로 여겨지게 되었다. 그들은 사회적 지원과 교육을 필요로 하는 사람일 뿐 제거되어야 할 사람은 아니라고 여겨지게 되었다(계속)

 

글/ 서동명

 

작성자서동명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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