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볼 권리’ 무시하며 다양성 존중, 사회 부조리 외치는 영화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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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바디앤소울'의 두 주인공 다이애나와 캐시 |
이들 영화제는 영화에 대한 심의가 필요 이상으로 심해 검열수준이라는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영화인들의 박탈되는 ‘표현의 자유’와 관람객들의 ‘다양성에 대한 욕구’ 그리고 ‘자유에 대한 활로로서의 권리 찾기’의 역할이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한마디로 다양성에 대한 존중감의 표출이며, 자유를 지키기 위한 의지인 것이다.
올해로 11회를 맞이한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그동안 ‘여성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다’라는 슬로건으로 여성 감독들의 작품 활동을 장려하고, 여성에 대한 잘못된 시선과 그로 인한 차별, 고정관념, 사회구조의 문제 등을 알리고, 그러한 주제들을 표현하는 독특하고 개성 있는 방식들로 인해 영화인이나 마니아들은 물론, 다양한 ‘볼거리’를 원하는 관객들에게 사랑받는 영화제로 매년 시선을 끌었다.
이번에는 전 세계적으로 경기침체여서 그런지 23개국 105편으로 지난해에 비해 참가국과 작품 수는 줄었지만, 저항하는 여성의 목소리는 한층 높아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의 전반적인 주제는 역시 여성 문제였지만, 한국의 장애인 야학의 실상을 드러낸 <노들 야학>과 여성장애인의 독립적인 삶을 조명한 <바디 앤 소울>은 여성을 넘어서,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권리에 대한 당연한 요구들이 약자 편에 서지 않는 불합리한 사회구조로 인해 거부당하고 무시되는 현실을 조명하며, 권리를 찾고자 투쟁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은 다큐형식의 영화들이라는 점에서 영화제 전부터 주목을 받았다. 이번 영화제의 취지와 생각거리, 공감대라는 시선에서도 이들 영화는 매우 의미 있는 작품들이다.
<바디 앤 소울>, 고령 장애인에 대한 이중적 소외와 또 다른 사회적 차별을 이야기하다.
특히 고령의 장애인의 문제를 다루고 있는 <바디 앤 소울>은 <베드포드가의 수집가>로 2002년 아카데미 단편 다큐멘터리 부분에서 수상한 앨리스 엘리엇 감독의 작품이며, 여성장애인 다이애나와 캐시의 독립적인 삶을 조명하고 그들의 우정을 담아낸 작품이다.
서로 다른 장애가 있는 다이애나와 캐시는 30년 전 장애인보호작업장에서 만나 독립적인 삶을 꾸려가며, 서로 공생적인 우정을 나눈다. 그러나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다이애나와 캐시에게 찾아온 노화의 벽은 장애의 벽과는 또 다른 어려움들을 겪게 해주고, 장애인들을 무조건 격리수용하려는 사회의 억압적인 규율은 그들을 또 다시 편견과 맞서게 한다.
그리고 지난 30년간 자립과 독립을 위해 싸워온 그들은 노후에 대한 권리를 찾기 위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는다. 이 작품에서는 그 이후의 과정이나 결과들은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행보에 대한 희망을 갖게 되는 것은 왜일까?
이 다큐멘터리를 감상하면서 감출 수 없었던 것은 부러움이었다. 장애인들이 독립적으로 생활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시선에 대한 부러움이었고, 비록 가입조건에 활동제한구역(집, 교회, 병원)을 정해놓은, 지극히 보험사의 편의를 고려한 불평등한 규정이지만, 일단 장애인의 보험가입이 우리나라에 비해 용이하다(우리나라의 경우, 장애인의 보험가입조건은 매우 까다로울뿐더러, 건강이나 의료와 관련한 보험들은 가입자체가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은 부러울 수밖에 없었으며, 무엇보다 다이애나의 모습에서 교육의 힘을 엿볼 수 있어 부러웠다.
관람 내내 인간으로써 누려야 할 당연한 권리를 부러워하는 모순된 내 모습과 만나게 되면서, 사회 속에서 차별받고 있는 장애인들의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음에도 부러움을 느끼는 이 아이러니한 감정의 근원에 대한 물음과 답을 동시에 주는 작품이란 생각을 하게 됐다.
한편, 고령화 사회는 기존 장애인들의 고령화는 물론이고,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발생하는 후천적 장애 역시 증가하게 되어 장애인구의 증가를 수반한다. 그러나 고령화 사회가 되어가면서 노후복지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날로 높아지는 현 시점에서도, 고령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고민과 인식수준은 여전히 밑바닥이다.
이를 인식하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은 개인적인 문제로 치부하며, 날로 고령 장애인들을 이중소외 시키는 정부정책들만 늘어가고,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정책 이반자들은 근시안적 정책의 오류를 범하며 밀어 붙이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바디 앤 소울>은 정책 결정권자들이 꼭 보아야 할 작품이지만, 그들이 본들 무엇을 느낄까? 한심하기 짝이 없는 현실이다.
▲ 서울 국제여성영화제가 열린 신촌의아트레온의 장애인용 화장실, 청소도구가 여기저기 널려있다. |
예산상의 이유를 들어 장애인들의 ‘볼 권리’와 ‘문화적 향유권’ 여전히 무시
그러나 이런 좋은 영화들을 함께 감상하고 소통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이들이 있었다.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관람을 위한 편의시설은 기본적으로 갖춰놓아야 할 필수품과 같다. 그리고 관람객이 영화를 편히 감상할 수 있는 서비스제공은 의무이기도하다. 그러나 장애인들은 이마저도 제외 대상이었다.
우선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은 상영관 내에 휠체어좌석이 마련돼 있지 않아, 사람들이 오르내리고 영사기와 선들이 어지럽게 놓인 옆에서 감상할 수밖에 없다. 그나마 맨 앞에서 고개와 눈을 혹사시키며 관람하지 않은 것을 다행이라 여기며 고마워해야 하는 것인가. 영화제 측은 홈페이지에 “장애인 편의시설 등을 표시해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의 이용에 불편을 최소화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명시했으나, 형식에 불과했던 약속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극장 내 장애인 화장실은 세면대와 변기주변에 바가지와 고무장갑, 대걸레와 같은 청소도구가 여기저기 널려 있었고, 장애인들의 안전을 위한 손잡이마저도 걸레걸이 대용으로 쓰이는 등 도저히 화장실이라 볼 수 없는 상태였다.
이처럼 창고에 가까운 화장실의 청결 상태는 짐작이 가고도 남으며, 결국 제 기능을 못하는 장애안화장실을 버젓이 있다고 표시해놓은 홈페이지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형국이 되고 만 것이다. 이밖에도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이동하기엔 극장 내 통로나 엘리베이터의 공간이 비좁았던 것도 사실이다. 이 문제 극장 측도 문제가 있지만, 장애인을 의식하지 않고 대여하는 대부분의 영화제 조직위 측과 미흡한 정부의 지원에 더 큰 문제가 있음을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다.
한편 시청각 장애인들의 ‘볼 권리’는 여전히 사각지대였다. 예컨대, 일반적으로 개폐회식이나 부대행사를 비롯해 영화관람 후 감독과의 대화시간 등에서 외국인을 위해 영어통역사를 배치해둔다거나 한국어나 영어자막 삽입, 영어, 중국어, 일본어 등으로 제작된 안내책자 구비 등은 관객을 위해 반드시 서비스해야 하는 것들이며, 이번 영화제에서도 제공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장애가 있는 관객을 위한 상영상의 편의 제공 역시 같은 의미로 인식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나 영화제의 조직위 측은 “문제의식은 있었지만, 예산상의 문제로 인해서”라는 핑계만 대고 있을 뿐, 무시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현장에서 느낀 차별적 사례들은 시청각 장애인들이 관람에 필요한 화면해설관이나 한국영화 38편 중 단 한 작품에도 한글 자막이 입혀지지 않았다는 것과, GV시간에 수화통역과 같은 서비스는 전무하다는 것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홈페이지 이용 시나 온라인 예매과정에서도 영어에 대한 편의시설은 설치되어 있지만, 시각장애인을 위한 음성인식서비스나 활자 확대 서비스 등이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시각장애인의 홈페이지 접근도 곤란한 상태였다. 이는 지난 해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서도 발생한 차별적 사례들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문화센터에서 이에 대해 장애인차별금지법위반사례로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낸 바 있다. 이번에도 문화센터 측은 영화제 측에 이런 문제를 해결하도록 건의해 보았지만,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 예산상의 이유로 여전히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은 영화, 연극 상영시 제대로 된 편의시설을 제공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
인권의 소중함을 이야기하고, 차별적 시선의 부당함을 알리는 영화제들마저도 장애인에 대한 또 다른 차별이 존재
‘서울국제여성영화제’를 비롯해 곧 있을 ‘장애인인권영화제’ 등은, 말 그대로 여성과 장애인라는 사회적으로 가장 소외되고 차별받는 당사자의 목소리와 시선에서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외침을 화두로, 사회적 억압이나 부당한 대우, 차별 등을 알리고, 인권에 대한 의미와 우리들의 시선에 대한 생각거리들을 던져주는 의미 있는 영화제들이다.
그러나 이런 영화제들마저도 장애인에 대한 또 다른 차별들이 존재하고 반복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들 영화제의 진정성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지에 대한 의문을 품게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실, 이번 영화제에서개선되지 않은 장애 차별적 사례뿐만 아니라 모든 장애인 차별문제는, 예산이나 환경의 문제이기보다는 인식과 관심에 문제로 볼 수 있다. 상영되는 작품들을 편히 감상하지 못하고 아예 감상조차도 거부되고 무시되는 이들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인식하지 못하는 대부분의 사람들, 장애가 있는 관객을 의식하지 않고 고려하지 않은 영화제의 조직위들, 그리고 영상문화의 발전을 위해 이런 영화제들을 장려하고 지원해야 하는 문화정책의 결정권자인 정부 등 우리 사회 전반의 퍼져 있는 장애인식에 대한 현주소가 반영된 것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현재도 하고 있긴 하지만, 앞으로도 사회전반에 만연해 있는 장애인 차별사례들을 끊임없이 알리고, 장애인 영상문화 환경을 개선하려는 운동을 지속적으로 좀 더 체계적인 방식과 전략을 세워 펼쳐 나가야 할 것이다.
작성자백수정(서울YMCA 어린이영상문화연구회 미디어교육팀?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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