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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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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주변의 인사말은 한 가지로 요약됩니다. 많이 힘드시죠?

이것은 모두가 힘들다는 가정을 전제로 한 인사말입니다. 조금 더 속내를 들어다보면, 울적하시지요 아니면 우울하세요 등의 직설화법이 곧바로 보이게 됩니다. 어떤 이들은 더 나아가 죽고싶어요 라는 정말 힘든 말을 건네기도 합니다.

그렇습니다. 2009년 벽두부터 한국 사회는 모두가 우울하고 힘듭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보건복지부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우리 국민들의 자살문제가 심히 우려된다고 했습니다. 자살예방 대책을 촉구하기도 했구요. 그 명을 받은 저 같은 어줍잖은 정신건강 전문가들이 대책을 내놓기는 합니다만 실행에 이르기까지는 아직 어림도 없는 상태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겪는 우울하고 암울한 분위기는 한 개인의 정신건강만을 논하기에는 감히 불가능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소개할 영화는 1930년대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 있는 조그만 레스토랑을 배경으로 한 피아니스트의 음악을 둘러싼 사랑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보고서와도 같은 영화, <글루미 썬데이(Gloomy Sunday, 1999)>입니다.

자상하고 인내심 강한 레스토랑 주인인 라즐로 자보(조아킴 크롤 분)는 아름다운 여인 일로나(에리카 마르잔 분)와 함께 매일 매일을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수가 꿈이었던 자유로운 여인 일로나는 피아니스트로 일하게 된 안드라스(스테파노 디오니시 분)를 또 다시 사랑하게 되고 세 사람은 일로나를 양분하여 사랑의 평형을 이룬 채 살아갑니다.

안드라스가 만든 전율이 흐르는 아름다운 노래인 ‘글루미 썬데이’는 음반으로 제작되어 모두에게 사랑 받는 불후의 명곡이 됩니다(최근 한국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는 바로 이 영화에서 일부의 모티브를 가져간 원작소설을 영화화 한 것이지요.) 그러나 이 노래에 대한 반향이 수 많은 사람들의 자살로 이어지고 독일의 침공과 더불어 행복의 균형은 깨지기 시작합니다. 한 때 일로나를 짝사랑 했던 한스가 독일군 대령으로 부다페스트에 부임하면서 유태인 학살이 일어나게 되고, 안드라스는 자살하고 자보는 죽음의 수용소로 끌려가게 됩니다. 자신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싸울 수 있었던 사람은 다름 아닌 일로나였고, 그 싸움의 끝자락은 60년이라는 긴 세월로 이어집니다. 부다페스트를 가로지르는 아름다운 다뉴브 강가에서는 지금도 글루미 썬데이가 연주됩니다.

이 곡은 당시 1930년대를 살았던 실제 피아니스트 ‘르쉐 쉐레쉬’에 의해 작곡된 것입니다. 불행히도 원본은 파기된 채 손과 입으로만 전해졌고 빌리 할러데이, 루이 암스트롱을 비롯한 20여명의 가수들에 의해 불리어지고 있습니다. 노랫말 또한 제각각이어서 어느 것이 원래의 가사인지 구분이 어렵다고 합니다.

중요한 것은 정말로 많은 사람들이 글루미 썬데이를 듣고 자살하였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자살과 정신건강에 대한 일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입장에서 말씀드리자면 단연코 아닙니다. 우울한 감정상태에서 이 노래가 더욱 잘 들렸을 것이고 마지막 자살에 이르는 길의 동반자 정도의 역할을 했다는 것이 정확합니다. 마치 결혼식때 멘덴스존의 결혼행진곡이 연주되는 것과 같은 하나의 의식절차로서 말입니다.

   

만일 이 노래의 가사나 음율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자살에 이르게 했다고 한다면,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이 70년대를 풍미했던 ‘새벽종이 울렸네..’로 시작되는 새마을 노래에 기인했다고 하는 것과 같은 논리가 성립되는 것이지요. 논리의 비약이고 진실에 대한 전형적인 오도현상입니다. 결국 이 노래는 1950년대 들어 정치가들에 의해 금지곡으로 지정되고, 25년간 헝가리 어느 곳에서든 연주할 수 없는 곡이 되었지요. 그러나 그 금지령이 작동되던 시기에 빌리 할러데이와 루이 암스트롱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 아름다운 음율을 들려주었습니다. 미국인들의 자살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냐구요. 결코 그렇지 않았지요. 민중들은 정치가들보다 언제나 더 현명한 법입니다.

인간은 노래 한 곡, 영화 한편에 자신의 목숨을 버릴만큼 단순하고 무가치한 존재가 아닙니다. 인간의 자살은 오랜 시간 동안 자신의 존엄성에 대한 고민의 결과로써 복잡한 일련의 과정을 거칩니다. 그래서 자살자에 대한 평가를 함부로 해서는 안되는 것이지요. 모든 예술 작품들은 작가의 고유한 철학과 시대정신을 반영합니다. 얼마 전 손담비의 ‘미쳤어’가 유행한 맥락과 소위 막장 드라마의 인기몰이 등은 예사롭지 않은 세태를 반영합니다.

2009년 현재 대한민국은 어둡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경제가 어려워서가 아니라 미래가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2008년 겨울, 용산 참사에서 알 수 있듯이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현 막장 정부의 행태에 많은 사람들이 분노하고 우울해 합니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에게는 늘 작은 희망이 숨쉬고 있지요. 진실이라는 희망은 여전히 사람들을 살아가게 합니다. 건강하세요.

작성자이영문 (아주대학교의료원 정신건강연구소장)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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