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가족, 도움 받아야 할 가족? > 문화


사랑의 가족, 도움 받아야 할 가족?

장애인 전문 TV프로그램 <사랑의 가족>, 제 역할 하고 있나

본문

   
수년전 크게 히트한 영화 말아톤에는 장애인을 바라보는 한국사회 인식의 변화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할 수 있다. 영화의 초반부에는 외부 사람은 물론 가족들과도 전혀 소통이 되지 않는 자폐증장애인 초원이 때문에 초원이와 가족들은 말 할 수 없는 고통스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렇지만 중반 이후부터 초원이는 어머니의 눈물겨운 돌봄과 마라톤 운동을 통해 서서히 자아에 눈을 뜨게 되고 외부세계와도 조금씩 소통을 시작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영화의 초반부에 나타나는 장애로 인한 초원이와 가족들의 극단적인 불행한 모습은 90년대 까지 영화에서 장애인을 조명하는 주된 방식이었다. 청각장애인이 주인공인 60년대 작품 <벙어리 삼룡이>와 시각장애인이 주인공인 90년대 <서편제>는 주인공이 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비극적인 삶을 살아간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TV 드라마에서는 2005년작 <부모님전상서>에서 보듯 최근까지도 장애인 때문에 본인과 가족들이 힘겨운 삶을 연명 한다고 말한다.

또한  말아톤의 중반이후부터 보여준 초원이의 장애극복 모습은 영화에서는 2005년작이었던 이 영화에서 처음 선보였지만 TV에서는 휴먼다큐인 <인간극장>을 필두로 뉴스와 예능 특집 프로그램 등 많은 방송에서 장애인과 가족의 눈물겨운  장애극복기를 통해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여왔다.

그리고 최근의 경향은 말아톤에서 물건을 사고 카드로 계산을 하면서 엄마가 영수증에 사인을 하라는 말에 이름을 쓰는 대신 ‘사인’이라는 글자를 써놓아, 관객들에게 장애인의 신선한 매력을 일깨워준 초원이처럼 자폐증장애인의 엉뚱함을 보여주는 식이다. 이 영화의 대박 이후 영화계는 역시 엉뚱함을 지닌 지적장애인이 주인공인 <맨발의 기봉이>, <허브>, <웰컴 투 동막골>등을 내놓아 관객의 사랑을 받았고, TV에서도 <진호야 사랑해>란 예능프로와 최근 종영한 드라마 <아내의 유혹> 등 많은 프로그램에서 엉뚱함을 가진 지적장애인과 자폐증장애인을 등장시켜 큰 인기를 끈 바 있다.

   
▲ 아이돌 스타가 장애인 아기를 돌보며 장애체험을 하는 컨셉
이렇듯 지금까지 영상매체에서 장애인을 표현하는 방식은 고정적인 게 아니라 사회의 변화에 발맞춰서 ‘비극적 장애인→ 장애극복 장애인→엉뚱한 매력을 지닌 장애인’으로 계속해서 진화를 해오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절대로 변화하지 않는 것이 도사리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모든 장애인관련 영상 작품에서 장애인의 인간적인 다양한 모습보다는 장애만을 집요하게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은 국내에서 유일한 장애인대상 전문 TV프로그램인 <사랑의 가족>에서도 예외 없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장애인 대상 전문 TV 프로그램은 그동안 1981년 KBS 제 3라디오 <내일은 푸른 하늘>을 시초로, EBS <해 뜨는 교실>, SBS <사랑의 징검다리> EBS <희망풍경> 등 여러 프로그램들이 있었다. 하지만 현재까지 성격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지상파 TV프로그램은 KBS TV <사랑의 가족> 뿐이다. 이 프로그램은 여러 장애인 대상 전문 프로그램이 폐지와 신설을 반복하는 동안에도 1993년 이후  현재까지 꾸준히 방송 되고 있다.

이전까지 장애인 전문 프로그램을 포함 방송 전반에서 장애인을 다루는 형식은 휴먼 다큐와 모금 방송, 장애인 행사 소개 등 개인적 차원의 접근이 전부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의 가족>은 장애계의 흐름을 반영하여 이때부터 방송에서 비로소 사회 구조적인 접근 방법으로 장애인을 조명하는 코너를 만들기 시작했다.

<사랑의 가족>의 가장 큰 성과라면 15년이 넘는 방송기간동안 수많은 장애인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시청자에게 장애인들이 더 이상 주변에서 보기 힘든 낯선 존재가 아닌 친근한 존재로 인식하도록 돕고 있다는 것이다. 또 장애인 밴드, 시각 장애 의사, 절단 장애인 산악인, 장애인 단체 임원인 지체 장애인 등 사회의 각 분야에서 자신의 영역을 개척한 장애인들을 소개하고 그들의 활동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에게 장애인은 더 이상 무능력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일깨워 주고 있다.

2004년 11월 개편 전까지는 <사랑의 가족>도 여느 장애인 프로그램들처럼 휴먼 다큐와 장애인 행사 소식 등만을 전하는 포맷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개편 이후부터는 하루에 30분씩 4일간 방송하는 체제로 바뀌면서 장애인과 관련된 사회 구조적인 면을 다루는 단독 코너가 처음으로 생겨났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방송에서는 볼 수 없었던 형식으로,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다양한 장애인 인권운동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사랑의 가족>은 기획 의도에서 ‘사회에서 장애인들이 겪게 되는 여러 현실적인 문제들을 다루는 공중파 유일의 장애인 전문 프로그램이며, 동정하고 미화하는 시각이 아닌 장애인이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장애인들이 겪게 되는 현실적인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라고 프로그램의 목적을 밝히고 있으면서도, 정작 제작진은 자신들이 정한 기획의도를 비웃기라도 하듯 장애인의 현실적인 문제보다는 종래의 구태의연한 장애인 묘사방식을 답습하고 있어 의아함을 주고 있다.

   

<표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작년 11월부터 2009년 5월 현재까지 방영된 100회분의 내용을 분석한 결과, 장애인이 일하고 배우는 평범하면서도 의욕적인 삶의 모습보다는 3월16일 방송된 ‘좋은 이웃 실버 인형극단’ 편에서 보듯이 비장애인 공연단들이 장애인시설을 찾아 위문공연을 한다거나 1월19일 ‘우리들의 즐거운 기차여행’ 편처럼 장애인들이 봉사들의 온갖 도움을 받으며 여행을 떠나는 모습(39회) 등을 방영하면서, 정작 장애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사회정책 분야는 15회 정도 밖에 할애를 하지 않고 있었다.

이는 3월25일 ‘우리들의 즐거운 봄나들이’ 편에서 보듯이, 4일 중 하루는 장애인 정책을 다루는 코너로 정했으면서도, 정책 대신 기업체와 장애인들이 결연을 맺어 장애체험을 해보고 여행을 떠나는 일회성 눈요기용 행사들로 대체했기 때문이다.

또한 <표2>에서 보듯 장애인의 삶을 조명하는 방식을 보면 4월 28일에 방영된 ‘상진씨와 영숙씨의 행복 일기’편에서처럼 장애인이 어려움에 처해 주위의 도움을 받거나, 5월 11일회 ‘절망 같은 어둠을 벗어나 빛이 되고자 선택한 삶’편의 경우, 장애인 주인공이 장애에 대한 편견을 이기고 성공하여 다른 장애인들을 위한 봉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경우(57회)가 상당수에 이르고 있다.

이에 반해 봉사와 수혜를 받는 삶이 아닌 평범한 생활을 하고 장애인의 모습(10회)은 상대적으로 너무 적었다. 이렇게 장애인이 도움을 받거나 봉사를 하는 모습에만 치우친 방송만을 접하면, 시청자들은 장애인들을 일반 비장애인들과 달리 특정한 삶만을 사는 사람들로 생각하게 된다. 장애인들을 대부분의 비장애인들처럼 평범하게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라, 장애의 불편 때문에 봉사와 나눔에 얽혀 살 수밖에 없는 이미지로 고착시켜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2월5일 ‘전신마비시인’편과 3월3일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날’편에서 보듯이, 주인공 장애인이 1급이라 가족들이 장애인을 돌보느라 무척 힘들어 하고 있다는 점을 내내 강조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주인공의 특출한 능력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을 하지 않고 있다. 또한 제작진들은 활동보조인이 없어서 장애인을 보조하느라 힘들어 하는 가족에게 정부에서 시행중인 활동보조인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고 있다. 장애인정책을 다루는 코너에서는 활동보조인제도에 대해서 여러 차례나 소개하면서도 정작 1급 장애인의 일상을 소개할 때는 이를 철저히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다른 드라마나 영화 등에서 장애인을 조명할 때 쓰는 수법으로, 가족들이 장애인을 돕느라 힘겨워 하는 점을 강조해야만 사람들의 눈물샘을 더 자극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랑의 가족>은 장애계의 변화를 반영하는 한편 과거 장애만을 부각하던 모습 또한 여전히 굳건하게 유지 하고 있다. 장애인 정책을 다루는 수요일 코너를 제외 한 다른 3일간의 코너에서는 일회성 행사 소개와 나들이를 따라다니는데 집중하고 있으며, 장애인의 평범하고 다양한 인간적인 모습보다는 장애를 부각하거나 도움을 받는 등의 모습을 강조하는 종례의 구태 의연한 방식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장애인은 장애의 어려움 속에 사는 존재→주위 도움과 노력→장애 극복→시청자들 감동과 자기 성찰’이라는 언어체계기능을 확립시키고 있고, 장애인의 문제를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로만 치부해 버리던 예전의 사회 문화적 가치체계를 답습하고 있어 아쉬움을 남긴다.

작성자심승보(장애우문화센터 방송모니터단)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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