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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은 어떻게 벽을 뚫는가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를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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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온 밤, 세수를 하느라 켜놓은 수돗물 소리 너머 ‘자살’이라는 남편의 소리가 들려왔다. ‘뭐? 누가 자살했다고?’ 얼굴에 묻은 거품을 씻어내며 이번에는 수돗물 소리보다 더 큰 소리로 내가 물었다. ‘쌍용차노조 간부 부인이 자살했대.’ ‘뭐, 아니 왜?’ 왜라고는 물었지만 이내 가슴 깊은 곳으로 예리한 칼날이 쑤셔 박히는 듯한 통증이 인다. 부인의 죽음 소식을 듣고 공장 밖으로 나가던 남편이 곧바로 경찰서로 연행되었고 그녀가 남겨놓은 너무나 어린 생명들이 있다는 사연을 컴퓨터 화면을 통해 읽어가다가 어느 즈음에서 나는 그저 귓속으로 이명소리만 가득 들릴 뿐 더 이상 아무런 생각도 감정도 일지 않았다.

영화를 보던 내내 나는 잔뜩 움추려 있었다. 아침에 상영된 영화를 미리 본 사람들로부터 이 영화의 주인공인 송신도 할머니가 던지는 감동에 대해 들었지만 이상하게도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어떤 감정도 마음으로부터 요동치지 않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할머니가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고 전쟁에 대한 분노도 일지 않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내 시선이 머문 건 점점 바뀌어 가고 있는 할머니의 표정 뿐이었다. ‘바늘 끝 하나 들어가지 않을 듯’했다던 할머니의 첫인상은 영화의 끝장면에서는 웃음과 눈물이 즉각적으로 쏟아지는 풍부한 표정으로 변해 있었다. 일본 최고 법원으로부터 ‘기각’이라는 판결을 받고 밖으로 나오며 손을 흔드는 할머니의 표정에서는 곱고 섬세한 여성성마저 느껴졌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내 시선이 머문 건 할머니의 변해가는 얼굴 뿐이었다.

미디어법이 통과되고, 경찰병력을 쌍용차 공장 안으로 투입하기 위해 컨테이너가 공장문 앞으로 바싹 다가와 있다는 뉴스를 보면서 나는 두려웠다. 우리는 이제 얼마나 더 큰 시련을 맞을 것인가. 번져가는 불길처럼 저 미치광이들의 요동들이 내 이웃을 다치게 하고 마침내 내 가족과 나의 숨통을 조르는 일도 곧 오리라.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이 공포 앞에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으로부터 아무런 감정의 동요가 일지 않았던 건 송신도 할머니의 몸이 증언하는 고통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할머니의 몸은 일본군에게 맞은 칼자국과 강제로 새겨진 문신으로 얼룩져 있다. 뱃속에서 죽어버린 칠 개월 된 태아를 끄집어 내기 위해 스스로 밑을 벌려 아기의 다리부터 꺼내던 이야기를 할 즈음, 내 몸이 소름으로 오스스 움츠려들 때, 할머니는 그때는 아무 데도 의지할 데가 없어서 참 외로웠다고 했다. 나는 할머니의 삶이 증언하는 고통 앞에서 스스로 공포에 질려든 거였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용산 학살의 현장에서는 시신은 커녕, 시신의 혼을 담은 빈 관마저 공권력에 가로막히고 쌍용자동차 공장 앞에는 용산의 망루 위로 올라간 끔찍한 컨테이너가 바짝 다가와 있다. 아빠는 농성장에서 싸우고 있고 엄마는 목을 매었다. ‘여보 미안해’라고 울먹이는 사위의 등을 장모가 어루만진다. 아이들은 이 시간을 앞으로도 기억할 수 없을만큼 너무 어리다. 이 모든 것을 기록하고 증언할 언론의 입마저 닫힐려고 한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영화를 보고난 후 나는 암전처럼 껌껌해진 내 마음을 읽으려 무던히도 애썼다. 한밤에도 벌떡 일어나 멍하니 앉아 있고, 맨눈으로 일식을 보려다가 급격히 침침해진 시력으로 앞이 잘 보이지 않을 때는 차라리 속이 편했다. 나와 송신도 할머니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나는 지금 이 곳에서 감히 희망을 이야기하진 못한다. 하루에도 여러번씩 퍼붓는 폭우 속에서 어찌 곧 맑은 날이 올 거라고 말할 수 있을 건가. 그러나 팔십년간 갇혀 있던 할머니의 고통이 벽을 뚫었다. 할머니와 할머니의 재판을 함께한 사람들이 함께 울고 웃는다. 재판에 지고도 삶에서는 해방된 것이다. 오늘, 길고 오랜 고통 앞에 서 있는 우리는 이제 어떻게 이 벽을 뚫을 건가.

작성자서해식(르포작가)  admin@nodongnew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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