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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타인’과의 교감을 통해 ‘나’를 찾아 갑니다

[이영문의 영화읽기] 영화 ‘아주 특별한 손님’

본문

   

누구에게나 흔적이 있습니다. 역사는 사람들이 남긴 흔적의 집합체이기도 합니다.
인문학자 김영민 교수는 ‘흔적’은 흉터이기도 하지만 ‘발뒤꿈치’의 남겨진 자국이라는 설명을 하였습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신화 속의 주인공들이 발을 저는 이유가 ‘발뒤꿈치’로 세상을 돌아다녔기 때문이라는 것이지요. 또한 우리가 지혜를 얻는 방법으로 ‘세상을 돌아 다녀오기’라는 시각으로 풀었습니다.

세상 다녀오기의 본체는 타인과 사물을 접하고 그 속에 ‘나’라는 주체를 들이 밀어보는데 의미가 있습니다. ‘나’라는 존재로부터 ‘나’가 이탈되는 경험. 구체적으로는 낯선 ‘타인’이 되어 보는 것. 그 과정에서 우리가 쉽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은 장자의 소통론을 공부한 사람들이면, 누구나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또한 정신분석이론에서는 이 과정을 ‘이인화(異人化)'라는 용어로 설명합니다. 스스로의 생각과 감정이 분리되는 해리과정을 겪은 뒤에 보다 구체적으로 타자의 틀에 놓이게 되는 것. 현실과 유리되는 경험 등이 바로 이인화의 과정입니다.’사람이 예전과 달라졌다‘는 얘기를 자주 듣습니다. 근본적 탈을 벗어 버리지 않는 한 이런 과정은 일어나지 않는 법이지요.

큰 죽음의 고비를 넘겨본 사람이나 먼 곳으로 고행에 가까운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이 느껴보는 ‘타인’이 된 ‘자아’의 경험은 그래서 소중합니다.

   
오늘 소개할 영화는 이러한 ‘타인’이 된 ‘자아’를 객관적으로 조명한 이윤기 감독의 ‘아주 특별한 손님(Ad-lib night, 2006)’입니다. 감독의 전작인 ’여자, 정혜‘와 ’러브 토크‘로부터 시작된 ’여성의 자아 찾아가기‘의 연속이라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잠시 영화를 들여다봅니다(이 표현은 여기서 매우 적절합니다. 왜냐하면 마치 우리가 카메라를 들고 주인공의 하루를 따라가는 착각을 일으키기 때문입니다).

길거리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보경(한효주 분)이라는 여자가 있습니다. 그 뒤에서 보경을 명은이라고 부르는 또 다른 두 명의 남자들이 있습니다. 남자들은 보경을 명은이라고 부르며, 죽어가는 아버지의 마지막 임종을 딸이 지켜봐야 한다고 이야기 합니다.

‘나는 명은이 아니에요’라고 말해보지만, 이들은 하루만이라도 죽음을 눈앞에 둔 동네 아저씨의 딸이 되어 달라고 간청합니다. 별다른 저항 없이 보경은 명은이가 되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물론 인신매매범이 아닌가 의심도 하지요. 우리는 여기서 왜 보경이 스스로 명은이 되기를 결정하였는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마 보경에게는 스스로를 부정하고 바꾸어 버리고자 하는 무의식이 있었던 것으로 생각합니다. 영화의 마지막이 그러한 추측을 가능하게 합니다. 통합된 자아의 균열이 시작될 때 ‘자아 부정’을 통한 ‘내가 아닌 상태(not me)'를 거쳐 타인으로서의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마음에서 철저하게 동화된 ’타인(명은) ‘이 되어 하루를 보내고, 새벽에 보경은 서울에 도착하고 다시 ’자신(보경) ‘으로 돌아옵니다.

장자의 나비의 꿈과도 같은 하루에 대해 보경은 잠시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서먹했던 엄마에게 전화를 걸고, 앞으로 변할 것이라는 것을 암시합니다. 어리둥절한 엄마의 음성 너머로 느껴지는 낯선 타인(배종옥의 목소리입니다)을 엿볼 수 있습니다.

시종 카메라는 보경(명은)의 말과 얼굴표정, 몸짓 하나하나에 초점을 둡니다. 명은이 것으로 보이는 양말을 보경이 신어보고, 명은의 아버지에게 용서를 빌기도 하고, 명은의 옛 남자친구와 이야기도 합니다.

   

언제부터인가 내가 싫어지려고 할 때, 나 자신을 부정하고 싶을 때, 멀리 돌아다녀온 외진 길로 숨고 싶을 때, 어디론가 사라지고 싶을 때, 우리는 상상을 합니다. 현재와는 완연히 달라져 있는 자신의 모습을. 그 모습이 비참하든 희망이 가득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잠시나마 내가 아닌 낯선 타인의 모습이 되고 싶을 뿐이니까요.

시나리오를 원작 소설인 ‘애드리브 나이트’에서 가져온 것은 다름 아닌 감독 이윤기입니다. 왜 하필 애드리브 나이트일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대본에 없는 즉흥적인 대사를 일컫는 애드리브는 보경(명은)의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계획적이지 않은 생활, 다시 말하면, 구체성이 결여된 생활에 대한 염증을 의미하지요. 타인이 되는 경험을 통해, 타인을 이해해보는 민주적 소통체험을 통해 인간은 성숙해가는 法입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교훈을 점차 잊고 삽질에 목을 맨 이명박 정부를 향해 이런 넋두리를 해봅니다.

‘너 이것 해봤어? 안 해 봤으면 말을 하지마세요’
민중의 소리에 진정으로 귀 기울이는 사회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작성자이영문 (아주대학교의료원 정신건강연구소장)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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