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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플렉스 극장, "독립영화 관람권을 보장하라"

[이영문의 영화읽기] 영화 ‘날아라 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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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시간동안 어떤 영화가 상영되기를 기다려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저는 아주 많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개인시간과 상영시간이 맞추어지지 않아 포기한 적이 많지요.

   

일전에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정신장애인 인권보고서를 만드는 일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보고서는 우여곡절 끝에 발표되었습니다. 우연히도 ‘날아라 펭귄’은 저의 인권위 참여 시간동안 함께 진행되었습니다. 오다가다 임순례 감독을 승강기에서 만났고, 영화를 기다린다고 말했었지요.

겨우 시간을 만들어 영화를 보러갔습니다.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오후시간에 딱 한 차례, 그것도 마지막 날 상영이었습니다(물론 예약을 했습니다). 하던 일을 잠시 중단하고, 연구실 문을 나가려던 참이었습니다.

전화가 왔습니다. 영화관 사정으로 환불할 터이니 관람을 취소하면 안 되냐는 전화였지요. 상영 1시간 전이었습니다. 순간 그러자고 하려다가 화가 났습니다. 이건 아니다. 내가 얼마나 기다려 온 영화인데, 어떻게 만든 시간인데, 너희들이 일방적으로 상영취소를 통보할 수는 없다, 기타 등등. 프로이트의 이론에 맞추자면, 합리화를 동반한 억압된 분노가 특정 영화관의 상업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습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상영에 맞춰 귀국하자마자, 영화를 보러갔던 생각이 났습니다. 그때도 영화관은 문을 닫았고, 관객들의 앙코르공연 요청으로 그해 겨울에나 볼 수 있었습니다. 과거의 심리적 외상은 늘 흔적으로 남는 법입니다. 저는 격렬하게 항의했고, 결국 혼자서 가운데 자리에 앉아 ‘펭귄’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잠시 후 초등학생 한명과 엄마가 들어왔고, 연인으로 보이는 관객 2명과 함께 영화를 봤습니다(물론 이들은 예약하지 않은 분들입니다. 그분들에게 제 덕분이라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인권영화를 보기도 전에 독립영화 마니아들이 겪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의 인권유린을 당한 셈입니다. 이 글을 통해 그분들에게 다시 한 번 경고합니다. 다시는 그런 유치한 짓 하지마세요.

   
장황한 이야기를 먼저 하였지만, ‘날아라 펭귄’은 일상생활 속에 우리가 잘 느끼지 못하는, 그러나 매우 익숙하게 벌어지는 인권문제를 소재로 하고 있습니다. 4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영화에는 학원가기 싫은 초등학생과 사교육 열풍에 들뜬 엄마가 나오기도 하고, 직장생활에서 소외되는 채식주의자 남자와 여성흡연자가 담담하게 그려집니다. 또한 기러기 아빠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 황혼이혼을 소재로 하는 퇴직가장과 독립을 주장하는 부인의 얘기도 나옵니다. 제가 겪었고, 앞으로 겪을 얘기들이 다 있었습니다.

특히 유능한 직장상사이지만 기러기 아빠가 되어 하루를 살아가는 권과장(손병호 분)이야기에서 과거 저의 모습을 볼 수 있었지요. 아빠의 빈자리가 익숙한 두 아이와 떨어져 있던 시간만큼 낯설어진 부부의 이야기는 가족의 공존보다는 자식의 장래가 더 큰 화두인 우리 사회의 단면을 예리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른 에피소드에서는 사회활동을 하는데 있어, 고기와 술과 담배문제가 얼마나 많은 편견과 횡포를 낳고 있는 가를 보여줍니다. 채식주의자인 남자는 술과 고기를 먹어야 되고, 여자는 회식자리에서 담배를 피울 수 없습니다. 임순례 감독 자신이 채식주의자로 7년째 살아가며 느끼는 고통이 그려져 있습니다(그러나 그녀는 영화를 만드는데 있어 더 어려운 문제가 술 안 먹고 담배 안 피는 것이라고 합니다).

마지막 에피소드에는 권위적인 퇴직가장(박인환 분)이 이제 자신만의 인생을 살고 싶어 하는 아내(정혜선 분)와의 역전된 부부관계에서 겪는 갈등을 조명합니다. 더 이상 순종적이지 않는 아내에게 섭섭함만을 느낄 뿐 자신이 변하지 않으려는 그를 보며, 제 얼굴은 부끄러움으로 화끈거렸습니다. 펭귄이 갖는 상징은 현실을 잘 걸어가지 못하는 보통사람들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날지 못하는 펭귄에게 희망을 주는 메시지가 ‘날아라 펭귄’일지도 모릅니다.

무겁고 우울한 소재인 인권을 임순례 감독은 편안하지만 예리하게 그려내고 있습니다. 영화배급 방식 또한 공동체 상영방식을 표방한다고 합니다. 소수의 동아리 모임에서도 영화를 초청해서 상영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이 영화는 고발영화도 아니고, 심각한 다큐멘터리도 아닙니다. 그저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겪고 있는 이야기 속에 담겨진 사람의 소중함에 대한 영화입니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해줄 수 있는 성숙한 사회. 이런 것이 희망일수 밖에 없는 현실이 야속하지만, 저 또한 인권을 실천하며 살아가고자 합니다.

이 글을 제 가장 소중한 아내에게 보냅니다. 여보 미안해요. 그리고 사랑해요. 아자 아자 ‘날아라 펭귄’.

   

p.s. 관객의 평점이 9.0인 영화를 평론가들이 6.0으로 깎아 내리는 횡포에 대해 한 마디 합니다. 니들이 돈 내고 영화를 봤니? 아니면 영화를 만들어 봤니? 관객은 영화의 또 다른 참여자입니다.

작성자이영문 (아주대학교의료원 정신건강연구소장)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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