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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 센 영양주사 한 방, 제주도 여행

[기획]중증장애인의 제주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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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 지치고 답답할 때, 삶의 스트레스로 인해 가슴이 답답해질 때, 여행은 이 모든 것들을 ‘별 거 아닌, 돌아가면 또 이겨낼 수 있게 하는 힘’을 갖고 있다. 새로운 에너지가 필요할 때, 머릿속을 정리해야 할 때, 주저하지 말고 떠나자. 여정이 다소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행에서 얻는 것들이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이야기다.

핸드 컨트롤러가 부착된 차량을 운전할 수 있는 ‘지인’과 함께 많은 이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국내여행지로 손꼽히는 제주를 찾아, 수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중증장애인의 여행기를 들여다 봤다.

  

   
▲ ⓒ제주공항 한켠에 즐비한 렌터카 부스에서 예약한 차를 받았다. ⓒ전진호 기자
   
▲ 핸드컨트롤러 부착 차량 내부. ⓒ김라현 기자
   
▲ 본인의 차가 아니라서 처음엔 어색해했지만 이내 곧 드라이빙을 즐길 수 있게 됐다.ⓒ전진호 기자

 

제주국제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이번 여행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줄 '발', 렌터카를 찾는 일이었다. 제주에서 핸드 컨트롤러가 장착된 차량을 빌릴 수 있는 곳은 2군데뿐인데, 이중 가장 최신차량인 에스엠5를 빌려주는 업체에서 차를 빌려 여정에 나섰다. 중형차이긴 하지만 휠체어를 실어야 하다 보니 친구나 가족과 함께 여행하려면 비좁다는 생각이 든다. SUV차량에 핸드 컨트롤러가 장착된다면&hellip 또 다른 희망을 품으며 여행에 나섰다.

차도 길들일 겸 한라산을 끼고 서귀포 쪽으로 넘어가는데, 갑자기 안개가 자욱하고 비까지 내리기 시작한다. 반대편에 전복된 차를 보니 잡고 있는 핸드 컨트롤러에 더욱 힘이 들어감을 느꼈다. 운전이 서툰 입장이라면 중산간 도로를 따라 이동하기보다 해안도로를 이용하는 게 나을 것 같다.

   
▲ 초롱민박 이모저모 ⓒ전진호, 김라현 기자
   
▲ 민박집에서 내려다본 성산 풍경 ⓒ전진호 기자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어둑어둑 어스름이 깔린다. 서둘러 내일 방문할 우도 인근의 민박집을 찾았다. 여태까지 제주여행을 올 때는 늘 호텔이나 펜션 등에서만 묵었는데, 이번엔 저렴하면서 휠체어를 타고 들어갈 수 있는 집을 찾다보니 민박집이 눈에 들어왔다. 성산포 지역에서 누리꾼들에게 가장 평이 좋은 민박집을 찾다 발견한 곳인데, 깔끔하고 저렴한데다 무엇보다 턱이 비교적 없어 휠체어장애인도 이용 가능하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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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롱민박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성산리 254-2
전화:064-782-4589
요금:2인 기준 2만5천원, 3인부터 5천원씩 추가요금을 받는다.
1인당 5천원을 추가하면 아침밥을 제공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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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산항에서 우도 들어가는 배를 탔다. ⓒ전진호 기자
   
▲ 한치물회. 나오자마자 정신없이 먹다 찍느라 양이 적어보이지만 꽤 푸짐하다. ⓒ전진호 기자

 안개가 잔뜩 끼고, 파도가 심해 우도로 가는 배가 뜨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무사히 입성에 성공! 영화 ‘인어공주’와 KBS 인기 프로그램 ‘해피선데이-1박 2일’ 덕분에 유명해진 곳, 여행 당사자의 추억이 담겨 있는 우도 땅을 밟으니 가슴이 확 트이는 듯한 느낌이다. 다음번엔 전동휠체어를 타고 와 올레코스를 돌아보리라 다짐하며 하얀 산호가 펼쳐진 바닷가를 한참 동안 바라보며 거닐었다.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 식당을 찾아 먹은 음식은 한치 물회, 7천원이 아깝지 않게 푸짐했다. 그냥 먹기 아쉬워 감귤주도 주문했다. 감귤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게 여성들이 좋아할 맛이다.

   
▲ 카트를 타고 우도 마을길을 달렸다. ⓒ김라현 기자
   
▲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주인공. 흔들리는 카트 안에서 즐거워하며 사진을 찍고 있다. ⓒ김라현 기자
   
▲ 4인용 카트. 뒤에 휠체어를 넣고 우도 마을을 달렸다. ⓒ김라현 기자
   
▲ 카트를 가로막았던 귀여운 강아지들과 제주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말 ⓒ김라현, 전진호 기자

  뉘엿뉘엿 해도 지고 오랫동안 운전했더니 피곤해 카트를 빌려 타기로 했다. 물론 핸드 컨트롤러 등이 장착된 차량은 있을 리 만무하고, 동행인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는 게 아쉬웠다. 하지만 휠체어도 실을 수 있고 4명이 넉넉히 탈 수 있는 ‘최신식’ 카트를 발견하고는 ‘이거다!’ 싶어 냉큼 빌려 타고 우도 일대를 돌았다. 우도에 오면 늘 해안도로를 따라 돌거나 우도 등대에 올랐으나, 카트의 장점을 십분 활용해 마을 안쪽을 굽이굽이 돌았다. 집집마다 태극기가 달려 있는 모습이나 문명의 이기와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풍경 사이에 위치한 피시방과 단란주점(?)이 이채롭다.

 

   
▲ 제주 민속촌 박물관 ⓒ김라현 기자
   
▲ '안트레랑 들어가지 맙써.'라고 쓰인 제주도 방언이 재미있다. 뜻은 '가옥 안에 들어가지 마세요.' ⓒ김라현 기자
   
▲ 민속촌박물관 정문에 구비되어 있는 수동휠체어. 넓은 민속촌을 다 둘러보려면 전동휠체어가 더 편리하다. ⓒ김라현 기자
   
▲ 함께 방아찍기 체험 중 ⓒ전진호 기자
   
▲ ⓒ전진호 기자

우도에서의 아쉬운 하룻밤을 보낸 후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제주민속촌박물관이다. 많은 이들이 제주의 옛 모습을 보기 위해 성읍민속마을을 찾는데, 사람이 실제 거주하는 모습을 보려면 성읍민속마을을, 말뼈나 오미자차 호객행위(?)가 싫다는 이는 제주민속촌박물관을 찾으면 된다. 제주 전통가옥을 그대로 복원해 놓았기 때문에 옛 주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도 있고, 갖가지 민속 체험과 공연도 즐길 수 있다. 이 때문에 제주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대장금’을 비롯해 ‘거상 김만덕’, ‘추노’ 등의 세트장으로도 활용됐다고 한다.
다소 언덕이 있지만 턱이나 계단이 없어서 휠체어를 탄 이들도 보조인의 도움 없이 충분히 관람가능하다. 전시공간이 넓어 한 시간 단위로 운행하는 관람열차를 타고 해설을 들으며 관람할 수도 있으나, 리프트가 없어서 휠체어를 탄 이들은 이용하기 어렵다. 보행이 불편한 이들을 위해 수동휠체어를 무료로 대여해주고 있으나, 전동휠체어를 빌려주면 좋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남았다. 
 

   
▲ 제주민속촌박물관 입구 ⓒ김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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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민속촌박물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표선리 40-1
전화:064-787-4501
요금
성인 7천원
장애인 4천900원
장애청소년 3천200원,
장애아동 2천500원
입구에서 수동휠체어를 무료로 빌려주고 있으며,
매시 정각 정문에서 관광열차가 출발한다.
www.jejufol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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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속 물고기를 낚을 수 있는 트릭아트 뮤지엄 ⓒ전진호 기자

제주 풍경을 더 즐기고 싶었지만 하늘이 꾸물꾸물해져 인근의 ‘트릭아트 뮤지엄’을 찾았다. ‘유리의 성’과 더불어 제주 여행객들에게 가장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전시장 중 하나인 이곳은, 2차원의 평면 회화작품을 3차원의 입체감각으로 체험해 볼 수 있는 곳이다. 유명작품들을 비틀어서 그린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 그림과 함께 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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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릭아트 뮤지엄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표선면 성읍리 2381
전화:064-787-8774
요금:성인 8천원, 청소년 7천원,
아동과 장애인 6천원
www.trickar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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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일장 내부. 사진으로도 넓어보이지만 시장의 극히 일부분이다. ⓒ전진호 기자
   
▲ 5일장에서, 제주도 제삿상에 오른다는 빙떡. 담백한 밀전병에 살짝 양념이 가미된 익힌 무채가 들어가 있다. ⓒ전진호 기자

 
제주에서 알게 된 친구들과 함께 먹을 저녁식사 준비도 할 겸, 제주도민들의 생활도 엿볼 겸해서, 때마침 열린 5일장을 찾았다. 동네 시장을 생각하고 제주 5일장을 찾았건만 엄청난 규모에 놀라고, 가족과 연인과 함께 마트에 오듯 5일장을 찾은 이들의 모습에 또 한 번 놀랐다. 일단 제주 제사상에 오른다는 빙떡을 입에 물고 시장 구경에 나섰다. 우선 오늘 저녁에 먹을 제주산 통돼지와 딱새우를 샀다. 제주에 오면 꼭 먹어봐야 한다는 자리돔이 잔뜩 쌓여 있으나 먹을 줄 몰라 패스~. 상추를 사며 필요한 양파와 고추를 덤으로 달라고 하니, 군말 없이 내주시는 모습을 보며 시골인심이 아직 죽지 않았다는 걸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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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열리고 있는 5일장 개장 일자
제주시, 표선:2일, 7일, 12일, 17일, 22일, 27일
대정, 성산:1일, 6일, 11일, 16일, 21일, 26일
중문:3일, 8일, 13일, 18일, 23일, 28일
서귀포, 한림:4일, 9일, 14일, 19일, 24일, 29일
세화:5일, 10일, 15일, 20일, 25일,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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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물자연휴양림. 길쭉하게 뻗은 울찬한 나무숲이 절로 감탄을 부른다. ⓒ전진호 기자
   
▲ 절물자연휴양림 ⓒ전진호 기자
   
▲ 휴양림 속 생태연못 ⓒ전진호 기자
   
▲ 절물자연휴양림에서는 전동휠체어를 빌릴 수 있다. ⓒ김라현 기자

다음날 아침 일찍 절물자연휴양림을 찾았다. 화창하다 못해 찜통 속에 있는 듯한 더위 때문에 녹초가 됐으나, 길쭉하게 자란 울창한 나무숲 사이로 들어가니 몸과 머릿속이 맑아지는 듯했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절묘하게 편의시설을 갖춰놓아 휠체어를 타는 이들도 자유롭게 휴양림을 즐길 수 있으나, 경사가 있기 때문에 입구에서 무료로 빌려주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산책하는 게 편하다. 다만 나무로 만든 산책로의 폭이 좁아,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들은 친구나 연인과 함께 이야기 나누며 다닐 수 없는 점이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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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물자연휴양림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봉개동
전화:064-721-7421
요금:성인:1천원
청소년:600원
어린이:300원
장애인: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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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맑은 하늘 밑 뻥 뚫린 길을 달리자니, 가슴이 탁 트였다. ⓒ전진호 기자

제주의 이곳저곳을 누비다 보니 어느덧 일상으로 복귀해야 할 시간이 돌아왔다. 어느새 몸에 익숙해진 차의 속도를 높여 해안도로를 질주하다 보니 문득 이곳을 찾기 전, 내 안의 슬픈 것과 힘들었던 것과 원망스러움, 부정적인 마음들이 치유된 듯하다. 차별적인 세상을 탓하며 떠나기를 주저했다면 이런 감정들을 쉽게 느낄 수 있었을까? 강도 쎈(?) 영양주사 한 방 맞았으니 당분간의 생활은 너털웃음으로 보낼 수 있을 듯하다.

반복된 일상의 지겨움 때문에 삶이 무기력해졌다고? 당장 짐을 꾸리고 떠나라. 치유의 기적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작성자전진호,김라현 기자  016272962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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