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이란 건 없어" 특수학교 버스, 미국을 횡단하다 > 문화


"정상이란 건 없어" 특수학교 버스, 미국을 횡단하다

[책꽂이] 숏버스(Short bus)

본문

이 책을 300자로 요약하면…

  읽기장애를 극복하고 명문 브라운 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한 저자가 숏버스를 타고 미국 전역을 다니며 ‘비정상’ 딱지가 붙은 사람들을 만난다. 여전히 자신을 괴롭히는 ‘정상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그들이 어떻게 벗어났는지를 알기 위해서다. 학습장애 소년, 여자가 되고 싶은 어부 화가, 천재와 미치광이의 모습을 모두 지닌 괴짜 예술가, 시청각 중복장애 소녀, 다운증후군 처녀 등을 만나면서 지은이는 ‘과연 사람들이 규정하는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남과 다른 나, 나와 다른 남을 받아들이는 소통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장애 관련 시리즈인 ‘푸르메 책꽂이’ 세 번째 책.


    장애의 상징인 숏버스를 타고 미국을 여행하다

  숏버스(short bus)는 특수교육을 받는 학생들이 이용하는 스쿨버스로 1975년 장애인교육법에 의해 탄생했다. 당시 장애인교육법(IDEA, the Individuals with Disabilities Education Act)의 제정으로 많은 장애인이 학교 교육을 받게 되었으나 통합교육이 강제되지 않은 탓에 장애 학생들은 비장애 학생들과 분리되어 교육을 받아야 했다. 이들이 타고 다닌 특수학급용 스쿨버스가 바로 숏버스인데, 일반 스쿨버스보다 길이가 짧아 숏버스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 책의 지은이 조너선 무니는 읽기장애(난독증)를 이겨내고 명문 브라운 대학을 졸업한 이후 장애 극복의 표본이 되어 활동가로, 강연자로 살아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상’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늘 사로잡힌 채 자아가 분리되어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결국 무니는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어떻게 그런 생각에서 자유로워졌는지를 (혹은 그렇지 않은지를) 알아보기로 한다.

  그는 이 여행을 중고 숏버스를 타고 시작한다. 굳이 숏버스를 고른 것은 장애인이라면 누구나 숏버스를 타는 데다 자신들이 겪은 차별과 고통,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이야기가 모두 그 안에 담겨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숏버스는 장애인의 상징이며 그들을 하나로 묶는 ‘접착제’인 셈이다. 2003년 5월부터 10월까지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학습장애, 신체장애, 지적장애를 가진 13명의 사람들을 만나는데, 이 책 『숏버스』는 바로 그 여행의 기록이다.

 
세상을 향해 소리치는 학습장애 소년 ‘브렌트’

  무니가 숏버스 여행에서 제일 먼저 만난 사람은 열두 살 소년 브렌트. 브렌트는 읽기장애와 학습장애라는 딱지를 달고 고통받으며 축구와 페인트볼 게임에서 위안을 얻는다. 무니 역시 어릴 때 똑같은 문제로 힘들었고 축구를 탈출구로 삼았다. 하지만 사회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끊임없이 속으로 갈등했던 무니와 달리, 브렌트는 스스로에게 정상을 강요하지 않는다.

  아이는 싸우고 있었다. 내가 그 나이 때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나와 달리 브렌트는 자기 자신과 싸우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것이 첫걸음이다. 그것이 가장 중요하다. 브렌트를 보면서 그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원초적인 고함지르기에 동참했다. 브렌트처럼 입을 한껏 벌렸다. 브렌트처럼 고개를 뒤로 젖히고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엿 먹어라!” 브렌트는 바람에 대고 외쳤다.
“그래.” 나도 브렌트를 따라 소리쳤다. “엿 먹어라!” -본문 92쪽


천재? 미치광이? 괴짜 예술가 ‘켄트’

  무니의 브라운 대학 동창인 켄트는 주의력결핍장애가 있다. 자기 집에 찾아오는 길을 설명할 만한 집중력조차 없는 반면 대학 입학 시험에서 만점을 받을 만큼 영리하다. 그는 유머 책을 쓰고 24시간 스탠딩 코미디 공연을 하는 ‘괴짜 예술가’의 모습을 통해 자기 존재를 드러내고 인정받고자 한다. 남들 눈에는 천재와 미치광이 사이를 넘나드는 것으로 보이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즐기며 살 뿐이다.

  “나는 내 비전을 충실히 간직할 거야. 증기 롤러처럼 우리를 깔아뭉개려는 것들이 아주 많지. 그러니 자기 모습을 고스란히 지키는 게 가장 힘든 일이야. 그렇잖아, 머릿속이 미쳐 돌아가면 자신을 사랑하는 게 가장 힘든 일이 되어 버려.” 켄트는 한 차례 웃음을 터뜨린 뒤 말을 이었다. “나는 내일 죽을지도 모르지. 기껏 한 일이라고는 빌어먹을 『요 마마』 책을 쓴 것뿐이라고 신을 저주하면서 누워 있을지도 몰라. 하지만 내가 위대한 예술가가 되지 못했다는 사실을 유머 감각을 갖고 바라보면서 죽을 수는 있어. 해 놓은 일이라고는 ‘요 마마’ 유머 몇 개 쓴 것뿐이라는 게 우스개의 끝을 장식하기에 딱 알맞다고 재미있어하면서 말이야.”
  켄트는 바보와 현자 사이, 명성과 소외 사이에 그어진 선 위에 서 있다. 주춤거리지도 않고 달리지도 않는다. 그는 그 선 위에 서서 미소를 짓는다. -본문 129쪽

여자가 되기를 꿈꾸는 어부 화가 ‘쿠키’

  키 190센티미터에 화장하고 금발 가발을 쓰고 15센티미터 하이힐을 신고 돌아다니는 남자를 본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그가 바로 쿠키이다. 메인 주의 작은 어촌에 사는 어부이자 화가인 쿠키는 성전환 수술을 해서 ‘도미니크’라는 여자가 되기를 꿈꾼다. 정확한 병명은 이른바 ‘성 정체성 장애’. 쿠키가 그런 독특한 모습을 하고도 잘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고향 마을 사람들 덕분이다. 그들은 여자/남자라는 이분법으로 쿠키를 규정하지 않는다. “쿠키는 그냥 쿠키”라는 말처럼 있는 그대로 그를 받아들이고 함께한다. 이런 모습야말로 장애인과 비장애인, 사람과 사람이 어울려 사는 진정한 공동체의 모습이 아닐까.

  쿠키는 부자 동네인 케네벙크와 케네벙크포트 사이에 낀 가난한 어촌 마을 케이프포퍼스에 살았다. 그는 부두에서 일해 생계를 유지하는 구식 메인 사람이었다. 쿠키를 아는 사람들은 그에게 발달장애가 있다고 여겼지만 쿠키 자신은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 사람에 관해 이야기하면서 미리엄의 목소리가 변하던 것이 생각난다. “쿠키는 키가 180센티미터가 훨씬 넘는데요, 드레스에 하이힐, 가짜 유방, 금발 가발 차림으로 동네를 돌아다녀요.” 미리엄에 따르면 쿠키는 메인의 풍경을 주로 그리는 화가이기도 했다.
  나는 마을 사람들과 미리엄 자신은 쿠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보았다. 정신병자? 복장도착자? 정신지체? 미리엄은 당신 미쳤냐는 눈길로 나를 쳐다보았다. “우린 그냥 쿠키라고 생각해요.” -본문 209~210쪽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긍정의 화신 ‘케이티’

  다운증후군을 가진 케이티는 숏버스 여행에서 만난 가장 유쾌한 사람이다. 여느 20대와 마찬가지로 케이티 역시 보이밴드에 열광하고 스타의 가십에 관심을 기울이며 쇼핑을 좋아한다. 무니는 그녀가 평범하다는 사실에 실망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케이티의 특별함을 발견한다. 언제나 밝은 그녀는 게임에 지는 걸 싫어하는 무니조차 승패를 잊고 카드 게임을 즐기게 만든다. 사람들을 함께하도록 만드는 그녀만의 특별한 ‘긍정의 힘’은 장애인은 무언가 부족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편견을 부끄럽게 만든다.

  칸디는 딸의 꿈을 지원하기 위해 무엇을 도와줄지를 물었다. 케이티는 “춤추는 걸 가르쳐 줘요.”라고 대답했다. 칸디는 당황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춤을 가르쳐 달라고? 그게 무슨 도움이 되겠니?” 케이티는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엄마가 내게 가르쳐 주면 우리가 함께 춤출 수 있잖아요.”
그건 케이티를 돕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연결되는 것을 케이티가 돕는 것이다. 칸디는 말했다. “우리가 독립된 개인이라고 믿는 것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누군가의 존재가 우리 모두의 모습을 만들 수도 있는 법이지요.” -본문 293쪽

예전에도 앞으로도 나는 ‘숏버스를 타는 사람’이야

  초등학교 3학년 때 읽기장애라는 딱지가 붙은 뒤 무니는 세상이 정해 놓은 정상이라는 기준에 맞추려고 애써 왔다. 그 기준과 맞지 않는 부분은 스스로 선을 긋고 분리시킨 뒤 축구를 통해, 공부를 통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끊임없이 분투해 왔다.

  그러나 숏버스 여행을 통해 그는 진정한 자기를 인정하고 더 이상 남들의 기준에 맞춰 살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멀기만 했던 아버지와 대화를 시작하고, 빤히 쳐다보는 남들의 시선을 웃으며 넘긴다. 애초 자신이 다녔던 초등학교 앞에 시위하듯 숏버스를 버리려던 계획도 바꾼다. ‘숏버스를 타는 사람’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받아들인 것이다.

  내 젊음을 던져 넣은 이번 여행의 끝에는 정상을 쫓아다닐 때보다 더 단단하고 고유한 자아 정체성이 있었다. 나는 이제 분투하는 사람이 아니다. 한때는 그랬는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난 3개월 동안, 그리고 삶의 대부분 동안 나는 무언가를 탐색해 왔다. 
  수영장 물속에 서서, 나는 밥 헨리를 초등학교 앞에 버릴 수는 없다고 결심했다. 밥 헨리는 나와 함께 있어야 한다. 그 경험들이 나였고, 특수교육이 나였다. 아마도 그것들은 내게서 가장 좋은 부분이리라. 브렌트와 켄트, 애슐리, 쿠키, 케이티, 제프 같은 사람들이 없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칙칙할 것인가?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영영 나는 숏버스를 타는 사람일 것이다. -396~397쪽


지은이 / 옮긴이 소개

    지은이 조너선 무니
  읽기장애를 가진 작가이자 활동가. 열두 살 때까지 글을 읽지 못했다. 축구 장학생으로 대학에 진학한 뒤 명문 브라운 대학 영문학과에 편입해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장애학과 사회 변화 분야에서 트루먼 장학금을 받았다. 브라운 대학 재학 시절, 학습장애 학생을 위한 비영리단체 ‘프로젝트 아이 투 아이(Project Eye-To-Eye)’를 설립했고 현재 자문위원으로 있다. 프로젝트 아이 투 아이는 미국 13개 주에 20개 지부를 갖고 있으며 3000명이 넘는 학생과 부모, 교사들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무니는 하버드대 브라운대 뉴욕대 등 수많은 대학과 기관의 초청을 받는 인기 강연자이기도 하다. 2003년에는 LD(학습장애) 액세스 재단으로부터 골든애드보커시 상을 받았다. 개인 웹사이트 www.jonathanmooney.com

옮긴이 전미영
  서울대 정치학과와 같은 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헤럴드경제』 등에서 기자 생활을 했으며, 푸르메재단에서 근무했다. 『다크 플랜』『오일 카드』『자기신뢰』『사랑받지 못한 어글리』『부모가 알아야 할 장애 자녀 평생 설계』 등 다수의 책을 번역했다.

작성자박근재 기자  tournf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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