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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늘 욕망을 사유하는 존재입니다

[이영문의 영화읽기] 영화 ‘블랙 스완(Black Swan 2010)’

본문

 

   

  모든 인간은 꿈을 꿉니다. 그리고 그 꿈은 무의식의 욕구이며, 어릴 때의 기억과 마음의 상처와 상상력에 기원을 두고 있지요. 여러분은 과연 오늘 아침 어떤 꿈을 꾸셨습니까? 무지막지하게 크고 흉측한 괴물에 시달리는 꿈이었는지요? 아니면, 끝이 없는 계곡 속으로 뛰어내리는 꿈을 꾸신 건지요? 모든 의식적 상상력의 세계가 꿈입니다. 그리고 그 꿈을 타자의 입장으로 보여주는 예술의 장르가 영화라는 산물이 됩니다. 이성적이고 논리적 사고를 가진 소위 ‘정상’이라고 판단되는 사람들조차 아무렇지 않게 빠져드는 통제력이 상실된 세계. 바로 무의식, 꿈의 세계입니다. 대런 아로노프스키 감독은 이와 같은 인간 무의식의 탐구를 늘 영화의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레퀴엠(Requiem for a dream, 2000)’에서는 마약중독자들의 무의식을 그렸고, 최근의 ‘더 레슬러(The Wrestler, 2008)’에서는 미키 루크의 꿈을 다루고 있지요. 이번 ‘블랙 스완(Black Swan, 2010)’에서는 발레리나의 무의식을 통해 인간 욕망의 근원과 억압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영화 ‘레옹’을 기억하는지요? 클래식의 전율과 함께 꽃을 든 한 남자의 생존 본능이 한 소녀를 살리는 갱스 무비, 최근 원빈의 ‘아저씨’가 ‘레옹’의 한국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는 분들은 ‘김새롬’양을 보며 ‘나탈리 포트만’이라는 배우를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됩니다. 이 영화를 통해 영화속 캐릭터 ‘니나’도 성장하지만, 현실에서의 할리우드판 엄친아(부유한 유대인 집안에 하바드 대학을 다녔지요), 나탈리 포트만 역시 유아기 틀을 벗어난 연기를 통해 거듭나게 됩니다(결과적으로 그녀는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합니다).

   
 여기 예쁘기만 한 발레리나가 있습니다. ‘니나(나탈리 포트만 분)’라고 불리는 스무살 여자는 여전히 엄마의 품안에서 길러지고 있지요. 그녀 또한 전직 발레리나였고, 자신의 이루지 못한 꿈을 니나에게 투사하고 있습니다. 전형적 갈등 구조의 플롯일 뿐입니다. 자신의 욕망이 어디를 향하는 지도 모른 채, 니나의 하루 하루는 연습의 연속입니다. 속상하면 혼자서 화장실에서 토하고 울지만, 자신을 혹사시키는 것만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러나 걱정하는 모든 이에게는 ‘나는 괜찮아’라고 주문을 외지요. 착한 사람이 되어야만 모두 자신을 사랑한다는 착각이 그녀 마음속에 늘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약하다는 것. 아니 정확하게 표현하면, 강하지 않다는 것은 타인으로부터 관심을 받지 못하는 것이고, 결국 버림받을 것이라는 불안감 또한 그녀를 짓누르고 있지요. 견딜 수 없는 불안이 엄습하면, 선배 프리 마돈나(위노나 라이더가 특별출연 하였습니다)의 분장실에서 그녀의 개인 물건을 슬쩍 훔칩니다. 불안하고 초조할 때 공부 잘하는 아이의 공책이나 방석을 훔치는 우리 수험생들과 정확히 닮아 있습니다.  

  불안을 떨쳐버리려고 니나는 오늘도 또 연습에 빠져듭니다. 완벽해지는 것만이 나를 인정받는 길이야. 니나는 속으로 또 다짐합니다. 엄마가 나를 구속하지만(엄마에게 순종하지 않으면 엄마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협박에 늘 시달리지요), 그것은 나를 사랑하기 때문이지. 나는 착한 사람이 되어야해. 엄마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 모두에게 행복해지는 길이야.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언제나 세상이 우리들의 유아기적 환상을 단숨에 흔들어 버린다는 것이지요.

  올해 뉴욕 시립 발레단은 차이코프스키 원작의 ‘백조의 호수’를 공연하려고 합니다. 이 공연의 프리 마돈나는 순종적이고 착하기만 한 백조와 자신의 본능에 충실한 흑조의 두 가지 연기를 모두 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언제나 본능을 억압하며 살아온 니나에게 흑조 연기는 불가능해 보입니다. 그러나 떨어졌다고 생각한 오디션에서 니나는 프리 마돈나로 선택되고 이제 그녀는 상상과 공상의 세계에서 벗어나 프리 마돈나라는 상징의 세계로 옮겨 가야합니다. 진정성을 가진 세계로의 진입은 그녀의 독립을 의미하는 것이며, 이제 그녀는 엄마 없이 두 발로 세상과 마주해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불안하면 생긴 몸을 긁는 버릇이 슬며시 번져나가고, 다시 몸에 생채기를 내기 시작합니다. 벌레가 거기서 빠져나오는 환상은 카프카의 ‘변신’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금지된 욕망에 대한 죄책감도 스멀스멀 그녀의 마음속에 피어오르고, 어릴적부터 머리맡을 지켜왔던 인형들을 버려도 불안은 쉽게 가시지 않습니다. 매일 누군가 자신의 자리를 탐하고 있다는 피해의식이 마침내 자리 잡습니다.

  단장역을 맡은 뱅상 카셀의 예지적 코멘트는 이 영화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네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유일한 사람은 바로 너 자신이야. 너 자신을 편하게 해.

  그렇습니다. 인간은 늘 욕망을 사유하는 존재입니다. 그것이 명예이든, 자본이든, 권력이든 그 형태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욕망을 성취해가는 방법의 정당성에 따라 자신의 불안이 다스려집니다. 자신을 죽이는 연습을 통해 니나는 거듭나게 되겠지요.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그녀의 얼굴에 ‘나는 완벽해’라는 마지막 주문이 번져나갑니다. 또 다른 욕망이 그녀를 지배하게 될 겁니다. 여전히 어른 되기의 두려움은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있나 봅니다. 새살이 돋아나는 동안 시간이 흘러가겠지요. 여러분들의 마음속에 꿈틀대는 욕망이 정당한 방법에 의해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작성자이영문 정신과 전문의, 경기도 광역정신보건센터장  humanishop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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