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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우의 세상보기] 철원 비무장지대에서 바라본 북녘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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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우의 세상보기]

 

 

철원 비무장지대에서 바라본 북녘 땅

 

 

함께걸음의 세상보기는 작년 늦가을 강화도 여행에 이어, 분단의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철원군을 두 번째 여행지로 결정했다. 전쟁의 흔적들과 함께 철새 도래지를 비롯한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유명한 철원의 민통선 지역,
서울과 불과 2~3시간 거리에 있으면서도 분단이라는 현실과 함께 마음의 거리는 훨씬 더 멀리 느껴졌던 철원을 5월 2일 22명의 장애우와 자원활동자가 함께 찾아가 보았다.

 

 

 

▲바라만 보는 북녘땅


38휴게소에서 시작된 북녘땅으로의 여행  

 5월 1일 밤, 아침 7시까지 비가 멈추지 않으면 일정을 취소한다는 함께걸음의 전화를 받은 장애우들은 열심히 일기예보를 듣고 하늘을 바라보며 그 어느 때보다 애타게 비가 그치기를 기다렸을 것이다.
 많은 사람의 바람 덕분인지, 비는 오지 않는다는 일기예보가 잘 맞은 탓인지, 새벽까지도 세차게 쏟아지기만 하던 빗줄기가 언제 내렸냐는 듯 하늘은 맑고 햇살은 아침 일찍부터 따스하기만 했다.
 이날 서울에서 약 3시간 거리인 철원 비무장지대를 찾아가는 길에는 모두 22명의 장애우와 비장애우가 동행했다.
 한태호 씨를 비롯한 척수장애우모임 "다우회" 회원 세 사람은 각각 자신의 승용차를 가지고 철원으로의 여행에 동행하기로 하고 자원활동자와 함께 방배동에 사는 박영희 씨와 대방동에 사는 이현준씨, 양재동에 사는 정훈소 씨를 각각 태우고 참석하기로 했다.
 또한 앉아서 여행하기 힘든 중증뇌성마비 장애우 정치우 씨를 위해 문화기행모임인 "신들매"에 봉고차를 요청하자 모임의 대표인 이동범씨가 직접 봉고차의 운전과 정치우 씨의 자원활동을 맡아주었다.
 특히 이날 참석자 중에는 강원도  척수장애우 모임 "해와 달" 회원들과 포천에 사는 조숙명 씨가 "함께걸음"에 게재된 광고를 보고 신청해 주어서 서울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의 장애우와 함게 여행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었다.
 일행은 서울에서 수유리를 거쳐 의정부와 포천을 지나 신철원에 이르는 길로 방향을 잡고, 포천에서 참석하는 조숙영 씨와 만나기로 한 38휴게소를 1차 집결지로 결정했다.
 서울에서 출발하는 네 대의 차량이 태우기로 약속된 각 가정에 도착한 시각은 아침 9시, 미리 도착한 자원활동자와 준비를 끝내고 기다리던 장애우를 태우고 각각 1차 집결지인 38휴게소로 향했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서울시내에서의 교통은 그렇게 복잡하지 않았고 1차 집결지까지 2시간 정도를 예상하고 출발했다. 하지만 의정부에 들어서면서 뻥튀기와 오징어 장사가 길 곳곳에 보이기 시작했고 거북이 걸음으로 겨우 12시가 넘어서야 서울에서의 일행이 모두 38휴게소에 도착할 수 있었다.
 포천에서 철원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38휴게소에는 자신의 승용차로 먼저 도착한 조숙영 씨가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포천과 철원이 매우 가까운 거리인데도 처음 이 곳을 방문한다는 조숙영 씨는 "차가 있기는 하지만 혼자서 여행을 간다는 것이 엄두가 나지 않아 주로 집에서 생활합니다. 이번에 다른 장애우들과 함께 여행할 수 있다고 해서 참석했는데 이런 기회가 많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이야기하며 1시간이나 늦게 도착한 서울 팀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1차 집결지인 38휴게소는 이름그대로 지금부터 우리가 38선의 이북 지역으로 향하고 있는 경계가 되는 곳이다. 철원쪽으로 가는 것이 대부분 처음인 일행은 이제부터 본격적인 북녘땅으로의 여행이 시작됐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민간인 출입통제선의 입구 철의 삼각전적지
 38휴게소를 출발하면서 본격적인 철원의 자연경관이 양 옆으로 시원스럽게 펼쳐지기 시작했다.
 현재 신철원이라 불리는 이 지역은 분단으로 인해 철원이 반으로 나뉘게 되어 행정구역의 편의상 이북에 위치한 철원과 차별을 두어 새로 이름 지어진 곳이라고 한다.
 문화기행모임 "신들매"에서 이미 몇 차례의 철원 여행을 했던 이동범 씨의 설명을 듣는 사이에 일행은 한탄강이 맑게 흐르고 있는 숭일교를 지나 비무장지대로 들어가는 입구인 철원삼각전적지에 도착했다.
 철의 삼각전적지에 도착하자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장애우 마크를 붙이고 나란히 주차장에 세워져있는 세 대의 차량이었다. 약속시간에서 한시간이나 지난 오후 1시, 강원도 척수장애우 모임 "해와 달" 회원들과의 만남을 끝으로 철원 비무장지대로 함께 여행할 식구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그리고 분주하게 휠체어를 내리는 일행을 보고 그 날 여행의 안내자인 진익태 씨가 반갑게 인사를 건네었다. 몇 달 전부터 이 날의 여행을 계획할 수 있도록 자세한 사항을 설명해주고 도움을 주었던 전익태 씨는 철원에서 조상 대대로 살아오면서 목장을 경영하고  한편으로는 철원의 자연생태계 보존을 위한 활동과 철원을 찾는 사람들에게 이 지역의 이모저모를 소개해주는 일을 하고 있는 토박이 철원사람이다.
 이날의 여행지인 철원지역 민간인 출입통제선 안은 89년 11월부터 민간인에게 개방되기 시작했고, 89년 개관한 철의삼각전적지 관리 사무실에서 출입증을 발급 받아 들어갈 수 있게 된  곳이다.
 다행히 이날 동행한 전익태 씨의 배려로 주민등록증과 장애우 수첩을 준비했던 일행은 단체이름과 대표자 이름, 각 차량의 번호와 인원수만을 파악해 알려주는 것으로 출입증을 발급받을 수 있었다.
 민간인 출입통제선은 출입증을 발급받은 후 정해진 시각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일행은 1시 30분 출입 시간에 들어가기로 하고 철의삼각전적지 앞에 있는 잔디밭에서 점심식사와 함께 간단한 자기소개 시간을 가졌다.
 대부분 철원 여행을 계기로 처음 만난 참가자들은 이 자리에 참석하게 된 동기와 하고 있는 일 등을 이야기하고, 서로 나이를 물으며 오빠나 누나, 형으로 호칭하는 등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인사를 나누었다.
 또한 서울에서 참석한  "다우회" 회원 중에 강원도가 고향인 사람이 있어 "해와 달" 회원들과 반갑게 고향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특히 뇌성마비 장애우인 정치우씨와 그의 손발이 되어주는 역시 뇌성마비 장애우인 김미선 씨 부부는 대부분 미혼인 참석자들 속에서 살뜰이 서로를 챙기며 부부의 사랑을 과시해 사람들의 부러움과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참석자들이 바삐 인사를 나누는 사이 시간은 벌써 1시 30분, 일행은 모두 8대의 차량에 나누어 타고 전익태 씨의 안내로 민간인 출입통제선을 넘었다.

 

 

끊어진 철교, 최북단 간이역 월정리 역
 우리나라 지도를 동서남북으로 접었을 때 가장 중심에 있는 지역이 바로 철원이다. 전국을 잇는 국토의 중앙에 위치한 만큼 6.25 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 속에서 가장 크게 몸살을 앓았던 이곳은 아직도 그 치열했던 전쟁의 기억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일행은 곳곳에 세워진 검문소를 거치며 조국 분단이라는 우리의 현실이 새삼스럽게 몸으로 부딪혀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아직은 사람들의 발길이 많이 닿지 않는 만큼 흙먼지를 가득 일으키는 비포장도로를 달려 일행이 처음 도착한 곳은 남방 한계선에 근접해 1988년에 건립된 "철의 삼각지 전망대"였다. 고성능 망원경과 북한 지역을 옮겨 놓은 모형이 있는 이 곳은 하지만 휠체어를 타고 있는 장애우를 크게 반겨주는 것 같지 않았다.
 4층 건물에 폭이 좁고 경사가 높은 계단 앞에서 일행은 과연 "이곳을 올라가야 하는가"라는 문제를 고민해야 했고, 결국에는 철원에서의 첫 방문지를 이런 문제로 그냥 지나칠 수 없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이곳으로 안내한 진익태 씨는 "예전에 한번 장애우 단체의 방문이 있었지만, 매우 드문 일이기 때문에 편의시설에 대한 생각은 해보지 못했다"며 예상치 못한 상황에 매우 곤혹스러워했다.
 이날 참석자 가운데 휠체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모두 11명으로 동행한 자원활동자만으로 4층까지 올라가는 것은 역부족으로 보였다. 그 때 다행히 석가탄신일을 위해 제등을 달고 있는 10여명의 군인을 만난 일행은 도움을 요청하고 북녘땅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망대에 오르기 시작했다.
 군대에서도 휠체어 다루는 법은 배우지 못한 군인들은 어떻게 휠체어를 다루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 하며, 땀을 뻘뻘 흘리면서 힘으로 휠체어를 번쩍 들어올려 지켜보는 장애우들이 일일이 휠체어 다루는 법에 대해 설명하며 올라가야 했다.
 하지만, 고생 끝에 일행이 도착한 전망대 꼭대기에는 북녘땅의 앞턱을 겨우 볼 수 있는 정도의 창과 망원경이 있을 뿐이었고 안내원의 앵무새 같은 설명에 약간의 실망감을 안고 곧바로 내려왔다.
 북녘땅을 조금이라도 가까이 보겠다는 염원으로 지어진 "철의 삼각지 전망대" 옆으로는 현재 이남의 최북단 역인 월정리 역이 6.25때 폭파되어 더 이상 달리지 못하고 있는 열차의 잔해를 그대로 간직한 채 겨우 기차역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월정리 역은 서울과 원산을 잇는 경원선의 최북단 간이역으로 이곳에 도착한 일행 중 이현준 씨는 "더 이상 달릴 수 없는 열차와 끊어진 철교, 그리고 역시 힘겹게 휠체어로 레일을 건너는 우리의 모습이 너무나 서글프다."고 이야기해 일행을 숙연하게 했다.
 돌멩이와 잔디, 몇 칸의 층계가 있는 월정리 역 레일에 힘겹게 내려선 참석자들은 겨우 앞의 한 칸 정도가 남은 기차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진익태 씨로부터 여기까지 자동차로 스쳐온 풍경들과 앞으로 볼 수 있는 것들 그밖에 철원의 이모저모에 대해들을 수 있었다.
 진익태 씨는 "철원은 쌀농사로 이루어진 곡창지대로 전국 쌀 생산량의 5분의 1이 이곳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김일성이 백마고지와 철원평야를 뺏기고 일주일간 밥을 먹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철원 햅쌀의 질은 매우 좋습니다."라며 길옆으로 지평선이 환하게 보였던 넓은 평야에 대해 설명했다.
 또한 "철원은 사람들의 손때가 묻지 않아 자연이 잘 보존되고 있어서 철새들의 보금자리로도 유명한데 철원에 살면서도 통 볼 수가 없어 일본까지 가서 보고 온 "장다리 물떼새"를 아까 여러분과 함께 오는 길에 보았다."며 우리일행과 함께 동행 한 것이 매우 행운이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불행히도 지나온 길에서 본 것들에 대한 기억을 더듬어 봤지만 우리 일행은 그걸 그렇게 귀한 새를 한 사람도 알아보지 못했다.
 철새 도래지인 철원을 찾는 대표적인 새는 두루미로 보통 학이라고 불리며 1미터20센치에서 1미터40센치 정도의 키에 눈처럼 하얀 자태를 뽐내는 우아한 새다. 현재 두루미는 천연기념물 202호로 재두루미는 천연기념물 203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전 세계에 겨우 1천 4백마리 정도가 남아있어 거의 멸종위기에 처해있다. 해마다 200마리 정도가 우리나라를 찾아오는데 겨울에 철원을 방문하면 그 아름다운 새를 쉽게 볼 수 있다고 한다.
 한시간 정도 월정리 역 주변을 둘러보며 설명을 들은 일행은 서툴기는 했지만 성심껏 도와준 군인들에게 점심에 남은 김밥과 음료수로 감사를 표하고 서둘러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한국전쟁의 참혹한 흔적
 길은 여전히 포장도로보다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가 더 많이 나타나며 뻗어 있고 길 양쪽으로는 정돈되지 않은 잡초가 마구 자라 있었다.
 월정리 역을 출발해 10분 정도 달리던 일행은 12만평에 이르는 철새 도래지 앞에 차를 세웠다. "샘통"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사계절 내내 15도의 일정한 수온을 유지하며 계속 솟아나는 샘이 통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름이 붙여진 곳으로 야생 조류 서식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어 천연기념물 242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는 곳이다.
 새가 오지 않을 때에 이곳을 찾아왔기 때문에 잡초와 물 밖에는 볼 수 없었던 일행은 그래도 일정한 수온을 유지하는 샘을 신기해하며 겨울쯤 새를 보기위해 다시 이곳을 찾아오고 싶다고 하나같이 입을 모았다.
샘통을 거쳐 지나는 길 양쪽으로는 마치 바로 어제 전쟁이 일어났던 곳처럼 곳곳에 폭격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6.25 당시 명주실을 생산하던 동연방직주식회사는 폭격으로 담벼락만이 남아 당시 공장의 규모를 짐작하게 해주고 있었고, 곳곳에 집터들도 부서진 몇 개의 조각으로 겨우 그 흔적을 알아볼 수 있었다.
 차 안에서 주변의 모습들을 지켜보던 정치우 씨는 ?전쟁이라는 것은 어른들에게 이야기로만 들어왔던 것인데 이렇게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라며 부인 김미선 씨와 함께- 진지하게 전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전쟁 발발 당시의 참혹했던 과거를 되새기며 조금은 우울해진 일행을 뜻밖의 풍경이 나타나 반갑게 맞아주었다.
 나무의 색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하얗게 피어있는 꽃들, 번식을 위해 둥지를 트고  부활하는 백로는 그렇게 절로 탄성을 지를 만큼 곱게 나뭇가지 위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꽃이 피었나보다 라며 지나쳤던 일행은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차를 세우고 전쟁터라는 삭막한 공간 속에 그려진 풍경에 넋을 잃고 한참을 그곳에 있었다.
 그 다음 일행이 향한 목적지는 철원역, 철원역은 월정리역 전에 있는  본 역으로 경원선의 중간지점이고, 해방이전에 금강산으로 운행되던 전기철도의 시발점이다. 그 당시 철원역과 금강산 사이에는 24개의 역이 있었으며 금강산 까지는 4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본 역인만큼 목조 2층으로 상당히 큰 규모를 자랑했다는 철원역이지만 우리가 도착해서 볼 수 있었던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역의 자취와 거의 부서진 철도, 그리고 설명이 적힌 작은 팻말이 전부였다. 그리고 현재 경원선의 종착연긴 신탄리부터 최북단 역인 월정리역까지는 남북통일에 대한 염원과 함께 개통을 계획하고 복구공사 중이기 때문에 차에 타고 있는 채로 주변을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공산당 통치의 흔적 노동당사
 철원은 국토의 중심이며 쌀 곡창지대였기 때문에 6.25 전쟁 당시 최대의 격전지로 북한과 남한이 통치를 번갈아 받았다. 그 당시 북한통치의 가장 큰 흔적으로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이 노동당사이다.
 공산당 통치시 지역주민들의 강제 노동력과 모금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소련식 공법으로 완공된 무철근 콘크리트 건축물로 내부는 거의 폭격으로 파괴되고 외형만이 그 모습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건물 주변 곳곳에는 아직도 반공인사들을 고문하고 살해했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여러 시간 함께 다니며 친해진 자원활동자와 장애우들은 처음 전망대에서 망설였던 것과는 달리 장애우를 업고 휠체어는 들고 하면서 대부분 건물로 향했다.
 건물의 곳곳에는 폭격의 흔적과 함께 총알 자국이 있는 벽이 남아 있고 반공인사들의 시체가 묻혀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감돌았다.
건물내부는 거의 턱과 층계로 이루어져 있고 오랫동안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아 곳곳에 잡초와 흙더미가 쌓여있었다. 잡초나 부서진 벽 때문에 휠체어가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장애우들은 자원활동자와 함께 건물의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이야기를 나누거나 사진을 찍는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해가 지기 전에 민간인 통제구역을 벗어나야 하는 일행은 노동당사를 뒤로 하고 치열하게 고지 쟁탈전이 벌어졌던 백마고지로 향했다.
 

백마고지로 불어오는 북녘 땅의 바람
 민간인 출입통제선 안에는 북한과의 관계 속에서 전략적으로 마을을 이루는 전략촌이 있다. 그 전략촌 가운데 가장 부촌으로 손꼽히는 곳이 철원군 철원읍 대마리이다.
 일행이 백마고지로 향하는 길목에서 만난 대마리는 보통 시골마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진익태 씨는 "대마리 주민들은 퇴역군인 등 생활기반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로서 민간인 출입통제선 안에서 농사를 지으며 국가의 일정한 규제와 보호를 받게 된다."고 하며 대부분 농가수입이 많기 때문에 여유있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마리를 지나자 드디어 이날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며 6.25 전쟁의 역사 속에서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봄직한 백마고지가 나타났다.
 하늘을 찌를 듯 높이 서있는 백마고지 전투 전적비, 차에서 내리며 그 전적비의 끝을 바라본 우리들은 한국전쟁 중 24차례나 주인이 바뀌며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벌였던 이곳이 이날 우리가 비탈과 싸우며 올라야 하는 마지막 격전지가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족히 2백미터는 돼 보이는 비탈은 그 경사 또한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일행은 그나마 층계가 아닌 것을 위로 삼으며 역사 속의 격전지를 향해 비지땀을 흘리며 오르기 시작했다.
 드디어 고지에 올라선 참석자들은 백마고지가 그 유명세에 비해 너무나 단출하다고 입을 모았다. 전적비와 위령탑 그리고 자유의 종, 작은 유물전시관으로 이루어진 백마고지는 하지만, 철원의 그 어느 곳에서보다 가깝게 북녘땅을 볼 수 있는 곳이다.
 또한 백마고지전투의 역사와 그 당시의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는 유물전시관은 조그마한 공간이었지만 그날의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지를 한눈에 보여주고 있었다.
 군대 복역을 마친 후 장애를 가지게 된 남성 장애우들은 잠시 건강하던 시절의 군대생활을 이야기하며 추억에 젖었다.
 일행은 유물전시관을 지나 자유의 종이 북녘땅을 바라보고 있는 백마고지의 정상에 올랐다. 자갈이 깔려있는 길을 힘들게 휠체어로 오르고 있는 장애우들을 보는 다른 관광객들의 시선이 과히 기분 좋지는 않았지만, 일행은 드디어 남방 한계선과 그 뒤 산너머 보이는 북녘땅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에 도착했다.
 2백여미터를 오른 뒤 북쪽에서 불어오는 듯 시원하게 뺨을 때리는 바람을 맞으며 참석자들은 분단의 아픔을 조금은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던 철원에서의 일정을 각자 되새기는  듯 했다.
 마지막으로 진익태 씨는 "남방한계선은 이남으로 2킬로미터 이북으로 2킬로미터에 이르며 전체 4킬로미터의 지역이 50여년 동안 사람의 발이 닿지 않은 상태에서 생태계가 잘 보호되고 있습니다. 이곳을 생태계의 보고로서 잘 보존하여 후손에게 물려주기 위해 다같이 노력해야 합니다."라며 통일이 되었을 때 이 지역이 국제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강조했다.

 

 

북녘으로 세상보기를 떠날 날을 기다리며
 백마고지에서 바라본 북녘 하늘에 노을이 조금씩 깔리는 것을 보며 일행은 간단한 간식을 앞에 놓고 이 날의 만남과 여행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15명의 회원이 함께 활동하고 있는 강원도 척수장애우 모임 "해와 달"의 박 맹제 회장은 "장애우가 함께 호흡하고 대화할 수 있는 시간들이 무척 즐거웠습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장애우의 참여가 적었지만 가족적인 오붓함이 오히려 편안했습니다."라며 1회용 행사가 아닌 1년에 몇 회 정도 정기적으로 이런 자리가 마련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연립주택 3층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외출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박영희 씨도 "철원까지 올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너무나 소중한 기억이지만 이 지역이 간직한 모습들이 많은 것을 보고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 같아 더욱더 뜻 깊은 하루였습니다."라며 이 날의 여행을 도와준 자원활동자에게도 감사의 뜻을 표했다.
 또한 이 날 참석자들은 유일하게 부부가 함께 여행을 했던 정치우 씨와 김미선 씨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기분이 좋았다며 입을 모으고 두 사람의 영원한 행복을 기원하기도 했다.
 노을이 벌써 빨갛게 물들고 어스름 해가 지는 시각, 일행은 어두워지기 전에 아직은 우리가 넘을 수 없는 민통선을 다시 건너 분단의 남쪽으로 가기 위해 백마고지를 떠나야 했다. 

 철원에서의 하루를 마감하고 각자 강원도와 포천과 서울로 나뉘어 떠나야 하는 일행은 섭섭함을 감추지 못하며 다음번에 더 멋진 곳으로 함께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되기를 약속했다.
 함께걸음이 주최하고 조창영 변호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이사)가 후원한 제 2회 "장애우의 세상보기"는 분단이라는 역사적 아픔을 몸소 체험할 수 있는 전적지를 찾아 휴전선이 무너지기 전에는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다시 한번 되새기는 시간을 가졌다.
 언젠가는 가로막힌 벽이 너무 많아 멀게만 보이던 북녘땅 그 곳으로 세상보기를 떠날 날을 기대하며 참석자들은 아쉬운 인사를 나누고 이날의 짧은 여행을 마감했다.

 

 

글/ 김성연 기자

작성자김성연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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