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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세가 뭐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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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지면을 변함없이 애독해 주시는 여러분을 만나뵙게 되어서 무척 반갑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구요.
 저는 매년 베스트셀러 작가를 꿈꾸다가 꿈으로만 끝나고 있는, 왜 내 책은 안사남 하며 푸  념하고 있는 미남 소설라 안사남입니다.
 이 월간지의 기자님께 원고 청탁을 받고 일주일 넘게 작품 구상을 했지만 동해의 떠오르는 태양처럼 빛나는 소재가 떠오르지 않아서 죽을 맛이었습니다. 헤헤... 기자님 말씀이, 따뜻하고 재미있게 써달라고 하셨는데 춥고 재미없는 이야기만 머릿속에서 떠오르지 뭡니까.
 피 말리는 마감일은 다가오죠, 머릿속은 세월아 네월아 하죠, 머리카락이 남아나지 않겠더라구요. 그때 저한테 구세주가 나타날 줄이야... 저보다 나이가 세 살이 많은 막내 이모가 생각나더라구요. 아, 그래! 막내 이모 부부 이야기를 쓰자!
 여러분, 요즘같은 불황시기에 가격 파괴가 유행이지만, 전 오래 전부터 파괴라는걸 곧잘 해왔지요. 밖에서 이모와 함께 친구나 선배를 만날 때면 이모를 누나로 불렀거든요. 이모가 누나로 부르라고 하는데 조카가 어찌 어른의 말씀을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아, 그런데 제 대학선배가 이모의 마음을 사로잡아서 하루 아침에 "선배형"에서 "이모부"로 신붕상승을 하지 뭡니까.
 이모와 이모부는 제가 살고 있는 동네에서 조금 떨어진 아파트에서 살고 있거든요. 두 분은 잉꼬 부부처럼 행복한 가정을 꾸려오셨어요.
 하지만 노총각으로 늙어가고 있는 저를 신분상승시켜 주기는커녕 추락을 시켜준 대가를 톡톡히 받기 시작하더군요. 저하고 무려 25년의 나이 차이가 나는 녀석이 저를 "작가선생님"이라고 불러도 시원찮을 판인데 "혀엉!"이라고 부르니 이레 말이나 됩니가.
 이종사촌 동생인 영식이는 초등학교 2학년에 다니고 있는데, 길에서 저를 만나기만 하면 "형! 어디가!"하고 졸졸 따라오기 일쑤거든요.
 "너 학원 안가고 어디 가는거야, 임마"
 "형, 우리 전자오락이나 한판 때리자."
 "자식이... 너 학원 땡땡이친 거 너네 엄마한테 이른다."
 "아, 알았어. 학원에 가면 되잖아... 오늘 나 봤다는거 엄마한테 비밀이다, 형."
 이모와 이모부는 아들의 교육문제로 자주 말다툼을 하더군요. 우리나라 부모님의 자식에 대한 교육열이 세계 최고수준이라고는 하지만, 이모도 그에 못지 않았습니다. 학교가 파하면 네 군데나 되는 학원을 보내고 그것도 모자라서 잠들기까기 쇄뇌교육을 시킬 정도였으니까요.
 "공부를 안하면 나중에 어떻게 되는지 알아? 깡통 차, 깡통."
 이모는 영식이를 천재로 믿고 있더군요. 저도 영식이가 제 머리를 닮아서 천재성이 있다고 인정은 합니다. 하지만 이모는 서울대나 하버드대에 입학시키려면 초등학교때부터 플랜을 짜서 실천해야한다고 하면서 혹독하게 몰아세우는 것이었어요. 영식이가 코피를 흘리는데도 말입니다. 그러자 보다못한 이모부가 이모의 교육방식에 정면으로 반기를 들더군요.
 "당신 애를 잡자는 거야 뭐야! 내일부터 학원 보내지마!"
 "... 그깟 코피좀 난거가지고 왜 그래요. 남의 집 애들은 세 살 때부터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구요. 영식이는 늦어도 한참 늦었다구요."
 "난 영식이가 공부를 못해도 좋아. 건강한 정신으로 부모한테 효도하는 참교육을 시키고 싶다구. 마음껏 뛰어놀게 하란 말이야!"
 "당신 미쳤어요! 아니, 영식이가 나중에 깡통 들고 다니는 거렁뱅이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엄마, 아빠. 싸우지 마세요"
 TV앞에 힘없이 앉아있던 영식이가 울먹이면서 부모의 사움을 말리려고 하더군요.
 "넌 들어가서 공부나 해!"
 이모는 끝내 영식이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가서 책상 앞에 앉히더군요. 이모부는 담배를 뻑뻑 피며 소리를 지르더군요.
 "내일부터 학원 보내지마!"
 "흥. 누구맘대로요!"
 두분의 사움은 그후에도 계속 되었지요.
 그러던 어느날이었습니다. 학원을 다녀온 영식이가 겁에 질린 얼굴로 이모의 심장을 떨리게 만들더군요.
 "엄마, 이상한 아저씨가 내 뒤를 자꾸 따라와."
 "뭐라구!"
 "우리집이 부자냐고 물어보면서, 대공원으로 놀러가고 싶지 않냐고 해서 싫다고 하니까 그럼 내일까지 생각해보라고 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왔어. 엄마, 나 무서워. 그 아저씨 무섭게 생겼어."
 이모는 사색이 되더군요. 그러나 단호하게 말하더군요.
 "그 아저씨는 걱정하지 말고 학원이나 잘 다녀."
 다음날 이모는 경찰에 신고를 해서 형사가 영식이를 미행하게 하더군요. 그러나 유괴범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지요. 형사는 하루 더 영식이를 미행하고는 경찰서로 돌아가버리더군요.
 다시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영식이는 이모에게 무서운 아저씨가 다시 나타났다면서 공포에 떨더랍니다.
 형사가 다시 사흘동안 미행했지만 유괴범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지요. 경찰서로 돌아가기전에 형사는 이모와 이모부를 조용한 곳으로 불러서 허탈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동안의 수사내용을 알려주더랍니다.
 "영식이가 사실대로 고백을 하더군요. 학원에 다니기 싫어서 거짓말을 했다고 말입니다. 만화방에서 본 일본 저질 폭력만화를 보고 그대로 했다는군요. 엄마한테 비밀로 해달라고 울지 뭡니까. 하하하..."
 "네?! 일본 폭력 만화를 보고 말입니까?"
 이모부는 큰 충격을 받더군요.
 "머리에 피도 안마른 녀석이..."
 "...흑흑. 얼마나 학원을 다니기 싫었으면 그런 거짓말을 다했을까..."
 이모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후회를 하더랍니다.
 "내 이 녀석을!"
 이모부는 집으로 오자마자 영식이를 무릎 꿇게 하고 손을 들게 했습니다.
 "너 이 녀석, 나중에 뭐가 되려고 벌써부터 만화방이나 다니고, 내일부터 학원 빼먹으면 알아서해!"
 "아빠, 잘못했어요..."
 "똑바로 손들어!"
 "잘못했다고 하잖아요. 그만 손 내리고 방으로 들어가."
 영식이가 방으로 들어가자 다시 부부싸움이 시작되었지요.
 "도대체 저 녀석이 뭐가 되려고 그런 엄청난 거짓말을 하냔 말이야! 당신은 집에서 뭐하고 있었어. 내일부터 시간대별로 체크해. 나는 저 녀석 학원비 대려고 뼈가 빠지게 일하고 있는데 저질 만화나 봐! 에이..."
 "여보, 우리 영식이 학원 보내지 말고 마음껏 뛰어놀게 해요. 그동안 어린 것이 공부만 하느라고 너무 지친 것 같아요."
 "안돼!"
 "왜 소리는 지르고 난리에요!"
 "소리 안지르게 생겼어. 애 교육을 어떻게 시켰길래 이 지경이냔 말이야!"
 이모부와 이모는 일주일째 냉전중입니다. 영식이가 이모가 비디오가게에서 빌려온 만화영화를 보고 있을때였습니다. 
 "들어가서 공부 안해! 나중에 깡통 하고 싶어!"
 영식이는 이모부의 눈치를 살피면서 이모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것이었습니다.
 "조금 남았으니까 보게 놔둬요."
 "만화영화가 밥먹여 줘! 빨리 공부 안해!"
 아. 참교육을 지향하던 이모부가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군요. 세상이 너무 험악해서 그런 세계에 연약한 아들을 내놓기가 두려운가봅니다.
 오늘도 이모부는 사랑하는 아들에게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유일한 비법을 초라하게 말해주고 있더군요.
 "공부해!"


이승영.
제2회 김래성 추리문학상 수상, "미스코리아 살인사건", "위험한 내일", "죽음을 부르는펜 끝"

작성자이승영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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