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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두려움과 경외감의 대상입니다

[이영문의 영화읽기]‘케빈에 대하여(We Need To Talk About Kevin, 2011, 영국)’

본문

   
 

모든 여성에게는 출산과 양육에 대한 공포가 잠재되어 있습니다. 물론 남성들의 ‘아버지 되기’에 대한 불안도 있습니다만, 비교할 수 없는 일이지요. 아기의 시각에서 보자면, 오로지 이 세상에는 ‘엄마’와 그 엄마를 도와주는 ‘남자’가 있을 뿐입니다. 오늘 소개할 영화는 바로 그 아기와 엄마의 원초적 감정에 대한 섬세함과 섬뜩함이 배어 나오는 영화 ‘케빈에 대하여(We Need To Talk About Kevin, 2011, 영국)’입니다.

우선 제목부터 따지고 가겠습니다. ‘케빈에 대하여’로 번역한 것은 원작의 의도를 무시한 제목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알아야 할 것들은 단순히 ‘케빈’이라는 소년의 ‘악함’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한 ‘우리’는 영화 자체에서는 에바(틸다 스윈튼 분)와 남편 프랭클린(존 라일리 분)을 지칭합니다. 그러나 더 넓게 보자면, 사회 구성원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명칭입니다. 따라서 이 영화를 통해 우리는 사이코패스로 성장한 ‘케빈’, 어쩌면 ‘철수’ 라는 한 존재를 둘러싼 ‘우리’ 시대의 문제를 진지하게 ‘이야기’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이런 구조를 생각한다면, 원제목은 ‘케빈에 대해 우리가 이야기해야 할 것들’로 번역할 수 있습니다. 잠시 영화 속을 들여다봅시다.

영화는 대부분 에바(틸다 스윈튼 분)가 겪는 플래시백의 형태로 현재와 과거 그리고 대과거가 혼합된 채 진행됩니다. 그녀는 사랑에 빠져 있던 탐험가로서의 에바를 제외하고는 모두 무표정합니다. 케빈(이즈라 밀러 분)을 잉태한 이후, 출산, 양육과정까지도 에바는 행복하지 않습니다. 케빈이 다루기 어려운 아기이기도 했지만, 그녀는 엄마의 역할이 아직 익숙하지 않습니다. 어렵고 까다로운 케빈을 달래느라 어떤 날은 공사장 한복판에서 유모차를 내려놓습니다. 기계 소음 속에 케빈의 울음이 휩쓸려가고 에바는 안도의 숨을 쉽니다. 심지어는 자신을 향해 점차 반항하는 케빈에게 ‘네가 태어나기 전 나는 행복했어’라는 독설을 내뱉기도 합니다. 일과 양육을 동시에 해내야 하는 에바의 삶은 케빈의 이유 모를 반항으로 점점 힘들어져만 갑니다. 에바는 가족 중 유독 자신에게만 마음을 열지 않는 케빈과 가까워지기 위해 애쓰지만 그럴수록 그는 교묘한 방법으로 에바에게 고통을 줍니다. 이제 더는 결혼생활 유지가 힘들다고 판단한 날, 케빈은 에바의 마음에 지울 수 없는 악행을 저지르게 됩니다.

이 영화는 사이코패스로 자란 한 소년과 애정을 전하는 기술이 부족한 엄마 사이의 이분법적 구도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떤 인간을 ‘사이코패스’라고 정의하는 것은 한 인간이 저지른 사회악의 단면적 모습, 다시 말해 도덕심, 수치감 없이 보이는 범법자의 결과적인 모습을 사회적으로 묘사할 때 지칭하는 단어일 뿐입니다.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 없이 성장하고, 버려지는 것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을 나타내는 인간에 대한 내면평가가 부재합니다.

   
 

보통 ‘악함’이라는 것은 설명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부적절하게 도덕적 기준만이 제시된 채 설명되기 때문에 그 실체를 올바르게 보지 못한 상태로 규정하게 됩니다.

여기서 저는 ‘악함’을 두둔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간 내면의 두려움은 악의 전부가 아니며, 심지어 악이 가장 중요한 부분도 아닙니다. 다만 인간적인 것, 상처받기 쉽다는 것, 세상에 홀로 버려진다는 것, 죽을 운명이라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악의 기초일 뿐입니다.

악은 두려움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결국 ‘악하다는 것’은 타인들에게 악을 전가하여 그 체험에서 벗어나려는 시도입니다. 어린아이들의 처지에서 보면, 사랑받고 싶다는 것이고, 외롭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며, 세상에 홀로 버리지 말아 달라는 것이지요. 어릴 때 케빈의 대사가 이를 설명합니다. “익숙한 것과 좋아하는 것은 달라. 엄마는 내가 익숙한 것뿐이야.”

린 램지 감독은 영국 출신의 여성 감독입니다. 여성 특유의 치밀한 감정묘사는 섬뜩하리만치 사실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이 영화를 관통하는 붉은 빛깔은 피로 죄를 씻는다는 기독교 교리에 충실한 것처럼 보입니다. 남편을 만났던 스페인의 토마토 축제, 누군가가 끼얹은 에바집의 붉은 페인트가 그러합니다. 붉은색은 인간에게 트라우마를 상징합니다. 트라우마는 씻어내어야 할 죄입니다. 이웃의 따가운 눈총을 견디며 페인트를 씻어내는 에바의 고통이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을 압도합니다. 그러나 에바의 표정은 내면의 균열이 거의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무지에 대한 깨달음, 큰 잘못 뒤에 오는 해탈의 표정들이 읽힙니다. “왜 그랬니”라는 에바의 물음에 “그때는 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모르겠어”라고 답하는 케빈을 껴안는 에바의 등 뒤로 카메라가 멀어져갑니다. 2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처음 나오는 껴안음입니다(허그보다 훨씬 더 와 닿는 말이지요).

이 영화는 단순히 사이코패스가 어떻게 성장하는가를 보여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출산과 양육이라는 여성의 원초적 불안이 어떻게 인간 내면에 그려지는가를 보여줍니다. 어떤 도덕적 기준이 아닌 인간 본성의 모순이 공기 입자처럼 자유롭게 그려집니다. 결국, 근원이 있는, 근원을 알 수 있는 ‘엄마’라는 두려움이자 경외감이 아들 혹은 타인을 통해 전해지는 과정을 묘사한 영화입니다. 결코, 케빈이 저지르는 무분별한 행동에 압도당하지 않으시기를 빕니다.

 

작성자이영문 이음병원 정신과 자문의/중앙정신보건사업지원  dung7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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