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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지민의 테마에세이]

왼손잡이의 오른손

본문

국어사전을 뒤적여 본다. "왼손잡이." 단어의 뜻은 아주 간단하다. "왼손을 오른손보다 더 잘 쓰는 사람." 일명 "한손잡이"라고 불린단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왼손을 쓸 때마다 어머니한테 유다르게 혼났던 기억이 떠오른다. 왼손은 불결하고 재수 없는 것이라 했다. 그러한 영향 아래 성장하다 보니, 왼손으로 하려던 모든 것에 제재가 따르곤 했다. 연필을 잡거나 수저를 들 때도, 공을 던지거나 손 흔들며 인사를 나누는 것까지도 왼손은 무조건 금지의 대상이었다. 그래서 오른손을 쓰는 척하며, 혼자 있을 때만 왼손을 사용해야 하는 눈치의 나날이 계속됐었다.
방송 화면에 나오는 외국인들을 보면 절반 정도는 왼손잡이로 보였다. 스스로 아쉬운 마음밖에 없었으니까, 그런 모습만 눈에 띄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글씨 쓰기 연습을 시작할 무렵, 오른손에 연필을 쥔 상태로 말 그대로 글씨를 "그렸던" 상황이 생각난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왼손으로 식사하는 걸 반대하시는 어머니께 이젠 어쩔 수 없이 공개를 해야겠다. "나는 왼손잡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이상한 건, 살아오는 동안 경험했던 거의 대부분이 오른손잡이를 위한 환경과 틀이었다는 점이다. 가장 간단한 예는 카메라가 대표적일 것 같다. 촬영할 때 누르는 셔터는 항상 오른쪽에 위치한다. 누구든지 오른손 손가락으로 중심을 눌러야 한다. 운전할 때도 자동차 시동을 걸기 위해선 열쇠를 넣어야 한다. 그 또한 오른쪽에 있다.
아직까지도 나는 지하철 개찰구를 지나갈 때마다, 교통카드를 왼손에 들고 있다가 힘든 역동작 몸짓으로 통과를 한다. 정액권을 대거나 표를 넣는 곳은 항상 오른쪽에 있다. 다른 지역이나 외국의 상황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생활하는 공간 내에서는 모든 곳이 오른쪽으로 개찰해야 한다. 오늘도 나는 왼손에 든 교통카드를 오른쪽 센서에 갖다대느라고, 어깨에 멘 큰 가방을 이리저리 이동시키며 하루를 보냈다.
왼손잡이용 기타를 무척이나 진지하게 필요로 했던 기억도 떠오른다. 예전에 지미 핸드릭스라는 기타리스트가 시도했던 것처럼, 1번부터 6번까지의 줄을 반대 순서로 끼워 연습하다가 몇 대의 통기타를 망가뜨렸던 기억도 새롭다. 결국 기타는 오른손잡이용으로 사용하게 됐다. 음악 사업이 발달한 나라에선 왼손잡이용 기타가 아주 당연하게 판매된다고 했다. 아쉽게도 그런 사실은 나이가 든 이후에서야 알게 됐다.
컴퓨터의 마우스도 왼손으로 사용한다. 오른손으로 하면 자꾸 헛손질만 반복된다. 고치려 애써도 적응이 안 되기에 그냥 왼손으로 쓰게 됐다. 마우스의 좌우 버튼도 그 기능을 반대로 바꿔서 쓴다. 즉 모두가 왼쪽 클릭을 하고 있지만, 나는 그 기능을 오른쪽 클릭에 옮겨놓은 것이다.
테니스 라켓도, 공을 던지는 것도, 심지어 설거지 할 때 그릇을 닦는 손길도 왼손이 우선이다. 당연한 결과인지 알 순 없지만, 축구공을 찰 때 사용하는 발 역시 왼발이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오른발로 차는 법은 아예 몰랐고 시도해 본 적도 없었던 것 같다.
지금의 청소년과 어린이들은 왼손잡이의 비율이 꽤 높은 걸로 알고 있다. 부모의 생각이 바뀐 것이고, 사회적 통념이 재조정 된 까닭일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까지도 무슨 행동이나 작업을 할 때마다, 손을 선택하는 문제에 약간의 주저됨을 먼저 느끼게 된다. 왼손으로 그냥 할지, 아니면 오른손을 써야 할지가 상황마다 달라진다. 어르신 앞에서 식사할 때는 반드시 오른손으로 수저를 잡아야 한다는 불문율을 만드는 장치까지 필요해진 것이다.
외눈박이 나라에선 두 눈을 가진 이가 비정상이라 했다. 왼손을 써야 하는 사람은 오른손잡이를 위한 사회에선 일상의 여러 부분에서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만남의 자리에서 이런 얘기가 화제로 등장하면, 대부분의 질문은 똑같이 쏟아진다. 그냥 오른손으로 쓰면 되는 게 아니냐고.
하지만 그 문제는 조금 다른 경우일 듯하다. 오른손잡이인 분들한테 왼손 위주로 사용하라 한다면 얼마나 많은 불평이 이어지게 될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도 왼손잡이한테 오른손 사용자를 기준 삼으라고 강요하는 나라에 머물러 있음을 이젠 얘기해야 할 것 같다. 사회적인 인식만 바뀌면 쉽게 해결될 문제인데도, 그 간단한 일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니라는 걸 실감으로 느끼게 되는 것이다.
왼손잡이 투수와 좌타자가 없는 야구 경기는 얼마나 단순한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왼쪽 공격수가 없는 축구 경기는 어떤 모습이 될까. 모든 공격과 수비가 오른쪽에서만 진행되는 농구나 배구라면 얼마나 웃긴 장면뿐일까. 수요가 공급을 만든다는 말처럼, 운동 경기 분야에선 그나마 왼손잡이의 입지가 자리를 잡은 모양이다. 운동장은 넓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나 우리의 사회는 운동장보다 수천, 수만 배 넓은 곳이다. 세상에 대한 접촉이 많아질수록 이 사회에 존재하는 수많은 왼손잡이들을 보게 된다. 육체적인 왼손잡이가 아닌, 정신적인 왼손잡이로 차별을 받아야 하고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이 너무나 많음이 눈에 보인다. 오른손 위주의 사회라는 것은 결국 왼손이 장애의 대상임을 얘기하는 것이다. 남들과 똑같지 않다는 이유로, 비슷한 부류가 아님을 원인으로 삼으며 차별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갈수록 편 가르기와 흑백논리 같은 갈등의 골이 깊어져 가는 사회 현상을 보며, 이 땅에 살아가는 수많은 오른손잡이의 왼손들과 왼손잡이의 오른손들을 떠올리게 된다. 똑같이 생긴 손인데도 덜 중요하고 덜 필요하다는 이유로, 그 존재 가치를 무시당하는 현실이 반복적으로 목격된다.
사회를 나누는 이분법은 항상 소수의 기득권층과 절대다수의 일반계층을 구분 짓는 잣대로 사용된다. 그 이분법은 권력에서, 부와 명예에서, 거주 지역에서, 소유한 자동차와 생활 환경 모두에서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분리를 암암리에 요구한다. 방송 화면에서는 가진 자의 우월성을 은연중에 강조하고, 신문 지상에서는 가지지 못한 자의 비애가 슬라이드처럼 반복 재생된다.
"나"라는 인간은 오른손잡이 위주의 세상에서 어느 손의 역할인지를 헤아리는 버릇이 생겼다. 왼손잡이라는 또 다른 세계 속에서도 왼손으로 존재했는지, 오른손이었음을 모르고 있었는지를 역시 따져 보게 된다. 두 가지 경우는 모두 다 구분 지을 필요조차 없는 일인데도, 구분 짓기를 강요하는 틀 안에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그 생각을 덩달아 떠올리게 됐던 것이다.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논리 또한 마찬가지다. 보수 집단 내부에서 동거하는 진보나 개혁은 항상 오른손잡이의 왼손처럼 소수가 되고, 다수 중심의 논리 속에 자신의 존재를 힘겹게 알려야 한다. 모든 역사의 흐름이 왼손과 오른손의 역할 싸움이었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소수는 언제나 상대적으로 열악한 상황에서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며 싸웠던 게 바로 역사의 발전 단계가 아니었던가.
오른쪽만 바라보게 만드는 기득권의 틀이 깨져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세상에는 왼쪽도 있고 오른쪽도 있다. 가운데나 뒤도 있고 약간 왼쪽으로, 약간 오른쪽으로 기울어진 것도 존재한다. 모든 걸 한쪽으로만, 자기가 주장하는 방향으로만 일방통행하게 만드는 인위적 조종은 모두의 눈을 멀게 만드는 위험과 함정을 감추고 있다. 틀을 깨는 재조정이 필요한 이유와 당위성이 그것이다. 오른쪽은 수많은 방향 중에서 단지 일 부분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오른손만의 세상은 없다. 왼손만 우선시되는 세상도 존재하지 않는다. 얼굴과 키와 성격 모두가 제각각이듯이, 서로의 손과 발을 모두 다 아끼고 사랑해야 할 일이다. 억압으로 유지되는 질서는 항상 붕괴의 위험을 내포한다. 진정한 자유와 건강한 질서는 모든 것을 인정하고 나누며,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마음속에서 출발하는 법이다.
이젠 왼손잡이라고 대놓고 얘기를 해야겠다. 몇 해 전에 누군가도 노래를 부르지 않았던가. "나는 왼손잡이야!"라고. 오른손과 함께 성장하는 발전을 위해, 왼손잡이에서 벗어나 양손잡이가 될 미래를 지향해야겠다. 모든 건 상식적인 일이다. 모두 소중한 나의 육신인데 굳이 왼손만 쓸 필요는 없지 않은가.


채지민 (시인·소설가)

작성자채지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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