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휠체어로 떠나는 여행: 고궁에 가다, 경복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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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10월이 왔다. 2015년도 이제 겨우 석 달이 남았다. 새해 재야의 타종소리와 함께 끄적거렸던 한 해 목표는 잘 이루고 있는지 다시 한번 곱씹어 본다. 석 달 열흘이면 동굴 속에서 마늘을 먹던 곰도 사람이 된다는 옛이야기가 있다. 비록 열흘 모자란 석 달뿐이지만, 연초에 세워둔 목표 하나쯤은 거뜬히 해낼 수 있지 않을까? 문뜩 떠오른 생각에 필자는 빼곡히 한해 목표가 담긴 노트를 다시 꺼내 들었다. 노트에 적힌 목표를 하나 둘 읽다가 괜찮은 목표 하나를 발견했다. ‘고궁투어’. 필자는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우리 고유의 멋과 문화를 좋아하긴 하지만, 깊은 의미를 파악하는 건 조금 재미없는 공부 같다는 생각이 들어 고민이 많았었다. 그래서 올해는 고궁 투어를 하며 우리 문화를 조금 재미있게 이해해보고자 목표를 삼았었다. 그런데 그 목표를 벌써 2015년이 절반 이상 지난 지금에서야 시도해 본다. 그래도 추운 겨울이 오기 전, 이 가을을 바삐 보내기엔 꽤 괜찮지 않을까. 그러고 보니 고궁은 아련한 추억 속 ‘그때 그 시절의 나’와 지금의 ‘나’를 만날 수 있게 하는 묘한 장소이다. 필자는 옛 추억을 머금고 이번엔 조금 더 고궁을 가까이서 만나보고자 조금 이른 가을 경복궁을 방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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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8차선 넓은 광화문 도로를 건너 경복궁 입구에 서면, 근엄한 표정으로 흔들림 없이 서 있는 수문군을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와서 사진을 찍고 신기한듯 쳐다봐도, 시선 한번 흔들리지 않고 굳은 표정과 당당한 자세로 서 있는 모습이 듬직해 보이기까지 한다. 아마 한번쯤 경복궁에 가보았던 사람이거나, 사극을 즐겨 보는 시청자라면 ‘종사관’이라는 호칭에 익숙할 것이다. 이 종사관 역시 수문군 중 하나다.

그렇다면 수문군이 무엇인지 잠깐 알아보는 건 어떨까. 우선, 수문군은 크게 4가지로 나뉜다. 대종고 관리감독, 즉 총책임자라 할 수 있는 수문장(무관5품)이 있다. 수문장은 붉은색 복식을 입고 경복궁 입구 가장 중앙 그리고 앞쪽에 반듯하고 근엄한 자세로 서 있다. 수문군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이라도, 아마 그를 본다면 그가 가장 높은 계급이라는 것쯤은 쉽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드라마 속에서 애틋한 러브라인을 만들었던 종사관(무관7품)이 있다. 종사관은 수문장을 보좌하며 출문부를 관리하는 직급으로 붉은색과 푸른색이 섞인 복식을 착용하고 있다.

이어 초록색 복식을 한 대졸은 궁성문 파수병이며, 푸른색과 검은색이 섞인 복식을 한 전루군(기병)은 궁성내 시각전달(시간을 알리는 일을 맡은 군사)을 담당하고 있다. 이렇게 네 직책의 수문군이 경복궁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가장 먼저 맞이해준다. 그리고 하루 세 번 경복궁 수문장 교대식이 펼쳐지는데, 이 때 수문군들의 멋진 퍼포먼스를 보는 것도 색다른 관람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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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수문장 교대의식 일정 (경복궁 휴관인 화요일 제외)

•수문장 교대의식 : 10시, 13시, 15시 (1일 3회, 20분씩)

•광화문 파수의식 : 11시, 14시, 16시 (1일 3회, 20분씩)

•수문군 공개 훈련 : 12시 35분, 14시 35분 (15분씩)


근정전

수문군들의 멋진 모습을 본 다음 경복궁 안으로 들어서면 커다란 흥례문이 가장 먼저 나타난다. 도심에서 볼 수 없는 궁궐의 웅장함에 압도돼 사람들이 입을 벌리고 쳐다보기도 하고, 사진을 찍어대기도 한다. 돌 계단 몇 개를 올라야 지날 수 있는 흥례문 양 옆에는 휠체어나 유모차가 오르내릴 수 있는 경사로가 설치되어 있다. 흥례문에 들어서면 눈 앞에 보이는 근정전의 자태에 또 한번 감탄사를 자아내게 된다. 근정전. ‘아침에 정무를 보고 낮에는 사람을 만나고, 저녁에는 지시사항을 다듬고 밤에는 몸을 편안히 하니 이것이 임금의 부지런함이라’는 뜻을 지녔다. 근정전은 조선시대 국가 의식을 행하거나, 외국에서 온 사신들을 맞이하기 위한 장소로 쓰였으며, 세종대왕을 비롯하여 조선의 여러 왕들이 즉위를 했던 그 장소이기도 하다.

근정전은 그 자체로도 의미가 있지만, 근정전을 둘러싸고 있는 장식과 돌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를 파해치는 것도 재미가 있다. 닭, 쥐, 용, 말 등 근정적 월대(月臺: 건축물 앞쪽에 돌출되어 계단으로 이어진 편편한 대(臺))에 새겨진 동물 문양은 역사나 사회책에서 한번쯤 보았을 것이다. 반면, 이번 경복궁 투어에서 필자는 근정전에 얽힌 새로운 사실 하나를 알고 난 다음 감탄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것은 바로 근정전 박석에 얽힌 이야기다. 근정전 일원을 가득 매운 박석(돌판)은 휠체어가 다니기에 상당히 애로사항이 많았다. 그러나 박석에 담긴 깊은 뜻을 알고 난 다음 필자는 조금 불편해도, 조금 돌아가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근정전 박석은 12cm 정도로 만들어진 화강암 돌 판이다. 이 돌 판은 근정전 앞마당과 종묘 월대 그리고 왕의 진입로라 불리는 ‘참도’에 깔려 있다. 그 쓰임새가 현대사회의 보도블록쯤 되는 것인데, 옛 조선시대에는 이 박석이 아주 질 좋은 포장도로라 할 수 있겠다. 화강암은 파손 위험도가 낮고, 얼핏 얼기설기 아무렇게나 배치된 것 같지만 그 속에 과학적 원리와 선조들의 지혜가 담겨 있었다. 우선, 박석은 한 낮에 내리쬐는 강한 볕을 난반사하여 눈부심을 예방하고, 박석의 거친 표면이 비 오는 날 신하들의 가죽신이 미끄러지지 않게 방지하는 역할을 해준다고 한다. 마지막은, 얼기설기 설치된 박석 사이사이로 난 이음새가 장마철에는 비술을 흘려 보내어 물이 고이지 않게 하는 배수로 역할을 한다. 이 사실을 알고 난 다음 필자는 무릎을 탁 쳤다. 더불어, 그 동안 근정전 일원을 둘러보는 일이 고역이라고만 생각했던 스스로를 반성하게 됐다.

 

어처구니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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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궁의 정문부터 궁궐 지붕의 추녀마루 위에 줄지어진 토우를 ‘잡상’이라고 하며, 고궁이나 궁궐에만 세워지는 것이다. 주로 잡상은 ‘서유기’의 인물인 삼장법사, 손오공, 저팔계, 사오정과 토신등을 형상화 한 것으로 액운을 떨치기 위한 의미로 쓰인다.

이 잡상의 다른 이름이 바로 ‘어처구니’이다. 본디 어처구니(御妻拘泥)가 없다는 의미는 ‘어디에다 몸을 둘지 모른다’, ‘상상 밖에 엄청나게 큰 물건이나 사람’이라는 뜻인데, 궁궐을 지을 때 깜빡하고 잡상을 올리지 않으면 사람들이 기와장이에게 ‘어처구니가 없다’라고 해서 이어져 온다는 속설이 있다. 그만큼 경복궁을 비롯하여 우리 고궁을 가본다면 어처구니가 있는지 없는지 살펴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가 될 수 있다.

 

경회루

근정전 일원에서 왼쪽 문을 통해 밖으로 향하면 넒은 직사각형 연못에 한 척의 배처럼 떠있는 경회루를 볼 수 있다. 경회루(慶會樓)는 조선시대 국가 공식 연회장소라 할 수 있다.

지금은 연못 맞은편에서만 관람을 할 수 있지만, 매일 제한된 인원에게는 경회루 내부까지 공개하는 특별관람이 허용되고 있다. 관람일 1주 전부터 예약을 받아, 해설사와 함께 동행 입장을 해야 하는데 실제로 연못 맞은편에서 본 경회루의 모습과 특별 관람을 통해 경회루에서 바라본 경복궁의 모습은 천지차이다.

필자는 오래 전 경회루 특별관람을 하면서 어째서 이 장소가 ‘연회장’이었는지를 실감할 수 있었다. 특히 붉은색 노란색으로 나무들이 하나 둘 물들어가는 가을날, 경회루에서 바라보는 경복궁의 풍경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향원지와 향원정

‘향기가 멀리 간다’는 뜻의 향원. 향원지는 경복궁 후원에 있는 연못이며, 향원정은 향원지에 있는 육각지붕의 정자다. 연못에서 향원지까지 이어주는 목조다리는 ‘향기에 취한다’는 뜻의 취향교다. 1873년 고종 내외가 흥선대원군의 간섭에서부터 정치적인 자립을 하기 위해 건청궁을 궁궐 안 북쪽에 별도로 조성했고, 이때 건청궁을 창건하면서 그 자리에 향원지와 향원정을 새로 지었다. 사실 향원지는 연못 가득 연잎과 연꽃이 만발하는 여름이 가장 아름답다. 하지만 가을날 단풍과 어우러지는 향원지 주변 풍경도 익히 볼 수 없는 아름다움이다.

필자는 이번 경복궁 투어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향원지에서 보냈다. 잠시 향원지가 잘 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선, 이어폰을 귀에 꽂고 노래 몇 곡을 감상했다. 잔잔한 향원지 분위기가 아주 잘 어울리는 기타 선율이 담긴 노래였다. 햇볕이 내려 쬐고 있었지만 커다란 버드나무가 그늘이 되어주었고, 이따금씩 버드나무 잎 사이사이로 볕이 들락날락 거리는 것이 진정 힐링이 되는 장소였다.

사실 고궁하면 역사를 깊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역사를 깊이 이해할수록, 우리 문화재에 대해 더욱 깊이 있는 이해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전 세계에 유일무이한 우리 고유의 문화재와 아름다움을 소중히 여기고 관심을 가진다면, 어렵게만 느껴졌던 역사 공부도 쉽게 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여전히 고궁을 가는 것은 여행이라기보단 재미없는 공부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면 이건 어떨까? 복잡한 머리 속을 잠시 식혀줄 사색장소나 아니면 학창시절 가을 소풍 느낌을 되살리듯 추억여행을 떠나 본다고 생각하면 고궁을 가는 것이 결코 재미없는 일은 아닐 것이다.
 

경복궁 편의시설

•장애인 화장실 : 경회루 근처, 견춘문 근처, 태원전 근처

•주의사항 : 일부 경사로 경사가 가팔라 동행인 요망. 일부 경사로 단차 끝에 턱있음.

•전동휠체어로 다니기에 무방하나, 수동휠체어는 반드시 동행인 요망.

작성자홍서윤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 대표  gypsy729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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