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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함은 어떤 빛깔일까요?

오사카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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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부터 3일간 연휴, 4월 1일부터가 신년도인 일본은 졸업이며, 결산이 끝나 신학기, 새출발을 맞이하는 이 기간이 가장 느슨하면서도 과제가 없는 여유 있는 시간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아직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하다 싶지만 어디 봄맞이 기분이라도 내자고 교토 나들이에 나섰습니다. 오사카에서 교토까지는 약 1시간 반쯤 떨어진 곳으로, 서울에서 수원 정도라고 할까요. 요즘 일본은 외국 관광객이 많이 늘고 있어서 관광버스나 호텔을 잡기가 어렵다는 뉴스가 가끔 나오곤 하는데, 중국 관광객이 제일 많고 한국 관광객이 두 번째로 많다고 하더군요. 그 중 관광객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곳이 교토래요. 교토는 천 년간 수도였으며, 일본 문화의 중심이었던 곳이라 일본적인 것을 보려면 교토에 가야 한다고들 말하지만, 저도 교토에 간 건 몇 번 안 돼서 그리 잘 몰라요. 저는 휠체어를 타고 남편이 밀고, 교토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다 보면 시선이 초등학교 1학년 키 정도 높이라고 할까, 어른보다 낮은 위치에서 천천히 주위를 살피며 다니니까 색다른 발견을 하기도 하는데 여러분은 어떠세요?
 

전철역을 향해 가는데 앞에 여성 두 분이 아주 조용하게 걸어 가세요. 물론 항상 이야기를 하면서 걷는 건 아니지만, 바로 뒤에서 보고 있자니 어깨나 팔, 고개는 많이 움직이는데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는 거예요. 우리의 속도가 좀 더 빨라져 그 분들의 옆을 지나 앞으로 갈 때 슬쩍 보게 됐죠, 수화를 나누고 있는 걸요. [아, 수화를 하고 있었구나. 당연히 소리가 안 들릴 수밖에….] 일상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자기 중심의 대화의 이미지, 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어도 두 분은 아주 즐겁게 수다를 떨고 있었던 건데 말이에요.
집 근처 역에서 전철을 타고, 교바시라는 곳에서 한번 전철을 갈아타야 해요. 시간은 좀 걸리지만 그리 복잡하지 않은 편이죠. 집 근처 역은 자주 이용하니까 편의시설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입구에서 역무원이 도와주지 않아도 되냐고 물었지만 남편이 혼자 할 수 있다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바로 승강장으로 올라와 전철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혼자 다닐 때는 역무원에게 경사로를 설치해 달라고 부탁하지만 시간이 걸리기도 하고 오늘은 혼자가 아니니까요. 휴일이어서인지 사람들이 꽤 많더라고요. 기다리고 있자니 꽤 체격이 좋은 젊은 청년이 많은 사람들 사이를 파고 들어 제 휠체어 쪽으로 걸어와서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뭐라는지 잘 몰랐어요. 네? 하고 다시 물으니, [전철 탈 때 도움이 필요 없습니까?]라는 말이었어요. 내가 머뭇거리니까 남편이 괜찮다고 대답했어요. 그랬더니 다시 [전철 타기 전에 미리 역무원한테 말하면 경사로를 가지고 옵니다. 내가 가서 말해 주겠습니다.] 남편이 전에도 해봐서 괜찮다고 대답하니까, [어디에서 내립니까?] [교바시에요] [그럼, 교바시에서 내릴 때 역무원이 경사로를 가지고 마중 나오도록 연락해 달라고 했습니까?] [내릴 때도 혼자 할 수 있으니까 연락하지 않았어요. 고마워요] [다음부터 전철 탈 때는 미리미리 경사로를 설치 해달라고 도움을 청하는 게 좋습니다.] 그는 [모리노미아역 내립니다]라고 말하더니 옆 칸 쪽으로 가더라고요. 그 청년 말투나 분위기, 태도로 보아선 아마 지적장애가 있는 것 같았어요. 역의 편의시설이나 역무원의 서비스에 대해서 아주 잘 공부한 것 같고, 저 같은 휠체어 장애인을 보았을 때 서비스를 알려줘야겠다고 잘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 듬직한 뒷모습을 보면서 말투나 분위기가 어색하지만 누구보다도 앞장 서서 불편한 사람을 도와줘야겠다고 나선 그 다정한 목소리에 내가 왜 주춤거렸는지 싶더라고요. 시작과 말끝의 억양이 똑같은 어눌한 말투라서 어색했던 걸까요? 친절을 베푸는 사람에 대해 같은 선입견, 나보다 나은 형편에 있는 사람이라는 근거 없는 선입견에 묻혀 있기에 최선을 다해 되풀이해준 한 마디 한 마디를 그저 형식적으로만 대꾸하고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하게 되더군요.
 

전철 타는 곳에는 우선석(한국의 노약자석)이라는 표시가 돼 있어 그 표시가 있는 곳에서 타면 휠체어공간이 있어서 휠체어 움직이기에 여유가 있답니다. 그렇게 전철을 타고, 교토의 중심가 기온시죠 역에 내리자, 연휴라서 그런지 사람들이 북적북적, 그 중에는 기모노 차림의 아가씨들도 꽤 눈에 띄었어요. 나가기 전, 역 화장실에 들렀는데 입구 밖까지 사람들 줄이 이어져 있더라고요. 장애인용 화장실도 안에 있으니까 기다릴 수밖에 없구나 싶었는데, 입구 바로 앞에 서 있던 아가씨가 저를 보더니 [저, 장애인화장실도 지금 사용 중이니까 조금만 기다리세요. 사람이 나오면 알려드릴게요.]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알려주는 그 아가씨, 난생 처음 보는 아가씨의 그 친절한 한 마디가 정말 고맙더라고요. 나올 때도 손 씻는 곳에서 나를 위해 자리를 비켜주던 그 아가씨, 정말 친절함이 몸에 배어있는 것 같았어요.
 

교토 기온거리, 일본의 김치라고 할 수 있는 츠케모노, 전통다과인 와가시, 기모노 가게 등 구경거리도 많고, 유명한 절도 많이 있는데 그 중 저녁 때 라이트를 켜서 개방한다는 지은원(知恩院)이라는 절을 구경하고 귀갓길에 올랐습니다. 갈 때와 같은 노선으로 전철을 갈아타고 오는 길. 휠체어를 밀고 오르락내리락했던 남편도 피곤해 보였지만 저도 꽤 고단하더라고요. 저녁 무렵부터 비가 좀 내렸는데 신경에 장애가 있는 저는 비 오는 날씨가 제일 아프거든요. 조용한 전철 안, 저도 모르게 [아야, 아파!]라는 작은 신음이 새어 나왔어요. 무심결이었는데 옆에 서 계셨던 중년 남성이 제 표정이랑 상태에 마음이 쓰였는지 [괜찮아요?] 물으시는 거예요. [어디서 내립니까? 도와주지 않아도 되겠어요?] [네, 괜찮아요. 동행도 있어요.] 제가 옆 좌석에 앉아있는 남편을 가리키며 대답하니 그 분이 알았다는 듯이 남편 쪽을 쳐다보더군요. 그러더니 잠시 후 제가 아닌 남편 쪽을 보면서  [저런 통증에는 침이 좋다고 하더군요]라고 한 마디 건네시더라고요. 그 이상의 대화는 없었지만 그 분이 건네신 그 말 한 마디로부터 아픈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마음을 써주는 [인지상정]이라는 요란하지 않은 정을 느낄 수 있었답니다.
 

교토, 아직 따뜻한 봄빛을 느끼기는 이르지만, 오고 가는 길에 접한 사람들로부터 어떤 색깔이라 칭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빛깔의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작성자변미양 지체장애인, 재일교포 남편과 오사카에 거주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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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걸음 2020년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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