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로테스크한 신체와 냉소적 현실의 위무 손창섭의 <비 오는 날> > 문화


그로테스크한 신체와 냉소적 현실의 위무 손창섭의 <비 오는 날>

장애와 문학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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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창섭의 <비 오는 날>이 『문예』에 발표된 1953년에 흥미로운 기사가 몇 확인된다. 우선 1953년 3월 6일자 『동아일보』 「휴지통」란은 소집을 피하려는 남자들의 다양한 노력(?)을 고발한다. 기사는 ‘불구자’와 나이 어린 아이들을 돈으로 사서 소집에 출두시키거나 스스로 신체를 훼손하는 것으로 소집을 피하려는 갖가지 행태를 고발하는 것이었는데, 기사에는 장애인과 장애를 ‘쓸모없는 몸’으로 인식하고 있음이 내재돼 있다. 그러나 전쟁에 나가 훼손된 신체는 ‘보통이 아닌 몸’1)이 돼 영웅과 명예의 옷을 여러 겹 걸치게 되는데 이는 비슷한 시기, 적지 않은 신문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1953년 1월 31일자 『경향신문』에는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잃었으면서 상이군인으로 위장해 첩까지 두고 살았던 인물을 지탄하는 기사가 났고 같은 해 2월 9일에는 ‘傷軍에 自進 請婚한
處女’라는 머릿기사로 주거지와 실명까지 밝혀가며 상이군인에게 “일생을 받이겠다는 갸륵한 처녀”를 기사화 했다.
 

이 밖에도 비슷한 시기 많은 기사가 전쟁에 나가서 상해를 입은 이들에 대한 존경과 절절한 애도를 보인다. 그러면서 기사는 전쟁으로 인해 훼손된 신체를 숭고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또 대중이 그렇게 인식하도록 계몽한다. 그러나 이는 앞서 소집에 응하는 비장애인들의 태도를 꼬집은 『동아일보』 기사를 통해서 보았을 때에 실패한 듯 보인다. 소집을 피하기 위해서 장애인과 나이 어린 아이의 신체를 매수하는 일은 장애인의 몸을 전쟁에 도움이 되지 않는, 쓸모없는 동시에 돈을 주고 살 수 있는 ‘것’으로 인식한데서 실천할 수 있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전쟁이라는 ‘사건’은 그 전후 시기 전체를 아울러 혼돈과 혼란을 양산한다. 전쟁을 겪으며, 또 전쟁 후에 맞닥트리는 죽음과 질병, 훼손된 신체와 인권 유린 등의 문제는 오랜 시간 형성된 가치 체계와 인식을 세차게 뒤흔들면서 특정 시기를 특별한 공간으로 창조하고 나름의 성격을 구성한다. 여기에는 앞서 여러 기사를 통해 알 수 있는, 전후 장애인에 대한 이중적 인식의 태도 또한 포함돼 있다.
 

많은 것이 파괴된 전후 현실에서 사람들이 느꼈을 암울함은 비단 사회학적 통계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전쟁을 경험한 수많은 개인을 관찰하는 문학을 통해서 가능할 것인데, 소설은 생활과 실존의 문제를 정밀하게 들여다봄으로써 구체적으로 현실을 구현한다. 그리고 특히 손창섭 소설은 장애 인물을 통해서 전후 현실을 심층적으로 인식하고 있어서 흥미롭다. 몸의 육체성이 “구체적인 사회, 문화적인 담론이 새겨진 공간임과 동시에 물질성 자체”2)라고 했을 때 장애 인물을 통한 전후 현실을 이해할 수 있고 또, 그 역으로 전후 현실이 장애와 장애인을 어떻게 인식했는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손창섭 소설의 대다수 인물은 ‘병적’이거나 장애를 가지고 있는 등의 특징을 지니고 전후 불합리한 현실을 드러낸다. <비 오는 날>의 주요 등장인물인 ‘동옥(東玉)’ 또한 장애를 가진 신체를 통해서 이를 증명하고 있으며 동옥의 오빠 ‘동욱(東旭)’은 생존을 위협하는 피폐한 현실에서 주체성을 잃어버린 개인으로, 남매를 연민의 마음으로 바라보는 ‘원구(元求)’는 문제 해결을 위한 행위자라고 평가하기에는 미심쩍은, 소시민적 방관자로 전후의 불합리와 부조리한 현실을 드러내고 있다.

줄거리 - - - - - - - - - - - - - - - - - -
원구(元求)는 비가 내리는 날이면 어두운 방과 쓰러져가는 목조 건물에 사는 동욱(東旭)과 동옥(東玉) 남매 생각에 마음이 무겁다. 원구는 어느날 거리에서 우연하게 동욱을 만나 저녁을 같이 하며 애주가다운 동욱의 모습(동욱은 밥보다 술을 먹고 싶다며 흘러내리는 한 방울도 아까워서 술 굽을 핥았다) 에 기독교 가정에서 성장하고, 다년간 찬양대를 지도해온 동욱의 과거를 생각한다. 동욱은 미군부대를 다니며 초상화 주문을 받고 동생 동옥이 초상화를 그리는 것으로 생활하는데 영문학을 전공한 것이 보탬이 된다는 자조 섞인 웃음을 짓는다. 원구는 동욱의 웃음에 어떤 운명적인 중압을 느끼고 감당할 수 없이 마음이 무거워졌다.
 

동욱은 1・4 후퇴 당시 동옥을 데리고 나왔는데 요즈음은 짐스러워 후회될 때가 있다고 하면서도 술에 취해서는 “동옥(東玉)이년이 정말 가엾어, 암만 생각해도 그 총기며 인물이 아까워”라면서 “내가 자네람 주저 없이 동옥이와 결혼할 테야, 암 장담하고 말구”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린다. 헤어질 무렵에 동욱은 원구의 어깨에 두 손을 얹고 자기는 꼭 목사가 되겠노라고, 그것이 자신의 길인 것 같다며 새 학기에는 신학교에 들어가겠다고 말한다.
 

첫 만남 뒤 원구가 처음으로 동욱을 찾아간 것은 긴 장마가 시작된 어느 날이었다. 동욱이 사는 집은 왜정 때 무슨 요양원으로 사용됐다는 낡은 목조 건물로 비를 막기 위해 가마니때기를 들였다. 원구는 세 번의 부름 만에야 얼굴을 내민 동옥이 몇 번의 고개짓 뒤 인사도 없이 거적 뒤로 사라진 뒤, 돌아가는 길에서야 찬거리를 사 들고 오는 동욱을 만나 집에 들어섰다. 그때도 동옥은 힐끔 쳐다볼 뿐이었는데 원구는 물받이 양동이 물이 쏟아졌을 때에야 “어린애 손목같이 가늘고 짧은” 동옥의 다리를 본다. 동옥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원구를 노려봤으나 원구는 당황한 모습을 감추려는 듯 물 고인 방바닥을 절벅거렸다. 그 뒤로 원구는 비가 와서 가게를 벌일 수 없는 날이면 자주 동욱이네 집을 찾았다.동옥의 태도는 원구가 찾아가는 횟수에 따라 현저히 부드러워졌다. 두 번째 찾아갔을 때에는 얼굴을 붉혔고, 세 번째 찾아갔을 때에는 웃으며 가끔씩 말추렴도 들었다. 그러나 동욱은 동옥이 근래 들어 그림값을 반씩 나누지 않고, 그림 크기에 따라 선금을 받고 그림을 그려준다면서 측은하기도 하지만 얼굴만 대하면 자꾸 화가 치민다고 했다. 그리고 어머니의 부탁으로 동옥을 데리고 와서 자신의 처지가 나빠졌다고 한탄한다.
 

며칠 뒤 동욱은 원구를 찾아와서 요즘 초상화 주문 일이 어려워져서 폐업 했다는 소식과 국민병 수첩까지 분실해 거리를 다니기도 어려우며 재교부 신청도 복잡해서 아예 포기했노라고 한다. 동욱은 통역장교 모집에 지원하려고 하지만 수속이 복잡하고 번거로워 단념했다면서 가끔 자신의 집에 들러 동옥을 위로해 달라고 당부한다.
 

며칠 뒤 딴 볼일로 동래까지 갔던 원구는 동욱 집에 들러 옆방 노파에게 돈을 꿔주고 받지 못 해 앓아누운 동옥을 만난다. 원구는 당장 방을 비워줘야 하는 상황에 “악에 바쳐” 동옥을 나무라는 동욱과 달리 동옥이가 동욱이 잠든 틈에 몰래 수면제 같은 것을 먹고 죽지나 않을까 싶어 불안하다. 원구는 방을 비어야한다면 자신도 구해보겠노라며 집을 나온다.
 

그 뒤로 원구도 한 달이나 장마로 장사를 하지 못하다가 남매의 일이 떠올라 점심때가 돼서 찾아갔다. 그러나 원구의 부름에 나온 사람은 사십 전후의 사나이였다. 그는 남매 모두의 소식을 모른다며 동욱이 나간 지는 열흘이나 됐고 동옥은 이삼 일 전에 나갔다고 했다. 사나이는 돌아서는 원구에게 동옥이 부탁한 편지가 있는데 간수를 잘못해서 아이들이 찢어 없앴노라면서 아무 말 않고 멍하니 선 원구를 무안한 눈길로 바라본다. 그리고 동욱은 군대에 끌려갔을 것이고 동옥은 “병신이긴 하지만 얼굴이 밴밴하니 어디 가 몸을 판들 굶어 죽기야 하겠느냐고” 한다. 원구는 정신이 번쩍 들어 “이놈 네가 동옥을 팔아먹었구나”하고 분노하지만 표현하지 못하고 말없이 발길을 돌렸다. 원구는 정작 그 말이 까마득히 먼 곳에서 자기를 향하고 날아오는 것 같은 착각에 오한을 느끼며 앓고 난 사람모양 힘없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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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의 소설 내용을 살펴보면서 우선적으로 소설의 전반적 분위기가 대단히 우울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긴 장마 속에서 진행되는 서사는 눅진하게 느껴지는데, 시공간적 배경뿐만 아니라 등장인물의 면모 또한 그러하기 때문이다. 우선 원구는 소설 처음에서 동욱과 동옥 남매의 생활을 ‘비에 젖어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또한 다르지 않다. 원구는 동옥에게 애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신의 감정에 확신이 없으며, 때문에 동옥이 사라진 후에도 망연자실하다.

동욱의 집을 계속적으로 방문하게 되면서도 그 까닭을 자신도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원구는 “어느 얄궂은 힘에 조종당하듯이” 동욱의 집을 찾게 되었는데 침침한 방 안에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듣고 싶어서인지, 동옥의 가늘고 짧은 한쪽 다리가 지닌 슬픔에 중독된 탓인지, 찾아갈 적마다 조금씩 달라지는 동옥의 태도에 매력을 발견한 때문인지, 그 까닭을 알 수는 없었다”고 한다. 그는 “찾아갈 때마다 달라지는 동옥의 태도가 인사불성에 빠졌던 환자가 제정신으로 돌아온 때처럼 고마웠다”면서도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읽어내지 못하고 있다. 아니 의도적으로 회피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원구는 세 번이나 동옥과의 결혼을 권유한 동욱에게 분명한 답변을 하지 않았고, 불어난 비 때문에 돌아가지 못하고 동욱의 집에서 잠을 잤을 때에는 동욱에게서 또 다른 말이 나올까 긴장했다.
 

동욱은 어떠한가? 그는 원구와 함께 대학 공부까지 한 청년이지만 지금은 장애를 가진 동생이 그려주는 초상화 주문을 받아가며 살고 있다. 동욱은 자신의 처지를 자조하고 있는듯한데 영문과 공부를 한 것이 미군부대에서 초상화 주문을 받을 때에 요긴하게 쓰인다며 웃었던 일 뿐만 아니라 술을 마시며 ‘교회에 나가겠다’, ‘꼭 목사가 되겠다’, ‘신학교에 입학하겠다’고 다짐하는 일 등은 이를 뒷받침한다.

이러한 동욱의 태도는 ‘닝글닝글’한 웃음과 옷차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동욱은 낡은 외투에 바지를 걸쳐 입고 어울리지 않게 중간이 잘록한데다 코숭이만 주먹만큼 뭉툭한, ‘채플린’이나 신을 것 같은 ‘괴이한 구두’를 신고 있었다. 이는 교회에 나가냐는 원구의 질문에 동옥이 가끔 교회에 나가나 그럴 때는 “견딜 수 없는 절망감에 숨이 막힐 것 같다”고 대답한 것과는 상반되는 모습이다. 그 까닭은 쉽게 찾을 수 있다.

동욱은 의지와 기대가 실현될 수 없는 현실에 절망하면서 자신과 현실에 대한 냉소적 태도를 갖게 됐을 것이다. 즉, 동욱은 무엇 하나 예상 가능한 것이 없는 불규칙적이고 불합리한 전후 현실을 살아가는 방식으로 자조와 냉소를 선택한 것이다. 이는 동욱이 때를 지나 식사를 준비하며 “자신들에게는 삼시의 구별이 없다. 언제든 배고프면 밥을 끓여 먹고, 밥 생각이 없는 날은 종일이라도 굶고 지낸다”고 말한 데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동욱에게 동옥은 자조하는 삶일망정 주체를 잃지 않을 수 있는 대상이었다. 즉, 동욱은 스스로를 동옥과의 관계에서 월등한 지위를 획득한, 동옥을 대상으로 위치시키는 주체자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는 동옥이 ‘얼굴과 총기가 아까운’ ‘병신’으로 1・4 후퇴 때 어머니가 “다 버리구 가더래두” 데리고 가라던 동생이기 때문이고, 자연스레 자신의 책임과 통제 안에 있다고 생각했기에 가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림값을 받아오면 순순히 둘로 나누던 동옥이 이제 그림 크기에 따라 돈을 먼저 받고 그리겠다고 선언하고부터는 동욱의 확신에 균열이 발생한다. 동욱은 이후 불을 켜고 끄는 것에서부터 물건을 주고받는 일에까지 화를 내면서 동옥에게 욕을 퍼붓는다. 이는 돈을 모아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겠다는 동옥의 의지가 동욱에게는 주체성 말살을 시도하는 또 하나의 공포와 위협으로 인식된 때문이다. 동욱은 주체를 의식한 동옥의 그로테스크한 신체가 이전과는 ‘다르게’ 움직이는 모습이 두려워지기 시작한 것이다.

동욱은 자신의 의지가 무참히 짓밟히는 현실 속에서 그나마 주체적으로 행위할 수 있었던 누이와의 생활조차 흔들리고 있어서 두려웠을 것이다. 동욱은 동옥의 재주를 인정하고 또, 협력자로서 동옥과 생존해가면서도 장애를 가진 동생에 대한 우월적 의식을 이미 내재하고 있었기에 동옥이 드러낸 주체적 생활의 의지가 더욱 불편했을 것이다. 이러한 동욱의 의식은 전후 현실이 장애인을 ‘명예로운 용사’로 관념화하는동시에 ‘쓸모없는 노동력’으로 폄하했던 모순적 인식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럼 이즈음에서 소설의 주요 인물인 동옥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주지하듯 동옥은 한 쪽 발에 장애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정상적인 신체에 대한 거부와 두려움,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다. 덩달아 자신의 장애에 극도로 예민해 모든 사회적 활동을 차단하고 오빠인 동욱에 기대 존재했다. 그러나 원구가 자신을 “업신여기지 않고 자연스레 대해준다” 생각하면서는 그가 자주 찾아와 주기를 바라고 초상화가 팔리지 않고부터는 초조와 불안으로 쩔쩔맸다.
 

동옥은 이전과는 달리 스스로 삶을 꾸려가기로 결심한 듯 보인다. 물론 여기에는 원구의 등장과 방문이 중요한 계기가 됐다. 그러나 동옥은 초상화를 그리고 번 돈을 주인집 할머니에게 빌려주고 이자를 받으려 했지만 떼이고 만다. 앓아누운 그녀에게 쏟아지는 동욱의 비난은 일관되게 장애를 가지고서는 혼자의 힘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이다. 동옥에게 비로소 발아한 주체적 인식의 새싹이 맞닥트린 현실에 의해 무참히 뽑혀버렸을 것이란 짐작은 쉽다. 오누이는 동옥이 원하는대로, 이전처럼 사람 없는 ‘외딴집’을 구하려 하기 때문이다.
 

사회는 몸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덩달아 몸 역시 현실과 교섭하면서 발생하는 갖가지 흔적을 담지한다. 동옥의 훼손된 육체는 전후 현실에서 겪는 소외와 절망을 온전하게 담아내는 동시에 비록 실패했으나 적극적으로 현실에 응전했던 주체의 의지를 드러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동옥을 통해서 전후 현실을 감당해내는 대다수 사람들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이다. 장애를 가진 몸은 장애와 장애를 입은 신체를 멸시하는 속에서 스스로 소외되고 무기력해진 전후 현실을 보여줌으로써 장애와 비장애를 넘어서 ‘생존’한다는 것의 슬픔과 고독을 읽어내도록 하고 있다.

 

작성자글. 차희정 명지전문대 문예창작과 외래교수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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