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의 주변화-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 문화


장애인의 주변화-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장애와 문학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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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인문학적 장애학자 중의 한 사람인 레너드 데이비스(Lennard J. Davis)가 그의 저서 『정상 강요』(Enforcing Normalcy, 1995)에서 인종 차별, 성 차별, 사회 계급 차별에 저항하고 전도를 시도하는 바로 그 작가들에 의해 장애를 지닌 사람들이 주변화 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사회적 소수 집단의 소외와 차별을 부각시킴으로써 그 소수 집단에 대한 이해와 수용을 강조하려는 의도로 쓰인 글이 또 다른 소수 집단인 장애인을 주변화 시키는 상황을 자주 접하게 된다. 그 대표적인 예 중의 하나로 들 수 있는 것이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다.

이제 한국 문학의 정점에 확고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1975년부터 1978년 사이에 발표한 12편의 단편 소설을 묶어 출판된 연작 소설이다. 성장 우선주의 정책으로 인해 시작된 급격한 경제 팽창, 그리고 그 때문에 시작된 열악한 노동 환경과 극심한 빈부 격차의 어둠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던 시대였다고 할 수 있는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이 연작 소설에 대한 합의된 평가는, 예술적인 방법으로 자본주의를 인간을 착취의 대상으로만 간주하고 사회적 정의를 파괴하는 경제적 분배제도로 비판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정규희라는 이름의 학자는 「조세희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나타난 소외양상 연구」(2012)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이 연작 소설이 “인간 소외 양상을 통해 사회구조적 모순이 인간성을 어떻게 파괴시킬 수 있는가에 대한 문학적 성찰을 효과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문학의 사회성과 예술성의 조화를 이뤘다”고 평가했다. 이 같은 합의된 평가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 같은 지배적인 읽기 방식이 억압받고 소외된 경제적 소수 집단의 왜곡된 삶을 재현해내고 있는 이 연작 소설이 장애인을 주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점이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는 핵심 인물이라 할 수 있는 성장 장애 인물, 연작 소설의 처음과 끝에 등장하는 척추 장애 인물과 하반신 마비 장애 인물, 그리고 시각 장애 인물 등과 같이 적어도 네 가지 유형의 장애를 지닌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의 재현 과정에서 세 가지 문제점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는 장애를 지닌 인물들이 오로지 은유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도구로만 이용되고 있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장애 인물들이 대상화(objectification) 되고 있다는 것이며, 마지막으로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장애 인물들이 철저하게 주변화 되고 있다는 점이다.

첫 번째 장애 인물이 은유 목적으로만 사용되고 있다는 문제는 「클라인씨의 병」이란 제목이 붙은 열 번째 단편에서 화자인 영수의 입을 통해 언급 되고 있는 시각장애인들의 재현에서 확실하게 볼 수 있다. 이 단편은 은강이란 대기업이 자리 잡고 있는 마을에 이상할 정도로 시각장애인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로 시작한다. 이어서 시각장애인 중에 한쪽 눈의 시력만 상실한 인물이 땔감을 마련하기 위해 부두에 나가 수입 원목의 껍질을 벗겨 오는 모습을 제시한다. 이 뜬금없어 보이는 시각장애인 이야기의 주된 의도는 성장장애인의 아들로서 노동 운동을 하고 있는 영수라는 이름의 인물과 그의 의식화에 영향을 끼친 지섭이라는 이름의 인물 사이에 이뤄지는 대화에서 파악할 수 있다.

 [영수]가 말했다. / “... 여기에 와서도 모르는 게 많아 노동자 교회에 가 두 어른에게 배웠어요. 대학 부설 기관 교육도 그래서 받은 거예요.” / “그래서 뭘 얻었니?” / “눈을 떴어요.” / “너는 처음부터 장님이 아니었어!” 지섭이 큰소리로 말했다. “현장 안에서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깥에 나가서 뭘 배워? 네가 오히려 이야기해줘야 할 사람들 앞에 가서 눈을 떴다구? 장님이 되어버린 거지, 장님이. 그리고, 행동을 못하게 스스로를 묶어 버렸어. 너의 무지가 너를 묶어버린 거야.”

 시각장애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이 대화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이용된 도구로써 무지를 (시각) 장애와 동일시하고 있는 것이다. 두 번째 문제인 장애인의 대상화는 척추 장애 인물과 하반신 마비 장애 인물의 재현에서 확인할 수 있다. 대상화란, 간략하게 말하자면, 개인을 개성이나 존엄성을 무시하고 그저 특정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물건이나 상품처럼 취급하는 것을 말한다. 대상화는 특히 페미니즘에서 여성의 성적 대상화와 연관돼 자주 논의돼 온 개념으로써, 여성을 성적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물건이나 상품으로 취급하는 것을 성적 대상화라 한다. 장애인의 대상화의 대표적인 예로는 프릭 쇼(freak show)를 들 수 있다. 로즈메리 갈런드 톰슨(Rosemarie Garland Thomson)이 『보통이 아닌 몸』(Extraordinary Bodies, 1997)에서 제공한 설명에 의하면 프릭 쇼는 소위 ‘비정상’이라고 규정된 장애 형상들을 보여 줌으로써, 구경꾼들의 호기심과 두려움을 충족시키는 동시에 자신들은 ‘정상’이라는 우월감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기능을 갖고 있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서 프릭 쇼를 연상케 하는 대표적인 장면으로는 첫 단편인 『뫼비우스의 띠』에서 척추 장애 인물과 하반신 마비 장애 인물이 함께 그들을 속인 부동산 업자를 살해하는 장면과 마지막 단편인 『에필로그』에서 이 두 장애인이 도망 간 사장을 찾아내 죽이겠다고 나서는 장면을 들 수 있다. 『에필로그』의 장면을 예로 들자면 다음과 같이 묘사돼 있다.

고속도로로 휘어져 올라가는 길은 가팔랐다. 경사가 심한 부분에 이르러 앉은뱅이는 모로 앉아 올라갔다. 앞서 올라가던 꼽추가 남폿불을 놓고 내려왔다. 앉은뱅이를 들어 안아다 불 앞에 내려놓고 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꼬부라진 등뼈가 숨을 따라 크게 움직이는 것을 앉은뱅이는 보았다 ... 그 일을 반복해 고속도로에 올라 간 두 친구는 아스팔트 가에 누워 쉬었다. 꼽추는 모로 눕고 앉은뱅이는 잘 때처럼 오금이 붙은 두 다리를 들었다.

장애 인물과 관련해 이런 장면을 그려낸 작가의 의도를 짐작하기란 쉽지 않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이런 장면에서 독자는 마치 프릭 쇼를 보고 있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된다는 것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장애 인물들이 대상화돼 독자의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구경거리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은유로의 압축 문제와 대상화 문제를 동시에 확인할 수 있는 인물이 바로 이 연작 소설의 제목에서 ‘난장이’로 불리고 있는 성장 장애 인물이다. 우선 이 연작 소설에서 ‘난장이’는 불평등한 경제 구조 하에서 착취와 억압 때문에 작아진 소외 계층을 신체적 장애를 이용해 은유적으로 나타내고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논의된 사항이라 더 이상의 논의가 필요해 보이지 않는다. 이 성장 장애 인물과 관련된 대상화는 우선 『칼날』이라는 제목이 붙은 단편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여기서 ‘난장이’는 신애라는 이름의 여성 인물의 집 수도 꼭지를 바꿔 달다가 동네 경쟁 업자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당한다.

사나이는 난장이를 두 손으로 번쩍 들어 던졌다. 난장이는 바싹 마른 나무등걸처럼 마당 가운데로 나가떨어졌다. 죽은 것 같았다. 그런데 죽지 않고 꿈틀거렸다. 사나이는 한 마리의 벌레를 다루듯 난장이를 다루었다. 그는 난장이의 배 위에 발을 얹었다 ... 난장이의 얼굴은 피범벅이 되었다 ... 사나이는 이제 난장이의 옆구리를 걷어찼고, 난장이는 두 번 몸을 굴리더니 자벌레처럼 움츠러들었다.

그 설정 의도가 무엇이었든 간에 이런 장면이 독자에게 강한 호기심을 갖게 하면서 동시에 기이하고 끔찍하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일종의 구경거리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은 부정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 같은 대상화는 열한 번째 단편인 『내 그물로 오는 가시고기』에서 한 인물이 성장 장애인의 부인을 보면서 “키가 작지 않은 그 여자가 난장이와 어떤 성생활을 했을까”하고 상상하는 장면에서 더욱 확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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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하자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은 장애 인물들을 은유의 수단으로써만 사용하면서 대상화를 통해 구경거리로 만들고 있다. 이 같은 과정을 통해 제시되는 장애 인물들은 모두가 이름이 아예 주어지지 않거나 이름이 있어도 사용되지 않고 그 대신 육체적 손상을 비하하는 의미가 담긴 말로 지칭된다. 성장 장애 인물의 경우 ‘노예가 아니다’라는 가슴 아픈 사연이 담긴 김불이라는 이름이 딱 한번 사용된 경우를 제외하고는 시종 일관 ‘난장이’로 불리고, 그의 가족은 ‘난장이의 부인’, ‘난장이의 큰아들’, ‘난장이의 딸’ 로 불린다. 척추 장애 인물, 하반신 마비 장애 인물, 시각 장애 인물도 처음부터 끝까지 ‘꼽추’, ‘앉은뱅이’, ‘장님’, ‘애꾸’로 지칭된다. 이처럼 개인의 이름 대신 신체적 손상을 비하하는 말로 지칭된다는 사실은 처음부터 이 장애 인물들이 개성을 지닌 존재로서 살아가는 복잡한 삶과 생각과 감정은 관심 밖의 일이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힘 있는 자와 힘없는 자의 구분이 없는 경제적 정의가 실천되는 사회가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궁극적으로 바라는사회라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다. 그런데 이 연작 소설은 이미 비장애인들보다 더 아래에, 사회의 가장 밑에 위치한 삶을 살면서 그 무게에 눌려 비틀거리고 있는 것으로 제시된 장애 인물들이 그 같은 이상적인 사회가 실현된 후에도 여전히 고립되고 소외된 삶을 이어가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게 만들고 있다. 여덟 번째 단편인 『은강 노동 가족의 생계비』에서 성장장애인의 딸로 등장하는 영희가 공장 굴뚝에서 뛰어 내려 자살한 아버지를 떠올리면서 아버지가 성장장애인들만 모여 사는 독일의 릴리푸트 같은 마을에 사셨어야 했다고 말한다.

“난장이들에게 릴리푸트처럼 안전한 곳은 없다. 집과 가구는 물론이고, 일상생활 용품의 크기가 난장이들에게 맞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곳에는 난장이의 생활을 위협하는 어떤 종류의 억압, 공포, 불공평, 폭력도 없다.”

릴리프트 같은 공동체를 (성장) 장애인을 위한 이상향으로 제시하는 이 같은 생각의 기저에는 장애인은 비장애인과 분리돼 살아야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생각의 연장선 위에 있는 것이 장애인 강제 격리 수용 시설 같은 것이고, 이런 맥락에서 그 같은 생각은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 평등 사회 구축에 대해 고민했다는 소설에서 장애인의 행복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장애인의 분리를 강조하는 듯한 생각을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컬하기만 하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재현해내는 장애인은 결국 은유적 목적을 실현하는 도구,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구경거리, 그리고 비장애인의 사회로부터의 소외를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이다.

경제적 약자의 주변화를 문제화한 소설이 장애인을 주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간에 한 소수 집단을 ‘위한다’는 글이 다른 소수 집단인 장애인을 그런 ‘위함’의 범주로부터 배제해버리는 일은 철저한 감시와 비판과 도전을 필요로 한다.

마지막으로 지난 일 년 동안 <장애와 한국 소설>이란 주제 하에 소중한 글을 써주신 방귀희 교수, 김미선 작가, 차희정 교수, 우충완 박사와 심영의 박사에게 감사드린다. 소중한 지면을 기꺼이 내준 <함께걸음>에도 감사드린다. 필자의 희망은 이 같은 노력이 자극이 돼 장애인에 의한 문학 활동과 비장애인에 의해 생산된 장애인이 등장하는 문학에 대한 보다 큰 관심을 이끌어내는 것이다. 이제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듯이, 문학을 비롯한 다양한 문화적 산물들은 그것들이 속한 사회와 그리고 그것들을 생산해낸 사람들이 갖고 있는 장애에 대한 생각과 태도와 긴밀히 연결돼 있으면서 그것들에 접하게 되는 사람들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한다. 따라서 장애를 그저 다름의 하나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에는 반드시 장애(인)의 문학적 재현에 대한 분석, 재평가, 도전이 포함돼야만 하는 것이다

 

이 글에는 필자가 2016년 7월 4일부터 8월 14일 사이에 매주 일요일마다 KBS 제3방송 <함께하는 세상 만들기> 프로그램에서 방송한 내용의 일부가 포함돼 있음을 밝혀둔다

작성자글. 손홍일/대구대학교 영어영문학과 교수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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