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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죽은 경제학자들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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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야기:
제목 : 죽은 경제학자들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New Ideas from Dead Economists)
저자: 토드 부크홀츠  / 번역: 이승환       출판사 : 김영사

서울 사당동에 살고 있던 나. 우연히 분당을 다녀오는 길에 성남 비행장 근처 주유소에 휘발유 값이 900원 대로 적힌 간판을 봤다. 당시 집 근처 주유소는 휘발유 1리터에 1100원대를 넘나들던 시기였는데, 무려 리터에 200원이나 저렴한 것이 아닌가. 벅차게 뛰는 가슴으로 약 3개월 가량을 그곳에서 주유 했다. 그 때마다 저렴한 기름 값과 친절한 서비스, 2봉지씩 집어주는 휴지에 감격하곤 했는데, 문제는 기름 값으로 지출되는 월 비용이 동네 주유소를 이용할 때 보다 증가한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리터당 200원 가까이 저렴한 휘발유를 주유했는데 왜 기름값 지출은 더 증가하는 것일까. 심각한 고민에 휩싸이게 되었다. 어렴풋이나마 200원 저렴한 휘발유와 그 휘발유를 얻기 위해 내가 태워버린 휘발유, 그리고 금전적으로 계산하지 못한 시간과 체력의 비용이 갖는 함수관계들이 떠오를 무렵 나는 새삼 지난 시절을 돌아보게 되었다.
대학 4년 동안 유일하게 ‘F’를 받은 과목이 있었다. 바로 ‘경제학 입문’이다. 1학년 1학기, 월요일 오전 1~2교시. 한자로 가득한 교재와 재미없는 강사를 바라보면서 일찌감치 예견한 일이었지만 막상 성적표에 찍혀 나온 ‘화약냄새 가시지 않은 권총’은 나를 무척이나 무능하게 느껴지게 한 충격이었다.
두 번의 사례에서 느꼈던 나의 자아 정체성은 한마디로 ‘비경제적인 인간×이었다. 청빈과 검소라는 유교적 가치에 길들여진 나는 돈을 버는 일에도, 모으는 일에도, 쓰는 일에도 별 관심이 없었다. 선택한 전공도 경제적인 인간들이 비생산적이라 매도하는 ‘장애인 복지’ 분야였으니 안으로 보나 밖으로 보나 틀림없는 비경제적인 인간이었다.
‘생산의 적(?) 복지’로 마감되었지만, DJ정부가 ‘생산적 복지’를 주창하며 영국 블레어 정부의 ‘제3의 길’을 흉내내던 시기. 내가 끌어안고 있던 고민은 다름 아닌 ‘경제성장 우선 논리’에 대항 할 수 있는 ‘분배정책’의 내공을 쌓는 것이었다. 복지가 결코 비생산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통합된 경제 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투자하는 일이 결코 소모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할 반론을 준비하고 싶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라는 성어를 떠올리며, 당시 나를 향해 빵점 짜리 총알을 날린 경제학 교과서를 다시 집어들었을 때, 나는 어쩌면 내가 영원히 경제를 모르고 죽는 편이 행복할 것 같다는 절망에 빠지게 되었다. 그 때 절망의 수렁에서 나를 건져준 책이 바로 이 책.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이야기」다.
마치 ‘Dead poet society(죽은 시인들의 사회)’라는 영화제목을 연상시킨 이 책은, 부제로 붙어 있듯 ‘현대 경제 사상의 이해를 위한 입문서’이다. 경제사상개론도 아닌, 경제사상 입문서도 아닌 ‘경제사상 이해를 위한 입문서’라니. 그야말로 만만한 제목이 아닐 수 없다.
하버드 대학 학생들이 뽑은 ‘최우수 강의상’ 수상자라는 저자의 약력답게, 쉽고 재미있게 이해 할 수 있도록 풀어 놓은 책의 내용과 예시들은, 경제학과 담을 쌓으려던 나에게조차도 성남에서 넣었던 900원 짜리 휘발유 보다 더한 감동과 기쁨을 주고 있다.
경제학 교과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난해한 미·적분 그래프는 찾아 볼 수 없다. 대신 저자는 아담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때로는 사람을 패기도 하고, 머리를 쓰다듬어 칭찬하기도 한다는 익살스러운 설명에서 출발하여 고전주의 경제학을 추종한 레이거노믹스를 설명하기도 하고, 보이지 않는 손의 배반으로 대공황에 빠진 미국을 구출했던 뉴딜정책의 근간인 케인즈 이론도 쉽게 풀어서 설명하고 있다. 가끔씩 등장하는 수학 공식을 대충 뛰어넘고 읽더라도 전체의 흐름을 이해하는데 큰 무리는 없다.
도서 판촉 사원도 아닌 내가 아직까지 ‘장애우’는 커녕 ‘장애인’도 못써서 ‘장애자’라고 번역해 놓은 책을 추천하는 이유를 구태여 더 이상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이제 글을 읽는 여러분이 궁금하게 생각하는 독서의 생산성, 즉 이 책을 다 읽은 내가 ‘지극히 경제적인 인간으로 변화해 부자가 되었다거나’, 혹은 ‘앞서 목표로 삼았던 백전백승(百戰百勝)"을 이뤄내서 성장우선 주의를 강조하는 자본가 집단을 통쾌하게 두들겨 팰 ‘소득재분배’의 논리를 개발해 내었는가’에 대해 응답을 해야 할 것 같다.
불행히도 나는 여전히 경제적 궁핍을 면하고자 몇 푼의 고료라도 챙겨보기 위해 이 글을 쓰고 있으며, 장애수당 인상을 결코 생산적인 분야로 인정 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기획예산처의 관료들을 상대로 힘겨운 입씨름만을 벌이고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이 책은 이러한 독자의 염려도 놓치지 않고 있다. 저자의 다음 진술만으로도 거금 만원 돈을 들여 책을 구입한 독자들은 충분히 위로를 받을 것이다.

「흔히 세상사람들은 경제학자들에게 "직접 보여주든가, 입을 닥치든가" 하라고 다그친다. "당신들이 정말 돈에 대해 그다지도 잘 안다면 왜 부자가 되지 못하는 거요?" 하고 그들은 묻는다. 이 척도에 따라 경제학자들의 서열을 매긴다면 케인스는 리카도와 수위를 다툴 것이다. 창피스럽지만 대다수 경제학자들은 꼴찌를 놓고 우왕좌왕하고 있을 게다.」

글 남세현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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