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귀희 연작소설] 결혼 환타지 > 문화


[방귀희 연작소설] 결혼 환타지

본문

  순지가 결혼을 한다는 소식은 그녀를 아는 사람들에게는 큰 화젯거리가 되었다. 그녀가 목발을 사용해야 하는 장애인이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순지는 콧대가 세기로 유명했기에 도대체 순지의 그 높은 콧대를 누가 꺾어 놓았느냐가 몹시 궁금해서였다.
  사람들은 순지가 결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순지는 남자들한테 전혀 관심이 없는 것처럼 행동했고 결혼 얘기만 나오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켰으니 말이다.
  순지는 깜찍하게도 연애하는 기미까지 감쪽같이 속여 결혼 발표를 하기 전까지는 진짜 아무도 눈치 채지 못했다. 혹시라도 잘못될까봐 그랬는지는 몰라도 순지는 지나치리만큼 위장을 했다.
  결혼 발표에 놀라는 사람들에게 순지는 눈을 아래로 깔며 "내가 결혼한다는 게 뭘 그렇게 이상하다고 난리야. 시집 못 갈 줄 알았나 보지"라며 잘난 체를 했다.
  순지의 그 잘난 척이 극에 달할 때는 바로 신랑에 대해 설명할 때였다.
  "물론 건강한 사람이야. 가정 번듯하고 공부도 할 만큼 했고 직장도 나무랄 데 없어 그런데 참 이상하다. 고정 관념을 못 버리니. 장애 여성이 결혼할 수 있는 상대가 여자보다 못할 것이라는 생각을 왜들 그렇게 끈질기게 하는지 모르겠네."
  순지의 항의가 맞는 말이었지만 실제로 장애를 가진 여성들은 동등한 결혼 조건으로 상대를 선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순지가 시집을 아주 잘 간다고 놀라워했다.
  하지만 일반적인 조건으로 판단을 한다면 잘 가는 것도 못 가는 것도 아닌 똔똔이었다. 아니 관습상 남자가 더 많은 것을 갖추어야 하니까 그것은 밑지는 결혼이었는데도 사람들은 단지 그녀가 목발 사용자라는 그 이유하나로 관습을 무시하고 순지가 땡을 잡은 것이라고 판정을 내렸다.
  순지의 동창들을 비롯해서 모임 친구들, 순지와 친하게 지내지도 않았던 아이들까지 순지의 결혼식에는 참여할 생각을 가지고 언제 어디에서 결혼식을 올리는지 묻곤 했다.
  이렇게 순지의 결혼 발표가 주위를 발칵 뒤집어 놓았는데도 소식이 깡통인 곳이 있었다. 바로 장애인 서클이었다. 순지는 장애인 서클활동을 누구 못지 않게 열심히 했건만 그 친구들에게는 결혼 소식을 극비에 붙였다. 누구보다도 기뻐해 줄 친구들이었지만 알리지 않았다. 그 친구들이 결혼식장에 나타나는 것이 싫어서였다. 하지만 순지는 가장 가깝게 지내는 미정이 한테는 고백을 했다. 미정이도 목발을 짚어야하는데 순지와 미정 이는 어렸을 때부터 친구여서 아주 친했다. 또 순지와 미정 이는 여러 가지 면에서 비슷한 점이 많아 사람들이 순지와 미정이를 혼돈할 정도였다. 그 단짝이었다. 순지는 결혼 날짜를 잡았을 때 미정 이한테 제일 미안했다.
  "어떻게 하다 보니까 그렇게 됐어. 너만 알고 있어."
  순지의 말에 미정 이는 충격을 받을 정도로 놀랐지만 표시를 내지 않았다. 담담히 그러면서도 진정으로 축하하는 몸짓으로 "정말 잘 됐다. 축하해" 라고 간단히 자신의 뜻을 밝혔다. 어쩜 그렇게 감쪽같이 속일 수 있느냐든지, 왜 진작 말해주지 않았느냐든지 하는 투정은 부리지 않았다. 사실 미정 이로서는 큰 배신을 당한 것이었다. 다른 일은 미주알고주알 귀찮을 정도로 다 말해놓고 진짜 중요한 얘기는 빼놓은 것이 너무나 괘씸했다. 하지만 미정 이는 전혀 내색은 하지 않았다. 미정이 성격이 원래 그랬다.
  순지와 미정이가 비슷하다고 하는 것은 고들의 장애와 가정환경, 학력 등의 외부적인 조건이 같다는 것뿐이지 성격이나 성향이 같다는 것은 아니었다. 내면적인 면은 전혀 달랐다. 순지는 외향적인데 비해 미정 이는 내성적이었고, 순지는 자기주장이 뚜렷한 이기주의인 반면 미정 이는 자기보다는 남을 먼저 생각하는 희생적인 성격이었다. 그래서 순지는 폭발형이고 미정 이는 내숭형이라고 주위에서 둘을 비교하곤 했었다.
  순지는 그동안 있었던 일을 성의껏 미정 이에게 들려주었다. "사실 나도 그동안 많이 힘들었어. 그쪽 부모님들이 반대를 하셨거든."
  그쪽 부모님들이 반대를 했다는 말에 미정 이는 어느덧 섭섭한 마음이 녹아 내렸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자기한테조차 말을 못했을까 싶어 어느덧 순지를 이해하고 감싸주고 있었다.
  "가봐야겠다. 약혼식 드레스 오늘 찾는 날이거든."
  "약혼식?"
  "응. 간단히 하기로 했어. 이번 토요일에."
  순지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렸다. 약혼식 얘기로 미정 이는 또 멍해졌다. 언제가 약혼식이라고 정식으로 얘기를 해주었더라면 이런 기분은 들지 않았을 텐데 싶어 또 한 차례 섭섭한 바람이 불어왔지만 미정 이는 곧 가족끼리 하는 약혼식이니까 그렇겠지 하고 이해를 했다.
  순지가 약혼식을 한다고 한 날이 되자 미정이가 오히려 마음이 안정이 안 되었다 약혼식 시간이 가까워지자 더 안절부절해져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
  "순지 오늘 약혼한다면서?"
  어떻게 알았는지 미정 엄마가 미정에게 말을 걸었을 패 미정은 공연히 심술을 부렸다. "그건 어떻게 알았어?"
  "네가 그랬잖니."
  "그거 하나는 기억 잘 하네. 맨날 잊어버리는 사람이."
  딸의 마음을 알아차렸는지 미정엄마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미정은 후회를 했다. "응"이라고 간단히 대답을 했더라면 좋았을 덴데 공연히 화를 냈다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미정은 며칠 후 순지를 만났다. 약혼을 했다고 해서 그런지 한결 성숙해 보였다. 미정이 먼저 인사를 했다.
  "잘 치뤘니 ? "
  순지는 약혼식 광경을 너무나 소상히 전해주어 비디오로 본 것 같았다. 그런 설명으로도 부족했는지 순지는 "참 사진 있어" 하면서 핸드백에서 사진을 꺼냈다.
  여느 약혼식 사진과 똑같았다. 그런데 한 무더기의 여자들이 신부를 에워싸고 있는 사건이 미정의 눈에 불을 붙였다. 순지의 대학동창들이었다. 그러니까 가족들 외에도 초대받은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순지는 성한 친구들만을 불렀던 것이다. 순지의 허영이 장애인 친구의 참석을 거부하게 했던 것이다.
  순지는 미정이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는 줄 알고 계속 신이 나서 약혼식 얘기를 떠들어댔지만 미정 이는 그 얘기를 들을 마음이 싹 사라졌다. 하지만 미정 이는 그 마음을 드러내지 못하고 순지 얘기를 듣고 있었다. 그러면서 미정 이는 순지가 결혼식에 초대를 해도 가지 않겠다고 결심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서클 친구 경주한테 전화가 왔다. 경주는 다짜고짜 "얘, 미정아 순지 결혼한다면서?" 라고 다그쳤다. 순지가 너만 알고 있으라고 했기 때문에 미정 이는 가슴속으로 외치고 있었는데 그런 질문을 받고 보니 당황이 되어 "어떻게 알았니?"라고 되물었다.
  "어떻게 알긴. 본인이 얘기하더라. 아니 근데 넌 어째 그렇게 시치미를 떼고 있었니?"
  화살이 오히려 미정 이에게 꽂혔다. 미정이도 화가 나서 "순지가 얘기하지 말라고 하더라구" 라고 폭로해 버렸다. 그동안 비밀을 지켜주느라고 공연히 자기만 못된 사람이 된 것 같아 찝찝했다. 드디어 순지 결혼식 날이 되었다. 순지는 서클 친구가운데 장애가 성하고 자기와 수준이 맞는 아이들 서너 명에게만 초청장을 보냈다. 물론 미정이도 초대를 받았다.
  미정은 불참을 결정했지만 불참 이유를 찾지 못해 애태우고 있었다. 납득할 만한 이유가 생겨 떳떳하게 불참을 하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못난 짓이 될 미정은 열심히 이유를 찾아보았지만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나중에야 어찌되었건 가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막상 결혼식 날이 되자 그럴 수가 없었다. 공연히 못난 사람이 될 필요는 없겠지 싶어 미정은 결혼식장으로 향하였다. 그것도 아주 일찌감치 떠났다.
  순지는 신부 대기실에 정말 예쁘고 아름다운 신부가 되어 앉아있었다. 역시 성한 친구들이 순지의 시중을 들고 있었다. 이제 미정은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참 예쁘다. 화장이 잘 됐다."
  순지 대신 시중을 들던 친구 하나가 "그럼요 얼마나 비싼 화장인데" 라고 했다. 미정은 신부를 보러 들어오는 사람들에 치어 밀려나야 했다. 식장 입구에 신랑이 있었다. 그 사람이 신랑이라는 것도 약혼식 사진을 보았기 때문에 안 것이지 미리 소개를 받지도 못했다.
  식장으로 들어선 순간 미정은 기기 질려 버렸다. 식장 안은 운동장 같았고 둥근 테이블에 앉아 음식을 먹으며 결혼식을 지켜보도록 되어 있었다. 한마디로 파티였다. 그리고 신부와 신랑이 함께 입장하여 테이블 의자에 앉아 있다가 주례와 함께 앞으로 나가 결혼식을 올리는 조금은 색다른 방법이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순지가 목발을 버린 것이었다. 미정은 순간 신부가 순지가 아닌가 착각을 할 정도였다. 순지는 평소에는 보조기를 안하고 목발만 짚고 다녔는데 보조기를 하면 옆의 사람을 의지해 목발 없이 몇 발자국은 걸을 수 있었다. 바로 그 원리로 순지는 신랑을 의지해 그렇게 멀쩡하게 걷고 있는 것이었다.  결혼식은 순지의 장애가 완전히 감춰진 상태에서 치러졌다. 미정은 그것이 고맙기 그지 없었다. 자신의 장애도 그렇게 치밀하게 감추어야 했으니 장애인 친구들을 감춘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했다. 미정은 순지를 만나 인사를 하고 오려고 했지만 있는 순지를 만나러 갈 용기도 없었고 순지도 원치 않을 것 같아 그냥 발길을 돌렸다. 그런데 건물 입구에서 서클 친구인 경주와 태환이를 만났다.
  "어머 어디에 있었길래 못 봤니?"
  미정이가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들도 반가워했다.
  "커피나 한 잔 하자." 태환이 그래도 남자랍시고 먼저 제안했다. 미정은 귀가 번쩍 뜨일 정도로 반가웠다. 사실은 무척 쓸쓸해 누구하고라도 얘기를 하고 싶었다. 안으로 들어가 커피숍을 찾았다. 평소 같으면 비싸서 피하던 호텔 커피였지만 그들 누구도 비싸다는 말없이 선택했다.
  주로 순지 얘기였다. 경주와 태환도 순지에 대해 섭섭한 마음을 갖고 잇었다.
  "난 순지가 좀 더 떳떳했으면 좋았을 것 같아. 왜 꼭 그렇게 숨겨야 하니 ?"  하지만 경주는 태환과 생각이 달랐다.
  "난 순지가 현명했다고 봐. 목발 없이도 걸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게 좋지 뭘그래."
  미정도 경주와 생각이 같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 말은 장애인 친구들을 굳이 봉쇄할 필요가 있었느냐는 거야. 우리 자신이 그러면서. 일반 사람들이 장애인이 결혼식장에 나타나는 거 싫어한다고 항의할 수 있느냐구."
  태환은 흥분이 되어 팔을 뻗치다가 하마터면 물 컵을 엎지를 뻔했다. 태환 말도 맞기에 두 여자는 반박할 말이 없었다. 몇 시간이나 얘기를 했지만 아무런 결론도 내리지 못했다.
  순지 결혼 파문은 끊이질 않았다. 뒤늦게 안 서클 친구들 중에는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들은 순지가 집들이를 하면 그때 가서 톡톡히 해대야겠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순지는 서클 친구들은 집들이에도 초대하지 않았다.
  순지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했다. 아이들 몇 명만 모여도 순지 얘기를 했다. 그런데 그 얘기 가운데에는 별 해괴망측한 것이 많았다. 남자가 순지보다 나이가 어리다는 설, 남자가 대학교를 제대로 못 나왔다는 설, 남자 네가 한때는 부자였지만 지금은 쫄딱 망해 순지네 덕을 보고 있다는 설, 남자 직장이 나일론이라는 설 등 아주 다양했다. 하지만 미정은 그것이 모두 그야말로 "설"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아니라고 설명해 주고 싶지가 않았다. 그래서 미정은 침묵했다.
  얼마 후 순지가 미정을 초대했다. 둘이 살기에는 크다 싶은 아파트였다. 살림도 신혼살림 같지 않게 꽉 차 있었다.
  "미안해. 진작 불렀어야 하는데 경황이 없었어."
  "알어. 근데 일 하는 아줌마 어디 갔니?"
  손님을 대접하기 위해 열심히 움직이고 있는 순지가 너무 힘들어 보여 물었다.
  "둘이 사는데 일하는 사람은 무슨. 일주일에 두 번 파출부만 써."
  "그럼 식사 준비를 네가 다 한단 말야?"
  "그럼."
  "신랑이 많이 도와주나 보지?"
  "그렇지도 않아. 마누라가 부실해서 다른 남편들과 달리 자질구레한 일까지 해야 한다고 생각할까 봐 일부러 시키지 않아."
  미정은 순지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만약 자기였어도 그랬을 것이라고 순지에게 동의했다.
  "애들 내 욕 많이 하지 ?"
  순지가 불쑥 물었다.
  "아- 아니 욕은."
  "나두 다 알어. 하지만 어쩔 수가 없었어. 결혼식 때 초대를 못해 집에서라도 한 잘 차려야지 했었는데 동네 사람들 입방아에 오르기 싫어서 관뒀어. 관심 좀 꺼줬으면 좋으련만. 어찌나 관심들이 많은지 내가 코만 훌쩍거려도 무슨 일 있었냐는 듯이 왜들 그러는지 알 수가 없어."
  순지의 짧은 말에서 순지가 겪고 있는 고통을 충분히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미정은 "신경 쓰지 말어" 라고 위로했다.
  "내가 모임 있을 때 한번 나가서 근사한 점심 산다고 그래."
  그 말을 전하면 누가 밥 못 먹어서 기갈이 들었는 줄 아느냐고 펄펄 뛸 것이 분명했기에 미정은 전하지 않기로 했다.
  "네 신랑 일찍 들어오니?"
  "요즘은 좀 바뻐. "
  "남편이 바쁘면 여자는 편하대매. 저녁 먹고 들어오니까."
  미정은 애써 순지에게 맞는 이야기를 찾아냈다.
  "아이구 우리 신랑은 떼거지로 몰고와요. 내가 뒤치다꺼리하기 골 빠진다."
  "너 용타. 어떻게 하니?"
  "그럼 해야지 어떡해. 온 사람을 내쫓을 수도 없고."
  "친정에 자주 가니?"
  "친정 갈 시간이 어딨니? 일요일만 되면 시댁에 가야 하는데 죽을 맛이야. 시댁(가면 더 일을 못하겠더라구. 시어머니가 차려주는 밥 먹으니 얼마나 괴롭겠니? 우리시어머니 글쎄 뭐라는 줄 아니? 그 목발인가 뭔가 하는 것은 실내에도 짚어야 하냐 이럴 정도야. 그래도 시어머니는 괜찮아. 생일이다 뭐다 해서 집안친척들이 다 모이면 더 괴로워. 글쎄 시고모께서 뭐래시는 줄 아니? 결혼식 때는 멀쩡하던 아이가 왜 그러냐고 그러면서 얘 이런 거 알고 결혼시켰느냐고 우리 집에서 속였다는 식으로 사람 속 뒤집어놓더라. 정말 사는 건지 전쟁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
  "신랑만 잘 해주면 되지 뭘 그러니?"
  "맞어. 그거 하나 때문에 참지. 우리 신랑은 참 착해. 한번도 내색 안 해. 그리고 사람이 곰살스러워서 얼마나 재었는지 몰라."
  신랑 자랑을 하는 순지는 조금 전 시어머니 흥을 보던 순지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아기 소식 없니?"
  "얘 너도 아기 타령이니. 내가 요즘 아주 죽겠다. 우리 신랑이 아기 너무 빨리 가지면 나 힘들다고 일부러 피임을 했거든. 그랬더니 글쎄 시댁에서는 나 아기 못 갖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는 거 있지. 그래서 요즘은 가지려고 하는데‥‥‥ 또 가지려니까 안 생겨, 빨리 들어서야 의심을 안 받을 덴데, 걱정이야."
  순지는 결혼을 했다고 그런 얘기를 거리낌 없이 했다. 그런 순지가 자기와는 먼 사람으로 느껴졌다.
  "얘, 너두 빨리 결혼해."
  "얘는 무슨?"
  "아냐 얘, 해야 해. 못 한다는 소리 듣는 것보다 구박받는 게 낫다 얘. 시어머니구박이야 귓전으로 홀리면 되니까 편찮아. 반대 아니라 의절을 했던 사람들도 시간 지나니까 다 받아주더라. 별 수 있니? 뭐 지 아들이 좋다는데. 그런 걱정하지 말고 좋은 사람 있으면 잡어. 남자 하나만 착하면 돼. 아무 것도 볼 거 없어."
  순지는 결혼을 하더니 결혼 필수론자가 되었다. 순지의 얘기가 낯설기는 했지만 그래도 설득력이 있었다. 순지 신혼살이를 보고 온 후 미정은 결혼이라는 것이 여자에게 행복을 주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자기도 결혼을 하게 되면 순지처럼 해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미정은 순지처럼 그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미정은 보조기아니라 보조기 할아버지를 차도 목발 없이는 단 한발자국도 걸을 수가 없으니 순지처럼 완전 범죄를 할 수 없었다. 결혼식을 성한 사람처럼 꾸밀 수 없다면 굳이 결혼을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정은 순지 결혼식 자체를 부러워하고 있었다. 영화배우 같은 멋진 남자와 결혼식만 치뤄봤으면좋겠다 싶어 남자 배우 캐스팅에 시간을 보내곤 했다. 박상원, 최민수, 최수종, 최재성, 손지창‥‥‥ 미정의 상상은 끝이없었다.
  "얘, 무슨 생각을 하느라고 그렇게 넋이 나갔니?"
  경주였다. 경주는 장애가 아주 경해 목발도 보조기도 필요 없었다. 미정 이는 그런 경주가 갑자기 부러웠다. 자기도 경주 정도로만 만들어 놓지 하고 신을 원망했다.
  "생각은 무슨 생각?"
  "네 얼굴에 쓰여 있어. 난 외로운 여자예요 라고 말야."
  "기집애, 넘겨짚긴."
  "얘 넘겨짚은 거 아냐. 거울 좀 봐. 네 얼굴이 진짜 그렇게 보인단 말야."
  "그래, 가을을 타나 봐. 작년 가을엔 안 그랬었는데."
  "나이 탓이야."
  "그런가 봐."
  미정은 속으론 더욱 동의했다. 나이가 들수록 혼자라는 것이 큰 외로움을 주었다.
  "너 순지네 집에 다녀왔다면서?"
  "으-응." 같이 가자고 하지 않은 것이 심장을 폭 찔렀다.
  "뭐 이상한 거 못 느꼈니?" 경주는 미정이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상한 거라니? 전혀."
  "그래?"
  "왜?"
  "아냐."
  미정 이는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있는 대로 아양을 떨며 입을 열게 했다.
  "순지, 신랑하고 문제가 있는 모양이더라구."
  "문제라니? 무슨 문젠데?"
  "순지 신랑이 집에 잘 안 들어온대."
  "왜?"
  "외긴 뻔하지. 순지 신랑 인물값 하는 거야. 너무 잘 생긴 남자도 곤란하다니까."
  순지 부부 사이에 문제가 있다는 소문은 거의 기정사실로 퍼져갔지만 미정 이는 그 문제를 그리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 소문 역시 그야말로 소문일 거란 생각이 들었고 또 순지가 요즘 자기 신랑 바빠서 눈코 뜰 새가 없다고 했기 때문에 그런 연유로 나온 소문일 것으로 판단했다.
  미정 이는 경주가 너무 잘 생긴 남자는 곤란하다고 한 말에 신경이 쓰여 그동안 골라놓은 남자 배우들 명단을 싹 지워버리고 그보다 조금 덜 생긴 사람들을 고르기 시작했다.
  노영국, 나한일, 박영규, 강남길‥‥‥ 하지만 왠지 성에 차지 않아 나중에 바람을 피우는 한이 있더라도 잘 생긴 사람이 훨씬 나을 것 같아 다시 상대를 바꾸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었다. "순지 고년은 그렇게 잘 생긴 남자를 어떻게 만났을까." 순지와 그런 저런 수다를 떨고 싶어 전화를 했다. 순지는 전화를 아주 작은 소리로 받았다. 이유를 묻자 "응, 우리 그이 지금 자. 어제 밤 새워 작업했거든" 라고 아주 행복한 음성으로 대답했다. 미정은 소기의 목적은 달성할 수 없었지만 순지 부부의 애정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것은 확인할 수 있었다.
  "치, 신랑 잔다고 목소리도 제대로 못 내. 빠졌군. 아주 푹 빠졌어. 정말 치사해죽겠네" 미정은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리며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며칠이 지난 후 미안했던지 순지가 전화를 했다. 순지는 주로 살림살이 얘기를 했다. 장보는 것이 제일 힘들다고 했다. "난 비싼 거 싼 거 안 가려. 무조건 손에 잡히는 대로 사서 배달시켜. 까짓 것 비싸면 얼마나 비쌀까 싶어서 그냥 사. 어쩌다 지나가는 소리로 물건값을 깎으면 거지 취급한다. 장애자니까 그것도 싸게 부른 거라나 뭐라나 하면서. 얼마나 웃기는지 아니? 무식한 사람들일수록 대책이 안 서. 끄떡하면 장애를 찍어다 붙이거든. 그래서 우리 그이도 나랑 외식하면 일부러 비싼 집 간다. 그래야 제대로 대접받거든. 우린 아무튼 돈이 좀 많이 드는 물건인가 봐."
  순지 말이 맞았다. 고급 음식점에 가면 덜한데 싸주려 음식점에 가면 영락없이 혀 차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래서 미정이도 본의 아니게 고급을 선호하게 되었다. 그래서 가난한 장애인은 이중의 장애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한 계절이 지난 후 서클 회원의 밤 행사가 있었는데 무슨 맘을 먹었는지 순지가 남편과 함께 나타났다. 회원들은 그동안 먹은 마음과는 달리 아주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순지 신랑은 순지를 대신해서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다고 인사를 했다. 그는 아주 정중했다.
  "여보, 참 인사하세요 미정이에요."
  순지가 미정 이를 소개했다.
  "아 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이 사람은 미정씨 얘기만 해요."
  미정은 완전히 순지 신랑한테 뿅 갔다. 외모만 근사할 뿐 아니라 매너도 아주 멋있었다. 그는 분위기를 잘 맞추는 특별한 재주가 있었다. 순지한테 어찌나 잘해주는지 남편으로 나무랄 데가 없었다.
  "이 사람 음식 솜씨 아주 훌륭해요. 일을 전혀 안 한 사람이어서 기대를 안 했었는데 정말 놀랐다니까요. 언제 한번 오세요."
  "글쎄, 생각보다 잘 한다고 하는 거 있지. 그래서 한바탕 싸웠다."
  싸웠다고 하는 것조차도 행복해 보였다. 부부는 닮는다고 하더니 나란히 앉혀놓고 볼수록 비슷했다. 다시 말해 잘 어울렸다. 순지 부부를 보니까 부부라는 것이 바로 저런 건가 보다 싶었다.
  그 날 이후 미정의 가을 병은 우울증으로 변했다. 미정은 옛날 같으면 쳐다보지도 않았던 장애인 만남 행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참여할 용기는 내지 못했다. 그럴수록 미정 이는 부모를 원망했다. 시집보낼 생각조차 하지 않고 있는 것이 섭섭했다. 언니들은 시집 못 보내 안달을 부리던 엄마가 어떻게 자기한테는 시집의 시자도 꺼내지 않는지 야속했다.
  단골 중매쟁이 아줌마도 미정 이는 안중에도 없었다. 미정이 동생 중매는 주선하면서 자기는 쏙 빼놓는 것이 자존심이 상했다. "중매 해준다고 해도 거절할 텐데 정말 웃겨" 미정 이는 속으로 이렇게 잘난 척을 하는 것으로 자신을 달랬다. 가을 병으로 한동안 앓다가 서클 모임에 나갔다.
  순지에 대한 소문이 서클룸을 꽉 채우고 있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바로 네가 그 격이네."
  "순지가 얘기 안 했어?"
  미정 이는 야단맞는 학생처럼 모르고 있었다는 데 책임감을 느꼈다.
  "순지가 얘기할 리가 있니?"
  "아냐, 네가 잘못 들었을 거야."
  "나두 순지 신랑 안 봤으면 그 말 안 믿었을 거야. 그렇지 않아도 그 날 좀 이상하다했거든. 걷는 게 좀 다르지 않든. 힘이 없고 휘청거리는 듯하잖아."
  "그렇게 걷는 사람 있어."
  미정은 부정하고 싶었다.
  "너 순지 신랑 구두 못 봤니? 짧은 부츠 같은 구두 신었지 않든."
  "변진섭도 그런 구두 신어."
  "변진섭 같은 소리하고 있네. 순지 신랑이 가수냐?"
  미정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얘기를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있잖니, 순지 신랑 오른쪽 발이 의족이래. 발목까지만."
  미정은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아냐 그럴 리가 없어" 미정 이는 이 말을 속으로 했는 줄 알았는데 혀끝으로 소리가 난 모양이었다. 전철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미정 이를 쳐다보았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런데 그것은 자기가 소리를 내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여성장애인이 결혼함에 있어 그렇게 또 밑지고 들어갔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미정 이는 그동안 상상했던 결혼 계획을 미련 없이 지워버렸다. 대신 결혼은 꿈이고 환상이라고 입력시켰다. 마음은 편했다. 하치만 큰 상실감에 허전했다.
  "진짜 여잔 갈비뼈 한 개가 없나. 왜 이렇게 가슴 사이로 바람이 숭숭 들어오지. 순진 어떨까. 진짜 행복할까? 남편의 장애를 숨기기 위해 계속 전전긍긍할 덴데 얼마나 불안할까. 순지 가슴도 뺑 뚫려 있을 거야. 아냐 갈비뼈 짝을 맞췄으니까 나처럼 바람이 들어오진 않을 거야. 에이 모르겠다. 팔자대로 살자."
작성자방귀희  webmaster@cowalknews.co.kr

Copyright by 함께걸음(http://news.cowalk.or.kr)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함께걸음 페이스북 바로가기
함께걸음 과월호 모아보기

제호 : 디지털 함께걸음
주소 : 우)07236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의사당대로22, 이룸센터 3층 303호
대표전화 : (02) 2675-8672  /  Fax : (02) 2675-8675
등록번호 : 서울아00388  /  등록(발행)일 : 2007년 6월 26일
발행 : (사)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  발행인 : 김성재 
편집인 : 이미정  /  청소년보호책임자 : 노태호
별도의 표시가 없는 한 '함께걸음'이 생산한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by
Copyright © 2021 함께걸음. All rights reserved. Supported by 푸른아이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