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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마당 ]짧지만 긴 여운, <스케이트>

장애우를 대하는 어설픈 우리의 자화상 담은 단편영화 수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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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덮힌 어느 시골 마을. 바람소리와 함께 앙상한 나뭇가지를 허옇게 드러내놓고 있는 나무들과 들판을 배경으로 꽁꽁 얼어붙은 샛강 위를 한 소녀가 천천히 걸어오면서 이 영화는 시작된다.
  샛강 위 아이들이 신나게 눈썰매를 탄다. 콧노래를 부르며 노는 아이도 있다. 시골 큰아버지네로 와 살게 된 소녀(보영)는 그 곳에서 혼자 스케이트를 탄다. 풀밭에 앉아 말없이 소녀를 바라보는 소년. 문득 뒤를 돌아보던 소녀. 소년과 눈이 마주치자 보란 듯 한 바퀴 원을 그리다 엉덩방아를 찧는다. 다가와 소녀를 부축해주는 소년. 나무 막대기로 눈덮힌 얼음판에 글씨를 쓴다.
  "너 이름이 뭐니?"
  소녀는 대답한다. "보영이. 너는?"
  그러나 소년은 대답이 없다. 그때 소년 등뒤로 공이 날아온다. 한 아이가 뛰어와 미안하다고 사과하자 소년의 입에선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웅얼거림이 들린다. 문득 겁이 난 소녀는 스케이트도 내팽개친 채 황급히 달아나 버린다.
  소녀는 친구와 함께 라면을 먹는다. 친구가 함께 샛강에 놀러가자고 하자 소녀는 불안한 얼굴로 날씨가 춥다는 핑계를 대며 다른 놀이를 하자고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소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미안함 때문에 다시 그 자리를 찾아간다. 그러나 소년은 떠나고 스케이트만이 그 자리에 그대로 남아있다. 소녀는 소년이 했던 것처럼 얼음판 위에 무언가를 끄적이며 오랫동안 그 자리를 떠나지 못한다. 소녀의 큰아버지가 밥 먹으라고 소녀를 부르자 그제서야 자리에서 일어난다.
  소녀와 큰아버지는 눈덮인 샛강을 천천히 걸어나간다. 그들의 뒷모습이 카메라에서 서서히 멀어지며 영화는 끝이 난다.
  제4회 서울 단편영화제 예술공헌상 수상작이기도 한 스케이트는 한 편의 서정시처럼 맑고 담백한 10분짜리 흑백의 짧은 영화다. 그러나 이 영화는 우리에게 긴 여운을 남긴다. 잔잔한 피아노 소리와 함께 눈덮힌 샛강의 아름다운 풍경 속으로 우리를 안내하다 불현듯 청각장애우 소년과 맞닥뜨리게 한다. 황급히 달아나 버린 소녀의 모습이 혹 우리들 모습은 아니었을까.

 


청각장애우가 직접 주연 맡아

  이 영화에 나오는 소년은 실제로 청각장애우이다. 이 영화를 만든 조은령 감독(27)은 자신의 영화에 출연할 배우를 찾기 위해 영락농아인 교회를 찾아갔다. 그 곳에서 수화로 성경 말씀을 전하고 있던 청년교사 장홍규(25) 군을 만나게 된다. 조 감독은 서툰 수화로 자신의 영화에 출연할 것을 부탁하지만 거절당한다.
  여러 번 시도 끝에 힘겹게 승낙을 받아내지만 고생은 그 때부터 시작이었다. 수화통역사가 있었지만 연기훈련을 시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말이 통하지 않는 그 둘 사이의 가로놓여진 장벽. 그러나 진짜 장애물을 마음의 벽이란 걸 깨달은 조감독은 무엇보다 그 벽을 허무는 일이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그 때부터 통역사 없이 그 둘은 지화와 수화로 그리고 공책에 글씨를 써 가며 가까이 다가갔다.
  홍규군의 집을 찾아간 조감독에게 홍규군은 앨범을 보여주며 어린시절의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 서서히 서로의 마음의 문을 열게 된 두 사람은 촬영장인 경기도 여주에서 나흘간의 촬영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이 영화를 통해 장애우를 처음 대하는 일반인들의 미묘한 감정을 그리고 싶었다는 조감독은 학창시절 이후 줄곧 장애우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찍었는데 그 나름의 사연이 있다. 미국 뉴욕대 영화과 재학시절 뇌성마비장애를 가지고 있던 친구를 만난다. 그 친구로 인하여 많은 다른 종류의 신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각기 다른 장애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장애로 인해 겪어야 했던 인생의 골을 미처 이해하지 못함으로 어색하고 미안했던 순간들을 경험하게 된다. 그 뒤로 장애우에 남다른 애정을 보이며 대학시절 홈리스의 중년아저씨와 정신지체소녀의 우정을 담은 작품「가난한 사람들」을 찍기도 했다.

 


마음을 열어주는 영화 만들고파

  스케이트는 유학시절 조 감독이 만난 어느 아주머니의 실제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오랜 세월이 흐르도록 마음 속의 숙제처럼 남아있던 안타까운 기억을 영화로 담아냈다. "나의 관심은 가난한 사람, 청각장애우들처럼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일상에 있습니다. 경험하지 못하면 그 고통을 이해할 수 없고, 노력하지 않으면 영영 닫힌 채 살아갈 수밖에 없음을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장애우와 비장애우, 그 둘 사이의 마음을 문을 열어주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요."
  조 감독의 장애우에 대한 사랑은 자신이 만든 영화에서 뿐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도 보여주고 있다. 현재 서울 영동교회 사랑부(정신지체장애우부)교사로 일하고 있는 것이다.

 

글/ 김정희 (자유기고가)

 


 

[논장 서가에서 뽑은 책]

 

나도 너에게 자유를 주고 싶다

 

  <자유를 위한 변명>이 베스트샐러가 되고 홍신자 씨를 따르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가 단지 그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무용가이기 때문만은 아님은 이제 분명해졌다. 남들 보다 훨씬 늦은 만 스물일곱의 나이에 춤의 세계에 뛰어들어 그것도 낯선 미국땅에서 한걸음 한걸음 개척해 올라선 끝에 손안에 거의 거머쥔 듯 했던 세계 무대에서의 빛을 접어두고 귀국해 경기도 죽산에 정착한 그의 삶은, 그러나 왠지 손에 잡히거나 쉽게 그려지지 않는 얼마간의 신비함을 던져주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아주 소박한 그의 일상을 만날 수 있는 책이 바로 <나도 너에게 자유를 주고 싶다>이다. 그야말로 자유롭게 각자가 선택한 곳에서 떨어져 살아가고 있는 엄마가 딸에게 보내는 편지글들로 이루어진 이 책은 그러나 그의 딸 나이 연배들만 볼만한 청소년용이 아니다. 낡은 옷과 소박한 이웃을 좋아하고 손수 흙집을 짓고 농사일을 하거나 불을 피우는 과정에서 발견하는 인생의 단상들은 오늘은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많은 질문을 던져준다, 그가 깨뜨려 보여준 기존 질서와 가치규범들의 반대편에 서서 진정한 삶과 자유의 새로운 의미를 다시금 곰곰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다.
  또 그가 소개하는 이웃들의 살림도 흥미롭다. 평범하면서도 아름다운 동반의 삶을 보여주는 홍용선 할아버지 부부나 시인 황청원 씨 부부, 쓸 만큼만 돈을 버는 중국집 주인이나 산채요리 연구가 산당같은 사람들에게서 그들을 바라보는 홍신자 씨의 따뜻한 시선을 느낄 수 있다. 그런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예술차원이 아니라 관객도 자아도 의식하지 않고 오직 순수한 에너지의 흐름이 몸에 실려 영원의 율동으로 남게 하는 무아의 상태, 가장 큰 자유의 형태인 춤의 의미를 깨달은 홍신자 씨의 큰육성의 울림을 듣게 된다.
  그리고 그런 그의 글들에서 세계적 무용가라거나 라즈니쉬의 제자가 아닌 홍신자라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 <안그리픽스/7천5백원>

 

글/ 이재필 (논장서적 대표)

 

작성자김정희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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