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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하며 수행하며]마음3

지난 토요일에 있었던 사건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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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불교환경교육원이 중심이 되어 정토식구들이 아침에 방배동 텃밭에 갑니다. 그래서 상추와 싱싱한 야채를 푸짐하게 따오지요. 그리고 매주 토요일은 이 방배동 주말생태농장에 오는 여러 식구들과 함께 일을 합니다. 그런데 일도 일이지만, 텃밭에 오는 여러 가족들과 음식도 하고 전도 굽고 야외 파티같은 재미있는 분위기로 진행되어서 그게 또 재미인거지요.
5월 25일 토요일 이날도 역시 한 십예닐곱명의 정토가족들이 오후 2시경에 방배동농장에 갔습니다. 물론 김치전을 만들 재료며 야외 특식을 위한 물건을 챙겨갔지요.
우리 공양간은 그날 저녁, 정말 특별한 요리를 했습니다. 스파게티였지요. 창고에 스파게티면을 누군가 보시를 하셔서 몇달째 있길래 제가 지난번 가락동시장에서 소스를 구입해온 것입니다.
오후 4시에 당번인 김재령 간사와 임혜진 간사가 내려왔습니다. 김재령 간사는 우리 정토회의 명물입니다. 키는 작달만하고 말랐지만 큰 눈에 항상 우렁찬 목소리로 말하는 마라톤 선수 출신입니다. 우리 공동체에서 항상 웃음을 몰고다니는 재치꾼입니다. 임혜진 간사는 얼마전까지 정토회 실무자의 막내였습니다. 별명은 오이천사. 길죽한 얼굴에 착하고 성실한 정토회의 미래입니다.
우리는 요리책을 뒤지면서 특식인 맛있는 스파게티를 위해 면을 삶고 마아가린으로 볶고 한참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던 중 방배동 밭에간 식구들이 그곳에서 밥을 먹고 온다는 전화가 온 것입니다. 특식을 준비하던 우리는 크게 실망했습니다. 공양간에 들어서자 마자 환호 속에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길 기대했는데 말예요. 그러나 어쩔 수 없죠. 그런데 스파게티를 만들다 보니 그들이 와도 줄게 없을 정도로 양이 적었습니다. 다행이라고 생각했지요.
아무튼 남아있던 한 30명의 식구들은 정말 즐거운 함성을 지르면서 맛있게 먹는 걸 보고 우리는 너무 흐믓해 했습니다. 그런데 거의 공양이 끝나갈 무렵 이게 왠일입니까, 방배동에 갔던 기도대중들이 돌아온 것입니다. 밥을 먹으려고 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너무 놀랐지요. 아마 특식을 한다는 걸 알고 별러서 온 것이라고 생각했지요.
“아니 그곳에서 먹고 온다고 해서 준비를 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된거죠? 지금 남은 것이 하나도 없어요!”나는 당황한 나머지, 단호하게 말해 버렸습니다. “그래요?”라는 한마디만 남기고 8명의 기도대중들은 나갔습니다. 그 때까지 재미있게 웃고 떠들던 우리들 사이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습니다.
밥을 먹지 못하고 나간 그들의 처진 눈빛을 우리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물론 전달이 잘못되었기 때문이라지만 아무리 그래도 밥이 없다고 그냥 내보내는 것은 도저히 공양간에서 할 일이 아닌 것입니다 설걷이를 하면서 임혜진 간사는 탄식을 하며 너무도 아쉬워했습니다. “누가 그런 잘못된 전화를 걸었데요? 나가서 사먹을 돈도 없을텐데. 우리가 돈이라도 줘야하지 않을까?”그러자 갑자기 김재령 간사가 언성을 높이면서 발칵 화를 냅니다. “이미 그들은 나갔고 상황은 끝났는데 왜 자꾸 이야기하는 거예요? 정 가슴이 아프면 빨리 새밥을 해서 주든가 했어야지, 돌아가게 한뒤에 왜 쓸데없이 후회합니까?” 별말도 아닌에 이렇게 과민하게 반응하는걸보면 김재령 간사도 역시 마음이 아픈거지요.
“뭘 어떻게 하자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걸려서 그냥 말한 거예요. 그게 뭐 잘못됐나요?”
서로 쓴웃음을 지면서 옥신각신했지만 나 역시 마음이 아팠습니다. 공양간에서 밥이 떨어져 누군가 그냥 돌려보내는 것은 정말 가슴이 에이는 일이더군요. 밥을 급히 새로 해주든가 과일을 주든가 아니면 고구마라도 깍아주든가 해야 마음이 풀립니다. 아무튼 공양간의 마음은 그런겁디다.
두 시간 뒤 9시30분, 공양간에 내려와서 기도대중들이 기도 뒤에 먹을 수 있도록 백설기를 찌고 사과 배 오랜지를 푸짐하게 깍고 둥글레차를 정성껏 끓여서 내놓았습니다. 한참 준비를 하고 있는데 임혜진 간사가 들어왔습니다. 자기도 준비해주려고 왔다네요. 마음여리고 착한 보은행...

▷덧대는 글
물론 9시30분 우리가 준비한 떡과 과일을 보고 오백배 기도를 마치고 들어온 기도대중들은 환호했습니다. 맛있게 먹는 것을 보고 우리는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그런데 나중에야 알고 보니, 기도대중들은 농장에서 김치전, 라면 그리고 다른 가족들이 가져온 온갖 산해진미를 잔뜩 먹고 왔다는 겁니다. 저녁밥 먹을 약간의 배만 남겨두었다나 어쨌다나... 세상에..


글/ 법운 유정길 (정토회 공양주법사)

작성자유정길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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