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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운 건 코로나 바이러스만은 아닐 텐데요

오사카에서 온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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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땐 힘을 내야 해요, 더욱 더

“등기입니다.”

집배원 아저씨가 전달해 준 작은 상자, 발송인 주소를 보니 큰아들의 대학교. 사실 오늘은 아들의 대학교 졸업식이었는데, 신종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중지가 되고 말았어요. 졸업식 대신 졸업증서가 우편으로 배달되었네요. “허전하고 밋밋한 기분!”

3월 중반 이후는 일본 전역이 졸업식 시즌이죠. 3월17일로 예정되었던 졸업식에 맞춰 오사카에 올 계획으로, 한국에 계신 어머니께선 몇 달 전부터 항공권을 예약해 놓고 계셨어요. 1월 말까지만 해도 중국이라는 먼 나라의 얘기로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 지경에 이를지는 예측한 사람이 별로 없겠지요.

2월 중반이 넘어 일본도 이래저래 어수선해지면서 정부의 거동이 주목되고 있었는데, 아베 수상이 갑자기 중국과 한국으로부터의 입국제한 조치를 3월9일부터 표명하고, 게다가 비자까지 취소되는 상황에 이르자 정말 심각하구나 싶더라고요. 며칠 사이에 유럽이나 미국 등에서도 자국에서의 이동조차 금지시키는 상황이 되었으니,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게 되긴 했죠. 하지만 한국에서의 입국제한이라는 조치가 발표되고 다음날 한국 측에서도 일본인의 방문비자를 정지시키는 맞불 응수가 벌어졌을 때, 참으로 조국을 떠나 살면서 비일상적인 상황이 벌어졌을 때는 부모 자식이 만나는 것조차 자유롭지 못하다는 걸 절감하게 되더라고요.

생명을 위협하는 전염병의 창궐 앞에서 졸업식 중지가 뭐 그리 대단한 일이냐고 하면 할 말 없지만, 그간 들인 돈이며 시간이며 공이 있는데 그대로 지나가 버린다는 게 아쉬운 건 누구라도 짐작 가는 마음이려니 생각해요. 졸업식이 중지됐다는 연락을 하면서 일단 오사카에 오시는 일정을 4월 후반쯤으로 연기해 놓기로 했는데, 그때쯤은 가라앉겠지 싶은 강한 희망이 담긴 어머니의 말씀에 바로 대답할 수 없는 모녀의 대화. 하지만 저보다 더 답답한 동생이 있더라고요.

고등학교 동창의 여동생과 20여 년 만에 통화를 했는데, 딸아이가 애니메이션을 공부하러 고베에 있는 대학으로 유학을 오게 됐데요. 하지만 4월 초 입학에 맞춰 3월 20일 경에 딸과 같이 방일할 예정이었던 것이, 급작스러운 입국제한조치에 따라 황당한 상황에 처하게 됐더라고요. 일단은 서둘러 오사카 행 비행기에 태워 보냈데요. 평온할 때도 아니고 두 나라의 왕래조차 제한되고 있는 이 시기에, 혼자 생활하는 건 처음일 딸아이를 혼자 보낸 엄마 마음이 얼마나 불안하겠어요. 하지만 좀비 영화처럼 눈에 보이게 소름 끼치는 끔찍한 병균이 아니니 상상력이 둔감한 걸까요?

그 딸아이는 새로 시작하는 유학생활을 위해 프라이팬이랑 냄비를 사러 다니고, 냉장고에 가스레인지도 사서 살림 준비를 착실히 하고 있데요. 자기 방에서 처음으로 혼자 만든 스파게티를 먹는 사진을 보내 줬다고 하네요. 싸움을 시작하기 전에 밥 먹고 힘을 내야겠다는 그런 씩씩한 각오일까요? 아무리 심각한 처지에서도, 어깨가 처지고 한숨이 내쉬어져도, 고개를 들어 솟아날 구멍을 찾아보는 끈기와 긍정의 힘. 전혀 새로운 환경에서도 자신의 꿈을 향해 도전하는 그 딸아이 모습에 한결 마음이 놓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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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미양 씨가 보내준 오사카성의 매화꽃 풍경

이겨내는 것도 결국 우리 몫입니다

최근 미국의 아카데미 작품상을 한국 영화 ‘기생충’이 섭렵해서 큰 화제가 됐는데, 일본의 가장 권위 있는 영화제인 일본아카데미에서는 ‘신문기자’라는 영화가 주인공이 됐어요. 일본 아베 정권의 비리를 밝히려고 추적하는 언론에 대한 위협을 다룬 작품인데, 작품상을 비롯해 6개 부문을 수상했죠. 그 중 최우수여우주연상을 한국 배우가 수상하는 쾌거가 있어 일본에서도 한국영화계에 대한 화제가 만발한데, 엄마와 중증장애인 딸의 관계와 장애여성의 자립을 중요한 주제로 다루고 있는 또 한 편의 영화가 주목을 받고 있데요.

제목은 ‘37초’, 로스앤젤레스를 거점으로 활동하고 있는 오사카 출신의 여성 감독 히카리의 일본·미국 합작의 장편 데뷔작(2019년 제작)으로, 제69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파노라마 부문에서 관객상과 CICAE 아트시네마상을 수상한 휴먼드라마라고 해요.

태어난 순간 37초간 호흡이 되지 않아 팔다리를 자유롭게 쓸 수 없게 된 뇌성마비 증증장애 여성의 자아발견과 성장을 그려낸 작품으로, 여주인공 다카다 유마(貴田夢馬)는 이상할 정도로 과보호적인 엄마 밑에서 둘만 생활해 왔죠. 그러다가 친구 만화가의 이름 없는 유령작가에서 벗어나 스스로의 이름으로 작품을 발표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됐고, 과도한 엄마의 간섭에서도 벗어나 삶의 영역을 넓혀 자립하고자 여러 방도를 고민해 갑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접하게 된 성인만화 작가 모집을 보고 용기를 내어 출판사를 찾아가 응모해 보지만, 편집장으로부터 현실적인 성체험을 한 적이 없는 중증장애인이니 리얼한 성묘사의 만화를 그릴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지요. 이후 유마는 장애인을 성적으로 전문적으로 상대해 주는 친구를 만나며 성에 대한 새로운 경험도 하고, 지금까지 접하지 못했던 세상을 만나게 되면서 엄마와도 부딪히게 되지만, 그런 과정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간다는 내용이에요.

이 영화에서 특히 주목하고 싶은 것은 실제로 주인공처럼 출생 시 호흡이 멈춰 뇌성마비장애를 갖게 됐지만, 사회복지사로서 활동하고 있는 가야마 아키(佳山明)가 오디션에서 주연배우로 발탁되어 열연하고 있다는 겁니다. 저도 아직 못 봤지만 정말 기대가 되는 작품이에요.

여러모로 자제하고 위축되어 있는 분위기 속에 모두가 살게 됐죠. 하지만 세상에 경종을 울리는 바이러스는 신종폐렴뿐만은 아니니까, 그 위협에 모든 것이 휩쓸리지 않도록 분별의 시선을 잃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인데요. 일본 특유의 조심조심, 은근슬쩍, 뜨뜻미지근하게 넘어가려고 하는 태세를 절감하고 있는 요즘, 예측불허의 상황 속에서 서로가 갑갑하고 불안한 마음도 많겠지만 밥 잘 먹고, 잘 자고, 면역력 키우며 잘 넘어가야겠지요! 함께 힘든 시기를 보내고 계실 독자 여러분께 봄을 알리는 오사카성의 매화꽃 사진을 곁들여 보내드립니다.

 

작성자변미양/지체장애인, 오사카 거주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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