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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지 않았던 추석 연휴

함께 가는 나와 당신의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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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빛의 시어터 전시의 영상 상영 일정표
 
올해 추석 연휴는 평소보다 길었다. 개천절과 추석 연휴가 주말과 임시 공휴일로 묶여 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데도 우리 가족은 쉴 수 없었는데, 바로 내가 이 연재를 좋은 핑계 삼아 추석 연휴 동안 일정이 없는 날에도 절대 집에서 가만히 쉴 수 없다고 선언해 버렸기 때문이다. 난 나이가 많지만 대학교 졸업은 하지 않았고, 경력도 없이 두 달에 한 번 작은 연재를 할 뿐인데, 가족들은 고맙게도 내 연재를 중요하게 생각했나 보다. 내가 연재 때문에 어디 어딜 가야 한다고 하니까 가족들이 정말 열 일 제쳐두고 나의 여행을 도왔다. 모든 나들이를 가족과 함께하진 않았지만, 아직은 모든 일정이 가족의 도움으로 조정되었다. 사회에서 많은 경우 제한을 경험하는 여행자로서, 개인적으로 이런 가족이 있어 안도감을 느낀다. 예전 한 티비 프로그램에서 한 여성 연예인이 다른 선배 연예인의 회사에 들어가며 “매일얼굴에 분칠하게 해 달라”고 했다는데, 간단히 생각해 그 이야기는 매일 사회활동을 하게 해달라는 뜻이다. 그러니까 그 사람은 매일 사회활동을 해야 기쁨이었다. 나 또한, 귀찮더라도 매일 사회활동을 해야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번 추석에 연재 핑계로 가야 된다고 우기긴 했지만, 가족의 지지를받아 순조롭게 나들이를 할 수 있어 정말 좋았다. 물론 모든 나들이가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매일 분칠’을 했으니 말이다.
 
빛의 시어터: 달리&가우디 전
나는 추석 연휴 마지막 날부터 일정이 없었다. 게다가 그 때 나는 서울에 있었기 때문에, 빛의 시어터 전시가 있는 워커힐 호텔에 가기에 편리했다. 그 때 당시, 엄마가 이모와 함께 몸이 불편하신 외할머니를 모시고 전시를 보고 와서 배리어프리면 정말 좋겠다고 누차 이야기하던 때였기 때문에, 나는 별 고민없이 빛의 시어터 전에 가겠노라고 결정했다. 하지만 그날은그 전날 잠을 잘 자지 못해 전체적으로 몸상태가 좋지 않았다. 잠이 현저히 부족해서, 재발 이후 약화된 시력과 청력도 엉망진창이었기 때문에, ‘얼굴에 분칠’이 아무리 좋았어도 난 그 날 욕심을 내려놓고 집에서 쉬었어야 했다. 안타깝게도 나는 아빠와 함께 전시장에 들어가서야 그 사실을 알아챘다.
 
솔직히 전시는 큰 스크린에서 나오는 관련 영상을 시청하는 게 다였는데. 난 그 때 컨디션이 정말 좋지 않아 영상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그냥 빨리 집에 돌아가서 쉬고 싶었다. 결국, 입장료가 꽤 됐는데도 불구하고 난 아빠에게 “집에 가고 싶다”고 말했고, 나는 물론이고 보호자로 동행한 아빠마저도 영상을 거의 하나도 보지 못했다. 나는 뒤늦게 하나 배운 셈이다. 나 자신을 살펴보아 만약 컨디션이 정말 좋지 않다면 ‘매일 분칠’을 하고야 말겠다는 욕심을 버리고 집에서 쉬는 것이 현명하다. 그러니까 그 날은, 참고 아무데도 가지 않아야 옳았다. 이 나이 먹도록 그런 간단한 것도 몰랐다니!
 
↑ 필자가 산에 오르기 전, 지도를 살펴보고 있다.
 
관악산 무장애숲길
장애를 갖기 전, 나는 등산도 정말 좋아하고 책읽기도 좋아해 적어도 매주 집 옆의 작은 산을 넘어 구립도서관에 갔다. 장애를 갖고 엘리베이터가 있는 집으로 이사하면서, 즐거웠던 나의 취미 활동도 갑작스럽게 끝이 나고 말았다. 그러니 난 항상 등산에 대한 미련을 품고 있었다. 8년 전, 장애를 갖고 처음으로 사회에 나와 ‘무장애’라는 숲길에 갔지만, 계단만 없을뿐 보행이 가능한 노약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휠체어로는 갈 수 없는 흙길이었다. 결국 함께 간 엄마만 나때문에 무진장 고생했다. 패인을 분석해 보자면, 오래전이라 그런지 그 장소도 ‘무장애’라기엔 협소하였거니와, 나도 당시 시행착오가 너무 적었고 의욕만 앞서잘 알아보지 못했던 탓이 컸다.
 
그래서 이번에 관악산 무장애숲길은 목적지를 신중하게 골랐다. 우선 관악산 무장애숲길은 한국관광공사에서 운영하는 ‘대한민국 구석구석’이라는 공신력이 있는 사이트에 휠체어 친화적이라고 소개되었다. 게시글이 오래된 만큼 난 요새 작성된 블로그 후기글도 참고했는데 지나고 보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예전과 지금 관악산 무장애숲길의 변화가 크지 않기 때문이다. 관악산 무장애숲길을 방문하는 데에 있어서 예전 게시글의 지시에 따라도 될 일 이었다. 다만, 게시글에서는 명시되지 않지만, 맨 처음 구간은 직접 가본 사람으로서 조언하자면 만약 동반자가 있고 산에 빨리 올라야 한다면 꼭 차로 이동하기를 추천한다. 관악산 주차장에서 무장애숲길이 시작되는 곳까지가 제법 멀고, 무장애숲길 앞에 장애인 전용 주차 구역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날 관리사무소의 허가를 받아 보행자만 많은 길을 자동차를 타고 통과했고, 보행자가 많아 서행하긴 했지만 차로만 십분 남짓한 시간을 이동해야 했다. 그러니 꽤 구간이 길다. 무장애숲길만 이용한다면 이 구간은 차량으로 통과하는 게 바람직하다.
 
↑ 관악산 무장애숲길의 한 구간. 이런 오르막이 계속 이어진다.
 
그 다음부터는 정상까지 쭉 데크길이 이어진다. 계단은 없지만 그래도 오르막이고, 정말 오르막 데크길이 정상까지 무한 반복되기 때문에 만약 보호자가 운전하는 수동휠체어라면 탐방을 과감히 포기하는 편이 본인과 보호자 모두에게 나을 수 있다. 아무튼, 무장애숲길 덕에 아주 수월하게 휠체어로 관악산 정상에 올랐다.
 
↑ 노을숲길 정상에서
 
파주 헤이리마을 무장애 노을숲길
집 주변에도 휠체어로 탐방 가능한 산이 많지만 나는굳이 파주 헤이리마을까지 갔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째, 가을에 핑크뮬리가 예쁘게 핀다고 어디선가 봤기 때문이다. 핑크뮬리를 꼭 보고싶었다. 둘째, 지난번 나는 헤이리마을에 갔다가 크게 실망한 경험이있다. 괜찮은 장애인 화장실도, 전동휠체어 충전기도 없어 아주 난감했다. 그래서 난 헤이리마을에 다시 기회를 주고 싶었다. 지난날 힘들었지만 노을 숲길에 가니 짠! 출입이 쉬운 장애인 화장실과 휠체어 충전기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말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두 포인트 모두에서 내 예상이 빗나갔다. 먼저 핑크뮬리는 모두 져 버린 후였다. 분홍색 장관을 카메라에 담을 수 있겠거니 하고 조금 기대했는데, 역시나 내게 그런 행운은 주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장애인 화장실. 노을숲길에 있으리라 기대했지만 지난 번 그 휠체어로 가기 힘든 화장실이 정말로 마을 전체에 단 하나뿐인 장애인 화장실이었다. 나는 노을숲길을 내려와 지친 몸을 이끌고 또 휠체어로 가기 힘든 화장실을 찾아 차로 이동해야 했다! 이름부터 ‘무장애’여서 그런지 노을숲길은 장애인이 아니더라도 휠체어를 탄 다양한 사람들이 찾는다. 그렇다면 다른 건 몰라도 적어도 장애인 화장실만큼은 좋아야 하는 것 아닐까? 맨 아래 광장에 자연스럽게 존재하던 관악산 무장애길의 화장실과 자꾸 비교된다.
 
화장실 이야기가 더럽고 불편해서 피하려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른다. 실제로 이제껏 내가 본 어떤 장애 관련 책에도 화장실 이야기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화장실 문제는 정말 중요하다. 모든 일들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존재한다고 하면 화장실과 관련한 이야기가 아마 가장 중요한 이야기 목록에 속하지 않을까? 해야 할 필요가 없는데 굳이 화장실 얘기를 하는 것도 우습지만, 해야 하는데 하지 못하는 상황도 똑같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그리고 ‘배설’은 장애인으로서 정말 삶과 죽음의 문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족이 길었는데 결론은 화장실이 매우 중요한 문제라는 말이다. 아무리 더럽고 보잘 것 없는 내용이라도 이야기를 해야하는 이유이다.
 
마치며
이제 연재를 종료하게 된다. 연재를 하면서 글 잘쓴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솔직히 이 작은 글이 내 글쓰기 능력을 나타내리라 기대하지 않았기에, 그런 칭찬을 듣고는 항상 마음이 복잡해졌다. 그런 칭찬을 유도하기에 내 글쓰기 실력이 드러날 리 없는 문장을 보고 사람들이 시종일관 내 글쓰기 능력을 칭찬할까 싶어서다. 너무 예민하게 굴었는지도 모르겠다.
 
실은 이 연재를 하면서 많이 행복했다. 내가 사랑하는 여행이라는 취미를 내가 사랑하는 또 다른 취미, 글쓰기를 이용해 마음껏 표현할 수가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나들이를 진짜 좋아해서 아마 연재가 끝나고도 계속 나들이를 하리라 예상한다. 여행에 대해서 글을 쓸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행운이었고 그 행운은 내 장애없이는 절대 불가능했다. 장애 부분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런 행운이 지난 1년 동안 내게 주어져서 아주 감사했다.
작성자글과 사진. 원소연  cowalk1004@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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