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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다운증 장애우에 대한 편견 바로잡은 제 8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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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운증 장애우에 대한 편견 바로잡은 제 8요일


이 영화를 보고 난 후, 가장 먼저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우선 부러움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진솔한 모습을 감성적으로 잘 그려내고 있는 프랑스 영화의 바탕에 기인한 것이기는 하겠지만, 장애를 올바로 이해하지 않고는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에 다운증후군 장애우인 뒤켄의 연기는 칸느 영화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는 사실 이상으로 우리의 기대를 만족시켰다. 너무 연기를 잘 해 전혀 장애우로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영화속 주인공, 세일즈맨 교육 담당간부인 "하리"(다니엘 오퇴이유)는 바쁜 일상에 쫓기며 살고 있는 내 모습과 별로 다를 바가 없다. 그는 매일 아침 7시 30분이면 어김없이 디지털시계 소리에 깨어나 토스트기에서 튀어나온 두 쪽의 빵으로 아침을 때우고, 쏟아져 나오는 차량에 파묻혀 경적을 울려대며 신호가 바뀌기가 무섭게 질주하는 것에 아주 습관적으로 잘 길들여져 있는 일상적인 남자이다. 때문에 부인과 딸은 이러한 남편과 아빠를 참지 못하고 곁을 떠나 별거 중이다.
회사에 가서는 세일즈맨 교육장에서 똑같은 말을 녹음기처럼 반복한다. 교육생들에게 자연스러운 웃음과 자신감, 열정 등을 강조하지만 사실 자신에게서 웃음이 떠난 지는 이미 오래이다. 자신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심리적 위축과 상실감에 빠져 살고 있다.
이때 다운증후군 청년인 "조르주"(파스칼 뒤켄)의 등장은 그러한 그의 삶의 모습에 일대 전환을 가져다주는 계기가 된다. 딸을 만나기로 한 날 역시 이를 잊고 지내다 결국 약속을 어기고서 실낱같이 연결되어 오던 애정의 고리마저 잃어버리게 되고, 하리는 자살의 유혹을 느낀다. 용서를 빌기 위해 찾아갔으나 딸과의 만남을 거부당하고 돌아오는 밤길에 그는 눈을 감은 채로 핸들에서 손을 놓고 앞을 향해 질주한다. 이 막다른 장면에서 만나게 되는 것이 조르주이다. 그는 그동안 잘 정돈되었던 것 같은 하리의 일상을 완전히 뒤바꿔 놓으며, 진정으로 소중한 것과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준다.
이 영화를 통해 강조하고 싶은 것은 장애우에 대한 정보를 왜곡시키지 않고 비교적 있는 그대로를 잘 묘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흔히 우리 다운증 부모들은 출생 당시의 충격을 딛고 일어선 다음부터는 자녀의 성장과정을 지켜보며 참으로 감사하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고, 그 자녀를 통해 오히려 가족 구성원들이 정화되는 것을 느낀다고 이야기한다. 이 영화에서 주목할 사실도 바로 이 점이다.
하리는 우리가 늘 무시하고 살았던 장애우인 조르주를 만나면서 상실되었던 인간성을 되찾게 되고, 부인과의 재결합이 가능하게 된다. 이러한 줄거리는 진부한 도식이거나 가상적 시나리오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우리 다운가족들이 경험하고 있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그만큼 장애자녀는 가정의 고통이고 짐이라는 구태의연한 옛 과거의 사고에 집착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장애우에 대한 인식과는 차원을 달리하고 있다.
영화를 들여온 배급처나 상영하고 있는 영화관이나, 각종 매스컴의 영화평론마다 다운증후군을 환자니 질환이니 하는 언급을 서슴치 않는 현 시점에서 보면 이러한 편견을 바로 잡아줄 수 있는 이 영화가 상영될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까?
다운증 장애우의 성격상의 특징인 고집과 모방, 외향성 기질이 잘 묘사된 것도 프랑스와 한국의 인식수준 차에서 오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단지 - 극적 효과를 노리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짐작되지만 - 자신의 뜻대로 일이 되지 않을 경우 아무 곳에서나 바닥에 뒹구는 등의 형태는 등장인물의 성격묘사든 아니면 우리 다운증 장애우의 경우이든 너무 과장되었다는 점이 불만이다.
또한 자기 탄생에 대한 원초적 의문이 몽고분장으로 표현된 점은 다운증후군으로 명명되기 이전으로 돌아가는 시대역행적 반영이어서 의문을 던져준다. 또 같은 시설에서 생활하던 다운증 여성 나탈리와 결혼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어머니를 더욱 그리워하다 고층빌딩 옥상에서 몸을 날린 결말은 너무 극단으로 끌고 간 감이 없지 않다. 왜냐하면, 혹시나 관객들이 "결국 장애우를 받아줄 수 있는 것은 부모 외에는 없어"라고 이해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도대체 뭘 이야기하는 거야?"라고 중얼거리며 영화관을 나선다면 그만큼 자신이 감정적으로 매말라 있고, 타인과의 관계에 있어 자기중심적이지 않은가를 반성해 보아야 한다.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하며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 사람 속으로 들어가 이를 마음속으로 느낄 수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고귀한 각각의 생명마다 간직하게 되는 독특한 자기만의 세계관이 어떻게 창조되는가를 성경의 창세기를 들어, 조르주의 눈을 통해 비유적으로 도입부를 전개해나간 것은 인간존엄성에 대한 의미이기도 하다. 사회로부터 무시당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장애우라고 하더라도 그들만의 가질 수 있는 관념과 실존의 세계가 있고(세계관), 그 나름대로의 삶을 가치 있게 "느끼며 살고 있다"는 것을 대자연과의 조화 속에서 연계시킴으로써 장애우의 인간적 가치와 존엄을 인식하도록 관객을 이끌고 있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일에 미친 듯이(workaholic)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의 자기상실과 가족해체를 배경으로 천진무구한 다운증후군 장애우를 등장시킴으로써 우리의 고정된 시각을 교정시키고, 자기정화의 기회를 제공해준다. 때문에 이 영화는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좋은 영화임에 틀림없다.

 
글/성희선 (사회복지법인 다운센터 원장)

작성자성희선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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