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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사설 안에서 무너져 버린 내인생"

<동정은 싫다> 제9장 장애우의 삶도 가치가 있는 것이다.

본문

  알리바마에 있는 한 수용시설에서 생활하는 사지마비 장애우 맥아피는 죽기를 희망했다. 수용시설 안에서는 삶의 질이 전혀 고려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가 살고 있는 조지아주에 있는 모든 요양원에서 그 액수로는 맥아피와 같은 중증장애우를 돌볼 수 없다고 아우성이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살 데가 없어진 맥아피는 장애권리 운동가들과 함께 조지아주 국민의료보장제도 관리자의 사무실을 점거하고, 중증장애우를 위한 홈케어 프로그램을 요구했다. 농성은 3개월간 계속됐고 맥아피는 아우구스트의 새로운 그룹홈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이번 호는 장애를 학대하는 의료보장 제도에 대해서 분노를 표출한 맥아피의 투쟁일지를 보고한다.

 

 

  저자 :  조셉 피 쉐피로
    이 책을 쓴 조셉 피 쉐피로는 미국의 대표적 일간지인 유에스월드앤리포트지

    기자로서 사회정책에 관한 다수의 기사를 썼다. 그는 미국 알리샤 페터슨 재단의

    장학금을 받아 미국 장애우 인권운동을 연구해서 이 책을 썼다.
 

  역자 : 서동명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대학원 박사 과정중에 있다.

 

 


"이것은 의료제도에 대한 분노다"

  존슨이 판정을 내릴 때까지 맥아피는 알라바마에 있는 새로운 요양원에 있었다. 법원의 명령이 단지 조지아주에서만 적용되었기 때문에, 그곳은 자신의 삶이 끊어지기를 원했던 맥아피의 상황을 복잡하게 했다. 그 여름, 맥아피가 법정 싸움을 계속하는 동안 인공호흡기를 사용하는 사람을 위한 새로운 환기장치를 가지고 있는 알리바마 요양원의 광고지가 그레디의 행크세링거의 책상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8월 16일에 맥아피는 1시간 30분 정도 떨어져 있는 브래크리프요양원으로 옮겨졌다.
  맥아피는 자신의 삶을 빨리 마감하도록 계속해서 노력했다. 주의 변호사는 맥아피의 앞으로의 상태에 대해 조지아 대법원에 문의했다. 왜냐하면 상급 법원은 존슨 판사의 결정을 뒤집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맥아피는 아직도 죽기를 원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조지아주로 돌아갈 어떠한 수단도 가지고 있지 못했다.
  추수감사절 며칠 전, 주 대법원은 자신의 삶을 마감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질 수 있다고 맥아피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맥아피의 죽음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그의 법적 소송은 정말 죽고자하는 욕구를 반영한 것이 아니라 그를 학대하는 의료보장제도에 대해서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모순은 맥아피의 삶을 구하도록 끊임없이 시도해서 맥아피의 친구가 되는 기회를 갖고자 했던 한 집단의 사람들에게 시작되었다.
  이러한 움직임의 중심에 러쉬 파인이 있었다. 그는 맥아피의 옹호자로서 맥아피를 이해하고자 했다. 알리바마 대학 연구센터의 관리자로서 맥아피를 사지마비 장애우로 만들었던 여러 가지 사고를 예방하는 방법에 대해 연구하고 있었지만 파인은 장애권리 운동가는 아니었다. 교통사고, 추락, 수해, 그리고 화재 등을 포함해 예방할 수 있는 사고들이 죽음과 장애의 가장 커다란 원인이라고 그는 적고 있다. 그러나 투쟁적인 장애활동가들은 파인과 같은 사고예방 전문가들의 신중함을 지적하면서 장애를 예방하는 것에 대해 경멸했다. 심지어 "우리는 더 많은 장애우를 원한다"고 그들은 주장하였는데, 여기서 장애를 예방한다는 것은 건강과 관련된 이슈이지 장애와 관련된 이슈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파인은 맥아피와 관련하여 어떠한 이념적인 것을 제기하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단지 맥아피를 이해시키고자 했다. 그는 맥아피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했다. 파인은 맥아피가 자신의 삶을 마칠 수 있는 권리를 지지하면서 이러한 자신의 의지를 명확하게 보여주었다.
  그러나 그는 사전에 장애우들이 여러 가지 선택사항을 추구 할 수 있기를 원했다. 맥아피는 이에 대해 여러 가지를 의심했다. 전에 여러 가지 독립적인 삶에 대한 약속을 들었지만, 맥아피가 제공받을 옵션은 요양원이냐, ICU와 같은 병원이냐 하는 것밖에 없는 공허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래리 맥아피는 오늘날 건강과 관련되어 잘못된 모든 것이 구체화된 것이다. 우리는 거의 죽음에 이른 사람들을 소생시킬 수 있는 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부가적인 것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다. 내가 의문을 가지고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이러한 욕구가 과연 누구의 욕구라고 불러야 하는가. 우리는 단지 동료들을 위해 이러한 것을 하고 있지 않은가. 단지 우리의 훌륭한 솜씨를 보여주고 우리의 선조들이 할 수 없어던 파멸에 가까운 질병에서 생명을 유지시킬 수 있는 전문적인 기술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닌가?"라고 파인은 이야기하고 있다.


 

"맥아피도 플레이보이지를 볼 수 있다"

  결국 맥아피가 파인을 신뢰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파인의 태도였다. 자신이 건강관리의 전문가였음에도 불구하고 파인은 팩아피를 마치 신경질이 난 아이와 같이 다루었고, 자신들의 규칙을 끊임없이 되풀이하여 얘기하는 요양원 직원들에 대한 맥아피의 냉소적인 태도를 이해했다.
  요양원 직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파인은 맥아피에게 맥주를 제공했으며, <플레이보이>와 같은 잡지를 제공해 주었다. 그는 맥아피의 방에 VTR을 설치하고 가끔 야한 비디오를 빌려와서 람께 틀어보곤 했다. "맥아피는 아직도 여전히 혈기왕성한 젊은 남성이다. 이러한 모든 것은 삶의 질의 중요한 이슈임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맥아피가 보고자 하는 것들은 모두 직원들이 결정하였다. 이 얼마나 허튼소리인가"라고 그는 이야기했다. 한편 또 다른 사람들은 맥아피가 독립적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그에게 보여주고자 했다.
  엔지니어링 릭 라이스는 환경조절 시스템을 개발하였는데, 이것은 맥아피가 그의 목소리를 가지고 요양원의 그의 방에서 전화를 받거나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리모콘을 개발했다.
  독립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사지마비장애우인 컥 체네스호프는 맥아피를 자신의 밴에 태워서 쇼핑하러 가는데 함께 갔었다. 버밍햄의 전미뇌성마비협회의 게리 에드워드는 사회보장서비스를 제공받는 것과 여기서 발전해 사회보장서비스의 대상자에서 어떻게 빠져나가는지에 대한 여러 가지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맥아피의 부모는 전보다 당신의 아들이 더 나은 상황이 되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몇 개월 전, 아들을 보기 위해 대기실에 앉아 있는 동안 어머니인 아멜리아 맥아피는 의학잡지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런데 거기 눈에 띄는 이야기가 하나 있었다. 월트 로런스라는 이른을 가진 사지마비 장애우에 대한 것이었다. 그와 비롯해 인공호흡기에 의존하고 있는 다섯명의 사람들이 요양원을 떠나서 밴쿠버에 자신들에게 적합한 크릭비유 아파트를 세웠다는 것이다.
  그녀의 심장은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아마도 이것이 그녀의 아들이 죽고자 하는 마음을 바꿀 수 있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발코니에 그들 누구나가 접근할 수 있고 산이 바라다 보이는, 각기 자신들의 방을 가지고 있었다. 부엌은 휠체어가 접근하기에 아주 적당하게 만들어져 있었다. 욕실도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었으며, 목욕을 위한 수압은 적당하게 맞춰져 있었다.
  일종의 주부역할을 하는 도우미가 그들에게 고용되어 아파트에 와서 음식 만들기와 청소를 도와주었다. 등록된 간호사가 매일 2시간씩 오는 것이 의무화되어 있었다. 여기에 살고 있는 6명의 사지마비 장애우 모두는 직업을 가지고 있었다. 2명은 금융분야에서 투자에 대한 카운슬러였으며, 2명은 화가였으며, 다른 2명은 컴퓨터 시스템 분석가였다. 이와 관련하여 로렌스는 막 결혼을 해서 이곳을 떠날 예정이었다.
  아멜라 맥아피는 래리 제임스 맥아피 아파트를 짓고자 노력하기로 결정했다. 그녀는 이런 결정이 래리가 다시 삶의 의욕을 갖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그렇게 희망했다. 그러나 여기에 들어가는 돈을 모으는 것이 역시 어려운 일이었다.
  주지사인 조 프랭크 해리스를 만나서 아멜라 맥아피는 크릭비유가 그가 요양원에서 평생을 보내는 것보다 돈이 절반밖에 들지 않는다는 것을 설명하였다. 그러나 이 주지사는 "우리 주는 그렇게 하고자 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계속해서 돈을 모으고자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겨우 몇 백달러만이 개인적인 기부금으로 들어왔다.


 

목소리로 작동되는 컴퓨터

  더 실망스러운 것은 맥아피의 태도였다. "몇몇 사람들을 도와주긴 하겠죠. 하지만 이것이 저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심스러워요. 난 이미 마음을 굳혔어요. 나는 지쳤고 하루라도 빨리 이 세상을 떠나고 싶어요." 알라바마로 이사온 후 석달 도안 그는 계속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러나 부모와 그 자신의 사고방식을 바꾸기 위해 열심히 싸우고 있는 활동가들과 함께 지내면서 맥아피는 조금씩 주저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결정적인 것은 5천 달러 상당의, 목소리로 조종이 가능한 기계였다.
  이와 함께라면 맥아피는 엔지니어로서 자신을 훈련시키기 위해 일을 할 수 있을 것이었다. 밥 스톡웰(캘리포니아 컴퓨터 전문가)는 맥아피에 대한 뉴스를 텔레비전에서 보고 난 후에 알라바마에 날아와서 그를 위한 컴퓨터를 세팅하여 주었다.
  이 컴퓨터는 목소리를 알아듣도록 프로그램화되어 있었다. 맥아피는 단지 말을 함으로써 이것을 끄고 켜며, 여러 가지 많은 과업들을 수행 할 수 있었다. 특별한 소프트웨어와 함께 그는 자신의 머리에 달려 있는 밴드에서 나가는 음파 탐지기와 같은 것을 가지고 컴퓨터 스크린에 그림을 그림으로써 빌딩과 같은 정교한 건축 표현을 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의 머리를 움직임으로써 그림을 그렸다. 그러나 이 컴퓨터가 처음 요양원에 도착했을 때, 요양원 간호사들은 이것을 설치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단지 이 기계가 너무나 비싼 것이었기 때문에 도난의 소지가 많다는 것이 이유였다. 파인의 여러 가지 노력으로 이 컴퓨터는 설치될 수 있었으며, 곧 맥아피는 하루에 몇 시간씩 연습을 하게 되었다.
  이 컴퓨터는 맥아피를 흥분시켰다. 처음으로 그는 죽는 것보다 사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다. 1990년 2월 21일 그가 조지아주 의회에서 연설을 하기 위해 초대되었을 때, 맥아피는 다음과 같은 장애권리 운동가와 같은 연설을 하였다.
  "장애우들에게 국민의료보장제도와 노인의료보험제도 정책은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이것 때문에 나는 관료제도의 죄수와 같이 되었다."고 맥아피는 상원의회의 연단에서 휠체어에 앉은 채 이야기했다. 그는 또 "나는 운명의 포로이며, 운이 나쁜 것이다. 관료들은 장애우들을 위한 인간창고에 돈을 내주고 있으나, 형편없이 무너져 버린 우리들의 삶의 질은 젼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그는 이야기했다.
  맥아피에게 컴퓨터가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는 아직도 또 다른 요양원으로 옮겨지는 것이 예정되어 있었다. 이에 따라 그레디에 있는 ICU로 옮겨지도록 있었다. 파인과 에드워즈와 상담 이후 맥아피는 다음과 같은 것을 문의했다.
  조지아주의 국민의료 보장제도가 그가 요양원에서 생활하는데 필요한 돈을 지불하고 있는데, 이러한 돈이 도우미와 자신이 필요로 하는 다른 지원서비스를 누리며 자신의 아파트에서 살아가는 것 대신에 어떻게 사용되어 왔는가를. 이러한 것은 그의 어머니가 예전에 읽었던 크릭비유의 아파트에 훨씬 뒤떨어지는 생각이라는 것을.
  워싱턴 미국뇌성마비협회의 알란 베르그만은 만약  맥아피가 자신의  아파트에 살게 되면 하루에 2백65달러의 금액이 드는데 반해 요양원에 있게 되면 현재 의료보험에서 하루에 4백75달러에서 6백50달러를 요양원에 지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하루에 2백65달러라는 것은 집에서 사는 것이 더 돈이 적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루에 1백달러로 그를 맡을 순 없다"

  그러나 현재의 의료보험은 요양원에 지불하는 금액에 제한이 있었다. 바로 1990년 4월 10일 이후에는 의료보험이 지불하는 것이 끝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맥아피는 다시 조지아주 의료보장제도의 책임이 될 수밖에 없는데, 여기서는 하루에 겨우 1백 달러 밖에는 요양원에 지불하지 않고 있다. 조지아 주에 있는 모든 요양원은 심한 사지마비 장애우에 대해 하루에 1백달러만을 지급 받으며 돌보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
  의료보장제도를 맡고 있는 직원들은 요양원의 직원들이 그를 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맥아피는 다시 그레디로 갈 것이라고 말하였다. "만약 나를 다시 그레디로 보낸다면 나는 자살할 것이다"라고 맥아피는 말하곤 했다. 그의 부모들과 파인, 그리고 에드워즈는 그의 말이 진심이라고 느꼈다.
  조지아 주에서 장애우가 된 것이 맥아피에게 아주 안 좋은 일이었던 것이다. 미국 의료분야의 지방행정관인 아론 존슨은 조지아주가 홈케어(home care)를 맥아피와 같은 사람들에게 제공하는 것은 엄청나게 비싼 돈이 들어간다고 주장했다.
  그는 요양원에 있는 것이 돈이 적게 든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맥아피는 요양원에서 살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누구도 그렇게 낮은 금액에 그를 맡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맥아피의 어머니인 아멜리아 맥아피는 "죄수들도 이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고 있다"고 불평했다.
  최종기한인 4월 10일이 되었을 때, 맥아피는 아주 어중간한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브리아클리프는 그를 퇴거시켰다. 그러나 그래디 병원은 그를 다시 받는 것을 거부하였다. 또 어느 조지아주의 요양원도 그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맥아피는 마치 방사능 오염물질과 같이 어느 곳에서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맥아피의 새로 찾은 낙관적인 삶은 산산이 부서졌다. 에드워즈는 맥아피를 일단 뇌성마비장애우 그룹홈에 들어가는 방안을 찾았다. 이것은 일시 보호장소로서 조지아주 의료보장제도와 협의하여 일주일이나 2주일 정도 있기로 했다.
  아틀란타로 돌아왔을 때, 맥아피는 새로운 동맹자를 얻었다. 그들은 같은 장애권리운동가들이었다. 맥아피의 국민의료보장제도가 종결되는 4월 10일에, 이 운동가들의 리더인 마크 존슨은 24명의 항의자들을 이끌고 조지아주 국민의료보장제도의 관리자인 아론 존슨의 사무실을 점거하고, 맥아피와 이 주에 있는 다른 중증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한 홈케어 프로그램을 요구하였다.
  "우리는 당신이 우리의 삶을 파괴하는 것을 중지할 때까지 당신의 업무를 가로막을 것" 이라고 마크 존슨은 아론 존슨과의 90분간의 면담에서 이야기했다. 또 다른 항의자들은 알라바마에 있는 맥아피에게 지지하는 내용의 전화를 계속했다. 열흘이 지난 후에 마크 존슨은 12명의 시위대를 이끌고 주지사의 사무실에서 6시간 동안 농성을 했다.
  맥아피의 운명과 관련한 협상이 한 달을 넘어가면서 에드워즈의 조직에서는 맥아피와 그의 도우미를 위해서 너무나 많은 예산을 지불하게 되었다. 그의 조직 성원들은 이러한 자금의 고갈에 대해 투덜거리기 시작했다. 맥아피는 이 때문에 여러 가지 희망을 잃어버리게 되었으며, 의기소침해져서 몇 주 동안 정신 병원 신세를 지기도 하였다. 그러나 맥아피의 곤란한 처지는 언론의 주목을 받았으며, 심지어 부시 대통령까지도 행정부의 담당부서를 통해서 조지아주에 압력을 넣도록 지시했다.
  6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아론 존슨의 화가 누그러졌으며 맥아피는 조지아주의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6월 11일, 맥아피는 휠체어에 앉은 채 앰블런스에 실려서 아우구스트로 보내어졌다. 그리고 한 달 후에 아멜리아 맥아피에 의해서 계획되었던 아우구스트의 새로운 그룹홈으로 옮겨졌다. 이곳은 24시간 계속하여 도우미가 있었고, 맥아피의 접근이 가능한 욕실과 화장실이 있었다.
  그 후 1년 동안, 몇몇 다른 중증장애를 가진 조지아주의 사람들이 이곳으로 이사왔다. 존슨은 이 시설이 전국적인 하나의 모델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하였다. 후에, 조지아주는 중증장애우가 직접 도우미를 고용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수당을 지급하는 새로운 제도를 시작했다. 맥아피는 이제 집안과 밖을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었다. 그는 쇼핑을 하러갈 밴을 얻었으며, 자신의 가족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이 행복하다고, 자신이 희망적인 삶을 영위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계속)

 

글/ 서동명

작성자서동명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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