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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진씨의 취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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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이야기]

 

의진씨의 취업기

 

 

  내려오는 사람과 마주치면 옷깃이 스칠 정도로 계단은 좁았다.
  왼쪽 다리를 대신한 목발에 의지한 채 지하 삼층인 3호선에서 빠져나와 405호인 출판사 사무실 문을 열 때면 아침식사를 든든히 먹었음에도 허기가 느껴졌다. 반층을 오르고 난 의진씨는 깎여진 계단벽에 기대어 선 채 심호흡을 했다. 매일 아침 오르는 이 계단이 오늘따라 더욱 힘겹게 느껴지는 건 자신의 무거운 마음이 보태어진 까닭이라는 생각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 출판사에 입사하기까지 5개월이라는 기간 동안 의진씨는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숱한 사무실의 문을 두드렸다.
  "차후에 연락 드리겠습니다."
  그게 다였다. 기다리다 못해 전화를 해보면 "저희도 김의진씨와 같은 분을 쓰고 싶었습니다만… 이거 안됐습니다"류의 말을 추가로 더 들어야 했다.
  무엇보다 의진씨를 힘들게 했던 건 출근하지 않는 나날들의 아침이었다. 허리며 어깨, 몸 여기저기가 쑤신다면서도 생선비린내 나는 앞치마를 두르고 새벽길을 나서는 홀어머니는 "밥 거르지 말아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두어 시간 후면 여동생이 초라한 옷과 값싼 화장품으로 단장을 하고는 한 켤레뿐인 구두를 신고 출근길에 나선다. 옷과 구두가 너무나 안어울린다는 걸 말해주려다가 그만둔다. 어차피 구두 한 켤레 사줄 형편도 못되는 처지였다.
  의진씨의 대학진학은 어머니의 신앙에 가까운 의지 때문이었다. 어머니 표현대로 "너만은 맘껏 길러보고 싶다"는 어려운 살림에도 불구하고 대학을 졸업했으나 이제는 의진씨가 가족들에게 뭔가를 돌려줘야 할 차례였다.
  그러던 중 한 선배에게 소개받은 곳이 서광출판사였다.
  "나도 알아. 어렸을 때 꿈이 고아원 하나 지어서 불쌍한 아이들 보살피는 거였단 말야. 지금은 뭐 세파에 하도 찌들리다 보니 먹고 사는데 급급하지만 말야. 이래봬도 말야 조금 여유가 생기면 좋은 일도 하며 살거라구." 말끝마다 "말야"를 붙이는 게 습관인 것처럼 보이는 사장은 의진씨에게 꽤 친근하게 다가왔다.
  "뭐 어려운 거 있으면 말야, 나한테 이야기하라구. 내가 말야, 최선을 다해서 도와줄 테니까. 사람은 말야, 어려울 때는 서로 도와야 하는 거란 말야."
  돕는다구? 누가 누굴?
  자신의 고용을 일종의 시혜로 생각하는지를 묻고 싶었지만 의진씨는 그냥 참기로 했다. 그간의 막막한 생활을 생각하면 그나마 일자리를 얻은 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가.
  서광출판사.
  그곳에서 취직이 확정되는 순간 의진씨는 내 인생에도 서광이 비치나 잠깐 생각했었다.
  하얀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가파른 계단을 올라 출근하던 첫날 의진씨에게 맡겨진 일은 의외였다.
  "나도 출판에 뜻이 있어 이 일을 시작하긴 했지만 말야, 당장 책 한 권 내려해도 원고료에 제작비가 만만치 않단 말야. 게다가 잔고 깔리는 건 어떻고. 1억 팔아먹기가 한순간이더란 말야. 울며 겨자 먹기로 이 일을 시작했는데 말야. 좋은 출판기획이나 생각해 두라구. 김의진씨도 이 길로 나섰으니 말야, 어엿한 출판사 주간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어?"
  사장이 울며 겨자 먹기로 한다는 일은 일본 만화를 무단복제해서 내는 일이었다. 번역된 원고를 원본에 맞추어 글자 크기와 모양을 정한 후 사진이 나오면 오려 붙이는 게 의진씨의 일이었다. 제작비를 마련하기 위해 임시적으로 하는 일이라는 데 위안을 가지고 의진씨는 열심히 일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자 사장은 월급봉투를 내밀었다.
  "많이 넣고 싶었지만 받아, 지금 회사 형편이 안좋아서…"
  "고맙습니다."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아들고 보니 봉투 안에는 달랑 50만원이 들어 있었다. 애초 약정된 금액에서 20만원이나 모자라는 돈이었다.
  "저… 사장님, 아무리 그래도 약속된 금액은 주셔야…."
  의진씨의 말이 채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장은 미리 준비된 듯이 말했다.
  "자네 이런 일 처음이라며? 누가 초보에게 제 월급을 다 주나? 대기업에서도 말야, 수습기간에는 80% 밖에는 안나온단 말야."
  초보이기에 70만원이라는 월급을 책정한 게 아니었다고 따지려다 그냥 참기로 한다.
  "그럼, 다음 달에는 제대로 주시는 겁니까?"
  "물론이지. 지금이라도 말야, 회사 사정만 좋으면 전액 다 지불한단 말야."
  이후 두 달을 50만원이 든 봉투를 받았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였다.
  "김의진씨에게 긴히 할 말이 있는데 말야. 지금 회사 사정이 영 말이 아니어서 말야. 이거 어쩌지? 조금만 참아줄 수 있겠나? 내가 사정이 좋아지는 대로 의진씨 월급부터 해결해 줄 테니 말야."
  의진씨로서는 달리 할 말이 없었다. 다만 사장이 약속대로 자신의 월급을 우선적으로 지급해주길 기다리는 수밖에.
  그렇게 시작한 체불은 두 달을 넘기고 석달째로 접어들고 있었다. 직원들이 하나둘 그만두고 사무실에서는 사장과 직원들간의 실랑이로 종종 큰소리가 났다.
  "우리가 이대로 그만둬서는 안됩니다."
  "모두 힘을 모아 돈을 받아내자구요."
  직원들의 움직임이 빨라질수록 사장은 의진씨를 자주 불러들였다.
  "자, 이거… 차비나 하게. 월급은 따로 계산해 줄 테니 말야. 그나마 일손 놓고 있으면 돈은 더 못받는단 말야. 어려울 때 서로 도와야 하지 않겠냔 말야."
  20만원이 든 봉투를 뒷주머니에 넣고 나오는 의진씨를 바라보는 직원들의 눈초리는 이미 심상치 않았다. 하지만 새벽장사 나가는 어머니에게, 혹은 낡은 구두신고 나가는 여동생에게 차비 좀 달라고 하느니 차라리 이게 낫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침부터 사무실은 술렁이고 있었다.
  "사장에게 졸라봤자 아무 소용없어요. 이미 안주려고 작정한 사람인데요, 뭐."
  "강하게 부딪치자구요."
  "어떻게?"
  "노동부에 신고하는 거예요."
  "그러면 받을 수 있어요?"
  "내가 알아봤는데…"
  의진씨는 자리에 앉아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직원들은 의진씨에게 동참할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적대시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들의 분노 어린 대열에서 제외되어 있을 뿐이었다. 사장과 직원들이 대치되는 상황에서 사장 편에 서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다만 차비조로 받은 20만원이 영 마음에 걸렸고 자신의 월급을 우선적으로 지불하겠다는 말을 믿고 싶을 뿐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어느 누구도 의진씨에게 분명한 태도를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면 확실히 임금을 받을 수 있대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해야 해요."
  그때 사장이 들어섰다. 서로 눈짓을 주고받던 직원들은 일제히 자리를 떴다. 우르르 몰려 나가는 그들의 뒷모습을 보면서 코웃음을 쳤다.
  "사람들이 말야, 그래 가지고 돈이 나오나? 일을 해야 돈이 나올 것 아냐? 안그래 의진씨?"
  의진씨는 아무 말 없이 사식 뒷면에 스프레이를 칙 뿌렸다.
  "어? 사무실이 왜 이리 썰렁해?"
  높은 분의 맑은 목소리에 의진씨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토스카나에 벨벳바지를 멋지게 차려입은 여동생 또래의 여자였다.
  "아이구, 우리 공주님이 여긴 웬일이셔?"
  "아빠, 오늘 나 청바지 사주기로 했잖아요."
  "그래 말야, 원 녀석, 그것 때문에 여기까지 왔어?"
  "늦잠 자느라 아빠 나가는 걸 놓쳤잖아. 빨리 돈줘요. 나 강의시간 늦어."
  "알았다. 알았어."
  지갑에서 돈을 꺼내던 사장은 의진씨를 의식해서인지 딸의 토스카나 주머니에 찔러 넣어주었다. 눈치 없는 딸은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들었다. 십만원짜리 수표였다.
  "에이, 아빠! 이거 갖고 어떻게 청바지를 사라구? 빨리 하나 더 줘요."
  순간 사장과 의진씨의 눈이 마주치자 의진씨가 먼저 고개를 돌렸다.
  "그것만 갖고 가."
  "아빠는 청바지 값도 몰라? 이걸로는 청바지 다리 한 짝밖에 못사겠다. 뭐."
  "얘가 말야. 너 이리 들어와!"
  사장은 짐짓 화를 내며 딸을 사장실로 데려갔다.
  의진씨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책상 옆벽에 기대어 세워둔 목발을 집어들고 가파른 계단을 딛으며 지하다방까지 단숨에 내려갔다.
  "어머, 오늘은 일찍 나오셨네요?"
  전혀 낯이 선 종업원이 반갑게 맞았을 뿐 직원들은 거기에 없었다.
  "어디로 갔을까?"
  옆건물 2층에 위치한 커피숍으로 갔다. 거기에도 직원들은 없었다. 다시 내려와 거리의 간판들을 훑어보았다. LG마트, 명보당, 매일분식, 진미우동, 원조설렁탕, 낙양반점, 샤갈, 모차르트…
  강한 아침햇살이 간판에 반사되어 눈이 부셨다.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처음부터 돈 20만원에 사장 편에 서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난 그저 가만 있었을 뿐인데 상황은 왜 이렇게 엉클어지고 만 것일까?"
  의진씨의 머릿속만큼이나 걸음걸이도 빨라졌다.
  "지금 내게 다가오는 것들은 배려인가, 제외인가, 소외인가, 목발, 이게 문제였을까? 사장은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고려해 나를 고용했는지도 모른다. 직원들 역시 사장의 의도를 알았기에 나를 채근하지 않았고…"
  콘트라베이스, 롯데리아, 가든카페, 고메이커피숍, 골드타임, 그때거기, 다사랑, 캐피탈… 그들이 갈 만한 곳이라면 모두 들어가 보았다.
  "도대체 왜들 이래? 내 목발이 뭐가 어떻단 말이야?"
  장애를 극복하기 위해 특별히 노력을 한 적은 없었다. 오히려 의진씨는 장애극복이니 인간승리이니 하는 단어들을 그리 기분좋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서 장애란, 목발이란, 평생 함께 해야 할 밥숟가락 같은 것이어야 했다. 그저 평범하게 무난하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침묵하지 말았어야 했어. 돈 20만원에 담보된 것이 무언지 확실히 짚고 넘어갔어야 했어. 그게 내 잘못이자, 실수야."
  어느새 의진씨의 몸은 땀으로 흠뻑 젖어들었다.
  "어? 김의진씨!"
  직원 한 명이 먼저 의진씨를 알아보고 손을 들었다.
  "우리가 여기 있는 거 어떻게 알고?"
  다른 직원이 옆 테이블에서 의자 하나를 끌어당겨주며 반갑게 말했다.
  "그게 말예요."
  무슨 말을 할까 망설이던 의진씨는 미간을 찌푸리며 사장의 말을 흉내냈다.
  "어려울 땐 서로 돕고 살아야지 말야!"
  그러자 직원들이 받아 넘겼다.
  "그래 말야!"
  "말야, 말야!"
  "우하하! 말야 말야!"
  참으로 오랜만의 웃음이었다.

 

글/ 한광주 (동화작가)

작성자한광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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