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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칠수의 불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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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너 이리 나와!"
어둠 속에서 담배꽁초가 빨간 점을 그으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둘러선 사내 넷이 한꺼번에 몰아쉬는 거친 숨소리가 밤의 잠듬을 훼방놓고 있었다.
어둠이 한줄기 바람으로 저항했다 바람으로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 넘기며 지목을 당한 한 사내가 쭈빗쭈빗 앞으로 나섰다.
"저∼저 말입니까? 형님"
"그래 이 새끼야!"

가차없이 다칠수씨의 발길질이 허공을 갈랐다. 둔탁한 파열음이 터졌다. 사내가 억- 소리를 내지르며 명치끝을 부여잡고 땅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짧은 침묵이 어둠과 합세해 둘러선 나머지 두 사내를 덮쳤다. 두 사내가 겁먹은 눈길을 주고받으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달빛을 등지고 다칠수 씨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 다가섰다. 안면근육이 분노로 심한 경련을 일으키고 있었다.
"너 이 새끼야! 어디서 굴러먹다 온 말 뼈다귀야, 너 때문에 일을 그르쳤잖아, 야, 누가 너를 손님으로 초대했어? 이빨 있으면 까봐 이 새끼야!"

다팔수씨의 오른발이 넘어진 사내의 목덜미를 마치 담배꽁초를 비벼 끄듯 짓이겨댔다. 사내가 헉, 헉, 가쁜 신음을 토해냈다.
"혀 형님..잘못... 잘못 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처음.."
"이 새끼가 누굴 도라이로 아나, 감히 누굴 속이려고 그래, 분명히 대답해 이 새끼야! 너 빨갱이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빨간 물이 든 빨갱이가 분명하지, 틀림없어 빨갱이를 치는데 수수방관하는 놈은 모두 다 빨갱이야 새꺄. 야! 너희들 이 새끼 밟어.

다칠수 씨가 찍- 침을 뱉었다. 다음 순간 건물 담벼락의 긴 그림자가 공포에 짓눌려 사지를 부들부들 떨어대는 사내를 품에 안았다. 어둠이 극심한 고통의 비명을 내지르며 선잠을 깨어 부스스 일어났다.
회사는 새벽안개에 감싸여 막 희뿌옇게 밝아오기 시작한 아침해를 머리에 얹고 서 있었다. 족히 3미터는 되지 싶은 빨간 벽돌로 쌓아 올린 건물 외벽이 미처 그림자를 거둬들이지 못한 채 이슬에 젖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칠수씨는 잠시 멈춰서 서 심호흡을 한 다음 옷매무새를 점검했다. "야유회"를 치른 복장  치고는 비교적 말끔했다. 점퍼 팔 소매에 핏자국이 빨간 장미꽃 잎새처럼 한 점 박혀있을 뿐이었다. 다칠수 씨는 철문에 다가서서 신경질적으로 벨을 눌렀다. 외등에 박힌 전구가 파르르 떨고 있었다. 곧 자동문이 징- 소리와 함께 열렸다. 다칠수 씨는 성큼 문 안쪽으로 발을 디뎠다. 경비를 서고 있던 요원 두 명이 무표정한 표정으로 기계적인 경례를 올려붙였다. 다칠수 씨는 양미간을 찌푸려 인상을 그어 그들을 일별 했다. 현관으로 들어서자 사원 몇 명이 대기하고 있다가 그를 막았다. 그 중 장 이 앞으로 나서며 또박또박 말을 건네 왔다.

"부장님이 걱정하고 계십니다. 혹 일이 잘못 되지는 않으셨습니까? 후속조치를 취할 일이 있으면 지금 말씀해 주십시오"
"없어"
다칠수 씨는 짧게 말을 끊었다. 다칠수 씨는 등을 돌려 엘리베이터 앞으로 다가가 벽에 기대듯이 팔을 뻗어 버튼을 누르고 잠시 그 자세로 서서 생각을 가다듬었다. 등뒤에서 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부장님께서 과장님 들어오시면 곧바로 부장 실로 들르라는 전갈을 주셨습니다. 그럼 저희들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과장님"

박자를 맞춘 발소리를 뒤로하고 다칠수씨는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차가운 금속 벽에 기대어 층을 표시하는 앙증스런 빨간 숫자를 헤아리던 다칠수 씨는 불현듯 화가 나서 중얼거렸다.
"개새끼 누굴 물 먹일 일 있어, 어디서 뻔히 아는 수작질이야, 야! 김성진 이 새끼야, 암만 그래봤자 소용없어, 내 입에서 선배소리 들으려면 임마 수작부리지 말고 가만히 있어, 쌍! 작살내기 전에..."
다칠수 씨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으르렁거렸다. 부장의 희멀건 한 상통이 눈에 다가왔다가 사라졌다. 다칠수 씨는 순간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몇 시간 전에 치른 "야유회" 장면이 방금 본 영화 화면처럼 생생하게 떠 올려졌다.

복면을 하고 쳐들어가 본때를 보여준 것까지는 좋았다 치고 쑤시고 짓이기며 닥치는 대로 사람이건, 물건이건, 부수는 과정에서 다칠수 씨는 그동안 한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진한 희열감까지 맛볼 수 있었다. 마치 춤추기를 시작한 무희가 춤을 추다 절정에 이르면 그 동작은 이미 단순히 춤추는 동작이라고만 할 수 없듯이 다칠수 씨의 치고 부수는 동작도 고비를 넘기자 더 이상 폭력이 아닌 그 무엇이라고 그 와중에서도 그는 애써 자위까지 했을 정도였다. 형언할 길 없는 적대감을 터뜨리는 와중에서 싹튼 쾌감은 그래서 몸 떨리는 흥분 그 자체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데 그 망할 놈의 새끼가 이 모든 것에 찬물을 끼얹어 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애초부터 멍청한 싹수가 보인 지식이었다. 그 망치라고 불린다는 그 새끼는 멀뚱히 서서 가관이게도 몸까지 떨어대며 안절부절 정신을 못 차리는 거였다. 그러더니 막판에 가서 이 새끼가 한다는 짓이 겨우 계집년 한 명을 붙잡고 씨름을 벌이는데 그가 언 듯 쳐다보니 도리어 뺨을 한 대 얻어맞았는지 맥없이 얼굴을 감싸며 뒤로 물러서는 것이었다.

다칠수 씨의 화가 폭발한 건 구 순간이었다. 경황이 없는 중에서도 도저히 묵과할 수 없었다. 달려가서 계집년의 가슴팍을 "이 빨갱이 년!"이라는 고함과 함께 발로 내질러 쓰러뜨리고 돌아서서 "야 이 새끼야!, 그 망치자식을 정신차리게 만든다는 것이 그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어느새 쓰고 있던 복면을 벗어든 자신의 손을 발견하고 아차! 했을 때는 이미 엎질러진 물의 상태가 돼버렸다. 저쪽 책상 귀퉁이에서 고꾸라져 있던 한 사내가 끙끙대며 매서운 눈길로 자신을 주시하고 있었다. 방금 그가 쓰러뜨린 계집년도 빤히 자신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다칠수 씨는 황급히 복면을 다시 뒤집어썼다. 하지만, 직감으로 자신의 얼굴이 이미 저들의 눈에 각인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섬뜩하게 확인해야했다. 그걸로 끝이었다. 그 후에 벌어진 일은 한마디로 엉망진창이었다. 제발 내 얼굴을 잊어버리라고 소리치며 다시 한번 미친 듯이 폭력을 휘둘러 댔지만 숨통이 끊어놓지 않는 이상 그 바램은 어림 반푼 어치도 없는 일방적인 그의 요구일 뿐이었다.

다칠수 씨는 천천히 생각을 모아 헤아려 보았다. 내일쯤, 아니 빠르면 오늘 저녁 석간 신문에 테러사건의 범인이라는 큼지막한 활자와 함께 자신의 몽타주가 대대적으로 실릴 것이다. 신변의 위협보다는 자신이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범했다는 사실에 더 울화통이 터졌다. 이 무슨 망신인가! 다 그 망치라는 자식 때문이다. 아니, 그 망치 새끼를 이번 일에 붙여준 부장 새끼가 더 나쁜 자식이다. 능구렁이 부장은 이미 파악하고 있었을 것이다. 망치 새끼가 형편없는 놈이라는 것을,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이 미리 치밀하게 계획된 수작이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근래 보기 드문 똘마니라고 게거품을 물더니만 결국은 이 다칠수 씨를 물 먹이기 위한 수작이었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다칠수 씨는 화가 치밀어 올라 엘리베이터 벽을 주먹으로 내질러 갈겼다. 쿵, 하는 진동음이 밀폐된 공간에서 둔 중하게 몸을 떨어댔다.

그러나, 결코 이대로는 주저앉지 않을 것이다. 다음 순간, 다칠수 씨는 새삼스럽게 자신에게 다짐했다.
부장 방은 건물 맨 위층 12층이었다. 장이 전해준 곧바로 부장 실로 들르라는 전갈을 다칠수 씨는 무시하기로 마음먹었다. 대신 그의 방이 있는 10층에서 다칠수 씨는 엘리베이터 문을 열었다. 카펫트가 깔린 복도가 드문드문 박힌 전등 아래 길게 누워 있었다. 다칠수 씨는 복도를 가로질러 1005호 그의 방문 앞에 서서 호주머니에서 열쇠 꾸러미를 꺼내 문의 아가리에 쑤셔 넣었다. 손잡이를 돌리고 기대듯 문을 밀자 어둠이 흑, 달려들었다. 다칠수 씨는 왼쪽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찾아 불을 켰다. 문을 막아선 상태로 한동안 버티고 서서 그는 형광등 불빛 아래 드러난 눈에 익숙한 방안의 정경을 노려보았다. 갈아입을 옷가지며 철제 서류금고, 그 위에 올려놓은 몇 권의 책, 그리고 그가 침입자를 경계하여 책상 위에 일부러 흩트려 놓은 서류 몇 점이 그가 방을 비웠던 그 당시의 상태대로 널려져 있었다.

그는 방 구석구석에 눈길을 주어 다시 한번 침입자가 없었음을 확인하고 천천히 갈아입을 옷이 걸려있는 오른쪽 벽으로 다가섰다. 걸치고 있던 점퍼를 벗어 들었다. 점퍼를 옷걸이에 걸고 셔츠 위에 넥타이를 정성 들여 매기 시작했다. 짙은 청색의 천 자락이 그의 가슴팍에서 춤을 추었다. 넥타이를 반듯하게 매고 나자 그는 회색 양복 윗저고리를 집어 걸쳐 입었다. 그런 다음 거울 앞으로 다가가 옷매무새를 점검했다. 단정한 차림이지만, 피로에 지친 기색이 역력한 한 사내가 이쪽을 주시하고 서 있었다. 다칠수 씨는 한참을 멍한 표정으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그는 비로소 긴 한숨을 토해냈었다. 긴장에 짓눌려 수축돼 있던 온몸의 근육이 한꺼번에 풀어져 달아나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몹시 허탈했다. 약간의 어지러움 속에서 다칠수 씨는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자문해 보았다.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는 절박감이 밀려들었다. 어쩌면 부장이 사태를 무마시켜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그는 잠깐 가졌다. 그러나 곧 다칠수 씨는 고개를 저었다. 부장에게 고개를 숙이다니, 그런 굴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모가지가 짤리는 편이 낫다. 다칠수 씨는 어금니에 힘을 주어 가만히 입술을 깨물었다.

다칠수 씨는 몸을 돌려 의자로 다가가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창문너머로 아침햇살이 비껴들고 있었다. 햇살 속에서 가느다란 먼지 입자가 춤을 추고 있었다. 눈이 부셨지만 왠지 따스한 느낌이 전해오는 것 같아 그는 애써 눈을 부릅뜨고 햇살 저편 하얀 해를 쳐다보았다. 생각 같아서는 가슴을 열어 가득히 해를 품에 안고 싶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 마음이 좀 진정되는 듯 했다. 뒤통수를 파고드는 불안감을 어느 정도 떨쳐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계속)

이태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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