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지민의 테마에세이] 나를 찾기 위한 여행길에 선다. > 문화


[채지민의 테마에세이] 나를 찾기 위한 여행길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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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이 오면 눈이 옴을 감사드리기로 했다.

비가 내리면 비가 내림을, 바람이 불면 바람이 찾아옴을, 햇살이 따사로우면 그 햇살의 반가움을,

밤이 찾아들면 그 시간의 숨겨진 안식을, 편지가 날아들면 보낸 이의 정성을,

전화벨이 울리면 나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의 소중함을, 허기짐을 지워 주는 한 숟가락의 음식에게도,

마음의 상념을 있는 그대로 내보여 주는 담배 연기에게도, 들리는 음악의 선율에도,

내가 앉아 지낼 수 있는 공간이 있음에도 감사를 드리기로 했다.”

 

 

 

사소한 일에도 감사드리며 살아가는 연습을 한다. 그냥 스쳐 지나가도 모를 만한 작은 일까지 다시금 떠올리면서, 그렇게 이루어지게 된 모든 것에 감사를 드리고자 노력을 계속한다.

세상 전체가 폭설에 뒤덮이고 꽁꽁 얼었던 지난겨울, 한 번도 두터운 빙판길에 미끄러져 넘어진 적 없었다는 사실에 감사드린다. 먹고 싶은 것이 문득 떠올라 찾아간 슈퍼마켓에, 유효 기간이 넉넉한 밑반찬과 음료수가 자리잡고 있었음도 감사드린다. 무심코 켜 보았던 TV에서 늦은 밤까지 영화 한 편이 방영되고 있을 때, 한 번쯤 보고 싶었던 그 작품을 통해 적적한 나의 시간이 채워질 수 있음을 감사드린다.

 

소중한 이들이 내 마음 가까운 곳에 머물고 있음을 감사드린다.
화목한 나의 가정과 형제들의 집안이 평안함, 가깝고 먼 자리에서 묵묵히 오늘을 살아가는 벗들이 이 땅에 함께 하고 있다는 걸 감사드린다. 연락처를 알지 못해 만날 순 없지만, 나의 기억 속에 아련한 추억과 향수를 선사해 준 지난 시절의 모든 이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어디에서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을까? 미움도 서운함도 잠시 지워 보며, 떠올리는 얼굴들이 아직도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고 있음에 감사를 드린다.

 

이렇게까지도 나를 편안하게, 또는 아프게 만드는 음악들이 내 공간에 흐르고 있음을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세상 모두를 가진 듯이 즐거울 때도, 지워지지 않는 외로움을 어쩔 수 없이 느껴야 할 때도, 목표로 삼았던 무언가를 이루어 냈을 때도, 원고 적는 일에 파묻혀 있다가 밤이 깊었음을 문득 깨달아야 할 때 역시도, 그럴 때마다 찾아 들을 수 있는 각각의 음악들이 테이프와 CD에 담겨 내 곁에 함께 하고 있음을 감사드린다.

언제든지 편하게 품에 안을 수 있는 클래식 기타가 곁에 있음을 감사드린다. 생각의 흔적과 마음의 움직임을 있는 그대로 기록해 주는 컴퓨터와 두툼한 메모지, 색색의 펜들과 문구류들이 손길 닿는 곳에 자리잡고 있음을 감사드린다. 내 육신이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음에, 허기를 메울 수 있는 음식이 있음에, 갈증을 덜어 주는 음료들이 작업 공간 어딘가에 보관되고 있음에 감사드린다.

 

옷가지를 빨아 빨랫대에 널어놓을 수 있음에, 그 빨래들을 비춰 주는 태양이 따사롭게 살아 있음에, 문득 쳐다볼 때마다 내 발길을 멈추게 만드는 달과 별들이 밤하늘에 촘촘히 박혀 있음에, 이웃집 아이들의 울음소리와 웃음소리가 일상의 공간 안에 함께 하고 있음에 대해, 내 마음은 소박한 감사함을 습관처럼 불러들이게 된다.

 

누른 번호를 통해서 내 목소리를 전달할 수 있는 휴대전화가 어딘가에 있는 그들의 손 안에 쥐어져 있음에, 언제 어디에서도 듣고 싶은 노래를 손쉽게 들을 수 있는 조그만 녹음기가 내 주머니에 담겨져 있음에, 남기고픈 장면들을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기록할 수 있는 카메라가 언제나 가방 안에 모셔져 있음에, 나의 오늘은 감사드리고 싶다는 한마디를 전하고 또 전달한다.

 

잔고도 없는 통장이지만, 그래도 잔액 조회 화면에 찍혀지는 몇 개의 단순한 숫자가 나로 하여금 오늘 아닌 내일을 바라보게 만든다. 최선을 다해 발표한 작품집이 2쇄, 3쇄를 거치며 재판에 들어간다는 담당자의 고마운 연락에 늘 감사를 드린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독자들이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서 내 숨결을 함께 느끼고 있음에 진정으로 감사드린다. 새로운 원고를 부탁하는 이들이 나를 잊지 않고 찾아 줌을, 원고지를 채워 가는 기간 내내 감사드린다.

 

모든 일과를 마치고 맥주 한 모금 시원하게 들이킬 수 있는 나의 나날이 존재함을, 하나의 연결 고리처럼 각각의 자리에서 노력하며 살아가는 이 사회의 모든 이들에게도 감사를 드린다. 그렇게 피곤함을 가득 지니고 잠자리에 들게 될 때, 내일의 태양을 기약하며 잠을 청할 수 있는 일상의 흐름에게도 남겨진 감사를 남김없이 모아드린다.

한숨으로도 모두를 채울 수 없었던 지난 시절이 있었다.

모든 것이 회색으로만 보이던 시절이었다. 해답이 있었지만 그 해답은 내 힘으론 어쩔 수도 없는 머나먼 곳에 있었고, 그 해답마저 사라져 버렸음을 어쩔 수 없이 인정해야 했던 시절이었다. 아침해가 떠오른다는 것마저 저주스러웠던 시절이 있었던 것이다.

당시의 내 마음에선 내일의 계획이나 희망이라는 건 배부른 자의 넋두리일 뿐이었다. 즐기던 술과 커피도 쓰기만 했고, 담배는 매연, 음악은 소음이었다. 책은 종이뭉치였고, 벗들과의 만남은 한숨만이 탁자 위를 맴도는 하소연의 메아리였다. 무엇을 위해 발버둥치며 내 인생을 지켜왔던가......?

 

나는 그 해답 마저 잊혀지는 걸 그저 바라보기만 할 뿐, 내젓는 손길마저 허망하기만 했던 생존의 그늘을 견디고 있었다. 무엇을 어떻게 풀어가야 한단 말인가.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 이외의 대안은 보이지도, 찾을 수도 없었다. 모든 원인과 결과를 내 안에서 찾기로 했다. 외적인 부분에 이유를 대기엔, 나 자신의 헝클어짐도 그 한도를 넘어서고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이 잘못이었던가? 왜 그렇게 되어야만 했을까? 이게 아닌 저 길로 접어들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그런 방법을 사용하는 게 합당한 일이었을까? 그 길이 진정한 나의 길이었다면, 진정으로 나의 최선을 다한 노력이 뒤따랐던 것일까?

신 앞에 서서 고해성사를 바치기 이전에, 나는 "나"와 "내"가 먼저 화해의 악수를 나눠야만 했다.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불일치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했다. 나를 응원해 줄 수 있는 건 결국 나 자신이 아니었던가. 마지막 순간까지 내가 믿어야 할 것은 오로지 나 하나뿐이었던 것이다.

 

상처뿐인 어제를 안고 원점에 다시 섰다. 빈손으로 그 자리에, 조금 지나쳐 간 게 아니라 아예 보이지도 않는 저편까지 밀려왔지만, 그래도 더 늦어지기 전에 내 손과 발로 방향 잃은 브레이크 페달을 힘껏 눌러야만 했다. 향수만 간직하며 지난 날을 감싸안거나 지워버리기엔, 내 그림자의 본래 빛깔이 너무도 푸르른 색이었다는 걸 잊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먼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하지 않았던가. 생존의 길목 위에 어지럽게 흩어놓았던 발자국들을 뒤돌아 보며, 내 앞의 흔적만큼은 원하는 길 그대로의 일직선으로 만들 일만 남겨져 있으리라 굳게 믿는다. 늘 마음속으로만 긍정했던 몇 마디의 명언과 명구들, "일을 어떻게 시작할까 생각하는 동안 그 일의 시작은 너무 늦어진다". 라든가," 과거밖에 확실한 것이 없다". 등등의 말씀들을 이젠 겸허하게 실천하는 일만 남았다는 걸 스스로가 인정한다.

 

모든 것을 불만으로 바라보던 순간들을 뒤집어 생각하기로 했다. 모든 것에 감사하기로, 보다 나음을 인정하고 보다 열악함을 받아들이며, 부족한 게 무엇임을 직시하고 그 해결책이 무엇이며 어떻게 이뤄야 하는 건지를 해답 그대로 실천하기로 했다. 수도 없이 내지르던 한숨을 고개 끄덕거림으로 하나씩 바꿔 나간다는 것 - 그건 이전의 내게 없던 무엇을 요구하는 어려운 작업임에 틀림없었다. 하지만 그만큼의 시간이 이미 과거로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이젠 하지 않으면 안 될 과제가 되어버렸고 다짐해야 할 일이었다.

 

눈이 오면 눈이 옴을 감사드리기로 했다. 비가 내리면 비가 내림을, 바람이 불면 바람이 찾아옴을, 햇살이 따사로우면 그 햇살의 반가움을, 밤이 찾아들면 그 시간의 숨겨진 안식을, 편지가 날아들면 보낸 이의 정성을, 전화벨이 울리면 나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의 소중함을, 허기짐을 지워 주는 한 숟가락의 음식에게도, 마음의 상념을 있는 그대로 내보여 주는 담배 연기에게도, 들리는 음악의 선율에도, 내가 앉아 지낼 수 있는 공간이 있음에도 감사를 드리기로 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닌, 내게 결핍되었던 게 무엇이었는지를 알게 되었기에, 이젠 그대로의 삶을 꾸려가고 싶다는 의미이다.

 

내가 내딛는 그 발길에 의해 누군가를 아프게 하는 일이 없기를, 누군가의 한숨을 만들어 내는 잘못이 없기를, 누군가의 눈가를 찌푸리게 만드는 결례가 없기를 바라며, 내 안에서 나를 살려내고 사랑할 수 있는 길로 걸어가기로 했다.

 

꿈만으로 견디기엔 우리네 인생이 너무도 푸르기만 한 까닭이다. 어쨌든 우리의 삶은 한 번이 아니었던가. 윤회설에 따라 다시 태어난다 해도, 지금의 이름과 이 자리를 지니고 사는 것은 어차피 한 번일 뿐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다 해서 내일이 오늘과 같아야 할 이유는 없는 일이다. 새로운 신발로 갈아 신듯이, 새로운 자리로 이사하듯이 지금까지의 "나"와 오늘의 "나"는 영원히, 또는 잠시 이별을 고하는 의식을 거행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내려진 결론까지도 감사드리겠다는 겸허함까지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누가 말했던가. "내일에는 또다른 태양이 떠오른다고." 그 말 역시 명언일 수밖에 없는 모양이다. 내일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가 삽십하고도 몇 년..... 나 역시도 나 자신만 바라보지 못했던 것이다.

 

 글/ 채지민

 

작성자채지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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