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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지민의 테마에세이] 자기만의 시를 쓰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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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저곳에서 청탁 비슷한 걸 받으며 글을 쓰지만, 개인적으로도 공적인 이유 때문에 원고를 부탁해야 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하나의 기준을 가지고 움직이곤 한다. 전문적으로 활동하는 문인이 아니라, 글을 적고 싶어하는 일반 독자들에게 원고를 권유하는 것이다.
본인 역시 그 혜택을 받은 사람 중 하나였겠지만, 매년 수십 명 이상 쏟아져 나오는 문인들의 경우 데뷔작이 곧 유작(遺作)으로 끝나 버리는 현실을 주변에서 많이 접하곤 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에 모든 것을 걸었다가, 정작 문인 자격을 갖고 난 뒤의 심적 부담감 때문에 펜을 잡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 하지만 ‘시인’이나 ‘작가’라는 직함에 만족한 채 입과 행색으로만 문인 행세를 하고 다니는 또 하나의 경우가 많은 것 역시 사실이다.
한 편의 시를 쓰고 가다듬기 위해 얼마나 오랜 밤들을 애태웠던가 기억한다면, 글을 쓴다는 일 역시 만만한 작업이 아님은 분명하다. 하루하루의 시청률에 희비가 엇갈리는 방송작가들, 독자의 평가에 따라 즉시 내리막길로 내몰리는 일간지 연재작가들, 1년 이상 치열하게 매달린 장편의 소설이 출간되지도 못한 채 창고 먼지만 덧씌워야 하는 열악한 출판계의 현주소 등등.
글을 업(業)으로 삼고자 희망하는 사람을 만나면 개인적으로는 극구 만류를 한다. 글만으로 생활이 되는 작가는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라는 현실을 모르면서 막연히 동경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얼마간 이름이 알려지면 모두 유명 작가의 대열에 오르고 명예만큼의 부가 따른다고 생각하는 게 보통이지만, 대중적으로 꽤나 알려졌다는 주변 인물들도 하룻밤 술값 걱정에 속앓이를 해야 하는 건 매일반이다.
내가 일반 독자들에게 원고를 청탁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수필이든 짧은 편지의 글이든, 자기 글이 처음으로 대중매체에 활자화되던 순간처럼 기뻤던 체험이 없었음을 기억하기 때문이다. 혹시나 내 글이 실렸을까 싶어, 서점의 책들을 일일이 뒤적거리다가 한숨만 짓던 시절…. 문학 준비를 하던 처음 몇 년간의 시간은 매달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것으로, 씁쓸히 집을 향해 발길을 돌리던 그림자의 나날이었다.
최근 들어 독자의 원고를 수록하는 잡지들이 늘어나면서, 다양한 화젯거리와 사연이 출판물 내용을 채우고 있다. 긍정적인 일이다. 자기가 보는 잡지에 자신의 글이 실릴 수 있다는 것, 그건 실려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소박하고 아름다운 기쁨이다. 내 글이 어디어디에 나왔다고 친구들한테 전화 한 통 건넬 수 있는 설렘의 마음 자체가 삶의 활력소로 남기 때문이다.
가까운 문인 선후배와 동료들에게 부탁할 원고를 일부러 독자들에게 요청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문맥이 맞지 않거나 뚜렷한 주제가 없는 경우도 많지만, 약간의 첨삭을 부탁해서 완성을 짓고 지면에 옮긴다. 그리고 그들에게 전화를 건다. 책이 나왔다고. 좋은 원고를 주셔서 감사드린다고.
모든 운동 경기에서 알 수 있듯이 프로와 아마추어, 즉 전문가와 애호가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하루종일 같은 일에 매달리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뛰어난 건 당연한 일이다.
그렇지만 일반 독자들의 원고에는 순수한 삶의 내음이 전해진다. 일부러 꾸미려 해도 꾸며지지 않는 향기, 화장에 덧씌워진 중년의 얼굴보다 청소년들의 여드름 가득한 얼굴이 생기 있게 보이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시를 쓰고 싶어하는 이들은 많이 있다. 소설을 쓰고 싶다고 개인적으로 문의하는 분들도 자주 접하곤 한다. 나름대로 터득한 비법은 한 가지뿐이다. ‘쓰세요. 계속 쓰세요. 꾸준히 쓰다 보면 자기만의 문체와 색깔이 나옵니다. 그때까지 열심히 써 보세요.’그게 답의  전부다.
허망한 말장난 같지만, 내게 있어서 그것 이상의 정답은 없었다. 단번에 달려갈 지름길을 원한다면 남의 글을 적당히 베끼며 문체를 따오는 방법도 있겠지만, 문학은 정신의 예술이지 껍데기에 가려진 상업성의 물건이 아니기에 권장할 수가 없는 일이다.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가 되겠다고 굳게 다짐한 어느 젊은이가, 1년 내내 집안 구석에 앉아 어떻게 하면 최고가 될까 하며 고민만 하고 있다면 어떻게 될까? 축구 선수가 되기 위해선 잔디밭이든 자갈밭이든 일단 공을 차며 움직여야 한다. 머리로 받고 가슴으로 받고 발끝으로 차며 뛰는 연습이 반복되어야만, ‘축구’라는 세계에 대해서 체험적인 눈을 뜨게 되는 것이다. 축구뿐만 아니라 모든 경우가 똑같다.
흔한 농담처럼 어릴 때 글짓기 상장 하나 안 받아 본 사람은 없다. 비록 의무적이었다지만 일기도 꼬박꼬박 적었고, 한창 사춘기 홍역을 앓았을 땐 싯구절 몇 줄은 입에 달고 지냈다. 누구나 시인이 된다는 사랑의 열병에 빠지며, 슬픈 노랫말에 아파하고 포근한 차 한 잔에 안식을 갖던 시절…. 누구나에게 똑같은 기억은 남겨져 있는 법이다.
지금 그대에게 원고를 청탁한다면 무엇을 쓰겠는가. ‘시 한 편 부탁드립니다’, ‘생활에 관련된 수필을 원고지 10매 분량으로 써 주십시오’라고 연락이 닿는다면, ‘원고지 20매 내외로 짧은 사연을 적어 주시겠습니까?’에 대한 대답은 무엇일까. ‘제가 어떻게…’, ‘자신 없어요’, ‘전 글을 못써요…’라며 거절하는 게 상책일까?
소설에 대한 주제와 소재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대해 질문 받으면, 나는 늘 이렇게 대답을 한다. ‘소재와 주제는 사람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엔 그 사람만의 장편소설이 인생의 이름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라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어느 글을 읽었을 때 특정 부분에 공감이 간다면, 그건 자기 안에 간직되어 있던 어떤 부분과 일치되기 때문이다. 개개인 가슴 안에도 희노애락의 모든 편력들이 담겨져 있다. 다만 글을 쓰는 사람은 그것을 활자로 풀어내고, 독서로 읽는 사람은 타인의 인생과 문장에 감동이나 궁금증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자기만의 글을 쓰자고 제안하고 싶다. 자기만의 시, 자기만의 수필, 자기만의 언어는 활자화되지 않은 채로 마음 가득 고여 있기 마련이다. 글을 쓰는 작업은 자신을 비우는 작업이고, 그 글을 읽고 고치는 일은 자기를 반성하며 빈 자리에 새로운 ‘나’를 채우는 과정이다.
소재나 주제는 무궁무진하다. 바로 자기 자신이 소재이자 주제가 된다. 작품의 주인공이자 상대역이 되는 것이다. 글을 적는 시간은 자신과의 대화를 나누면서 삶을 고백하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대안을 찾아내는 작은 기도이기도 하다.
남들이 이러이러한 글을 적는다고 따라할 필요는 없다. 구태여 시는 짧은 몇 줄짜리 글이라고, 소설은 반드시 길어야 하며, 수필은 펜이 가는 대로 써야 된다는 한계를 정해둘 필요도 없다. 자기만의 글은 자기만의 장르이기에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할 이유도 없는 것이다.  배가 고프면 배가 고프다고, 창문을 열고 싶다면 창문을 열어야 하는 상황을 풀어 놓으면 된다.
그렇게 직접 펜을 들고 앉았다면, 자신이 작가이자 독자가 된다. 스스로 평가를 내리다 보면 자기의 한계가 무엇인지, 어떻게 풀어야 하며 어느 부분이 잘못된 건지가 보여질 것이다. 자기의 마음을 열어 놓고 바라다보는 글쓰기 작업은, 아픈 부분을 덧나게 하는 만큼이나 순수한 자기 고백이다. 그렇게 내면을 바라보는 과정이 반복되고 쌓여질수록 보다 성숙해지는 문장과 정신을 느끼게 될 것이다. ‘내게 이런 능력이 있었구나!’하는 감탄사도 떠오를 것이다.
그 다음엔 가까운 누군가에게 보여 주며, 제3자의 평가와 시선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과정을 이어가면 된다. 자기의 단점과 장점을 거꾸로 단정짓는 실수도 고쳐질 것이고, 눈에 보이지 않던 오류나 어색함도 조금씩 사라질 것이다. 장점은 살리고 단점에 주의하면서, 문장으로 고백하는 삶의 언어들은 하나씩 알차게 여물어 가게 될 것이다.
자신의 손길이 원고지 위를, 또한 똑바로 응시하는 시선이 컴퓨터 모니터 화면에 맴도는 시간이 길어진다면, 생각지도 않았던 전화벨이 갑자기 울리게 될지도 모른다. 낯선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대의 이름을 부르며 한 마디를 전할 것이다. “어느 분이 소개를 해 주셔서 연락드렸습니다. 다음 호에 원고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원고지 10매 내외로 수필 한 편 적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땐 어떻게 대답하게 될까? 분명 이전과는 다른 내용의 답변이 나올 것이다.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르지만, 내일의 세상은 스스로의 각오와 계획 속에 만들어지기도 한다. 드넓은 대지 위에서 너무 작은 자기 자신의 테두리 안에 움츠려 있었던 건 아니었는지 되돌아 보자.
꼭 글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무엇이든 잊고 지냈고 개발하지 않았던 무언가가 떠오를 것이다.
무엇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답은 이미 보여지고 있을 것이다.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고 있는 지금, 이젠 그대의 전화 벨이 울릴 차례이다.

 

채지민(시인, 소설가)

작성자채지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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