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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체험은 내 꿈을 향한 첫걸음이다"

[번역연재] 장수영의 도전 (4)

본문

 정수영
1949년생으로 어렸을 때 온 가족이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한국  국적을 계속 유지하고 있 다.
뇌성마비 장애우인 그는 가족과 함께 생활하다가 27세에 「희망의 집」에 입소했다. 이후 국적으로 인한
연금차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국민연금의 국적차별을 없애기 위해 1992년 「재일외국인 연금차별을 없애는 모임」을 결성해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자립의 집, 한국사 공부와 함께 하는 정수영 씨의 자립체험기

 

제1회 자립체험 (1994년 10월 8일∼9일)
자립체험, 나에게 있어서 처음인 자립은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해냈다는 만족감은  있었습니다.
이것 저것 친구들에게 상의하면서 어떤 때에는 스스로 판단해서 해냈으니까. 처음에는  어쨌든 해낼 수가 있었지만, 제 몸의 컨디션은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저는 장소가 바뀌면 쉽게 잠을 잘 수 가 없고 잠들 때까지 시간이 조금 걸립니다. 때문에 자립체험을 자주 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8일 희망의 집에서 오후 5시에 나왔습니다. 그날 밤에는 카와사키 씨가 함께 잠을 자주었습니다. 그 다음날 11시까지 있어 주었고, 그리고 나서는 복지대학교 학생이 4시까지 도와주었습니다. 그리고는 이이다 씨와 함께 희망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제가 왜 자립의 집 근처에서 아파트 생활을 희망했는지 말씀드리면 사람들을 모으기 쉽고 환경도 비교적 잘 갖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될 수 있으면 여러 사람들에게, 그리고 저의 친구들에게도 알기 쉬운 것도 있어서 자립의 집 부근에 아파트가 없는지 찾고 있었습니다. 좋은 시설이 있는데 왜 혼자 자립생활을 하려고 하는지 의아해 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인생이란 한 번밖에 없는 것이고, 한 번의 인생을 후회하지 않게 보내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어떠한 일이라도 해보고 싶습니다. 자립과 관련하여 꿈은 직장과 가정을 가지는 것입니다.

제2회 자립체험 (1994년 10월 22일)

이번 두 번째 자립체험은 매우 바빴습니다. 이유는 연금차별 모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야스마리 씨와 킨도오 씨를 만나기 위해  희망의 집에서 택시를 타고 오카자키역으로 갔습니다. 거기에서 모임의 회원인 와타 씨에게 전화를 해서 나오도록 했습니다.
10시 정도에 회의를 끝내고 나머지 정리할 일도 있습니다. 우편물을 관청과 시설에 배달도 하고, 또한 모임회의 알림지와 정보지를 나눠주는 일도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을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자립의 집으로 향하기 전 어느 날 킨도오 씨의 집에서 저녁식사를 대접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킨도오 씨의 집에서 운영 씨의 염불을 들었습니다. 염불을 끝내고 비디오를 보면서 야스쿠니 신사참배의 의미에 대해 운영 씨와 함께 공부를 했습니다. 역사와 전쟁에 관한 비디오를 보고 나서 야스마리에 있는 박물관에 갔습니다.
저녁에는 한국·조선의 역사에 대해 운영 씨와 K씨 등과 함께  공부했습니다. 운영 씨는 11시에 돌아가고 K씨는 11시 30분에 돌아갔습니다. 10시부터는 새로운 자원활동자인 아이찌 복지대학원생인 호시 씨가 와주었습니다. 호시 씨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자원봉사를 해주겠다고 해서 매우 기뻤습니다. 또한 호시 씨는 토요일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시간이 괜찮다며, 갖고 있던 수첩에 토요일 몇일날이라며 적고 있었습니다.

제3회 자립체험(11월 11일~12일)

이번 세 번째의 자립체험은 지금까지와는 또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지난 두 번째까지의 자립체험은 신기한 것도 많아서 매우 바빴다는 느낌이 지금에 와서 듭니다. 즉, 차에 타고 있을 때에는 아무 생각 없이 가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를 들면 빨리 다음 일이 하고 싶어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소홀히 하고 다음 일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부터는 될 수 있는대로 확실하게 하나 하나씩 해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자원활동자가 와 주었습니다. 아즈모토 씨라는 학생으로 호시 씨와 같은 아이찌복지대학원 1학년생으로 반은 다르지만 저의 강의를 들은 적도 있는 학생이었습니다.
희망의 집을 나온 것이 16시 30분 자립의 집에 도착한 것이 19시 20분이었습니다. K씨와 저 3명이 조선의 역사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많은 공부가 됩니다. 아마 다른 두 명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19시 30분에서 21시 30분까지 하고 23시 정도에 운영 씨가 돌아가고 나서 잠을 잤습니다.

제4회 자립체험(1994년 11월 24일~25일)

이번에도 "연금차별을 없애는 모임"과 함께 했기 때문에 신체적으로 무리가 따르지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번 자립체험의 목적이 신체적으로 무리가 없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음부터는 자신의 과제를 확실히 가지고 자립체험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내가 생각한 것은 어떻게 하면 지치지 않을 수 있을까와 내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하면 좋을 것인지 제 나름대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번 방광염 사건도 그렇습니다만, 제 몸의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의 적신호는 먼저 눈에 다음에 방광에 그리고 허리통증, 감기증세 등으로 찾아옵니다. 이런 자립훈련에 관한 이야기는 간단히 끝내고 어쨌든 24일 17시에 S씨가 마중나와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도중에 식사를 마치고 킨도오 씨의 집에 도착한 시간이 17시 25분이었습니다. 이야기 도중에 이번에 처음으로 자립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그러니까 운영 씨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은 좋을지 모르지만 장래에는 시설에서 생활하는 것이 안전하고 확실할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운영 씨는 또 “이런 상태에서 시설에서 나온다면 정수영 씨는 시설로부터 도망치는 결과밖에 안 된다, 이것보다는 시설에서 있으면서 시설을 변화시켜 나가는 게 더욱 더 현명한 삶의 선택일지 모른다”라고도 말했습니다.
그러나 제가 시설이 싫어서 자립체험을 하는 것은 아니라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자립체험은 내 꿈을 향한 첫걸음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서 제 자신에게 무엇이 필요하고 또는 필요하지 않는지에 대해서 확실하게 해두고 싶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하고 있는 일을 통해 나처럼 최중증의 장애우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는 누구나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의 길을 나 스스로 개척해 나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7회 자립체험1995년 1월 13일~14일)
제7회 자립체험에서는 C씨라는 학생에게 경제적인 도움을 줄 수  있어서 흐뭇했습니다. C씨가 마침 아르바이트를 찾고 있었고 그것도  자립의 집에서 케어를 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는 모르지만 C씨 때문에 전보다는 빨리 나왔습니다. 그리고는 야마다 씨를 만나 자립의 집에서 나온 사람들의 문제점에 대해서 들었습니다. 야마다 씨가 한 말이 굉장히 인상에 남았습니다.
“유감이지만 자립의 집에서 정수영 씨를 잡을 수 있는 힘이 없다. 적어도 당신네들이 이동할 수 있다면, 그리고 당신네들에게 맞는 전동휠체어가 있다면… 계획상으로 1998년도에 자립의 집을 재건축하기로 되어 있다. 그때 당신들이 닥쳐있는 문제를 밝혀나가자. 당신들의 문제는 곧 우리들의 문제다.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 관청에 가서 더욱 더 괴롭히자. 이렇게 하는 것이 정수영 씨를 비롯한 당신들이 하는 일에 더욱 큰 의미가 있다”라고 강하게 타일러 주었습니다.
게다가 중부재활병원의 N선생이 야마다 씨에게 전화를 해서’정수영 씨가 오면 하루가 다 가버린다’라고 이야기를 한 모양입니다. 그래서 야마다 씨가 그 자리에서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해야되는 일이 아닌가”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실제로는 2시간 밖에 걸리지 않습니다만, 이런 이야기를 듣고 야마다 씨가 N씨에게 “당신네들 의사잖아,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환자를 소중하게 다루는 것이 의사의 본연의 자세이지 않냐. 게다가 그렇게 귀찮다면 희망의 집 직원들을 불러 재활방법을 가르쳐 주지 그랬어. 적어도 관절이 늘어나고 줄어드는 것만이라도.”
야마다 씨의 이러한 태도에 솔직히 놀랐지만 한편으로는 굉장히 기뻤습니다. 야마다 씨가 이렇게 우리들을 생각해 주고 있다니. 아무튼 시작은 지금부터입니다. 자립의 집에서의 식사도 굉장히 좋았고, 야마다 씨와도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그 다음은 자신이 확실히 하는 일만 남았습니다. 자, 지금부터가 자립을 위한 도전입니다.
제8회 장립체험기

제8회 자립체험기도 무사히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이번에도  매우 뜻깊은 만남이 있었습니다.
이런 만남이 이루어짐으로써 외출하는 것이 즐겁고 재미있습니다. 이번에는 희망의 집의 직원인 야마가와 씨에게 부탁하여 외출을 했기 때문에 운영 씨는 편안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오히려 신경을 더 썼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지금까지 운영 씨가 전부 도와주었기 때문에 여성인 야마가와 씨에게 오히려 신경을 썼을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하지만 가끔씩은 좋은 것 같습니다.   야마가와 씨에게는 운영 씨가 할 수 없는 일을 해 주기 때문입니다. 식사문제를 세심하게 체크해주거나 혹은 제 앞에서 손님의 음료수를 준비해 주는 것 등입니다. 물론 이러한 일은 운영 씨도 할 수 있지만 저의 생각은 조금 봉건적일지 모르겠지만 여성이 하는 것이 좀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하지만 남녀평등에 대해 모든 것에 대해 평등하다고 곡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립의 집에서의 자원활동업무가 여성의 일이라고 생각하는 자체가 틀린 생각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듭니다. 개호하는 일이야말로 남녀가 평등하게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장애우에 대한 개호는 여성이 필요한 경우와 남성이 필요한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를 자립체험으로 돌리겠습니다만, 이번에는 아주 멋진 두 분을 만났습니다. 한 사람은 자립의 집에 입주해 있는 장애우로서 전동 휠체어를 사용하는 여성입니다. 그 사람은 저에게 얼마간의 돈을 건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좋으시다면 이 돈을 필요한 데 사용해 주세요’라고. 저는 굉장히 기뻤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일도 있었습니다.
“정수영 씨 되십니까?”
“네! 그렇습니다”
“작은 돈입니다만 세뱃돈이라고 생각하시고 활동하시는데 보탬이 되었으면 합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게시판에 붙은 전단지를 보고 무연금 문제가 있는 것과 외국인에 대한 차별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번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이번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이러한 일은 일본 국민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니까 꼭 요긴하게 써 주시기 바랍니다.”이 말을 듣고 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정말로 그러시다면 한신 대지진 희생자를 위한 후원금으로 써 주십시오. 저는 당신으로부터 돈을 받을 입장이 아닙니다. 일본 정부로부터 받았으면 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과거 나고야시에서 급부금제도가 생겼을 때에 감사의 편지를 받았던 때보다도 더 기쁜 것은 왜일까? 아마, 직접 이야기를 나눌 수가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새롭게 숙박까지 가능한 자원활동자를 구했습니다. 매회는 아니지만 월 1회 정도는  같이 숙박을 해주기로 한 N씨 감사합니다.

제9회 자립체험
자립체험이 무사히 잘 끝났습니다. 이번에도 새로이 자원활동자가 와서 도와주었습니다. 운영 씨가 자기 대신 같은 동료스님이신 하야시 씨와 이케우라 씨 등 두 분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이유는 우영 씨가 고베시의 재해현장에 갔기 때문입니다. 두 분 다 운영 씨의 부탁으로 왔지만 하야시 씨는 저도 3년 정도 전부터 알고 있던 사람입니다. ‘무연금차별을없애는모임’ 회원의 한 사람입니다. 저도 오랜만에 뵙게되어 반가웠습니다.
하야시 씨는 난병이란 지병을 갖고 있어서 중노동은 불가능합니다. 둘이서 돕지 않으면 저에 대한 개호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식사개호 정도는 가능하지만 저를 안고 이동시키는 것 등은 무리가 따르기 때문에 두 사람이 한 조가 되지 않으면 힘들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전에 이동할 장소를 답사한다든지 하여 신경을 많이 써 주어서 매우 기뻤습니다. 하야시 씨와 같이 행동해준 이케우라 씨에게는 짐을 확인하는 일을 맡겼습니다. 그리고 항상 도와주는 자원활동자와 교대하고 4명이 음료수를 마셨습니다. 얼마 지나서 伊藤씨가 자원활동자를 모집하는 전단지를 가지고 왔습니다. 5천장 정도나 유인하여 와서 굉장히 놀랐습니다. 지금부터는  제 친구들에게 부탁할까 생각합니다. 언제까지나 운영 씨나 伊藤씨에게 의지할 수만은 없기 때문입니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운영하는 포장마차에 몇십 년만에 들렀습니다. 한국의 포장마차 아줌마를 연상했습니다. 
10회 자립체험(1995. 2.24~25)

어쨌든 저도 많이 안정된 듯한 기분이 듭니다. 어머니의 이해를 얻기 위해서는 실제 체험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는 것과 숨기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어머니가 젊었을 때에는 고생을 많이 시켰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자립체험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지만 차별문제에 대해서는 어머니와 저와는 생각이 많이 다릅니다. 예를 들면 어머니는 다른 사람의 도움은 될 수 있는 대로 받지 않으려는 생각이 강한 반면, 저는 필요하다면 무엇이든지 받아야 한다는 것이 다릅니다. 하지만 저는 어머니에게 지금 하고 있는 자립체험의 필요성을 이해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의 자립체험을 통하여 제 주변에 모여든 자원활동자들 사이에 결혼으로 연결되는 커플들이 생겨났을 때 그 의미같은 것들을 어머니도 알았으면 합니다. 게다가 결혼하는 커플이 일본 사람과 한국 사람이었다는 것은 저에게 있어서 보석을 얻은 듯한 기쁨이었습니다. 자, 자립을 향하여 분발해나가자. 어떠한 산이 가로막혀있더라도.

제11회 자립체험(3월 24일~26일)
이번에도 숙박해줄 자원활동자를 스스로 찾아서 해결했습니다. 그 이유로는 26일 일요일에 열리는 AJU 연구회에 참가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내용으로는 장애우 기초연금의 제도상 시스템에 대해 공부할 예정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지 25일날 숙박해줄 자원활동자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없애는 모임’의 柴田씨에게 자원활동을 부탁했습니다.
당초 柴田씨의 일정으로는 한국에 갈 예정이었으나 비자수속등에 차질을 빚어 한국에 가질 못하고 저의 자원활동을 맡아주었습니다. 저번에는 K씨에게 부탁을 하였고 어쨌든 지금부터는 스스로 자원활동자를 구해볼 생각입니다.
이야기는 나중에 하겠습니다만, AJU 연구회에서 네덜란드 복지정책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했는데, 확실히 네덜란드의 복지정책은 발전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어떤 점이 발전되어 있는지 살펴보면 그룹홈이나 자립을 위해서 정부로부터 보조금이 나온다는 것과 건물도 장애우에 맞도록 설계하여 짓는다는 것입니다. ‘역시 다르구나’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고, 그러니까 일본과는 달리 세금을 확실하게 복지정책에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노인케어문제에 대한 지원이나 교통부문에 대한 다양한 지원제도들이 그렇습니다. 발표 내용을 듣고 있으면서 굉장히 부럽다는 생각을 가졌습니다. 부러워해도 소용이 없는 일이니까 우리들은 우리들 나름대로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지 않을까요.
연구모임이 끝나고 나서 ‘생활을 좋게 만들어가는 모임’의 총회가 있었습니다. 거기에서 새삼 느낀 것은 확실히 ‘빛의 고향’의 총회는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때문에 다양한 의견을 교환할 수 있지만, ‘생활을 좋게 하는 모임’의 총회는 아담하면서도 그 속에서 자원활동자나  장애우가 주체가 되어 의견을 주고 받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빛의 고향’의 총회와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좋은 점이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총회가 끝나고 야마다 씨와 야마다 씨의 친구들은 지금까지의 고생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것도 저에게 있어서는 많은 공부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자동차면허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자동차학원에서 특수차를 준비해 두어야 하는데, 자동차학원에서는 나 몰라라 하기 때문에 이것을 고발해달라고 AJU에 상담하러 오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정말 다양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화제를 조금 돌리겠습니다만, 친구들이 다시 많이 모였습니다. 그 분은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AJU 입소자로서 작년 10월 10일  시즈오카시의 본가에서 나고야시로 이전해온 사람입니다. 그래서 AJU에 신세를 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저와 친해지게 된 동기는 제가 만든 자원활동자 모집 전단지를 보고 말을 걸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서 가끔씩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저의 자원활동가를 활용하여 구 찬구가 할 수 없는 부분을 도와 주면서 쇼핑을 하기도 했습니다.

 

글/ 함께걸음

작성자함께걸음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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