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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지민의 테마에세이] 지금 그대의 시간이 가장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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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들 앞에 서서 강의할 기회가 잦아지는 것 같습니다. 그들의 학교 교실에서, 각종 시설 단체에서, 크고 작은 여러 모임에 나가서 ‘작가’라는 이름으로 이것저것을 얘기해야 할 때가 종종 생겨납니다.
저는 그 시간들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습니다. 또한 간직하고자 애를 씁니다. 아직 ‘세상이라는 때’가 묻지 않은 풋풋함에 감싸여 생활하는 것 같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세상이라는 때’를 미리 알고 체험해 버려 어찌할지 모르는 채로 갈등하고 있는 눈망울들이 제 가슴 한가운데에 깊이깊이 새겨지기 때문입니다.
이런저런 얘기를 전해 주다가 질문을 받게 되면, 꼭 나오는 내용이 한 가지 있더군요. ‘당신의 청소년기는 어떠했는가?’라는 질문. 저는 아주 담담하게 답변해 줍니다. ‘청소년 시절의 저는 자폐증 환자와도 같았습니다’라는, 뜻밖이라 생각할 대답이 독백이나 고백처럼 제 입을 통해 흘러나옵니다. 한때는 꼭꼭 감춰 두었던 저만의 콤플렉스였지만, 이젠 자연스럽게 말할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세상과 인간에 대해서 마음의 문을 굳게 닫아두었던 자폐증상을 앓고 있었습니다’라고 말입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지금의 상상으로도 헤아리지 못할 만치의 가슴앓이를 앓고 앓으며 지냈던 것 같습니다. 사람들은 보통 남 얘기하듯 편하게 말해 버리곤 하죠. ‘야, 그 어린 시절에 고민할 게 뭐가 있겠냐? 먹고 살기에도 바쁜 지금이 골치 아픈 거지.’
저는 반대로 얘기합니다. 지금의 현실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청소년 시절 그 당시의 혼란보다는 견딜만 한 거라고요. 심지어 군 복무 시절에 열흘 가까이 계속되던 행군 행렬 속에서도, 저는 그 생각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삼십 킬로그램에 육박하는 군장과 쇳덩어리 총을 맨 채로 끝도 없이 걷던 그 순간까지도 저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던 거예요. ‘지금은 어떻게든 견뎌내겠지만 고등학교 시절 그 당시로 돌아가야 한다면, 돌아가야 함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면 차라리 이 행군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자원하겠다.’라고 말입니다.
십 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간 지금까지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고 믿어야 하는지를 곰곰이 따져 보는 시간이 길어지는 것 같습니다. 하루 생활을 시작하며 마감할 때에도, 원고 작업을 위해 온종일 구석 자리에 앉아 있을 때에도, 또한 잡혀진 일정 때문에 바삐 움직여야 하는 시간까지도 그 생각의 꼬리는 끊이지 않고 이어지기만 합니다.
세상을 너무 빨리 알아버린 까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실제로 주어진 환경은 이러이러한 모습의 이것인데, 생존해야 할 세상은 저것이라고 요구 당하는 걸 너무 성급하게 미리 경험해 버린 탓일 겁니다. 뻔한 거짓임을 알면서도 암기하며 순응해야 했던, 본질은 ‘이것’이 확실한데도 ‘저것’이라는 지시에 따라 시선을 억지로 옮겨야 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었던 시절, 그러한 시절에도 저는 어쩔 수 없는 본능 하나로 그 모든 것들을 거부했었습니다.
모두가 똑같은 복장으로 획일화된 유니폼 같은 사회, 하라는 대로 해야 하고 지시에 순응해야만 다음이 보장받는 조직의 틀, 무엇보다도 투명한 자유로움을 인위적인 부자연을 통해 길들여지도록 만들기만 했던 청소년기의 학교 생활…….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납니다. 제가 그 모든 것을 거부했었다는 것을. 그렇다고 엉뚱한 방종이나 나락으로 저 자신의 인생을 몰고 나갔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만 저는 제가 하고 싶었던 일만 찾아서 거기에 몰입했을 뿐이었죠.
하고 싶었던 일이라는 건 저에겐 독서와 글쓰기였습니다. 그리고 기타를 치며 음악의 세계에 빠지는 일, 또한 그림을 그리면서 언어로 표현하지 못하는 여백을 찾아 흰 백지 위에 고스란히 새겨 넣는 일이었죠. 피하지 못할, 정말 어쩔 도리가 없는 사정 때문에 포기해야 했지만, 저는 진심으로 미대에 진학하고 싶었습니다. 최소한 제 눈이 색약이 아니었다면 어떻게든 끝까지 밀어붙였을지도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도 말줄임표로 그 시절과 그 상황을 아쉬워해야 하는 현실이 이어질 만큼 저는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죠.
그 꿈이 좌절되던 고등학교 시절 어느 날, 저는 대안을 찾겠다는 생각조차 없이 문과대학으로 미래를 결정지었습니다. 저를 이끌던 독서의 대부분이 특정 언어의 작품들로 채워짐을 느꼈던 것이었죠. ‘문학이라는 게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렇게까지 사람의 감성을 뒤흔들어 놓는 것일까.’ 저의 궁금증과 감탄사는 책장을 넘길 때마다 끊일 줄을 몰랐어요. 시행착오를 반복하긴 했지만, 저는 문학을 전공으로 하는 대학생으로 인생의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그 다음 인생이 어떠했는가를 구구절절하게 풀어놓는 건 이 지면에 결례가 되는 일이겠죠. 제가 드릴 말씀을 꺼내기 위해 필요 이상의 설명이 길어졌던 것 같습니다. 문제는 ‘자기 자신’의 본질적 모습을 항상 뒤로하며, 그날 그날에 순응하는 버릇이 생기는 게 아니었나 하는 부분입니다. ‘나는 나’일 뿐이라는 자신감, 핑계나 방종이 아닌 진정한 내면에서 흘러나오는 명령에 따라 내린 결론이라면 끝까지 책임지고 그 운명에 몰입해야 한다는 의무감. 저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는 그 점을 너무도 쉽게 잊어버리며 지내왔던 것 같습니다.
청소년들과 직접 마주 대하면서, 저는 너무도 당연한 사실을 새삼스런 놀라움으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청소년들이 진정한 해맑음을 간직하고 있다는 실제 모습을 본 것이었죠. 언론에서 떠드는 내용처럼 일그러지고 궤도를 벗어난 문제들이 청소년 세계의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형제 자매 조카 친척과 같은 순수함이 그대로 그들에게 담겨 있었어요. 과도한 학업의 부담 때문에 지친 듯한 모습을 제외한다면, 그들은 우리가 믿고 기대해도 좋을 만큼의 밝은 정신으로 생활하고 있었죠.
그들에게 저는 말했습니다. 꿈을 잃지 말라고. 언제나 마음 가득 희망을 간직하라고. 정신적인 방황에 어쩔 줄 모르던 학생 시절에 저를 잡아 주었던 어느 어르신의 말씀, 그 말씀을 제 입을 통해 후배들에게 전해 주는 것이었죠. 그만큼 시간이 흘러갔기에, 이젠 제가 그들에게 무언가를 전해 줄 나이가 되었다는 책임 또한 잊지 않으려 노력하는 겁니다.
현실 그 자체를 답답하게 생각하고 있으면, 눈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는 법입니다. 마치 펜을 손에 쥐고 있으면서도 펜을 찾아 헤매는 경우와도 마찬가지죠. 이런 일 때문에, 저런 상황 때문에 이러이러하다며 갈등만 하고 있으면 그 해결책 역시 곁에 다가오지 않게 됩니다. 자기 마음 안에 조그마한 쉼터를 만들어, 언제든지 그 안에 들어가 쉴 수 있는 여유를 간직해야 합니다. 그건 누가 대신 만들어 주는 게 아니죠. 그 쉼터는 자기 자신만이 가꿀 수 있는 비밀의 화원 같은 겁니다.
그 쉼터라는 것을 달리 표현한다면, 친구가 될 수 있고 독서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좋아하는 취미라 해도 괜찮고, 일기를 적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복잡하고 정신없는 세상 속에 부대끼고 있다지만, 조금만 시선을 돌리면 세상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자기만의 쉼터를 찾을 수가 있는 겁니다. 그건 남들에게 보여 줄 필요도 없고, 누구의 간섭을 받을 일도 없는 소중한 것이죠.
청소년 시절에 저는 제 인생을 이끌어 줄 누군가를 갈망했었습니다. 어려울 때마다 따스한 격려 한마디를 전해 줄 사람, 내면적인 갈등이 솟구칠 때 부담없이 찾아가 모든 걸 털어놓을 수 있는 대상……. 제겐 그것이 절실하게 필요했고, 그것을 끝내 찾을 수 없다는 사실에 아파했었습니다. 그래서 독서에 빠져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책은 언제나 위안이 되는 한 마디 한 줄을 제게 전해 주었죠. 밑줄을 긋고 또 그으면서도 다음날 또다시 펼쳐 읽게 되는 힘, 그 힘을 통해서 그나마 쉼터의 존재를 느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의 세상은 모든 게 풍요롭고 세세한 부분까지 잘 갖추어져 있죠. 정말 주머니 사정만 넉넉하다면, 부족할 것 없게 이것저것을 갖춰놓고 살아갈 만한 주변 여건이 마련되어 있는 게 요즘 사회입니다. 여기저기 들어서는 대형 서점, 길거리마다 넘쳐나는 패스트푸드점, 사진도 빨리빨리 뽑아내고 컴퓨터만 켜면 새로운 별천지가 무궁무진하게 펼져지는 환경들. 우리는 폭발할 듯 늘어나는 새로운 문화 속에서 질식할 만큼 복잡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안에서 군중 속의 고독으로 우리 모두가 머무르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의무적인 대화, 판에 박힌 술자리, 눈치 때문에 따라가야 하는 노래방이나 기타 시설 등등. 편리해진 세상만큼 오히려 인간과 인간의 벽은 더욱 굳건히 세워지는 건 아닌지가 되짚어지는군요. 그런 생활이 반복될수록 더욱 절실하게 필요해지는 건 무엇일까요?
바로 쉼터입니다. 꿈을 간직할 수 있고 희망을 그려낼 수 있는 자기만의 여유 공간. 여러분은 이미 자기 마음 안에 그러한 빈 자리가 커다랗게 자리잡고 있다는 걸 깨닫지 못하며 오늘 하루를 견디고 있을 겁니다. 조물주는 인간에게 모든 걸 갖춰 주었답니다. 다만 인간이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지 못하기 때문에, 고민하고 갈등하고 아파하다가 흘러가 버린 시간만을 아쉬워하게 되는 거죠.
가장 아름다운 시절이 언제인지 아시나요? 가장 소중하고 진정으로 값진 순간이 언제인지 찾아볼 수 있으신가요? 바로 이 글을 읽고 계신 시간, 오늘을 살고 이 순간을 생존해 가는 지금 이 시간이 가장 아름다운겁니다.  얼마나 소중한 시간 속에서 지금 내가 살고 있는지를 깨달을 수 있다면 꿈과 희망 없는 나날은 단 한순도 견디지 못하게 되실 겁니다.  자기 인생의 주인공은 바로 "자기 자신" 이니까요.

글/ 채지민

작성자채지민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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