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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특별한 사진전-중증장애우, 대인지뢰 사진전시회

그들, 사진으로 소통하다

본문

 

 

오랫동안 침묵을 강요당해 잃어버렸던 언어를 되찾고, 더 이상 타인이 아닌 자신의 언어와 시선으로 ‘나’를 드러내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대상이 아닌 주체가 되기. 그것은 타인을 통해 쓰여지고, 그려지고, 찍혀져온 사람들이 그들 스스로 “아픔보다 더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그리고 감춰졌던 그들의 시선을 드러내 자신의 경험을 사람들과 나누고 소통하려는 적극적인 노력이자, 신이 내려준 다양성을 저주가 아닌 풍요로움으로 바꿔내는 과정이었다.  


* 중증장애우 사진전 「도전하는 사람들」

▲이현준씨작품                              ▲오영철씨 작품

 

 
▲오영철씨작품

 

 

 

 

 

 

 

<찍힘의 대상에서 찍음의 주체로>
이제까지 장애인 사진전이라면 대게 ‘장애인을 찍은’ 사진전이었다. 그러나 여기 중증 장애우 다섯 명이 모여 보여준 전시회는 ‘장애인’이 아닌 ‘장애인의 감성을 통해 바라본 세상’을 보여주는 전시회였다.
‘도전하는 사람들’ 일명 ‘도사’ 모임을 처음 제안한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이현준(39) 간사는 근육병의 일종으로 팔을 들 수 없고 전동휠체어에 의지하지 않고는 몸을 움직이기 쉽지 않은 중증장애인이다. 그는 지난해 7월 일본에 갔다가 우연히 카메라 하나를 발견하고 ‘찍사’ 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눈에 직접 갖다대고 보지 않아도 무릎에 올려놓은 채 LCD 모니터를 통해 거의 모든 각도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 그는 휠체어에 부착하는 보조도구가 필요하긴 했지만 "카메라를 발견하는 순간 나도 이제 사진을 찍을 수 있겠구나 싶어 여비를 털어 당장 구입했다"고 한다.

<디지털 혁명은 나의 혁명>
그는 “더 이상 객체가 아닌 주체로서 문화 예술 분야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게 되어 더욱 기쁘다”고 전시회를 열게 된 기쁨을 표현했다. “즐거움을 담더라도 작위적인 것이 아니라 유머스럽고 건강한 밝음을 담고 싶다” 그리고, “밝지만 그 속에 모순된 차별이 담겨진 사진을 찍고 싶다”며 “현실은 건강하고 소박하고 유머러스한, 페이소스가 담겨있는 사진 속에 더 정확하게 드러날 것이다”라고 사진작가다운 견해를 밝혔다. 실제로 이번 전시회에 출품한 사진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모여 밝게 웃고 있는 모습이라며 앞으로도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많이 담고 싶다고 말한다.
하지만 아무리 편리한 디지털 카메라라 하더라도 주위 사람의 도움 없이 사진을 찍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항상 휠체어에 기대고 있어 자세가 불안정하며 사진을 찍을 때는 고개를 앞으로 숙여야 하기 때문에 목이 뻐근하기도 하다. 순발력을 요구하는 순간 포착이나 어떠한 영감이 떠오를 때 셔터를 누르는 것은 그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이들은 앞으로 자신에게 맞는 사진촬영을 위한 보조 기구를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같이 하자는 말에 처음에는 떨리는 손으로 어떻게 사진을 찍느냐고 대꾸했던 오영철씨는 “스스로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을 깨고, 이제는 “떨림을 이용해 떨리는 그 자체를 찍기도 한다”며 “시작은 미약하지만 2회, 3회 전시가 계속될수록 내 영혼도 승화될 거라 믿는다”고 밝혔다. “고개를 숙일 수도 없고 왼손만 사용이 가능한 나로선 사진 찍는 작업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던 윤두선씨 역시 "내년에는 모두가 놀랄 만큼 멋진 작품을 선보일 것"이라며 새로운 각오를 보여줬다. 이들은 내년 10월쯤 두 번째 전시회를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제까지 기술의 발달이 또 다른 배제를 낳는 과정이었다면, 이제부터 기술의 발전은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살아가며 삶을 풍요롭게 하는 과정이 되기를 희망해본다.


* 대인지뢰 피해자 사진전 「아픔보다 더한 아름다움」

 

<이미 끝난 전쟁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

지뢰는 전쟁이 끝나고도 최소한 70년은 계속 전쟁의 피해자를 만들어낸다. 이 땅엔 전쟁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제 중심세대가 되었지만, 대인지뢰는 아직도 한반도에 약 1백만 발 가량 매설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92년부터 98년 말까지 무려 87명에 이르는 민간인들이 목숨을 잃었고, 한국대인지뢰대책회의의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전쟁이후 지뢰로 인해 목숨을 잃거나 장애를 입은 민간인들이 1천여 명에 이른다고 밝혀지기도 했다. 한국전쟁이 일어난 지 벌써 53년이 되었고, 정전협정이 맺어진 지도 50년이 되었다. 그동안 켜켜이 쌓인 분단의 흔적을 발견하는 일이란 분명 즐거운 일이 아니다. 아니, 두렵고 슬픈 일이다. 그러나 지난 12월 15일 이러한 아픔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전시회가 열렸다.
이 전시회를 준비하고 이끌었던 사진작가 이시우씨는 “무엇을 하자고 해도 다 따라할 분위기였지만 우리는 강한 방법이 아니라 아름다운 방법을 택했다. 강한 것은 쉬 부러지겠지만 아름다운 것은 스스로를 성숙시키고 저력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래서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다면 그게 최선”이라며 “우리는 함성 대신 감동을, 동정 대신 울림을 만들어 내는 일이 중요했다”고 시작의 계기를 밝혔다.  

<사진찍기로 서로를 이해하다>

 
60∼70대의 대인지뢰피해자들과 함께 할 전시회 기획한 첫날은 준비된 사진에서 자신의 과거가 떠오르는 사진을 고르시도록 했다. “한 분은 고개 숙인 걸인의 사진을 골랐다. 지뢰피해 전후 자신의 생활은 걸인보다 못했다고 이야기를 풀어갔다. 한 분은 미군 헌병이 있는 사진을 골랐다. 지뢰피해 전 미군부대에 근무했는데 그들이 매설한 지뢰에 다쳤다는 거였다. 돌아가면서 얘기가 거듭될수록 같은 마을에 살면서 지뢰피해자인줄도 몰랐던 것이 후회되고 그러면서 극복되었으며, 서로의 고단했던 삶을 이해하는 순간이었다.”
이시우씨는 “알고는 있었어도 깊이 알 수도, 깊이 알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던 서로의 생활이 뭉클하게 와 닿는 시간이었다”면서 “많은 말이 오갈 필요는 없었다. 이미 스스로 겪은 일이었고, 한마디의 말이면 이미 상대방의 심장에 들어가 앉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수동적으로 주어진 사진을 골라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는 ‘사진말 놀이’와는 다르게 능동적으로 자신의 과거가 떠오르는 사진을 찍는 ‘사진치유’의 과정은 수월치 않았다. 자동사진기의 발달로 창작의 장애는 극복되었지만, 무엇을 찍어야 할 것인가는 아직도 피해자들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사진찍기를 통해 삶의 주체로>

“논에 장마가 져서 물꼬를 틀라고 하는데 꽝하는 거예요.”
미군들이 매설했다가 제거하지 않고 철수하면서 유실된 지뢰에 의해 발목을 잃으신 김용관 할아버지는 언제 여쭤봐도 그게 사고의 전부였다. 독재시대 억눌림을 당하고, 지역적으로도 차별을 당해오면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공감대로 형성해 본적이 없는 분들이었기에 이들에게는 일단 스스로에게 말하기가 필요했다.
“처음엔 파인더를 통해 상대를 제대로 보지도 않고 막 눌러대는 것이 다반사”였다고 이시우씨는 말한다. 매달 약속을 잡고 찾아갈 때마다 대인지뢰특별법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무엇이 필요한지를 설명하고 듣고를 반복하며 상대방을 제대로 보고 사진을 찍는 것이 법의 통과를 위해서도 중요한 일임을 설명해드렸다. 그리고 여름에서 가을로 계절이 지나가면서 사진은 점점 제대로 찍혀져 갔다.
“서로가 노력하지 않으면 눈빛이 마주치는 사진은 불가능하다. 진정한 교감의 시작, 인간적 교류의 시작은 눈빛의 교감으로부터 시작된다. 피해자분들이 바로 선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는 것은 상대를 통해 자신을 보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며 이시우씨는 “지금까지는 나만의 아픔이고 한이었지만 이제는 함께 할 사람을 만난 것”이라고 설명한다.

<사진으로 느끼는 따뜻한 향기>

가장 연로하지만 모임에 한번도 빠지지 않으신 주수산 할아버지. 모임 끝나고 돌아가는 길. “아파서 그게(돌아다니는 게) 되나. 인젠 죽어야지 뭐...”하시는 조만손 할아버지. 조디 윌리암스(97년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금파리에 찾아와 찍은 사진을 내놓으며 “내가 오늘 오신분덜한테 설명하려구 이 사진을 가져왔어 잘했지”하시던 김중식 할아버지. 초겨울이 다 되서야 아주머니 사진을 찍어 오셔선 “사실 나보다도 이 사람이 정말 고생을 했어요”하시던 이덕준 할아버지. “처음하곤 달라”하시며 이제는 무엇을 보여줄지 아시는 장남자 할아버지. 자신보다 손녀들이 사진 찍기를 더 좋아한다던 백중현 할아버지. 사고로 팔까지 다쳐 방이자 집인 컨테이너 박스에서 더운 여름을 보내신 김천식 할아버지. “어디 성한 데가 하나라도 있나” 하시던 윤금옥 할머니. “특별히 바라지는 않어요. 되면 좋고 안 되면 할 수 없구 그런 거지 뭐”하시던 소박한 안동오씨. 대인지뢰로 고생만 하시다 돌아가신 남편을 두고서도 “에이구 잘되면 좋을 텐데”하시는 최명환씨와 이창학씨 댁 아주머니들... 이들의 전시회에는 자신들의 이야기를 사진으로 능숙하게 표현할 정도는 아니지만 피해자 분들의 사진에는 그들만이 말할 수 있는 인생의 아픔과 향기가 있었다. 자신들의 상처만이 아닌 곪도록 내버려 두었던 우리 사회의 상처까지 어루만지는 따뜻함이 있었다.

<‘도전하는 사람들’의 ‘아픔보다 더한 아름다움’>

무슨 잘못을 했는가?
피해자이면서도 침묵을 강요당해 온 이야기들이, 오랫동안 익고 익어서 가공되지 않은 원액으로 향기롭게 코끝을 간지른다. 너무 아름다워서, 너무 향기로워서 코끝이 찡한 모양이다.

 

글 조은영 객원기자
사진제공 도전하는사람들, 대인지뢰대책회의
도움주신 분 대인지뢰대책회의 김미옥 간사

 

작성자조은영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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