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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방에서 여자를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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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방이라는 데를 아는지 모르겠군. 남성전화방이라는 간판을 내건 건물 계단을 올라가서 문을 열고 들어서면 작은 쪽방들이 쭉 늘어서 있지. 카운터에서 돈을 치르고 방을 배정 받아 들어가면 핑크빛 조명 아래 누울 수 있는 큰 의자가 있고 그 옆에 전화기가 한 대 놓여있어. 의자에 앉아 잠시 기다리면 전화벨이 울리고 그때부터 낯선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는 거야. 모르겠어. 다른 남자들은 폰섹스를 하고 매춘을 하기 위해 전화방을 찾는다지만 나는 아니야. 나도 낯선 여자와 통화를 하기는 하지. 그렇지만 내가 말을 하는 대신 주로 듣는 편이거든.
내가 사는 동네에 전화방이 생긴 것은 지난해 여름이었어. 내 거처인 영구임대아파트 단지가 아닌 건너편 일반 아파트 단지 옆에 5층 짜리 상가 건물이 하나 있는데, 어느 날 그 건물 3층에 전화방이라는 간판이 내걸리더군. 나는 상가 맞은편 노점에서 과일을 파는 행상을 하고 있었거든. 그러다보니 마주 보이는 상가를 자주 쳐다보게 되고,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전화방이라는 간판에 강한 호기심이 생겼지. 전화방이라는 곳은 어떤 곳일까, 간판만 보면 전화를 걸고 받기 위해 따로 방을 마련했다는 말인데 도대체 무슨 전화길래 집이 아닌 밖에서 걸고 받는 걸까, 정말 궁금했거든. 그래서 어느 날 내 옆 노점에서 신발을 파는 정 씨에게 전화방이 어떤 곳인지 물어봤어. 그랬더니 정 씨가 응큼한 미소를 지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하더군. "전화방은 여자를 만나는 곳이야. 마음만 맞으면 2차도 갈 수 있고, 한마디로 재미있는 곳이지…"
나는 사람들이 뇌성마비라고 부르는 장애를 가지고 있어. 걸을 때도 술 취한 사람처럼 비틀거리며 걷고, 말도 심하게 더듬거리지. 어려서 부모에게 버림받아 재활원에서 자랐고 성인이 된 후에는 재활원에서 나와 여기저기 떠돌아다녔어. 그러다가 다행히 생활보호대상자가 돼서 12평 영구임대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었지. 지금 생계는 정부에서 매달 주는 20만원으로 이어가고 있어. 과일 행상은 용돈을 벌기 위해 시작했는데 생각처럼 장사가 되지 않아 고전하고 있지. 사는 형편은 이렇게 어렵지만 지금 나에게 절실한 것은 돈이 아니야. 나를 미치게 만드는 건 바로 외로움이지. 내 주위에 아무도 없다는 것, 이 세상에 내가 말을 건넬 수 있는 대상이 전혀 없다는 그 사실이 나를 절망으로 내몰고 있지. 그래서 나는 밤이 정말 싫어. 광활한 사막에서 혼자 허우적대다가 지쳐 쓰러지는 꿈을 자주 꾸거든. 그럴 때면 내 눈에서는 나도 모르게 눈물이 흐르고 있지. 그뿐만이 아니야. 행상 일을 끝내고 집에 돌아가면 나를 반기는 것은 썰렁함뿐이야. 그 썰렁함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싫어 어떨 때는 집에 들어가지 않고 길에서 노숙을 하기도 했어. 그래서 솔직하게 말하면 정 씨가 얘기한, 전화방에 가면 여자를 만날 수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해 졌던 게 사실이야. 내가 말을 건넬 수 있는, 나를 상대로 이야기를 해주는 그 누군가가 정말 필요했거든.
내가 전화방에 처음 간 건 작년 가을쯤이었어. 한 달 여를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서 전화방 문을 열고 들어섰지. 그런데 전화방에 여자는 없었어. 대신 카운터에 앉아 있는 남자가 대뜸 한 시간에 만오천이라며 돈을 요구하더군. 그러더니 친절하게 "처음 오셨나 보군요. 여기는 여성과 전화 데이트를 하는 곳입니다. 방에 들어가 계시면 여성에게서 전화가 오거든요. 그러면 편하게 통화를 하시면 됩니다." 라고 설명을 해줬어. 전화방에 여자가 없다는 게 오히려 나를 안심시켜 주더군. 생각해봐, 전화방에 여자가 있어서 내 장애를 보고 나를 퇴짜 놓는다면 정말 창피한 일 아니겠어. 나는 남자가 이끄는대로 쪽방에 들어가서 전화가 오기를 기다렸지. 잠시 후 거짓말처럼 전화벨이 울리더군.  
"여보세요…"
수화기 저편에서 한 여자가 나타났어. 그렇지만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지. 내가 장애우라는 사실을 들키는 게 겁이 났거든. 내가 장애우라는 걸 알면 현실에서와 마찬가지로 여자가 나를 외면할까봐 나는 침묵할 수밖에 없었어. 
"여보세요. 말이 없네, 거기 아무도 없어요…"
내가 반응을 보이지 않자 여자가 전화를 끊더군. 나도 수화기를 내려놓았지. 그 순간 가슴이 왜 그렇게 두근대던지, 나는 얼굴이 벌개져서 안절부절 할 수밖에 없었어. 그 날 다섯 명의 여자가 내게 전화를 걸어왔어. 나는 단 한마디 말도 못했지. 그렇지만 정말 흥분됐어. 누군가가 전화를 걸어 나를 찾다니, 그것도 이성인 여성이 나를 찾다니, 이건 상상할 수도 없는 굉장한 일이 일어난 것이었거든.  
다음 날 다시 전화방을 찾아갔지. 어제와 마찬가지로 낯선 여성이 나를 찾았어.
"여보세요. 왜 대답을 안 해요… 거기 있는 거 아는데, 내 목소리가 맘에 안 들어요… 뭐라고 말 좀 해봐요…"
그때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몰라. 갑자기 누군지 모르지만 상대를 붙잡고 싶다는 바람이 간절해지는 거였어. 내 눈앞에 있는 끈을 잡지 못하면 다시는 이야기를 나눌 상대를 찾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예감, 그래서 나는 용기를 내서 말했지.
"아무… 얘기나… 해… 주세요…"
내가 한 말은 그 말 뿐이었어. 다행히 여자가 전화를 끊지 않더군.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여자가 이야기를 시작했어. 무슨 이야기였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마 세상 살기 힘들다는 넋두리였던 것 같아. 나는 두 손으로 수화기를 꼭 붙잡고 여자 말을 듣고 있었지.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어. 얼마만큼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그 전화방 어두침침한 공간이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 자궁속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 전화선이 탯줄이고, 탯줄을 통해 어머니가, 꼭 한 번 보고싶은 어머니가 내게 소곤소곤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았어. 나는 눈을 감았지. 왜 그렇게 편안하던지. 그럴 수만 있다면 눈을 뜨고 세상으로 나오고 싶지가 않았어. 
그것뿐이었어. 내가 전화방에 간 건 누군가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야. 내 형편에 한 번 갈 때마다 드는 비용이 부담이 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밥 대신 라면을 먹는 한이 있더라도 나는 전화방에 가고 싶었어. 물론 모든 여자가 다 천사는 아니었지. 내가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아무… 얘기나… 해… 주세요…"라고 말을 하면 "이상한 아저씨 다 보겠네."라며 전화를 끊어버리는 여자가 다수였지만 그래도 몇 몇 여자는 나를 상대해 줬거든. 그때마다 나는 어머니를 만날 수 있었지. 

 
어느새 나는 전화를 걸어온 여자들에게서 "아무 얘기나 해주세요 아저씨 안녕"이라는 인사를 받을 만큼 전화방 단골 고객이 돼있었어. 그리고 신기한 것은 여자들이 내게 비밀 이야기를 털어놓는다는 거야. 물론 나는 귀담아 듣지 않지만, 토막토막 기억나는 대목은 여자들의 진심이 담긴, 가령 바람을 피우고, 옷을 훔쳤다는 그런 이야기도 있었어.
이제 그 날 이야기를 하려고 해.
바람이 쌩쌩 부는 몹시 추운 연말 어느 날 이었어. 텔레비전에서는 가족과 함께 연말을 보내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행복한 표정으로 까르르 웃는 모습을 내보내고 있더군. 나는 날씨가 추워 장사도 못나가고, 쌀도 떨어져 라면을 먹고 있었는데 말야. 처량해지더군. 그래서 옷을 챙겨 입고 전화방에 갔어.  
전화벨이 울리 길래 습관처럼 수화기를 들었지.
"여보세요…"
"아무… 얘기나… 해… 주세요…"
역시 습관처럼 내가 할 수 있는 단 한 마디의 말을 했어. 그런데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여자가 뜻밖의 말을 하는 것이었어. 
"전 이야기보다는 만나고 싶은데요."
순간 이건 뭐야, 라는 생각이 들더군. 내가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얘기하면 보통 여자들은 내가 장애를 가졌다는 것을 알아채고 전화를 끊거나 아니면 잠시 후 혼자 이야기를 시작하곤 했거든. 그런데 내 목소리를 듣고도 만나자니, 도대체 만나서 뭘 하자는 거지. 
"전… 장애를… 가졌는데요… 그…것도… 심한… 장애를… 그… 래서… 만날 수… 없는… 데요…"
나는 친절하게 대답해 줬지.
"상관없어요. 아저씨가 아무리 심한 장애를 가지고 있어도 꼭 만나고 싶어요. 아저씨, 만날 수 있는 거죠?"
이걸 두고 갈수록 태산이라는 말을 하는 건가봐, 내가 아무리 숙맥이라도 여자가 만나자는 게 뭘 의미하는지는 알고 있었거든. 분명히 지금 이 여자는 나랑 자자는 얘기를 하고 있는 거였어.  
"만… 나서… 뭘… 하는…데요…"
그렇지만 나는 짐짓 모르는 체 물어봤지.
"아저씨가 하자는대로 할게요. 대신 용돈 조금만 주시면 돼요."
"저는… 돈이… 많이… 없는데…"
"괜찮아요. 조금만 주시면 돼요. 지금 그리로 갈게요. 전화방 아래층에 커피숍 있죠. 20분 후 에 우리 거기서 만나요."
"네… 아니… 난… 장애…"
"꼭 만나주셔야 해요. 아저씨, 꼭 기다려줄 거죠. 지금 갈테니까 꼭 기다려주셔야 해요."
그러더니 내가 뭐라고 대꾸할 사이도 없이 여자가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어버리는 거였어.  나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지. 너무나 순식간에 벌어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어. 황급히 주머니를 뒤져보니 만원짜리 지폐가 몇 장 만져지더군. 그 순간 비록 돈으로 사는 것이긴 하지만 태어나서 처음으로 여자와 같이 잠을 잔다는 게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어. 그렇지만 손끝으로 느껴지는 돈의 감촉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일이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는 것을 은연중에 말해주고 있었어.  
나는 황급히 전화방을 뛰쳐나와서 커피숍으로 갔지. 거기서 여자를 기다리는데 그 20분이 한없이 길게 느껴지더군. 머릿속으로는 온갖 상상을 하면서 여자를 기다렸지. 어떻게 생긴 여자일까, 정작 내 심한 장애를 보고 퇴짜를 놓으면 어떡하지. 안절부절하고 있는데, 마침내 여자가 내 앞에 나타났어.    
내가 이런 표현을 하는 것을 양해해 줬으면 해. 여자는 너무 많이 살이 쪄서 마치 굴러다니는 공 같았어. 키는 150을 넘지 않아 보였는데 체중은 족히 80킬로그램은 넘어 보였고, 거기다 검은 안경을 쓰고 있었어. 내 맞은편에 앉은 여자는 달려오느라고 힘들었는지 씩씩대며 숨을 몰아쉬더군. 이럴 때 어떡해야 하는지 나는 정말 난감했지.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서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어. 여자가 고개를 숙이며 슬금슬금 내 눈치를 보더군. 나는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어. 그래서 가만히 앉아 있는데 여자가 먼저 말을 꺼냈어.
"이 동네 사시나 보죠?"
"네… 저… 앞… 영구임대… 아파트에… 살아요…"
"저도 거기 살아요."
잠시 침묵이 흐른 후 여자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더군.
"아저씨, 실망하셨나 보죠? 저 그냥 갈까요?"
"아뇨… 괜찮…아요…"
내가 그렇게 대답한 건 나를 바라보는 여자 눈가에 비친 한 줄기 눈물을 봤기 때문이었어. 
"저도 사람 만나는 거 좋아하지 않거든요… 그렇지만 돈이 없어서, 먹고살기 위해 할 수 없이 이 짓을 하고 있어요…"
여자는 금방이라도 엉엉 소리내며 울 것처럼 울먹이며 말을 이어갔어.  
"사람들은 뚱보라며 나를 놀리죠. 사람 취급도 하지 않아요. 어떤 남자는… 관계를 갖고 난 후에 주제파악을 하라며 돈도 주지 않아요. 그렇지만 온갖 설움을 받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일밖에 없어요…"
"취직…해서… 일을… 하시면… 되잖아요…"
"이 세상에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 것도 없어요. 하다못해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뚱보라며 써주지 않아요… 죽고 싶은 마음뿐이지만 죽는 것도 쉽지 않고, 혹가다 전화방에서 착한 아저씨를 만나면 몇 푼 용돈을 쥐어주거든요. 그 돈으로 겨우 생활하고 있어요…"
"식구…는… 없나요…"
"엄마하고 남동생이 하나 있어요. 엄마는 청소원 일을 하고 남동생은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어요. 가난하니까 집에서도 박대뿐이에요. 용돈도 주지 않고, 먹고싶은 거는 너무 많은데 돈이 없어요. 그래서 나쁜 일인 줄은 알지만 이 짓을 하고 있어요."
말을 마친 여자가 나를 빤히 쳐다봤어. 나는 순간 여자가 어쩌면 나보다 더 심한 장애를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는 판단을 내렸지. 어줍잖지만 여자에게서 동병상련의 아픔을 느꼈다는 것이 맞는 표현일 거야. 세상에는 팔 다리가 불편한 것만이 장애가 아니거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어. 그리고 미소를 띄우며 여자에게 말했어. 
"저기… 우리집에… 가지… 않을래요… 다른… 건… 몰라도… 제가… 라면은… 맛있게… 끓여… 드릴 수… 있어요…"

글 이태곤 기자

 

작성자이태곤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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