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문제 다룬「물방울 하나 떨어지면」펴낸 소설가 김원일 > 문화


장애문제 다룬「물방울 하나 떨어지면」펴낸 소설가 김원일

끝내는 모두에게 스며들, 물방울 하나

본문

 
〈마당 깊은 집〉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소설가 김원일(62세).
작가 김원일(62)는 혼란했던 근대사의 소용돌이에 무방비 상태로 놓였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뤄온 우리 나라 중견 작가다. 그이가 올해 1월, 여섯 번째 중·단편집〈물방울 하나 떨어지면〉(문이당)을 새로 내놨다. 이 책은 2000년부터 2003년, 여러 계간지에 실었던 글 다섯 편을 묶은 것이다.
작가 김원일은 〈아우라지로 가는 길〉로 〈함께걸음〉과 만난 적이 있다.(1996년 8월호)
이번〈물방울 하나 떨어지면〉에서도 작가 김원일는 중증 장애우나 정신지체 장애우가 있는 가족, 전쟁 때문에 정신적 장애를 가지게 된 사람들의 기억 등을 소재로 우리 사회에 장애우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장애’를 비중 있게 다루는 소설이 거의 없는 우리 문학계에서 작가 김원일의 〈물방울 하나 떨어지면〉은 외롭지만 씩씩한 파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소외된 이웃, 그들은 내 삶과 문학의 원초적 뿌리
소심한 내향적인 사람이 그렇듯 나는 인간과 인간이 톱니바퀴로 물려 치열하게 부딪히는 삶에 내가 껴붙을 수 없다는 패배주의에 익숙했고,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그 속에 묻혀 조화를 이루는 삶에 평화가 있다고 생각했다. 나의 그런 소박한 자연주의적 논리의 세계에는 어린이들, 장애인, 노인이 다치지 않는 보호된 터가 있으리라 믿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물욕·명예욕·권력욕·정욕, 그 외 타인을 딛고 서려는 모든 욕망으로부터 피해받지 않아야 할 대상이므로. (김원일 깊이 읽기, 2002)

 소설가 김원일은, 다른 작가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한가지 특별한(?) 관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소외된 이웃, 특히 장애가 있거나, 가난하거나, 힘든 세월을 살아낸 노인들에게 보내는 날카롭지만 애정 깊은 시선이다. 김 작가는 시종일관 작품 속에서 소외된 이웃에 대한 애정을 거두지 않고 있다. 아마도 그이가 겪어낸, 이유도 모르고 당했던 전쟁, 가난, 유신정권의 폭력적인 시대 상황 등, 세월 속에 단내 나는 삶을 살아야 했던 어려운 이웃들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 김원일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태복음 25절)’라는 성경 구절을 인용하면서 “제가 추구하는 삶의 태도는 사회로부터 격리된 사람, 낮은 사람, 소외된 사람을 배려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 삶과 문학에 가장 원초적인 뿌리입니다.”라고 밝혔다.
작가 김원일은 그동안 여러 단편에서 장애문제를 다뤄 왔다. 그이는 장애우들을 비현실적으로 과장 하거나 비하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 하지만 당당한 모습으로 그려왔다.
작가 김원일의 이러한 시각은 올해 1월 발표한 〈물방울 하나 떨어지면〉에서도 이어진다. 〈물방울 하나 떨어지면〉은 2000년부터 2003년간 여러 계간지에 실었던 글 다섯 편을 묶은 책이다. 작가 김원일은 중증 장애우나 정신지체 장애우가 있는 가족, 전쟁 때문에 정신적 장애를 가지게 된 사람들의 기억 등을 소재로 하여 우리 사회의 장애우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고 있다.
“제가 근래에 집중적으로 장애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이유는 장애 문제를 말하는 작가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는 선천적인 장애보다 후천적인 장애가 훨씬 더 많이 생기잖아요. 산재나 교통사고, 약물중독 등등, 사회가 좀 복잡합니까? 노인 인구도 폭발적으로 늘고 있죠. 이런 현상은 굉장히 중요한 사회 문제지만, 이들에 대한 사회적인 대책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 쪽에 관심을 갖고 글 쓰는 작가도 없어요.”작가 김원일은 〈물방울 하나 떨어지면〉을 발표하게 된 동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 껴안기
〈물방울 떨어지면〉의 맨 처음 글은‘미화원’이다. 이 글은 아내를 여읜 미화원과 정신지체 아들의 이야기다.
작가 김원일은 〈아우라지로 가는 길〉에서도 자폐를 생동감 있게 보여준 적 있다. 이 글에서도 김 작가는 정신지체를 잘 이해해야만 표현할 수 있는 장면들을, 모자라지도 넘치지도 않게, 현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미화원’은 자폐를 가진 아들을 키우면서 장애를 몸소 체험했던 김 작가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글이기도 하다.
이 글에서 미화원 김씨는 정신지체 장애우 아들이 곧잘 하는 청소를 하찮게 여기지 않는다. 자신이 죽은 뒤, 아들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해 터미널 청소부로 취직시킨다.
우리 사회에서 정신지체나 중증의 장애가 있는 아이를 둔 부모들은 누구나 ‘내가 죽으면 이 아이는 어찌될꺼나’라는 물음표를 가슴에 안고 산다.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비장애우들처럼 살 수 없는 현실에서 이 물음표는 장애아를 둔 부모들의 두려움이요, 한(限)이다.

나는 남편을 잠들지 않는 시간에는 먹고 배설만 하는 식물인간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 그런 내 관점에서 보자면, 이미 사회적 죽음을 당한 남편의 신체적인 장애와 정신적 지체는 어쩔 수 없지만, 그는 오직 침묵하고 있을 뿐 정상인과 큰 차이가 없다는 게 내 소신이다...... 어쩌면 나같이 잔머리를 굴리는 보통 사람이 분답 떨며 아득바득 시간을 쪼개어 쓴다면, 그는 생각할 줄 모르는 생명체가 그렇듯 제 나름의 시간대에서 여유롭게 살아간다......중증 장애인에게는 그 마음이 눈동자에 먼저 나타난다. 나는 늘 남편의 눈부터 보는 버릇에 익숙하다.  (‘물방울 하나 떨어지면’중에서)

 
작가 김원일은 사회가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는 신속한 생산성, 획일성에 대해서 항의하고 있다. 그 기준을 아예 가질 수 없거나 도달하지 못한 사람은 주변으로 밀려나, 도저히 사회 안으로 다시 들어올 수 없는 현실. 그 안에서 김 작가는 서로 다름을 받아들이고, 개인 나름대로의 속도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시대의 핵심을 잘 짚어내고 있는가
작가 김원일은 소설을 쓸 때 항상 ‘과연 내가 시대의 핵심을 잘 짚어내고 있느냐’를 염두에 둔다고 한다. 김 작가는 “우리는 사회가 저지른 잘못을 너무 쉽게 잊고 용서해 줍니다.  글을 사회 계도의 목적을 써야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문학 속에는 어떤 그런 정신이 들어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소설을 통해서 그 잘못을 기억하게 하고 싶습니다.”
‘고난일지’나 ‘4가 네거리의 축대’가 그런 맥락의 글이다.
‘고난일지’는 1970년 초반 ‘밟으면 꺼질 살얼음판을 딛듯’ 살았던 비상계엄하의 유신정권 때의 이야기다. 그 당시 폭력적인 군국주의 유신정권을 반대하다가 쫓기는 신세가 된 김씨가 집 앞에서 잡혀 사형을 당하게 되는 과정을 그린 단편이다.
지금 김 작가는 ‘고난일지2’를 작업하는 중이라면서 “앞으로도 고난일지 후속편을 계속 쓸 겁니다. 권력에 의해, 사회의 모순 때문에 희생당한 사람들 이야기를요. 이 사람들 아무잘못도 없는데, 죄를 덮어 씌어서 죽인 것 아닙니까. 그러니 잊지 말고 항의해야죠. 요즘 제가 ‘고난일지2’에서 사형 당하는 장면을 작업중인데, 마치 제가 그것을 직접 당하고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마음이 힘듭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런 것을 피해서 달콤한 연애 이야기, 남녀가 앉아서 다방에서 차 마시고 하는, 연애 소설을 써본 적이 없습니다. 제 생리에 맞지도 않고요.”라고 설명했다.
‘4가 네거리의 축대’는 6·25 전쟁 때문에 정신적 장애를 가지게 된 주인공 김명구가 살터전도 잃고 끝내는 자살에 이르는 내용이다. 이 글에서 명구는 북한의 서울 수복 당시, 네거리의 축대 앞에서 군인이 자랑삼아 쏜 총에 자지를 맞아 그 충격으로 정신적 장애를 입게 된다.
작가 김원일은 “소설적인 부분도 있지만, 이 장면은 내가 어렸을 때 직접 목격한 것이기도 합니다. 전쟁하는 사람이나 당하는 사람이나 제정신입니까?  앞의 두 작품(미화원, 물방울 하나 떨어지면)은 장애우를 따스한 시각으로 바라봤지만, 실제 장애우의 삶은 그렇지 않습니다.”
현실에서 장애우의 삶은, 장애우가 등장하는 프로그램이나 드라마의 해피엔딩과는 전혀 다르다. 옛날에 고생 고생하다가 잘 살았다가 아니라, 아직도 죽음으로 내몰리고 있는 장애우들은 사회 곳곳에 있다. 사회 그늘에서 삶을 영위하다가 죽어서야 그 존재를 드러내는 장애우들. 이들은 바로 우리의 곁에 있다. 

물방울 하나 떨어지면
작가 김원일은 장애를 가진 자식을 둔 부모다. 그래서 더욱 이 사회에 장애 문제를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지도 모른다. 김 작가는 장애우에 대한 사회의 인식과 장애정책에 대해서도 따끔한 일침을 놓았다.
“김대중 정부이후부터는 장애우 정책이 조금 나아지는 것 같기는 합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는 선진국의 기준은 그 나라에 도서관 수가 얼만지, 고급 문화를 누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사회복지정책 특히 장애우 정책이 어떻게 잘 갖추어져 있는지에 대한 것입니다. 저는 우리나라가 아직 초보 단계라고 생각합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사회 관심도를 어떻게 높이느냐가 관건입니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장애우에 대한 편견 때문에 장애우들이 이 사회에서, 내 옆에서 멀리 떨어져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의무고용율을 지키는 기업도 거의 없죠. 장애우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부 정책도 너무나 미약합니다. 장애우들이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야 합니다. 첫 도움은 부모가 한다고 치더라도, 그 다음은 정부가 책임져야죠. 그런 방면에서 우리 나라는 아직 후진국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작가 김원일은 아직 우리 사회에 할 말이 많다.
세상의 모든 어린이, 장애우, 노인이 보호받을 수 있는 터를 꿈꾸기에 그이는 사회의 잘못을 꾸짖는 것에 게으름을 피우지 않을 것이다.
‘장애’를 비중 있게 다루는 소설이 거의 없는 우리 문학계에서 김원일씨의 〈물방울 하나 떨어지면〉은 이렇게 외롭지만 씩씩한 파장을 만들어내고 있다.

물방울 하나가 고요한 수면에 떨어지면 그 중량으로 파문이 겹으로 커지며 넓게 퍼지다가 스스로 넉넉한 물에 섞여 자취를 감춘다. 그 이치와 같이 베풂이나 선행, 우리네 삶 그 자체도 그런 물방울 하나이리라. 언젠가, 그이와 나도 물방울 하나로 떨어져 끝내는 그렇게 이 지상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리라. (‘물방울 하나 떨어지면’중에서)
 
※ 박스기사 : 소설가 김원일은 누구?
소설가 김원일은 태평양 전쟁이 한창인 1942년 경남 김해에서 태어났다. 그이는 스스로를 ‘내성적인 자기학대형’이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월북한 아버지를 대신해 가난한 여섯 식구를 부양해야 하는 장남으로써 겪었던 6·25전후의 경험은 그이에게 글을 쓰게 한 힘이었다고 한다. 실제로 김 작가는 작품 속에서 혼란했던 근대사의 소용돌이에 무방비 상태로 놓였던 사람들 이야기를 작품 속에서 녹여냈다.
그리고 작가 김원일은 작품 속에서 장애우와 노인에 대한 애정을 보여왔다. 그이는 “힘들게 움직이는 굼벵이나 그런 늙은이가 추하다거나 쓸모 없는 인생의 잔영이라 느낀 적은 없다. 늙은이의 경우 그가 아무리 초라한 모색일지라도 고난스런 세월을 그 때까지 어떻게 견디어왔나를 생각하면, 다만 생명을 지켜왔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슬기로워 보인다”고 말한다. 작가 김원일은 삶에 대해서 깊은 통찰과 관심을 바탕으로 개인이 살아낸 생애를 중요하게 생각해 왔다.
소설가 김원일은 1966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1961년 알제리아’의 당선으로 데뷔했다. 그리고 우리나라 근대사, 특히, 4·19, 6·25 등을 소재로, 의식적인 소설을 발표해왔다.
그이의 대표작으로는 〈노을〉(1978), 〈도요새에 관한 명상〉(1979), 〈겨울 골짜기〉(1987), 〈마당깊은 집〉(1988), 〈늘푸른 소나무〉(1993), 〈불의 제전〉(1997), 〈슬픈 시간의 기억〉(2001) 등 다수가 있다.

 

글 최희정 기자     사진제공 〈김원일 깊이 읽기〉문학과지성사

작성자최희정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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