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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글에서 일어난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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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군가 이런 말을 했더군. "장애우들은 도태되어야 할 존재입니다. 자연계, 적자생존의 자연계였으면 살아남을 수 없죠. 장애우들은 튜브에 매달려 인공적으로 살려주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라고 말야.

뭐, 그렇다고 이 말을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장애를 바라보는 데에도 흔히 얘기하는 좌파와 우파가 있다면, 분명 극보수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하는 얘기일테니까 말야. 그렇지만 말야. 고민할 지점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해. 만약 장애우가 혼자 살아가야 한다면 그것도 뇌성마비나 정신지체 장애를 가진 중증의 장애우가 혼자 살아가야 한다면, 어쩔 수 없이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어. 하긴 장애우가 아니더라도 인간은 누구나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으니까 장애우를 따로 떼어내 도움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겠지. 그냥 중증의 장애우는 비장애우보다 더 타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일 뿐이다. 이렇게 이해하고 넘어가면 될 거야.  

왜 이런 말을 불쑥 꺼내냐면, 누구나 다 알고 있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는 자본주의 사회거든. 힘없는 사람은 잡아먹히는 적자생존의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는 냉정한 사회라는 거지. 그러면 말 그대로 이 세계가 정글이라면 장애우의 존재는 어떻게 되는 걸까, 우선 떠오르는 생각을 얘기해 보면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장애우에게 튜브의 역할은 누가 뭐래도 국가가 하고 있다고 보면 되겠지. 국가는 장애우가 정글에서 굶어죽지 않게 최소한의 식량을 제공하고 있어. 그리고 강한 발톱을 가진 맹수에게 잡아먹히지 말라고 케냐의 사파리처럼 장애우들을 따로 모아 보호구역을 운영하고 있는 거야. 복지법도 고용촉진법도 모두 국가가 맹수로부터 장애우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울타리라고 볼 수 있는 거지. "너희들 절대 이 울타리 안으로 침범하면 안돼. 침범하면 혼내줄 거야!" 맹수보다 힘이 센 국가가 망루에서 이십사시간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거든. 그래서 맹수들은 속으로 끙끙 앓으면서도, 정글의 법칙을 무시하는 국가에 대해 불만이 많으면서도 감히 장애우의 권리를 침해 할 생각을 못하고 있는 거지.   

그런데 말야. 불안한 가운데서도 근근히 질서가 유지되던 정글에서 최근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옛날 이야기를 해볼게.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초원이 있었어. 그 초원에는 날카로운 이빨과 강한 발톱을 가진 호랑이나 사자 같은 맹수들이 먹어도 먹어도 배부르지 않는 식탐을 자랑하며 강자로 군림하고 있었지. 그런데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다고 맹수보다 더 강한 존재가 초원에 존재하고 있었어. 바로 국가였어. 맹수들이 국가에 감히 대항 할 생각을 못했던 것은 국가가 총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야. 국가는 맹수들을 한 방에 날려보낼 수 있는 총을 가지고 있었거든. 국가가 총을 탕탕 쏘면 아무리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맹수라도 맥을 못 추고 스러질 수밖에 없었지. 말하자면 국가는 총이라는 무기를 가지고 초원의 절대자로 군림하고 있었던 거야.

그런 국가의 보호아래 초원의 구석진 한켠에는 사슴 같이 순한 장애우들이 살고 있었지. 그런데 말야. 사슴 같은 장애우들은 맹수들이 모든 땅과 먹이를 독차지해서 먹고 살 수단이 없었거든. 초원에 널려 있는 모든 농장들이 맹수들의 관리하에 있어서 맹수들은 자기들 입맛에만 맞는 동물들만 고용해서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기르면서 부를 축적하고 있었던 거야. 그래서 오래 전 어느 날 굶어죽게 된 장애우들은 떼로 몰려가 국가에 항의했지.

"우리들도 초원에 살고 있는 이상 먹고 살 권리가 있습니다. 국가는 우리들의 생존권을 보장하십시오. 당신이 초원의 절대자로 군림하려면 그에 맞는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다 해야 할 거 아니오. 그러니 맹수들의 농장에서 우리도 일을 해서 먹고 살 수 있도록 권리를 보장하시오."

국가가 가만히 들어보니 사슴 같은 장애우들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거든. 특히 초원의 절대자로 군림하려면 그에 걸맞는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에 가슴이 뜨끔했지. 그래서 국가는 호랑이 대표를 불러서 말했어.

"내가 생각해보니 초원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사슴 같은 장애우들에게도 먹고 살 길을 열어줘야 할 것 같다. 그럴려면 불가피하게 너희들 맹수들이 양보를 할 수밖에 없다. 우선 너희들이 관리하고 있는 농장에 사슴 같은 장애우들을 고용할 것을 명령한다. 대신 아주 적은 숫자만 고용해도 내가 눈감아 줄테니까 너희들도 큰 손해는 입지 않을 것이다. 이 명령을 지키지 않으면 강제로 벌금을 거둘테니 그리 알아라."    

그래서 사슴 같은 장애우들 중 아주 일부가 맹수들 농장에서 일을 해서 겨우 먹고 살 수 있게 됐지. 그런데 말야. 사슴 같은 장애우들 중에서는 중증의 장애우들이 있었거든. 중증의 장애우들은 장애가 심해서 혼자 먹이를 구할 수가 없었어. 국가가 장애우들을 고용하라고 명령했지만 맹수들의 농장에서는 중증장애우들은 일을 못한다고 고용 대상에서 아예 제외해 버렸거든. 어떡하겠어. 초원에서 살아남으려면 다신 국가에 매달리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지. 사슴 같은 장애우들은 다시 몰려가 국가에 항의했어.

"장애가 심하지 않은 장애우들은 농장에서 일을 해서 먹고 살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렇지만 심한 뇌성마비나 정신지체 장애 등을 가진 우리 중증장애우들은 먹고 살 수 있는 길이 전혀 없습니다. 초원에서 국가의 역할이 뭡니까, 약한 동물을 보호하고 자기 힘으로 노동을 해서 먹고 살 수 없는 동물들에게도 노동의 기쁨을 알게 해 줘서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지금 맹수들은 중증장애우들이 생산성이 없다고 고용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국가는 이런 불합리한 처사를 묵과하지 말고 국가가 나서서 중증장애우들에게도 농장에서 일 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시오." 

국가는 초원에서 국가의 역할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는 것에 대해 가슴이 뜨끔했지. 장애우들 말을 들어주지 않으면 권위가 손상을 입을지도 모른다는 판단을 한 국가는 이번에는 사자를 불러서 말했어.

"너희들이 경증 장애우만 고용하고 중증장애우 고용을 외면하는 바람에 내 입장이 무척 곤란하게 됐다. 그래서 이제부터 특히 중증장애우를 고용하는 농장에는 보조금을 많이 지급하는 당근 정책을 시행하도록 하겠다. 만약 그래도 너희들이 중증장애우를 고용하지 않으면 내 직권으로 별도의 농장을 만들어서 중증장애우들을 고용하도록 하고, 그 농장에는 너희들에게서 걷은 벌금으로 조성된 기금을 지원할 예정이다. 어때 이의 없지."  

사자는 속으로는 불공평하다고 생각했지만 국가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떤 화를 당할지 모르는지라 "이의 없습니다." 라고 대답하며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지.

이런 과정을 거쳐서 초원에 중증장애우들이 일 하는 소규모 사업장들이 여러 곳 생기게 된 거야. 국가에서 보조금을 많이 지급한다고 했지만 오로지 이윤 창출이 지상목표인 맹수들이 운영하는 큰 농장에서는 천지가 개벽한다 해도 생산력이 떨어지는 중증장애우들을 고용하지 않았거든. 대신 아주 작은 농장에서는 중증장애우를 고용하면 보조금을 주니까 그 맛에 장애우들을 조금씩 고용했지. 그래도 고용이 되지 않는 중증장애우들은 할 수 없이 따로 소규모 작업장을 만들어서 국가의 지원에 기대 일 할 권리를 찾을 수밖에 없었던 거야. 그런데 말야. 이런 식으로라도 중증장애우들이 일을 한다는 것은 굉장히 큰 의미가 있는 일 이었어. 그 동안 초원에서 중증장애우들은 무능력자로 취급되며 철저하게 소외당하고 있었거든. 맹수들이 먹다 남은 고기나 던져주면 감지덕지하며 받아먹어야 하는 동정의 대상이었고, 집밖으로 나오지도 못해 존재 자체가 잊혀진, 초원의 바닥에서 겨우 숨을 쉬며 사는 하류 동물 취급을 당하고 있었단 말야. 그랬던 중증장애우들이 지긋지긋한 골방을 벗어나 초원으로 나올 수 있게 되고, 비록 조그마한 농장이지만 다른 동물들과 어울려 일도 할 수 있게 되고, 또 같은 처지의 동료들과 모여 정도 나누고 일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중증장애우들은 비로소 살아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된 거지. 그래서 누구는 이 일을 초원에서 국가가 한 일 중 최대 업적이라고 찬양하기도 했어.  

그랬는데, 마치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내린 것처럼 다시 중증장애우들이 위기에 직면하게 된 거야. 솔직하게 얘기하면 중증장애우들이 모여서 일 하는 사업장의 생산력은 많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 특성상 중증장애우들이 일 하는 사업장에서 이윤을 기대한다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말을 하고 싶은 거야. 그래서 중증장애우들을 고용한 작은 농장도, 또 중증장애우들이 모여서 만든 작은 사업장도 전적으로 국가가 지원하는 보조금에 기대 겨우 유지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거든. 그런데 최근 국가가 이 보조금 지급 액수를 무려 반을 깎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하고 나선 거야.

사슴 같은 장애우들의 요구에 의해 국가가 장애우들을 맹수들의 농장에 강제로 고용하게 만드는 제도를 만들 때, 국가가 큰기침을 하면서 맹수들에게 장애우 고용을 하지 않으면 대신 벌금을 거두겠다고 큰소리 쳤다고 했잖아. 국가는 엄포에 그치지 않고 실제로 맹수들에게서 벌금을 거둬들였어. 그 벌금으로 조성된 기금이 처음에는 눈덩이처럼 많이 쌓였지. 맹수들이 토라져서 내가 사슴 같은 장애우들을 고용하느니 차라리 벌금을 내고 말겠다고 뻗댔기 때문이야.

맹수들 입장에서 보면 국가는 총으로 위협하지 않았을 뿐 날강도나 다름없었거든.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농장에는 장애우들을 고용하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벌금도 내지 않으면서 자신들에게만 장애우 고용을 강제하고 벌금을 내라고 하니 맹수들 입장에서는 심기가 편할 리 없었지. 그래서 억울한 심정에 국가에 대해 항의를 하기도 했었거든.

"아니 국가님 이거 너무 하는 거 아닙니까,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농장도 많고, 초원을 관리하는 일자리도 우리보다 훨씬 많은데, 국가는 왜 장애우를 고용하지 않고 우리들에게만 고용을 강제하는 겁니까, 그리고 국가는 단 한 푼의 벌금도 내지 않으면서 우리들에게서 걷은 돈으로 선심을 쓰며 생색내고 있으니 이래도 되는 겁니까, 우리가 뭐 사천만의 봉입니까."

국가가 맹수들 항의에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 알아, 인상을 있는 대로 썼지. 그러고 나서 조폭 두목같이 폼을 잡으면서 말했어.

"감히 나에게 도전하겠다는 거냐, 너희들 곳간이 차고 넘쳤나 보군, 어디 얼마나 먹을 게 많은지 세무조사를 한 번 해볼까, 아니 내가 그 동안 눈감아주고 있었지만 몇 놈을 추려서 감옥에 보내야 이것들이 정신을 차리겠군. 너희들 사기 치고 도둑질하는 거 내가 모를 줄 알아, 모처럼 거 뭣이냐 사회적 책임을 지고 좋은 일을 해서 덧씌어진 부정적인 이미지를 ㅆ으라고 선처했건만 말이 많네, 이놈들 내가 하라면 하는 거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맹수들은 결정적으로 총이 없으니까 깨갱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었지. 그렇지만 맹수들도 자존심이 있었거든. 어쨌든 국가가 괘씸하다고 생각한 맹수들은 장애우 고용 대신 벌금을 내는 것으로 오기를 부렸던 거야.

장애우 고용은 늘어나지 않고, 벌금으로 조성된 기금은 쌓여만 가니 어떻게 되겠어. 초원의  여론이 냄비 속의 물 끓듯이 들끓기 시작했지. 국가는 왜 벌금으로 조성된 기금을 활용하지 않고 곳간 속에 쌓아두고만 있느냐, 그만큼 거뒀으면 이제 벌금을 거두지 않아도 되는 거 아니냐, 명백한 정책 실패다. 목표로 했던 장애우 고용이 늘지 않고 있으니 맹수들에게 부담만 주는 장애우 강제 고용 제도는 당장 폐지해야 한다는 등등 말들이 많았단 말야.

국가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여론을 방치했다가는 잘못하면 민란이 일어날지도 모르겠거든. 발등에 불이 떨어진 국가가 살펴보니까 문제의 핵심은 쌓여 있는 기금이었어. 그래서 국가는 돈을 어떻게 빨리, 많이 써서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궁리를 하기 시작했지. 국가가 머리를 백여 번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서 생각해낸 방안은, 무릎을 탁 치며 획기적인 방안이다 라고 소리치며 득의만만해 한 해결책은 다름아닌 장애우 교육기관 설립이었어.

국가의 판단은 직업훈련기관을 여러 곳 만들어서 맹수들에게 필요한 인력을 제공해 주겠다 그러면 우선 쏟아지는 비난 여론을 잠재울 수 있을 테고, 또 이건 극비사항인데 국가에 오로지 한 길로 충성해온 동물들을 데려다가 훈련기관의 직원으로 채용하고 월급을 줘서 먹고 살 길을 열어줄 수도 있단 말야. 그야말로 국가 입장에서 보면 꿩 먹고 알 먹기였지.

그래서 국가는 서둘러 수 백 억원을 들여서 초원 곳곳에 뼈대만 큰 건물을 지었어. 그랬는데 문제는 그래도 돈이 남는다는 거였어. 국가는 이번에는 머리를 이백여 번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렸지. 그렇게 해서 생각해낸 방안은, 예전처럼 득의만만해 하지 않고 인상을 쓰며 고뇌에 찬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는데, 바로 맹수들에게 선심을 쓰자는 것이었어. 

맹수들의 농장에는 뼈빠지게 일하다 산업재해를 당해 다친 말이나 소 같은 동물들이 있었거든. 그렇지만 그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사슴 같은 장애우들은 아니었어. 그들을 위한 다른 제도가 있어서 고용도 이루어지고 보상도 해줬단 말야. 그래서 사슴 같은 장애우들보다 사는 형편이 낳았는데, 국가는 이들을 장애우 무리 속에 섞어버리기로 한 거야. 국가가 포고령을 내렸어. 맹수들의 농장에서 일하다 다친 동물들도 장애우로 인정해서 고용 보조금을 지급하겠다는 내용이었지.  

이렇게 극약 처방을 하고 나니까 비로소 장애우 고용율이 엄청 높아졌던 거야. 돈을 못써서 환장했는데 돈도 많이 쓸 수 있게 되고, 맹수들의 불만도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고, 또 수치상 비난의 대상이었던 지지부진한 장애우 고용율도 눈에 띄게 높아졌으니 국가 입장에서 보면 더 이상 좋을 수 없는, 절로 미소를 짓게 만드는 해결책이었지.

그런데 말야. 세상일이 어디 뜻대로만 되나. 어느 날 큰 일이 벌어진 거였어. 글세 써도 써도 마르지 않을 것 같았던 기금으로 채운 곳간의 우물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던 거야. 건물 짓느라 퍼주고 직원들 월급 주느라 퍼주고 또 변칙적으로 고용율을 높이기 위해 마구  마구 퍼주었으니 우물이 마르는 게 당연했지만 설마 우물이 바닥을 드러낼 줄은 국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거든. 그렇다고 장애우 고용을 위해 자기 돈을 내놓아서 우물을 채울 생각은 털끝만큼도 없었던 국가는 작금의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되자 무척 당황할 수밖에 없었지. 이번에는 머리를 삼백 번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렸다고 해야 하나, 그랬다고 치고, 어쨌든 국가는 민란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서둘러 대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었던 거야. 그 대책이 뭔지 알아. 지어 놓은 건물을 부술 수도 없고, 국가에 충성하는 동물들을 내쫓자니 체면이 안 서는 일이고, 모처럼 높아진 고용율을 다시 끌어내리는 것은 악몽 그 자체니 남아있는 국가가 선택할 수 있는 방안이 뭐가 있겠어. 바로 농장에서 장애우를 고용할 때 지급하는 고용 보조금을 대폭 삭감해서 지급하는 손쉬운 방안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던 거지. 국가는 짐짓 아무 일도 아닌 것처럼, 험 험 마른기침까지 내뱉으며 위엄 있는 목소리로 초원에 다음과 같이 포고령을 내렸어. 

"작금의 장애우 고용촉진기금 고갈 사태는 내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농장에 지급하는 고용장려금 수준이 지나치게 높게 책정되었던 데서 비롯되는 것 같다. 그리고 험 험 농장들의 협조로 기대 이상의 장애우 고용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고용 장려금의 증가가 기금의 고갈을 초래하고 있는 실정이다. 어쨌든 이 사태를 좌시할 수 없어서 앞으로 장애우를 고용할 때 지급하는 장려금을 지금 수준의 절반으로 줄여서 지급하는 대책을 마련해서 시행하도록 하겠다. 고뇌에 찬 결단 끝에 나온 대책이니 만큼 아무쪼록 농장과 장애우들의 이해가 있기를 바란다."

여기까지가 그간 장애우를 둘러싸고 초원에서 벌어졌던 일이야. 자 이제 장애우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는 걸까, 돌려 말하지 않고 예상되는 변화를 직설적으로 얘기해 볼게.

물어보나마나 중증장애우들이 직격탄을 맞고 스러질 수밖에 없지. 기업에서 근근이 이어지던 중증장애우 고용 시장은 붕괴되고, 그 여파로 사회에서 중증장애우들의 존재는 사라지는 거야.

맞아. 정부에서 말하는 대로 지금처럼 고용보조금에 의존해서 유지되는 장애우 고용 형태는 결코 바람직한 고용이 아니지. 때문에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어. 바람대로 세월이 지나면 언젠가는 고용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장애우가 기업에 고용될 수 있는 그 날이 올 거야. 하지만 지금은 때가 무르익지 않았거든. 그러니 어떡하겠어. 어쨌든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니겠어. 

재차 강조하지만 지금 중증장애우 고용은 정부가 주는 고용 보조금에 의지해서 겨우 유지되고 있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이 아니야. 기업가들은 결코 자선사업가가 아니거든. 그런데 고용 보조금을 반으로 삭감해서 지급하겠다고 하면 어느 기업가가 중증장애우를 고용하겠어. 거기에 대해 그나마 고용하고 있던 중증장애우를 삭풍이 부는 거리로 내쫓지 않는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어. 벌써 장애우 고용 시장은 고용주들이 고용보조금이 삭감되는 게 사실이냐며 묻는 전화가 단체에 빗발치는 등 심하게 동요하고 있는데 정부 눈에는 그게 보이지 않는 모양이지.  

또 하나 정부의 이번 대책이 크게 잘못됐다고 따질 수밖에 없는 것은, 정부가 장애우의 사회통합 원칙을 명백하게 훼손시켰기 때문이야. 장애우는 수용시설 같은데서 그들끼리 만이 아닌, 비록 그 과정이 더디고 힘들더라도 사회에서 비장애우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거야. 이게 사회통합이고 장애우들이 꿈꾸는 미래지. 

그런데 노동부는 장애우들이 보조금 축소 정책에 대해 반발하니까 무슨 협회 같은 단체나 수용시설에서 운영하는 규모가 큰 근로사업장에는 별도의 예산을 책정해서, 말을 달래려고 주는 당근 성격임이 분명한, 보조금을 일반 사업장보다 더 많이 지급하겠다고 이면 계약을 맺었다는 거야. 이게 뭘 뜻하는 거겠어. 초등학교 아이도 그 의도를 단박에 알 수 있는 일 아니겠어. 자상한 노동부는 이렇게 말하고 싶은 거겠지. 중증장애우들에게 고함, 비장애우들과 어울려서 일하는 사회에 있는 사업장은 고생만 되니까 취업 할 생각은 하지 말고, 또 만약 취업해 있다가 해고되면 장애우들만 모여 있는 사업장에 가서 일해라. 뭐 거기도 취업이 쉽진 않겠지만, 우리가 별도의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팍팍 밀어주고 있으니까 사회에 있는 사업장보다는 형편이 나을 거다. 라고 말야.

결국 정부는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정책 시행으로 고용 제도를 멍들게 하고 나아가 그 피해를 고스란히 중증장애우들에게 전가하고 있는 셈이지. 지금이라도 잘못됐다고 인정하고 서둘러 정부 예산을 책정해서 고용시장을 유지하면 좋겠지만 우리가 아는 노동부는 장애우에게 우호적인 노동부가 결코 아니지.  

한심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어. 정글의 법칙은 이런 것이었나,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먹히고, 그래서 중증장애우들은 넓은 초원에서 살 권리를 박탈당한 채 고립될 수밖에 없는 건가. 이렇게 중증장애우들을 소외시키고 말거라면 애초에 고용 제도는 뭐하러 만들었니? 누군가 이 질문에 대답해 줬으면 좋겠어. 어떤 대답이라도 좋으니까 납득할 수 있는 얘기를 해줬으면 좋겠어. 그런데 이상하네. 왜 다들 침묵하고 있는 거지? 

글 이태곤 기자


 

작성자이태곤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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