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여성영화제 아시아 단편 출품작 <울타리넓히기> 황선희 감독 > 문화


제6회 여성영화제 아시아 단편 출품작 <울타리넓히기> 황선희 감독

“내 아이 버들이의 작은 이야기와 하루하루 소박하게 살아가는 그림이 지친 사람들에게 고개 끄덕이는 따뜻함과 포근함으로 남길 바래요”

본문

 우리들에게 카메라가 살아가는 힘이 되었듯 많은 장애우들에게, 그 부모들에게, 장애와

▲(좌)황선희 감독과 (우)류미례감독
 

 

 
 
관련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카메라로 말하는 법을 알려주고 싶다. 모두들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볼펜처럼 카메라가 익숙한 도구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이방인이 아니라 경계인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스스로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하나밖에 없듯, 나의 시선, 나의 이야기는 내가 할 때 가장 잘할 수 있다. 더 이상 다큐멘터리가 먼 나라 얘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 오늘을 살아가는 당신의 삶이 가장 멋진 다큐멘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다.

나와 황 감독과의 인연 : 세 번의 만남
지난 4월, 신촌에서는 제6회 여성영화제가 성대하게 치러졌다. 8일 동안 상영되었던 70여 편의 영화 중에는 정신지체장애우가 주인공인 영화가 있었다. 23살 다운증후군 버들이 이야기 <울타리 넓히기>. 영화를 만든 사람은 황선희 감독, 바로 버들이의 엄마다.
영화 속에서 또 영화 밖 현실에서 자신은 어떤 울타리가 되어야하는지를 끊임없이 묻는 황선희 감독과의 ‘인연’을 글로 옮긴다.

첫 번째 만남

 
2003년 4월, 광화문에 있는 미디액트에서는 ‘찾아가는 미디어교실, 미디어 불평등을 넘어서’라는 취지로 장애우 미디어교실이 열렸다. 장애우가 주인공인 다큐를 제작했다는 이유 때문인지 내 이름도 강사진에 포함되어 있었다. 편집 강의를 위해 내가 만든 영화를 들고 강의실에 들어서니 10명이 못되는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대부분 지체장애우들이었고 다운증후군 딸을 두었다는 중년여성 한 사람 있었다. 강의가 끝난 후, 갑작스레 맡은 강의라 내내 긴장해 있던 내게 수강생들은 뒷풀이를 가자고 했다.
고백컨데, 장애를 가진 사람 앞에만 서면 나는 주눅이 든다. 아마도 첫 만남 때부터 그랬던 것 같다. TV에서만 보던 장애우를 직접 내 생활에서 만나게 된 건 93년 겨울, 하이텔의 두리하나 동호회에 가입하면서부터이다. 채팅과 게시판 활동을 통해서 내게는 친구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하나 둘씩 생겨났다. 그러나 1년에 한 번 있는 정기모임에 참석하던 날, 나는 큰 혼란에 빠졌다. 자원봉사로 비디오촬영을 맡았던 나는 행사 촬영을 위해 앞에 나서야 하는 그 상황을 견뎌내지 못했던 것이다. 몸이 불편한 그들 앞에서 내 팔이, 내 다리가, 내 눈이 멀쩡한 것이 죄스러웠다. 그렇게 주눅 들어 촬영도 제대로 못한 채 돌아왔던 그 날 이후 나는 장애가 있는 사람 앞에만 서면 어찌할 바를 모른 채 긴장한다. 마음을 어떻게 표현할지 모르는 것이다.
종로 뒷골목, 감자탕 집에서 소주를 마시며 뒷풀이를 하면서도 나는 내내 긴장해있었다. 술을 마시던 누군가가 내게 말했다.
“죄송하지만 화장실에 좀 데려다주실래요?”
그녀는 휠체어를 타고 있었고, 나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다가 사과를 했다.
“미안합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장애우가 주인공이었던 내 영화에 대해서, 그리고 장애와 영화에 대해서 그렇게 많은 말들을 해왔으면서도 나는 작은 도움 하나를 줄 수 없을 만큼 무능했다. 미안하고 부끄러워서 어쩔 줄 몰라 하는 내게 그 중년여성이 말했다.
“모르는 게 죄인가요? 물어보면 되지요. 너무 미안해하지 마세요.”
동정과 멸시, 무관심과 과잉 친절, 장애문제에 관해서 한쪽으로 치우쳐있는 대부분의 비장애우들과는 거리가 먼 그녀의 편안함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불편한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그 따뜻한 위로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두 번째 만남
2004년 3월, CBS 라디오 ‘함께사는 세상’에서 인터뷰요청이 왔다. 여성영화제를 앞두고

황선희감독과 버들이
영화를 출품한 두 명을 초청한다는 것이다. 엄마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나, 그리고 딸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황선희 감독. 우리들이 선택된 건 아마도 가족의 이야기를 영화로 담았다는, 보통 사람은 잘 하지 않는 일을 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다시 그녀를 만났고 이름까지 알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선.희. ‘기쁨을 베풀라’는 뜻이라 했다. 생방송이라 긴장하며 초시계와(방송시간을 초과하면 안되니까), 진행자의 표정을 열심히 살피다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황선희 감독의 말에 빠져들었다.
영화의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는 같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 사이에는 1년 여의 시간이 담겨있다. 그러나 1년의 시간이 흘러도 버들이의 하소연은 변함이 없다. 사랑의 아픔이 여전한 것이다. 복지관 오빠를 좋아하는데 그 오빠한테는 연인이 있다.
“엄마, 저 어떻게 해주세요. 그 오빠 사랑할 수 있게.”
스물 세 살 버들이에게 엄마는 울타리였다. 세상을 보여주고, 바램을 들어줬던 울타리였다. 그리고 이룰 수 없는 사랑까지 하게 해달라고 조를 수 있는 전지전능한 존재이다. 그런데 울타리 얘기를 하던 황선희 감독의 눈에 물기가 어렸다.
“무기력한 나는 울타리가 되어주지 못했습니다. 영화에 나레이션을 넣는데 갑자기 왈칵 눈물이 솟았어요. 아직도 남은 눈물이 있다니 신기하기까지 하더군요. 전 오랫동안 많이 아파서 아이에게 아무 것도 해줄 수 없었던 정말 허술한 울타리였거든요.”
어디가 아팠었는지 궁금했지만 물어볼 수가 없었다. 방송이 끝난 다음 지하철역까지 동행했지만 난 묻지 못했다. 왠지 그런 자리에서 쉽게 물어봐서는 안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헤어지기 전, 황선희 감독은 홈페이지 주소를 알려주었다. ‘풀꽃 같은 버들꿈네 작은 이야기(http://munu55.hihome.com)’. 2000년, 생명을 살리자는 꿈을 안고 강원도 홍천에서 시골생활을 시작한 남편과 소통할 방법을 궁리하다가 황 감독이 손수 지은 사이버 집이다. 나는 궁금했던 많은 이야기들을 버들꿈네에서 들을 수 있었다.

두 번째와 세 번째의 사이
여성영화제에서 누군가 물었다.
“다큐멘터리가 당신에게 어떤 의미입니까?”
다큐멘터리는 내게 살아가는 힘을 주었다. 정신지체장애우들의 일상을 담은 <나는 행복하다>를 만들었을 때 푸른영상 사람들은 장애우에 대한 특별한 시선이 담겨있다고 말했다. 이해하기 힘든 그 말을 나는 내 방식대로 이해했다.
99년 관악장애인센터에 갔다. 홍보비디오를 만들기 위해 찾아갔던 그 곳에서 나는 세상이 줄 수 없는 평화를 만났다. 스물 아홉 살의 나는 세상에 지쳐있었고 그렇게 찾아간 장애인센터의 회원들은 나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밥은 먹었냐며 챙겨주는 그들의 마음이 고마웠다. 그런 고마움과, 회원들과 친구가 되고 싶은 마음을 담아 나는 첫 번째 영화를 만들었다. 센터 회원들이 장애를 가졌다는 건 내가 카메라를 든 사람이라는 것과 같은, 말하자면 그 사람을 이루는 특성의 하나일 뿐이었다. 회원들에게도 나는 자신들을 기록하는 사람이 아니라 친밀한 사람이었던 것 같다. 우리들의 관계가 들어있는 영화는 당연히 특별했을 것이다. 두 번째 영화를 만들 때에도 그들은 카메라를 의식하지 않고 수많은 비밀들을 털어놓았으며 밤이 되면 나는 편집실에 앉아 화면 안에서 빛나는 비밀들을 들여다보며 끙끙댔다. 두 개의 영화를 만들고 나는 이제 더 이상 못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관계가 두터워질수록 비밀의 무게는 더해갔으며 이제 나는 그 비밀들을 재료로 영화를 만드는 스스로를 용서하지 않기로 했다.
황선희 감독의 홈페이지에서 나는 보석처럼 빛나는 진심들을 보았다. 버들이를 낳고 대면했을 때 특별한 아이임을 알았지만 준비된 엄마가 아니었던 황 선희 감독. 육아일기에는 새순처럼 돋아난 젖니를 발견하는 기쁨 뿐만 아니라 답답한 가슴, 불면증, 우울증으로 고통받았던 힘든 시간들이 담겨있었다. 두 번째 만남에서 어디가 아팠었냐고 묻지 않은 건 잘한 일 같았다. 몸이 아니라 마음이 아팠던 그 시간동안 황선희 감독은 밥하고 살림하고 사람 만나며 아이들 돌보는 일이 물리치료 받는 수술환자처럼 어려웠었다고 한다. 그리고 스토리텔링.
이야기는 치유의 열쇠를 가지고 다니다가 진실로 ‘듣는 이’를 만나면 그 앞에 치유의 열쇠를 떨어뜨려 준다. ‘듣는 이’가 그 열쇠로 치유의 관문을 열면 문 저 쪽에 펼쳐진 치유의 통로를 ‘아픈 이’는 보게 된다?
황선희 감독은 삶을 나누는 스토리텔링 모임에서 처음으로 입을 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다큐멘터리를 만들며 “스토리텔링과 다르지 않다, 그 시간이 바로 치유의 과정이었다”라는 말을 한다. 자신의 이야기를, 자신과 다르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스스로 하는 것, 그것이 가장 진실되면서도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내가 더 이상 장애인센터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들지 못하고 있는 이유이며, 또한 황선희 감독의 영화가 반가운 이유다.

세 번째 만남
「함께걸음」에서 반가운 부탁을 해왔다. 황선희 감독과의 이야기를 글로 써달라는 것이었다. 덕분에 나는 정식으로 황선희감독과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가장 궁금했던 건 카메라와의 인연이었다. 스토리텔링을 통해 오랜 침묵을 끝내자 황 감독의 내면에서는 의욕과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버들이의 몸에 이상이 생겼다. 고관절 탈구였다. 처음엔 자신도 모르게 ‘이젠 신체장애까지? 더 이상은 안돼!’ 하는 마음이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견딜만한 힘이 생겼을 때, 버들이에게 울타리가 되어줄 수 있을 때 그렇게 된 것에 오히려 감사했다고 한다. 학교 가는 날보다 병원에 누워있는 날이 많은 버들이 대신 학교 행사나 운동회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아 아이에게 보여주었다. 그렇게 시작된 황 감독의 영상이야기는 이제 버들이 뿐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도 말을 걸고 있다.
“내 아이의 작은 이야기와 하루하루 소박하게 살아가는 그림이 지친 사람들에게 고개 끄덕이는 따뜻함과 포근함으로 남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버들이의 이야기를 세상에 내놓았을 때 관객들은 따뜻한 박수를 보냈다. 가장 기뻐했던 사람들은 버들이가 유치원생이었을 때부터 만나오던 학부모들이었다.
“아무도 하지 않은 우리들 이야기라며 너무 좋아하는 그분들 모습이 힘이 되었어요. 버들이 얘기도 계속 하고 싶고 부모들 얘기도 하고 싶고…. 하고 싶은 얘기들은 참 많지요”
오래 아팠던 시간 탓인지 황 감독은 사는 일을 계획하지 않는다. 그저 버들이 때문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그 따뜻한 손길들이 이 자리까지 이끌었듯 앞으로의 삶도 그럴 것이라 믿을 따름이다. 지금은 ‘성매매 여성들을 위한 쉼터’에서 의뢰받은 영상물을 만들고 있다.
“한계를 알고 시작한 작업이지만 갈수록 한계를 느껴요. 영어를 가르친다는 어떤 자원봉사자는 미아리 텍사스까지 찾아간대요. 그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난 거죽만 핥고 있구나? 싶어요.”
그 마음을 안다. 첫아이를 임신했을 때 병원에서는 내 아기가 다운증후군일 확률이 높다고 했다. 한 달을 울고 지내면서 나는 알았다. 누군가를 이해한다고 쉽게 말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내가 장애인센터의 한 켠에서 회원들과 같이 살고 있다 하더라도 나는 여전히 경계에 선 사람이라는 것을. 그래서 5~6년 후쯤엔 회원들과 함께 시골생활을 계획하

 
고있는 남편(그는 장애인센터에서 일하는 사람이다)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는 돌아서서 내 그릇을 가늠해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황선희 감독이 내 마음을 받는다.
“내 남편도 그래요. 강원도 홍천에서 자기 손으로 만든 흙집에서 살면서 우렁이 농사를 짓고 있어요. 그리고 우리들을, 특히 버들이를 기다리는데 난 버들이가 친구들 사이에서 같이 지냈으면 좋겠거든요. 그렇다고 내가 공동체 그릇은 아니고….”
언뜻 비슷한 점이 많다고 느끼는 순간 황 감독이 말한다.
“그렇다고 걱정하진 않아요. 난 위에 계신 분의 큰손을 믿거든요.”
황 감독의 평온함이 어디서 나오는지 알 것 같았다. 우린 각자가 실수한 셀프카메라 얘기며(우리들의 영화에는 공통적으로 그냥 카메라를 세워놓고 딸들과 얘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촬영자가 따로 없기 때문이다. 나의 셀프는 내 딸의 얼굴이 반쯤 잘려서 찍혔고, 황 감독의 셀프에는 말소리가 들어있지 않았다), 작품배급 문제를, 그리고 현재에 충실하기 때문에 항상 행복해하는 버들이와 센터의 회원들 이야기를 하며 웃음을 주고 받았다. 그리고 또다시 기약없는 작별을 했다.
세 번의 만남을 정리하는 지금, 나는 오래 지나지 않아 황 감독을 다시 만날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서로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지 궁금하다. 기회가 된다면 황 감독과 하고 싶은 일이 있다. 우리들에게 카메라가 살아가는 힘이 되었듯 많은 장애우들에게, 그 부모들에게, 장애와 관련 있는 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카메라로 말하는 법을 알려주고 싶다. 모두들 하나씩은 가지고 있는 볼펜처럼 카메라가 익숙한 도구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이방인이 아니라 경계인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 스스로의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라는 존재가 세상에 하나밖에 없듯, 나의 시선, 나의 이야기는 내가 할 때 가장 잘할 수 있다. 더 이상 다큐멘터리가 먼 나라 얘기가 아니라 바로 지금, 오늘을 살아가는 당신의 삶이 가장 멋진 다큐멘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꼭 그 일을 해보고 싶다. 그리고 그 길을 함께 가는 동반자로 황선희 감독을 다시 만나고 싶다. 그럴 수 있으리라 믿는다.

글 류미례(기록영화 연출자) / 사진 정선아(객원사진기자)

푸른영상 소속으로 다큐멘터리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봉천동 성공회 나눔의 집 장애인센터 ?함께사는 세상?의 회원들을 주인공으로 한 작품을 만들다 인연이 되어 지금은 그곳에 살고 있다. <나는 행복하다>, <친구> 등의 작품이 있으며, <엄마…>는 서울여성영화제 2기 다큐멘터리 옥랑상 수상작으로 지난 4월 여성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엄마…>는 제8회 인권영화제에서도 만날 수 있다.

작성자류미례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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