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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여자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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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 아직도 저를 원망하나요?어제는 대구에 갔었어요. 내가 당신을 처음 만난 곳, 시 외곽 반야월에 있는 결핵 환자 요양소를 물어물어 찾아갔어요. 오래 전 당신과 내가 그곳에 갇혀 있었을 때는 수용소 부근이 황량한 너른 들판뿐이었는데 어느새 수용소 부근으로 아파트와 집들이 빼곡이 들어서서 이젠 오히려 원주인인 수용소를 집어삼킬 듯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어요. 그래도 대문 안쪽으로 들여다본 수용소 내부는 옛날 그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반가웠지요. 운동장 한가운데 서 있는 커다란 느티나무 한 그루, 그 나무 아래 놓여 있는 낡은 평상 몇 개, 오른쪽에 늘어서 있는 이끼 낀 벽돌 건물의 남자 숙소와 반대편 여자 숙소도 옛 모습 그대로 있었어요. 오후의 따가운 햇살에 속수무책으로 알몸을 드러낸 마당에는 사람의 인기척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는데, 생각해보니 그때가 점심을 먹고 난 후 강제로 잠을 자야하는 수면시간이었어요. 그래서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는데, 모르죠. 지금도 그때의 우리처럼 애절한 그리움 때문에 잠을 자는 대신 철조망 너머로 애틋한 눈길을 주고받는 연인들이 있을 수도…
차마 마당 안으로 발을 딛지 못하고 대문 옆 담에 기대어 섰는데, 눈앞에 자꾸 당신 모습

 
이 어른거리는 바람에 너무 힘들었어요. 그때 당신을 만나지 말아야 했다는 깊은 후회로 속울음을 삼켜야 했어요. 당신 기억나세요?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 날, 제 기억이 정확하다면 어느 여름 날 이었지요. 점심을 먹고, 한 시간 수면을 취한 다음 주어지는 오후 산책시간이었어요. 당신은 원생들과 어울리지 않고 외톨이로 떨어져서 느티나무 아래 평상에 풀이 죽은 모습으로 앉아 있었어요. 다른 원생들은 모두 숙소 담을 등지고 앉아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는데, 유독 당신만은 햇살이 들지 않는 나무 아래 몸을 감추고 있었던 거예요. 그것도 그 날 하루가 아니라 며칠 째 당신은 외톨이로 떨어져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당신의 그런 모습이, 그래요. 내 눈에는 무척이나 가여워 보였나 봐요. 그래서 그 날 나는 숙소에 들어가서 간식으로 나왔던 것을 먹지 않고 옷장 속 깊숙이 숨겨두었던 빵 한 개를 들고 나왔지요. 그런 다음 당신에게 다가가 아무 말 없이 당신 손에 빵을 쥐어 주었어요. 당신은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그때 당신은 나를 보고 희미하게 웃었답니다. 아마 고맙다는 표시였겠지요. 그런데 그 미소가 나를 무척이나 설레이게 했어요. 어느 누구도 저를 보고 웃어주지 않았거든요. 당신의 미소를 마주한 순간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었고 얼굴이 빨개졌지요. 그게 당신과의 첫 만남이었어요.
그 날 이후 나는 당신의 그 선한 미소를 잊을 수 없었어요. 나 같이 기형의 장애를 가진 사람에게도 웃어주는 사람이 생기다니,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었고, 그래서 당신이 너무 고마웠어요. 저는 당신의 미소를 보고 싶어 간식으로 나온 빵이나 과자를 먹지 않고 꼭꼭 숨겨두었다가 당신에게 건넸지요. 시간이 흐르면서 당신 속옷 빨래까지 해주게 됐어요. 그 보답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은 나를 만나면 언제나 입가에 미소를 띄었고, 나도 미소로 응답했어요. 때로는 서로 미소를 지으며 주고받는 눈길이 백 마디 말보다도 더 많은 것들을 함축해서 전해 준다는 것을 믿을 수 있는 나날들이었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저는 당신이 나를 좋아한다는 판단을 했고, 그 판단은 맞았어요. 어느 날 오후 산책시간에 평소처럼 빵을 건네주러 다가간 나를 붙잡고 당신이 말을 꺼냈지요.   
?사람들에게 들으니 임자 곧 퇴원한다던데, 어디로 갈 생각인가??
저는 그때 퇴원을 한 달여 앞두고 있었거든요. 더 이상 당신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밤마다 가슴앓이를 하고 있었던 때였어요. 난데없는 당신 말에 당황해서 미처 제가 대답할 말을 찾지 못하자 당신이 말을 이어갔어요. 
“좋겠구먼, 임자는 그래도 갈 데가 있으니, 휴.... 임자가 없으면 누가 빵을 주지, 그래도 나는 임자를 의지하고 살았는데… 나는 여길 나가면 갈 데가 없어. 평생 여기 갇혀 살아야 할 팔자네.”
“저는 안양으로 갈 거예요. 거기 얻어 놓은 방이 있어요. 그런데 그쪽은 가족들이… 없나요?”
이렇게 묻는 순간 내 가슴이 얼마나 뛰었는지 당신은 아마 모를 거예요.
“없어. 자식새끼도 마누라도 모두 나를 버렸지. 휴… 그놈의 술이 원수지. 술만 먹지 않았어도 이렇게 되지 않았을 텐데, 여기도 술 먹고 길가에 쓰러져있는 걸 누가 신고해서 경찰들이 데려다 놓았다고 하더군. 그때 차라리 거리에서 죽게 내버려뒀으면 이 꼴 저 꼴 안 보고 편하게 개 같은 인생 끝낼 수 있었을 텐데…”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실은 저도 가족이 없어요. 시골에서 살았는데,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 오빠네 집에 얹혀 살아야 했지요. 그러다가 오빠에게 짐이 된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어 5년 전 오빠 집을 뛰쳐나와 안양에 월세 방을 하나 얻었어요. 여기 오기 전까지 거기서 쭉 혼자 살았어요.”
잠시 침묵이 흘렀지요. 저는 당신 앞에서 고개를 숙였고, 직감으로 어쩌면 당신이 나를 원한다는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내 직감은 틀리지 않았죠. 
“그랬구먼,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임자도 외로운 처지였구먼, 그래서 하는 말인데…  임자, 내가 염치없지만 부탁 하나 함세. 우리 피차 외로운 사람이고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끼리 만났으니까 여기서 나가서 같이 살면 안될까?”
“저는 보시다시피 이렇게 심한 장애를 가지고 있는데 괜찮겠어요?”
“장애가 무슨 상관인가, 그 보다는 먹고 살 일이 걱정이지만, 내가 노가다라도 해서 임자 먹여 살릴 테니까 염려 말고, 일단 여기서 나를 빼내줬으면 좋겠어… 그러면 평생 임자 은혜 잊지 않고 임자만 떠받들고 살겠네, 제발 부탁이니 그렇게 해주게…”
당신이 손을 뻗어 덥썩 내 손을 부여잡았죠. 그제서야 저는 고개를 들어 당신을 쳐다봤어요. 내 눈앞에 미소 대신 당신의 눈물 맺힌 그렁그렁한 눈망울이 커다랗게 확대돼서 다가왔어요. 미소도 그랬지만 그때 당신의 슬픈 눈도 너무나 가여웠어요.   
“먹고사는 문제는 걱정 마세요. 제가 당신을 먹여 살릴 테니까…그보다 당신 정말 저를 좋아하나요?”  
“그걸 말이라고 하나, 내게는 임자밖에 없네. 임자를 사랑하니까 이런 부탁도 하는 거고, 평생 한눈 팔지 않고 임자만 바라보고 살테니까…  그 점은 걱정 말고, 제발 나를 여기서 빼내주게…”
당신, 이제 와서 고백하지만 제가 그때 짧은 순간 당신 눈에서 확인한 건 절망에 빠진 한 사내의 애절한 눈빛이었지, 사랑에 빠진 연인의 애틋한 눈빛이 결코 아니었어요. 당신은 내게 거짓말을 하고 있었지요. 분명히 말하지만 당신은 나를 사랑한 게 아니었어요. 오로지 그 지긋지긋한 수용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거짓으로 나를 사랑한다고 말한 거였어요, 하긴 저 같이 키도 작고, 등도 나오고,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여자를 이 세상 어떤 남자가 좋아하겠어요. 그랬지만, 저는 그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그때 제가 당신의 제의를 거부하지 않고 순순히 받아들인 건 저도 당신이 간절히 필요했기 때문이었어요. 그래요. 제 곁에 있어주는 누군가가 필요했어요. 이 험난한 세상에서 희망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온통 절망뿐인 세상에서 그래도 제가 목숨이나마 부지하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굳이 당신이 아니더라도 누군가가 정말 필요했어요.
당신 마음에 상처가 되겠지만, 솔직하게 고백하면 저도 당신을 사랑한 건 아니었어요. 다만 지독한 외로움에 가슴앓이를 하며 살아야 했던 제 처지에서는,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내 곁을 떠나지 않고 있어주는 그 누군가가 필요했던 거예요. 냉정하게 말할게요. 그때 제가 당신을 선택한 이유는 오직 한 가지,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단속에 걸려 갱생원에 잡혀갔을 때 나를 꺼내 줄 법적인 보호자가 필요해서, 당신의 같이 살자는 제의를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였던 거였어요.  
당신에게는 얘기하지 않았지만 결핵에 걸려 수용소에 갇히기 전 제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유일한 수단은 구걸이었어요. 배운 게 없고, 여성이고, 장애도 심한 저를 받아주는 곳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어요. 저는 황량한 벌판을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하고 혼자 헤쳐나가야 했어요.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해야 했지요. 나는 거리에서, 혹은 육교 위에 엎드려서, 세상을 향해 제발 이 비루한 한 목숨 이어가게 해달라며 빌고 또 빌었던 사람이었어요. 바구니에 딸랑 소리를 내며 떨어지는 동전 소리가 제 유일한 생명줄 이었지요. 그런데 그런 제 모습이 보기 싫다고, 거리 미화를 이유로 구청에서 나온 힘센 아저씨들이 단속을 했던 거였어요. 저는 힘이 없으니까 단속을 피해 도망쳤어요. 그렇지만 다리가 아파서, 장애 때문에 도저히 멀리 도망칠 수 없었어요. 몇 걸음 떼지 못하고 단속반원에게 잡힌 저는 번번이 행려병자 취급을 받아 갱생원에 실려갔고, 그 곳은 법적인 보호자가 와서 저를 데려가지 않으면 도무지 세상으로 나올 수 없는 감옥 같은 곳이었어요. 몇 번은 오빠를 수소문해 겨우 갱생원을 빠져 나올 수 있었지만, 나중에는 오빠도 창피하다며 싫어하는 기색이 역력해 난처했어요. 어차피 결핵 환자 요양원을 나가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구걸밖에 없는데, 만약 또 다시 갱생원에 잡혀 갈 경우 이젠 누가 나를 꺼내줄까, 누구에게도 얘기하지 않았지만 이게 퇴원을 앞둔 저의 가장 큰 고민이었던 거예요.    
당신, 제가 이런 말 하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말하자면 당신과 나 우리는 사랑이 아니라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부부의 인연을 맺게 된 거였어요. 저의 가장 큰 후회는, 가정이지만, 당신과 내가 이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면, 그래서 거리를 두고 부부생활을 이어갔다면, 이렇게 우리의 결혼 생활이 파국으로 끝나지는 않았을 거라는 거예요.
수용소에서 나와 부부가 된 우리 두 사람, 그 후 우리에게 과연 행복했던 시절이 있었을까요? 당신 나를 만나 행복했었나요? 저는 결코 행복하지 않았어요. 빛 바랜 사진을 바라보는  것처럼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보면, 제게 남은 것은 가슴을 에이는 심한 아픔밖에 아무 것도 남은 게 없어요. 
그때 제가 먼저 요양소에서 나오게 돼서 혼인신고를 하고 석 달 후 당신을 안양으로 데려왔지요. 내가 예감했던 대로 당신은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무능력자였어요. 이미 술이 당신의 머리까지 먹어버린 상태였어요. 그래도 저는 설마 당신이 같이 살게 된 첫 날부터 나를 향해 폭언을 퍼붓고 폭력을 행사할 줄은 정말 몰랐어요.
안양 그 지하방에서의 첫날밤을 저는 죽어도 잊지 못할 거예요. 당신은 짐도 풀기 전에 대뜸 소주부터 찾았죠. 그것도 한 병이 아니라 무려 열 병을 사오라고 저를 다그쳤어요. 그때 당신의 눈빛은 요양소에서 저를 바라보던 애절한 눈빛이 아니었어요. 광기가 번뜩이는 무서운 눈빛이었어요. 저는 당신 기세에 밀려 소주를 사왔고, 세상에 당신은 열 병이나 되는 소주를 앉은자리에서 숨도 쉬지 않고 마셔댔어요. 저는 그런 당신이 정말 무서웠지만, 오금이 저려 그 자리를 벗어나지는 못했지요. 당신은 소주를 더 사오라고 또 다시 저를 다그쳤고, 저는 공포심 때문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벌벌 떨고만 있었어요. 그러자 당신은 대뜸 한 손으로 제 머리채를 부여잡더니, 남은 한 손으로 사정없이 저를 때리기 시작했어요. 가슴, 얼굴, 다리… 제 몸은 당신 손아래에서 속수무책으로 철저하게 짓이겨 졌어요. 저는 숨이 막혀서 고함도 지를 수 없었죠. 내 대신 당신이 소리쳤어요. ?이 병신 같은 년, 내가 너 같은 년이 좋아서 결혼한 줄 알아! 몸이 병신이면 말이라도 제대로 알아들어야 할 거 아냐! 너도 똑같아… 내 예전 마누라하고 똑같은 년이라구! 야! 너도 내가 우습게 보이니? 술 사오라는 데 왜 안 사오는 거야! 빨리 가서 술 사와… 술 사오라구!…?
지옥이 따로 없었지요. 저는 혼미해져가는 정신을 추스리려고 애쓰면서 속으로 이럴려고 결혼한 게 아닌데, 내가 이렇게 될려고 결혼한 게 아닌데… 라는 말만 속절없이 되풀이해야 했지요. 때리다 제 풀에 지친 당신은 잠들었고, 저는 꺼이 꺼이 울면서 하얗게 밤을 지새웠어요. 우리의 소중한 첫날밤은 그렇게 지나갔지요.          
그때 당신을 떠나야했어요. 지옥의 풍경 속에서 살아남았으면 계속 될 폭력을 예감하
 
고, 당신 손을 벗어나 당신이 애써도 찾을 수 없는 먼 곳으로 새가 되어 멀리 멀리 날아가야 했어요. 그렇지만 저는 당신 곁을 떠나지 못했어요. 이런 걸 사람들이 자업자득이라고 말하는 거겠지요. 그럴지도 모르죠. 제가 화를 자초했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당신, 이 점만은 알아두셔야 해요. 저는 당신이 너무나 가여웠어요. 가슴이 너무 아파서 당신을 떠나지 못했어요. 당신 가족에게서 버림받고,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무능력자로 살아야 하고, 거기다가 설상가상으로 병까지 들어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온통 절망뿐인 상태에서 쌓인 당신 가슴속 응어리가 제 마음을 한없이 아프게 했던 거예요.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그 응어리가 결국 폭력으로밖에 표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했어요, 그래서 피할 수 없는 현실을 수긍하고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었어요. 어쨌거나 당신은 누가 뭐라 해도 내가 선택한 내 남편이었으니까요.
당신은 하루가 멀다하게 제게 폭력을 휘둘렀지만 저는 당신에게 처음 약속했던 대로 당신을 먹여 살렸지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구걸을 나가,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쌀을 사고 반찬을 사고, 당신을 위해 원수 같은 술을 사서 당신 손에 쥐어 주었어요. 그렇게 무정한 세월은 흘러갔어요. 제 눈에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지만, 사노라면 언젠가는 좋은 날이 있겠지 라는  유행가 가사가 틀리지는 않았는지, 볕이 들지 않는 지하방에서 짐승처럼 살던 우리에게 기적같이 좋은 일이 생겼지요. 누가 얘기해줬는지 모르지만 어느 날 사회복지사가 우리를 찾아왔고, 바로 기초생활보호 수급자가 될 수 있었어요. 그리고 그 덕분에 얼마 후 지하방을 벗어나 군포시 금정역 근처에 있는 영구임대 아파트 13평형으로 이사를 갈 수 있었지요.  너무 꿈 같은 일이 연달아 일어나서 저는 이사하던 날 당신을 붙잡고 ?이제 당신 술만 끊으면 나는 더 이상 소원이 없어요...? 라고 말하며 철없이 눈물을 뚝뚝 흘렸었는데 당신은 그 일을 기억하나요? 
아파트로 이사하고, 많지 않은 돈이지만 나라에서 매달 생계비도 지원해 줘서, 먹고사는데는 아무런 지장이 없었어요. 그렇지만 그래도 저는 계속 일을 나갔어요. 금정역 육교 위에 쪼그리고 앉아서 바구니 하나 놓고 구걸을 하다가, 여의치 않으면 가져간 콩깍지를 하나 하나 까서 날콩을 만들어 팔았지요. 이렇게 일을 나가면 하루 벌이가 2?3만원은 됐어요. 한때는 번 돈을 차곡차곡 모아 작은 집을 사는 꿈을 꾼 적도 있었지만, 당신 낭비벽 때문에 곧 꿈을 포기해야 했지요.  
제가 번 돈은 모두 당신을 위해, 당신의 허영을 만족시켜 주는데 쓰였어요. 당신은 금반지를 사고, 양복을 맞춰 입고, 술집에 가서 흥청망청 돈을 썼지요. 당신의 낭비벽이 얼마나 심했냐면,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는데, 어느 날 한 남자가 육교 위로 저를 찾아왔어요. 그 남자는 저에게 대뜸 외상값을 갚으라고 호통을 치더군요. 당신이 “우리 마누라가 금정역에서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데 한 달에 200만원을 번다고 큰소리를 쳐서 그 말을 믿고 외상을 줬다.”는 거였어요. 그 남자는 당신이 “돈을 너무 잘 써서 부잣집 남자인지 알았다.”고 말하기도 했어요.
그 즈음 저는 이미 삶을 포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당신의 낭비벽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정작 제가 견딜 수 없었던 문제는 하루가 멀다하고 이어지는 당신의 무지막지한 폭력이었지요. 당신은 거의 매일 술을 마셨어요. 그리고 그때마다 저를 때렸어요. 저를 때리지 않는 날이면 유리창을 박살낸다든지, 텔레비전을 들어 던진다든지, 하다못해 전화기를 집어던지는 등 살림살이를 부숴야만 적성이 풀렸지요. 당신 왜 그렇게 가슴 속 분노를 참을 수 없었는지, 이웃에서 파출소에 신고해 수시로 잡혀갔다 와서도 당신의 폭력은 멈추지 않았어요. 제가 당신의 구타를 피하기 위해 작은방으로 피신해서 방문을 잠그면 문을 부쉈고, 제가 밖으로 나가면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쫓아 나와 제 머리채를 잡아끌었지요. 내 온 몸에 피멍이 들고, 뼈가 부러져서 수시로 병원에 실려가도 당신은 눈 한 번 깜짝하지 않았어요. 하긴 더 말해서 뭐하겠어요. 아파트 단지에 119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도착하면 언제나 실려 가는 것은 저였는데, 당신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으니까요.
제가 더 기가 막혔던 것은 저에 대한 나쁜 소문이 아파트 단지에 돌고 있다는 거였어요.  피해자는 저였는데 사람들은 당신 말만 듣고, “그 여자는 남편이 평소에 성행위를 안 해주면 꼬집어댄다며…” “그래 그 집 남편이 그러는데 여자가 성행위를 무척 밝힌대…” “어머, 그렇게 심한 장애를 가지고 있는데, 성행위는 할 줄 아는가 보지?”“그 집 거의 매일 치고 박고 싸우잖아, 그게 다 그 집 남편이 성행위를 안 해 준다고 여자가 대들어서 싸움이 시작된다는구먼…” “보기에는 작고 힘도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그 여자 성깔이 대단하대요”, “그래요. 나도 들었어요. 싸울 때 개처럼 입으로 물어댄다면서요?”, “그러길래 그 여자같이 장애가 심한 사람은 음성 꽃동네 같은 시설에 보내야지. 사회에서 살게 놔두니까 매일 싸움만 해서 애들이 볼까 겁나잖아요”
당신, 제가 언제 당신에게 먼저 성행위를 요구한 적이 있었나요? 당신이 구타 끝에 몇 번 강간하듯 저를 덮친 적은 있어도 제가 먼저 성행위를 갖자고 요구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는데, 저는 일을 나가야 했기 때문에 피곤해서 성에 대한 관심은 처음부터 없었는데, 혹시 제 기억이 잘못된 건가요? 그리고 제가 입으로 당신을 물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저는 힘이 없으니까 다른 수단이 전혀 없으니까, 당신이 때릴 때 너무 아파서 도저히 견디기 힘들어질 때 몇 번 무는 것으로 반항했던 거였어요. 그것뿐이었는데 그게 당신 마음에 그렇게 깊은 상처로 남아 있었나요?
이제 그 날 벌어졌던 일을 이야기할게요. 상상하기도 싫지만, 돌아본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 끔찍하지만, 그 날 사고는 제가 사전에 계획했던 것이 아닌, 말 그대로 우발적인 사고였다는 것을 당신에게 얘기하고 용서를 구하고 싶어요. 그런다고 용서받을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당신에게 진실을 얘기하고 엎드려 빌면 제 마음이 조금은 편해질 것 같아서… 그래서…
무심한 당신은 모르고 있었지만 저는 그때 자궁암에 걸려서 시한부 인생을 통고 받은 상태였어요. 당신에게 맞아 실려간 병원에서 그 사실을 알려주더군요.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 속에서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내가 없으면 누가 당신을 돌봐주지 라는 안타까움이었어요. 정말이에요. 내가 죽는다는 사실은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었는데, 남은 당신은, 내가 없으면  밥 한 끼도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는 당신은 어떻게 될까, 지우려 애써도 노숙자가 돼서 쓸쓸하게 거리에서 죽어 가는 당신 모습이 자꾸 떠올라서 정말 괴로웠어요. 잠도 오지 않았고, 만사가 귀찮았지요. 고백하지만 그렇게 제 신경이 극도로 날카로워진 상태에서 그 일이 벌어졌던 거였어요.
그날 밤 당신은 이미 술에 만취해 있는 상태였어요. 그 상태에서도 당신은 밖에 나가더니 소주 세 병을 더 사 가지고 돌아왔지요. 제가 “제발 술 좀 그만 마시라.”고 흰소리를 했지만 당신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어요. 당신은 앉은자리에서 병 뚜껑을 따더니 소주를 물먹듯 벌컥벌컥 들이마시기 시작했어요. 세 병째 병 뚜껑을 따는 순간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어요. 제가 전화를 받았지요. 그 전화는 당신을 위해 제가 결혼 초기에 당신 몰래 가입해둔 제 생명보험 미납 보험료 납부를 독촉하기 위해 설계사가 걸어 온 전화였어요. 전 당신이 보험 가입 사실을 알게 될까봐 “나중에 전화하라.”고 얘기한 후 황급히 전화를 끊었지요. 그때 당신이 “누구야?” 라고 큰소리로 물었어요. 저는 당황해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어요. 그러자 당신은 제게 다가오더니 “어떤 놈이야! 어떤 놈이 전화를 걸었는지 대!”라고 소리치며 제  머리채를 나꿔챘어요. 그런 다음 방바닥에 제 얼굴을 대고 짓이겨대기 시작했지요.
갑작스럽게 당한 폭행이라 저는 충격으로 잠시 정신을 잃어야 했어요. 마치 죽은 사람처럼 제 사지가 축 늘어졌지요. 저는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당신이 언제나 그랬듯이 119를 눌러 ?마누라가 쓰러졌다. “빨리 와서 실어가 달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대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그때였어요. 갑자기 제 의식이 명징하게 맑아지는 거였어요. 짧은 순간이었지만 혼자 남게 될 당신에 대한 안타까움과, 장애우로 태어나 평생 설움만 당하고 따뜻한 말 한 마디 들어보지 못한 제 처지에 대한 한스러움이 겹쳐져서 떠올랐고, 그뿐아니라 당신과의 지옥 같은 결혼생활, 거기에 더해 이제 살아봤자 더 이상 아무런 희망을 찾을 수 없는 우리 삶의 무거움이 동시에 짓눌러오면서, 저는 당신을 죽이고 저도 당신을 따라가는 것으로 이 한 많은 인생을 끝내고 싶다는 강렬한 유혹에 사로잡혀야 했어요.
저는 정신을 차리고 엉금엉금 기어 싱크대로 다가가서 과도를 집어들었지요. 그 과도로 전화기를 붙잡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있는 당신 등을 찔렀어요. 당신이 돌아앉았고, 저는 울면서 “미안해요. 당신 먼저 가 계세요. 제가 곧 뒤따라 갈테니까 먼저 가서 쉬고 계세요” 울면서, 울면서 다시 한 번 당신 가슴을 찔렀지요.
그래요. 제가 당신을 죽였어요. 당신 죽는 순간 당신 많이 아팠을 거예요.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당신 하늘에서 아직도 저를 많이 원망하고 있겠지요. 제가 죽어서 당신 곁에 가도 당신이 결코 용서해 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아요. 그렇지만 변명 같지만 당신에게 묻고 싶어요. 우리에게 다른 선택이 남아 있었나요?  
그때 당신을 만나지 말아야 했어요.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말은 이 말밖에 없네요. 미안해요. 당신, 이제 편히 쉬세요…

글 이태곤 기자

작성자이태곤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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