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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이름은 따로 있지만 편의상 정민이와 혜수라고 부를게요. 정민이는 편마비 장애를 가졌어요. 왼쪽 다리와 왼쪽 팔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죠. 정민이는 이 곳에 팔려오기 전 고등학교에 다녔대요. 집은 서울이고 엄마 아빠와 언니 그리고 남동생과 같이 살았다고 말했어요. 정민이는 거짓말을 하지 못하거든요. 내가 왜 이 지옥에 발을 딛게 됐냐고 물어보니까 정민이는 울면서 엄마 아빠가 장애를 가지지 않은 다른 형제와 자신을 비교하면서 드러내놓고 차별해서 집을 나왔다고 말했어요. 그리고 다니던 고등학교에서도 애들이 병신이라고 놀리고 때리면서 철저하게 왕따 시켰다는 거였어요. 그래서 집을 나와서 생활정보지를 보고 티켓다방에 취직해서 지방을 전전하다가 안면도 유흥가를 거쳐 이 곳으로 팔려왔다고 말했어요.
혜수는 정신지체 장애를 가지고 있어요. 아주 심하지는 않고 경계급 정도의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말은 충분히 알아들어요. 혜수는 엄마가 일찍 세상을 떠나서 아버지가 재혼했는데 배다른 언니의 학대가 무척 심했대요. 때리고 온갖 굿은 일을 시키면서도 밥도 제대로 주지 않아서, 무엇보다 배가 고파 견딜 수 없어서 집을 뛰쳐나와 거리를 헤매다가 낯선 남자 손에 이끌려 파주 윤락가 용주골에 팔려갔대요. 거기서 다시 팔려서 이 곳으로 온 거죠. 혜수는 학교를 다닌 적이 없어서 글을 전혀 몰라요. 더 심각한 것은 혜수는 집 주소나 주민등록번호도 외우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러니 장애우 등록증도 없고, 이 곳 업소에서 의무적으로 작성하게 되어 있는 보건명부에도 이름이 없을 수 밖에요. 말하자면 존재는 있는데 존재하지 않는 인간이 혜수인 셈이죠. 내가 알아봤더니 혜수는 빚도 260만원밖에 되지 않았어요. 이렇게 빚이 적을 경우 이 곳 윤락업소에 팔려오는 경우가 거의 드물거든요. 그래서 내가 마담 언니에게 물어봤더니 언니는 사장이 혜수를 용주골에서 싼 맛에 데려왔다고 말했어요.
사실 이 곳에서는 다들 알고 있겠지만 여자의 몸이 상품이거든요. 얼굴이 반반하고 몸이 날씬하고 나이가 어려야 선택되고 팔리는 게 이 곳 생리죠. 그렇지 않으면 상품 가치가 없어서 진열도 되지 않는 게 이 곳의 냉정한 현실이거든요. 그래서 내가 처음 이 곳에 팔려왔을 때 업소에 정민이와 혜수라는 장애우가 있는 게 무척 신기했어요. 장애를 가진 몸도 상품 가치가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고, 도대체 어떤 착한 남자들이 이 곳 실정에서는 불량품일 수밖에 없는 장애 여성을 파트너로 선택하는 건지, 의문이 꼬리를 물었죠. 얼마 안가 그 의문은 곧 풀렸어요. 밤늦은 시간이 되면 술에 만취한 상태에서 2차나 3차로 관계를 맺기 위해 업소를 찾는 남자들이 꼭 있거든요. 그런 남자들은 이미 꼭지가 돌아서 똥오줌도 구별하지 못하기 십상이죠. 거기에다 결정적으로 관계를 맺는 시간도 오래 끌고 주정도 해대니 아가씨 입장에서 누가 그런 남자들을 좋아하겠어요. 그래서 업소에 술 취한 남자들이 들어오면 아가씨들은 서로 회피하거든요. 그럴 때, 정신이 없는 남자들이 상대가 장애를 가졌는지 가지지 않았는지 알게 뭐예요. 마담 언니가 혜수나 정민이를 불러서 술 취한 남자 방에 밀어 넣는 거예요. 말하자면 혜수나 정민이는 업소에서 장애를 가지지 않은 아가씨들을 대신해서 일종의 대용품 역할을 하고 있던 셈이었죠.
그런데 정민이와 혜수가 대용품 역할만 했으면, 그리고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면 내가 이렇게 화가 나지는 않았을 거예요. 아까 말했잖아요. 정민이와 혜수는 집에서 학대를 당해 가출한 아이들이라고, 정민이와 혜수는 본인이 원해서 장애를 가지게 된 것도 아닌데 단지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집과 학교에서 멸시받고 학대를 당한 아이들이었어요. 그리고 정민이도 19살 혜수도 19살 나도 19살이에요. 다른 여자아이들 같으면 대학에 진학하거나 대학에 가지 못하더라도 미래에 대해 장및빛 꿈을 꾸며 설레일 나이이죠. 슬픈 발라드에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잎새에 이는 바람에 한숨을 토하면서, 어느 날 틀림없이 백마 탄 왕자님이 나타나서 손을 잡아 줄 거라고 믿으면서 먼발치서 좋아하는 남자 얼굴만 봐도 저 사람이 왕자님이 아닐까 연상하면서 저절로 얼굴이 빨개질 나이이죠.
그런 나이에 막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소중한 몸을 뭇 남성들에게 보이고 팔아야하는 신세로 전락한 것만 해도 생각하면 너무너무 억울해서 죽고 싶은 심정뿐인데, 거기에다 더해서 동료가 학대까지 당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봐야 하다니, 어쩌면 내가 정민이나 혜수를 동정해서 두 사람을 감싸고 돈 것이 아니라 학대를 당하는 혜수나 정민이 모습에서 으스러져서 형체도 없이 사라져가는 내 19살 소중한 꿈을 목격했기 때문에, 그 점이 견딜 수 없이 화가 나서 마담 언니에게 악을 쓰고 대들었는지도 모르겠어요.       

 
혜수나 정민이 몸에는 라이터로 지진 화상 흔적이 각각 네 군데나 있어요. 혜수는 배에, 정민이는 배뿐만 아니라 등에도 불에 달군 쇠젓가락으로 지진 화상 흔적이 남아있죠. 혜수는 정신지체 장애우이기 때문에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업소에서도 철저하게 왕따를 시켰어요. 그렇지만 정민이는 지능에는 이상이 없으니까, 학대를 가하면 바로 반응이 나오니까 그 점이 재미있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마담 언니가 특히 정민이에게 상상을 초월하는 심한 학대를 가했어요. 한 번은 정민이가 성병에 걸려 질내에 고름덩어리가 생긴 적이 있었어요. 당연히 병원에 데려가서 치료를 받게 해야 하는데 마담 언니가 별 일 아니니까 업소에서 치료해도 된다면서 정민이 다리를 벌리게 하고 질내에 쪽가위를 들이민 거예요. 그 날 정민이는 너무 많은 피를 흘려서 정신을 잃고 쓰러져야 했어요. 그 뿐만이 아니에요. 정민이는 행동이 느리다는 이유로 거의 매일 맞고 나중에는 똥오줌을 강제로 먹어야 했어요.
내가 얘기할게요. 다 얘기할게요. 내가 있던 업소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친구들이 장애를 가졌다는 이유로 어떤 학대를 당했는지 다 얘기할게요. 아마 개 돼지 같은 짐승도 그런 취급을 받지는 않았을 거예요. 정민이와 혜수는 업소에서 짐승보다 못한 존재였어요. 가정이지만 만약 정민이와 혜수가 장애를 가지지 않았다면 그렇게 심한 학대를 당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사회에서와 마찬가지로 문제는 장애였던 거죠. 정민이와 혜수는 장애우였기 때문에, 너무 착했기 때문에, 구원의 손길이 전혀 미치지 않는 골방에서 악몽의 시간들을 견뎌야 했던 거예요.
내가 업소에 팔려갔을 때 혜수의 경우는 나보다 3일 앞서 먼저 와 있었고, 정민이는 업소에 팔려온 지 3개월 정도 됐다는 말을 들었어요. 혜수나 정민이에 대한 가혹행위는 마담 언니가 업소에 없었을 때는 일어나지 않았어요. 내가 업소에 발을 딛은 지 1달쯤 뒤에 새 마담 언니가 왔는데, 그러니까 정민이가 업소에 팔려온 지 4개월쯤 되었을 때 마담 언니가 온 거예요. 처음에는 마담 언니가 정민이에게 잘해줬어요. 정민이 머리도 빗겨주고 옷도 입혀주고 그랬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스트레스 때문인지는 몰라도 마담 언니가 조금씩 심하게 정민이와 혜수를 다루기 시작했어요. 어느 날부터 인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홀에 술병과 재떨이가 날아다니기 시작하더니, 그 다음부터는 마담 언니가 본격적으로 혜수와 정민이를 때리기 시작했어요.
마담 언니는 정민이를 때리면서 "너 잘못하면 네가 갈 곳은 섬밖에 없다."고 협박했어요. 섬으로 팔아버리면 정민이가 빠져 나올 수 있겠느냐고 협박한 거죠. 정민이 몸매 사이즈가 66을 넘었거든요. 보통 윤락가에서는 44, 55, 66사이즈로 여자들을 분류하는데, 44 사이즈는 날씬하니까 업소에서 무조건 다 받아요. 그렇지만 66 사이즈는 그렇지 않아요. 66 사이즈는 사회에서 통통하다고 그러지만, 업소에서는 뚱뚱한 거예요. 그래서 마담이 입버릇처럼 정민이에게 "너는 몸이 66 사이즈도 넘으니까 누가 널 데리고 가겠어? 여기에서 받아주는 것만 해도 감사한 줄 알라."고 말했어요. 말하자면 속내는 정민이 너는 장애도 가졌고 몸도 뚱뚱하니까 맞아도 할말이 없는 거다. 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던 거겠죠. 누가 봐도 치사한 짓거리임이 분명한데, 문제는 마담 언니의 치사한 짓거리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는 거였어요.  
우리가 몸을 파는 업소는 1층과 2층으로 나눠져 있어요. 1층에는 손님을 맞는 홀과 남자들과 관계를 맺는 방이 늘어서 있고 2층은 아가씨들 숙소로 사용하고 있었어요. 1층에서 일을 하고 잠은 2층에서 자는 거죠. 아가씨들이 하루 중 간절하게 기다리는 시간이 바로 잠을 자는 시간이었어요. 술 취한 남자들을 상대하다보면 너무 피곤해서 한 시간이라도 더 빨리 일을 끝내고 잠을 자는 게 아가씨들의 소원이었지요. 그런데 마담 언니와 사장이, 실상은 돈을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일부러 영업시간을 연장해 놓고도 핑계는 엉뚱하게 정민이가 행동이 느려서 일이 늦게 끝났다고 아가씨들에게 둘러대는 거였어요.  
마담 언니가 아가씨들에게 말했어요. "정민이 때문에 일이 늦게 끝나는 거니까 너희들 2층에 올라가서 정민이를 때리던지 죽이던지 마음대로 하라."고, 솔직히 말하면 업소에서 일 하는 아가씨들은 하루 네 다섯 시간 정도밖에 잠을 못 자거든요. 보통 아침 6시에 영업이 끝나는 게 정상인데, 8시나 심지어는 10시까지 영업시간을 연장하니 아가씨들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었죠. 아가씨들도 눈이 있으니까 정민이 때문이 일이 늦게 끝나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그래서 아가씨들이 정민이를 때리지는 않았지만 마담 언니가 하도 정민이 핑계를 대니까 나중에는 마담 말을 믿는 눈치였어요. 실제로 정민이는 아가씨들 사이에서 집단적으로 따돌림을 당해야 했고, 그래서인지 아가씨들이 목욕 갈 때 정민이를 데려가지 않았어요.        
내가 마담 언니에게 더 악을 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마담이 정말 술을 너무 많이 처먹어서 아가씨들이 감당하기 힘든 남자들을 모두 정민이와 혜수한테 떠밀었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업소에서 보통 남자와 관계를 맺는 한 타임이 15분이거든요. 그런데 술을 잔뜩 먹은 남자들이 일을 빨리 끝내나요. 그렇지 않잖아요. 사정이 이런데 술을 하도 먹어서, 술에 만취해서 연애도 제대로 못하는 남자들에게 정민이와 혜수를 밀어 넣고 15분이 넘으면 마담이 밖에서 빨리 끝내라며 방문을 두드리는 거였어요. 그것뿐이었으면 어쨌든 한 타임 15분이 업소 룰이니까 참을 수 있었을 거예요. 그런데 정민이나 혜수한테는 그것도 모자라 감시가 필요하다면서 손님들과 연애할 때 방문을 열어놓고 행위를 하게끔 강제하는 거였어요. 실제로 손님과 섹스하나 안 하나 밖에서 지켜보겠다는 거죠. 방문을 열어놓고 행위를 하면 마담만 그 장면을 보나요? 아가씨들도 다 보게 되잖아요. 홀에 신음소리가 진동하고 정민이나 혜수가 울면서 그 짓을 하는데, 그 모습을 보면서 다른 아가씨들은 몰라도 나는 심한 수치심에 몸을 떨어야 했어요. 우리가 비록 몸을 팔지만, 연애하는데 문열고 쳐다볼 수 있는 건가요?
그런 일이 계속되면서 나는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오르는 마담 언니에 대한 분노를 감출 수 없었어요.
어느 날인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아마 업소가 쉬는 날이었을 거예요. 쉬는 날이었지만 우리들은 사실상 감금상태에 놓여 있었으니까 물론 개인활동은 할 수 없었어요. 그렇지만 모처럼 맞는 쉬는 날이니까 외출을 나가게 해달라고 사장한테 얘기하자면서 아가씨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어요. 그 때가 막 영업을 끝낸 아침 8시경이었어요. 아가씨들이 집단적으로 동요하니까 마담이 겁을 먹었나봐요. 사장한테 전화해서 뭐라고 떠들더니, 갑자기 "외출을 허락하기 전에 밝혀야 할 게 있다."며 홀에 아가씨들을 불러모았어요. 그런 다음 느닷없이 만만한 정민이를 지목하더니 "너 어제 손님이랑 연애 안 했지? 내가 손님에게 물어보니까 연애 안 했다고 그러던데……"라면서 어거지를 쓰기 시작했어요. 어제 분명히 정민이가 받은 손님이 연애해서 좋았다고 말하고 나가는 것을 내가 들었는데. 마담이 그런 거짓말을 하는 거였어요. 그래서 내가 나섰죠. "언니, 어제 정민이 손님이 나갈 때 연애 잘했다고, 돈 있으면 시간도 끊어주고 싶었다고 했잖아요." 라고 조금 더 보태서 한마디했죠.
그랬더니 마담이 나 때문에 열이 받아서, 나한테는 화를 내면 가만히 있지 않고 대드니까, 만만한 정민이한테 화풀이를 하기 시작했어요. "수연이가 얘기하는 것이 사실인지, 아니면 네 편을 들어주려고 한 거짓말이든지 간에, 정민이 너는 네 죄를 알겠지. 만약 네가 무죄를 입증하려면 잠자지 마!"라고 소리쳤어요. 정민이가 정말 연애한 게 사실이라면 잠을 자지 않는 것으로 입증하라는 거였죠. 정말 억울했지만, 잠을 자면 지게 되는 이상한 상황이 되어버린 거였어요. 영업 끝나고 나면 정말 잠을 자지 않고는 못 견디거든요. 남자들이 술을 얼마나 먹여대는지 하룻밤에 맥주 몇 박스 마시는 거는 마시는 것도 아니에요. 매일 매일 그렇게 먹어대니까 아가씨들이 잠을 자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데, 자지 말라고 하다니, 감당하기 힘든 가혹한 형벌이었죠.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오기가 생겨서 "나도 같이 자지 않겠다."고 마담에게 대들 듯이 말했어요.
어쨌든 마담이 자지 말라고 했는데, 정민이와 어깨를 기대고 앉아 있다가 깜박 잠이 들었나봐요. 16시간 넘게 일하고, 4시간도 채 못 자는데 어떻게 자지 않고 버틸 수 있겠어요. 잠든지도 몰랐는데, 갑자기 찬물이 팍 날아오는 바람에 눈을 떴어요. 눈앞에 마담이 한 손에는 물바가지를 들고 한 손에는 식칼을 들고 앉아 있었어요. 정민이와 내가 눈을 뜨니까 마담이 애써 나는 외면하고 정민이만 바라보면서, 그것도 식칼로 방바닥을 내려치면서 소리쳤어요. "이러니까 네가 병신 소리를 듣는 거지! 병신이 따로 병신이냐!……" 순간 나도 열을 엄청 받았어요. 그래서 "내가 정민이에게 자자고 했어요! 우리를 재우지 않으려면 차라리 다른 데로 보내주세요! 당신은 악마예요!……"라고 막 소리질렀어요. 내 서슬에 놀랬는지 마담이 더 이상 정민이를 괴롭히지 않았어요. 대신 밥을 주지 않아서 정민이는 하루종일 굶어야 했어요.
밥 얘기가 나와서 하는 얘기인데 어느 날인지 역시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갑자기 마담이 정민이에게 밥을 한 솥 지어 주더라구요. "너 다른데 가서, 혹시 섬에라도 팔려 가면 거기서 밥 못 먹었다는 말 할까봐 준다."고 그러면서 밥솥을 내밀었는데 그런데 그건 밥이 아니라 꿀꿀이 죽이었어요. 마담이 모래도 섞여 있는 그런 죽을 정민이에게 주면서 "이걸 다 먹으면 너 일 안 시킬 테니까 다 먹어."라고 강요한 적도 있었어요.
어쨌든 그 날 저는 홀에서 마담에게 대든 죄를 추궁 당하며 사장한테 혼나고 있었어요. 그런데 2층에서 갑자기 정민이의 울부짖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거였어요. 후다닥 뛰어 올라가 봤더니 세상에 정민이 머리카락이 다 잘려 있었어요. 마담이 한 짓이었죠. 너무 억울했어요. 그래서 정민이를 끌어안고 절규했어요. "우리 다른 데로 가자. 사장한테 진 빚은 우리가 쓴 것도 아니잖아. 그러니 짐 싸서 다른 데로 가자. 다른 업소에 가면 때리는 사람도 없고 괜찮을 거야……" 사실 정민이는 세 달 동안 10만원밖에 안 썼어요. 저도 20만원밖에 쓰지 않았어요. "여기 와서 신발 한 켤레 제대로 사 신은 적도 없는데, 빚을 왜 우리가 갚아야 하는 거니, 왜 우리가 이렇게 맞고 살아야 되는 거니……"라고 울면서 말했어요.
정민이 머리카락이 잘렸던 사건이 있었던 그 날 오후, 마담 언니도 집요하기도 하죠.. 다시 아가씨들을 홀에 불러  모았어요. 그러더니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정민이를 지목하면서 "네가 손님과 연애를 했는지 안 했는지 시인을 안 하니까 대신 벌을 받아야겠다."라고 말했어요. 그 벌이란 것이 "너 똥물 얼큰하게 여덟 잔 먹고 끝낼래, 아니면 무릎 꿇고 맞을래."라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정민이는 다리에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다리가 아프니까 무릎을 꿇을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정민이가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마담 언니를 쳐다보며 "차라리 똥물을 먹겠다."고 대답했어요. 그러자 마담 언니가 나를 지목하더니 화장실에 가서 똥물을 떠오라고 시켰어요. 나는 마담이 설마 진짜 똥물을 떠오라는 얘기는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똥물과 색깔이 비슷한 보리차 물을 대접에 담아왔어요. 그랬더니 내가 떠온 물이 가짜인 것을 안 마담이 "이년이 사람 말을 우습게 안다!"고 고함을 내지르면서 대접을 바닥에 내팽겨쳤어요. 사기 조각이 여기 저기 튀고 아가씨들이 일제히 고함을 질러댔죠. 홀에 순식간에 공포 분위기가 조성되면서 나는 오늘 뭔 일이 벌어져도 크게 벌어지겠다는 예감이 들었고, 두려움에 부르르 몸을 떨었어요. 아니나다를까 마담이 씩씩대면서 "누가 빨리 화장실에 가서 똥 누고 똥물 떠와!"라고 재차 소리쳤고 그 서슬에 한 아가씨가 화장실에 가더니 바가지에 진짜 똥물을 담아왔어요. 마담이 눈도 찌푸리지 않고 바가지에 든 똥물을 맥주 컵에 옮겨 담았어요. 그러더니 컵을 정민이에게 내밀면서 "마셔!"라고 짧게 명령했어요. 정민이가 울면서 그 물을 받아 마셨어요. 그렇지만 어디 똥물이 쉽게 목으로 넘어가나요. 정민이가 똥물을 마시다가 웩웩거리며 토했어요. 그러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세요? 마담이 걸레를 가져오더니 정민이의 토사물을 닦았어요. 그런 다음 그릇을 가져와서 그릇에다 대고 걸레를 짜는 거였어요. 몇 번을 되풀이해서 걸레를 짜내자 그릇에 구정물이 가득 고였어요. 마담이 그 그릇을 정민이에게 내밀며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어요. "이거 네가 토한 거니까 더럽다는 생각 안 하지, 그러니까 마셔! 너 토해도 소용없어! 토하면 토하는 대로 다시 네 입에 쳐 넣어 줄테니까……" 인간이 어쩌면 그렇게 잔인할 수 있는지, 그 날 정민이는 똥물 여덟 컵, 오줌 물 여덟 컵을 토하지도 못하고 꾸역꾸역 들이마셔야 했어요.
혜수도 많이 맞았어요. 영업이 아직 끝나지 않은 어느 날 새벽이었어요. 2층에서 한 시간 넘게 아가씨들이 소리소리 지르고, 우는소리도 들리고, 난리가 난 거였어요. 혜수 목소리도 섞여 있어서 내가 올라가 보려고 하니까 마담 언니가 못 가게 막았어요. 그래서 영업시간이 끝나고 올라가 봤더니 세상에 혜수가 발가벗겨진 채 구석에 앉아 울고 있는 거였어요.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까 혜수 몸 여기저기에 라이터와 쇠젓가락에 데인 자국이 선명하게 부풀어 있는 거였어요. 혜수를 붙잡고 누가 그랬냐고 물어봤지만 혜수는 그냥 울기만 했어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혜수 몸에 난 상처는 아가씨들이 한 짓이었어요. 혜수가 돈을 훔쳤다고 누명을 씌여서 아가씨들이 쌓인 스트레스를 푼 거죠.
이렇게 모두들 미쳐가고 있었고, 나는 그런 업소에 있는 것이 정말 소름끼치도록 무서웠어요. 그래서 도망칠 기회를 엿봤지요. 운이 좋았는지 어느 날 업소를 찾은 한 손님에게 부탁해서 손님 핸드폰으로 아빠에게 구해달라고 연락할 수 있었어요. 나는 법적으로는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바로 아빠와 경찰이 달려왔고, 그 지긋지긋한 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었죠. 그렇지만 나는 나 혼자 살겠다고 아빠한테 연락한 건 절대 아니었어요. 그래서 경찰서에 오자마자 경찰에게 "내가 일 하던 업소에 장애여성 두 명이 감금돼 있어요. 그들도 구해주세요."라고 부탁했지요.
그래서 몇 시간 후 경찰서에서 정민이를 만날 수 있었어요. 나는 정민이를 잘 알아요. 정민이는 순하고 욕 한 마디 할 줄 모르는 착한 애거든요. 그런데 그런 정민이가 경찰서에서 나를 보자마자 막 욕을 하는 거였어요. "이년아, 도망치려면 너 혼자 도망치지 네가 뭔데 나까지 불러내니, 나는 맞은 적도 없고, 강제로 몸을 팔지도 않았어. 너는 은혜도 모르는 나쁜 년이야, 배신하려면 너 혼자 가,……" 나는 정민이가 하는 말이 결코 자의가 아니라는 것을 정민이 눈을 보고 단박에 알 수 있었어요. 정민이는 업소에 돌아가 당할 학대를 두려워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내가 정민이에게 말했어요. "정민아, 기회는 이번 뿐이야, 우리 같이 나가자. 나가서 포장마차도 가고, 정민이 네가 원하던 문방구 주인도 될 수 있는 길을 알아보자. 내게 욕을 해도 좋아, 다 참을 수 있어, 하지만 기회는 이번뿐이라는 걸 알아야 해, 너 거기 계속 있으면 얼마 안가 맞아 죽을 거야, 그러니 제발 같이 나가자……" 간절하게 얘기했는데도 정민이는 사장과 마담이 무서우니까 계속 윤락도 없었고 맞지도 않았다고 부인으로 일관했어요. 그렇지만 말과 달리 정민이가 내게 보낸 눈빛은 그렇지 않았어요. 정민이는 경찰이 자기를 다시 업소에 돌려 보낼까봐 그게 두려웠던 거예요. 그래서 내가 경찰에게 업소에 가서 정민이 짐을 찾아다 달라고 부탁했고, 부탁대로 경찰이 업소에 가서 정민이 짐을 가져오자 그제서야 정민이는 안심했는지 경찰에게 자신이 업소에서 당한 학대 사실을 털어놓기 시작했어요.   
한세월을 윤락가에서 철저하게 노리개로 살아야 했던 정민이와 혜수는 이런 과정을 거쳐서 다시 사람 사는 세상으로 돌아왔어요. 그렇지만 세상도 정민이와 혜수를 반기지는 않았어요. 오히려 경찰 아저씨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너희들이 원해서 윤락가에 들어가 놓고 왜 장애 핑계를 대니, 너희들이 무슨 장애우니? 장애우등록증도 없는데, 정민이 너는 다리를 조금 저는 정도이고, 혜수 너는 착한 저능아일 뿐이잖아, 그러니 어디 가서 장애우라고 하지 마."라고 말이에요.
경찰은, 세상은, 왜 정민이나 혜수가 장애를 가졌으면서도 장애우 등록증이 없는지, 그리고 왜 지옥 같은 윤락가에 몸을 담을 수밖에 없었는지 그 이유에 대해 관심이나 있을까요?  
우리 사회에는 아직 등록도 하지 않은 채 방치된 장애우들이 많이 있잖아요. 장애우가 가정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면 누가 대신해서 장애우 등록을 해주겠어요? 그리고 나 같은 비장애우도 마찬가지지만 여성이 집을 벗어나면 갈 곳이 없는 게 현실이잖아요. 장애 여성이 가정불화나 차별 그리고 왕따를 당해 어쩔 수 없이 가출했을 때 머물 곳이 있나요? 없잖아요. 그러니까 생활정보지에 난 숙식제공 월 200만원 수입 선불 가능이라는 광고를 보고 머물 데가 그곳밖에 없으니까 윤락업소를 찾아가게 되는 거예요. 말하자면 정민이나 혜수가 갈 곳이 없어서 윤락가를 찾아간 것이 죄는 아니라는 거죠.
혜수와 정민이는 정말 착한 아이들이었어요. 누가 때려도, 똥물을 먹여도, 불로 지져도, 아무런 반항도 할 줄 모르는 착한 아이들이었어요. 죄가 있다면 착한 게 잘못인 거죠. 그리고 장애를 가졌다는 거 그게 잘못이었던 거죠.
바람이 불고 있네요. 이 바람결에 실려 정민이나 혜수가 어디로 갈지 모르겠어요. 누가 정민이나 혜수 손을 잡아줬으면 좋으련만 그런 따뜻한 손이 세상에 있을까요……

글 이태곤 기자

 

작성자이태곤  webmaster@cowalk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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